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내가 이런 만남을 주선하다니
밤하늘도 너무 오래 바라보면 미친놈이다. 나는 흑묘아를 뽑아서 일월광천에 휩쓸려 나간 전장에 진입했다.
검마의 말대로 일월광천은 완벽하지 않았다.
준비하고 쏘아 올리는 시간이 고수들의 기준에서 너무 길었기 때문에 눈치 빠른 놈들은 어떻게든 대비했을 것이다. 호신공을 일으키고 장력을 내밀었거나, 황토색의 벽 뒤로 재빨리 숨어서 피해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벌레들이 있을 것이다.
흑도를 때려죽이러 온 것이면 대충 끝냈을 것이나 살수들에게 자비는 없다.
내가 칼을 뽑은 채로 난장판이 된 곳을 진입하자, 일행들도 잔당을 죽이기 위해 퍼졌다.
그제야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투두둑……!
폭발에 휩쓸려서 날아갔던 병장기, 신체의 일부분, 찢어진 옷자락, 손가락 마디 같은 잡다한 것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용명이 짤막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 이제 떨어집니다.”
나는 숨이 붙어 있는 살수들을 찾아서 이동했다.
“……살려줄 때 무릎 좀 꿇어라. 지금은 무릎도 안 움직일 거야. 후회해도 늦었다.”
이때,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옷이 제멋대로 찢어진 외팔이 노인장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일월광천의 폭발과 그것을 받아친 자신의 장력 때문에 엄청난 높이까지 솟구쳤다가 이제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나도 감탄이 나왔다.
“와… 늙은이 좀 하네?”
안타까운 것은 치렁치렁했던 머리카락이 불길에 탄 것처럼 볼품없이 뜯겨 나갔다는 점이었다.
외팔이 노인장이 바닥에 내려서자, 검마가 입을 열었다.
“둘째 공자를 지지하던 등 장로였나?”
노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아보는군.”
“칠 교관과는 무슨 관계였나?”
“당연히 내 사부셨네.”
“배교자를 긁어모아서 살수 단체를 이끌었구나.”
내가 흑묘아를 쥔 채로 다가가자, 외팔이 노인장이 입을 열었다.
“문주.”
“왜.”
“자네들이 힘을 합치면 나를 죽이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젊은 나이에 좌사의 자리에 올랐던 검마와 마지막 싸움을 해보고 싶군. 그는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동경하던 젊은 고수였지. 신분이 점점 높아져서 겨룰 기회도 없었네. 함께 배교자가 된 처지이지만 옛 좌사와 이공자의 호위로 붙어보고 싶네. 좌사도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나는 검마를 바라봤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검마가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는 이미 예상했다. 이런 일대일 대결은 추호도 피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등 호위, 그렇게 하세.”
노인장이 히죽 웃자, 듬성듬성 빠져 있는 볼품없는 이빨이 드러났다.
“고맙네. 혹시 이공자가 식솔들과 쫓기고 있을 때 자네도 추격조에 있었나?”
“있었지.”
“그때 누굴 죽였나?”
“중간에서 막아서는 흑랑대.”
“결과는?”
“물론 다 죽였던 것으로 기억하네만.”
“자네는 흑랑대주와 친분이 있지 않았나?”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마의 표정을 바라보던 외팔이 노인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천하의 검마도 후회라는 것을 하는 사내였구나.”
“그렇진 않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약한 것을 후회해라. 죽을 때도 이런 생각을 하라고 교관들이 가르쳤을 텐데. 선공은 양보하마. 등 호위.”
나는 팔짱을 꼈다.
불구경 다음에 싸움 구경을 하는 게 정석이다. 일월광천을 장력으로 튕겨내서 살아남았다면 제법 잘 싸우는 사내라는 뜻. 하지만 어쨌든 저 미완성의 절기를 막아내느라 공력을 제법 많이 소비했을 것이다. 이것은 결과가 중요한 싸움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검마가 광명검을 들고 있으니 맹주와 겨뤘을 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 와중에 색마 놈은 사부의 대결에 관심이 없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살수들의 숨통을 끊어내고 있었다.
나는 외팔이 노인장과 검마를 살폈다.
* * *
폐허의 끝부분에 있었던 외팔이 노인장이 바닥을 쓸어내는 것처럼 이상한 경공을 펼치면서 거리를 좁히다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거의 빛살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
“어?”
공중에서 뽑힌 노인장의 검이 먼저 검마의 가슴에 닿았다.
텅……!
불길하게 들리는 금속음이 터지고.
일부러 타격을 허용한 것처럼 보이는 검마는 광명검으로 노인장의 복부를 동시에 찔러서 검과 함께 들어 올렸다.
푸악!
이어서 광명검에서 시작된 흑색의 검기가 노인장에게 들러붙어서 신체 이곳저곳을 뜯어냈다.
아무리 마공이라지만 나는 이렇게 흉측하게 생긴 검기(劍氣)는 본 적이 없다.
보통 검기라는 것은 검의 형상을 본뜨기 마련인데 이 검기는 사람의 팔다리, 얼굴, 크게 벌린 입처럼 된 흑색의 망령처럼 보였다. 이 망령이 노인장을 순식간에 뒤덮자, 군데군데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그러나 그 핏물마저도 검에서 뻗어 나간 고사리 같은 손들이 내밀어서 집어삼켰다.
나는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오우…….”
이어서 광명검에 찔린 노인장의 신체가 공중에서 해체되더니 이를 흡수한 검은 색의 망령들이 검에 들러붙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검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묘한 음색이었다.
후회스럽기도 하고 또 잘못을 저질러서 괴롭기도 하다는 한숨이랄까.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검마의 착잡한 표정을 바라봤다.
‘……이거 아주 심각한 마공이구나.’
저러니까 교주도 검마를 놓쳤을 터였다.
광명검을 제대로 사용한 검마는 매우 위태로운 사내였다. 저런 식으로 강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광명검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던 것.
나는 내키는 대로 검마에게 물었다.
“선배, 그런 무공을 계속 써도 괜찮겠소? 위험해 보이는데.”
검마가 나를 바라봤다.
시커멓게 변해 있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본연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검마가 사람으로 되돌아오면서 말했다.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지만 승부욕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되는군. 목검을 어서 빨리 수련해야 할 텐데.”
참으로 인상적인 말이다.
분명 강한 사내라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동시에 매우 약한 사내의 일면이 보였다.
사람이 어찌 강함과 약함을 동시에 지닐 수 있을까.
이 검마라는 사내가 그렇다.
내가 물었다.
“부작용이 크지 않소?”
“그런 편이네.”
“구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있소?”
검마가 색마를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광명검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게 부작용이겠지. 제자에게도 가르치려다가 관뒀네.”
나는 좌사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떠올렸다.
“똥싸개에게 문신이 있는 이유가 그거였소?”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무공이네. 호신공이지.”
문득 검마는 그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조식을 하지도 않고 다친 곳도 없어 보였는데 내 눈에는 검마가 매우 지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부상당한 살수들을 정리하고 돌아온 색마가 검마에게 말했다.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나도 검마의 근처에 앉아서 황량하게 변한 살수들의 은신처를 잠시 구경했다.
용명이 멈춰 있는 우리 셋에게 말했다.
“더 쉬고 계십시오. 제가 넓게 움직여서 잔당을 정리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검마를 바라봤다.
검마가 나와 제자를 번갈아 보더니 문득 지난 인생을 회고하는 사내처럼 입을 열었다.
“내가 강한 게 아니라 병장기가 강한 것 같아서 그동안 종종 모멸감을 느낀 채로 살았네. 되도록 잘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런 힘을 외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새삼스럽게 광마, 색마, 검마가 살수들을 죽이고 나서 휴식을 취했다.
내가 겪은 주화입마와는 또 다른 유형의 심마(心魔)가 검마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승부욕과 공허함.
패배하기 싫어서 마검을 사용했을 것이고.
마검을 사용하고 나면 모멸감을 느끼는 상태.
죽는 것보다 패배하는 게 더 싫어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 검마 곁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전생에는 검마가 어디선가 홀로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겠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쓸쓸하고 황량한 곳에서 광명검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던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검마의 문제는 실로 복잡해 보여서 나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평범한 장검을 지닌 채로 싸우다가 죽느냐, 아니면 마검을 지닌 채로 승승장구하면서 마귀처럼 살아갈 것이냐.
인생에 명확한 답이란 게 있을까 싶다.
“검마 선배.”
검마가 그 어느 때보다 공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 정도 눈빛이라면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을 검으로 갈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터였다. 그나마 애초에 성정이 침착하고 냉정한 편이어서 폭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검마가 말했다.
“말하게.”
“심마가 내 눈에 보일 정도요.”
“그런 상태지.”
“목검으로 싸우다가 죽느냐, 마검을 지닌 채로 계속 주화입마에 시달릴 것인가. 이 양자택일의 문제 같소.”
“더 복잡하지만, 정리하면 그러하네.”
“소개해 줄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만나보시겠소?”
“내 심마를 치료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없을 거요.”
“그런데도 만나보라는 말인가?”
“그렇소.”
“어째서?”
나는 팔짱을 끼면서 대꾸했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마귀가 될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를 찾아다니면서 사람이 되는 방안을 능동적으로 찾느냐의 문제요. 물론 누구도 쉽게 고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심마에 휩싸인 자가 사람이 될 방법을 찾아다니려는 마음 자체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실마리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강요하진 않겠소.”
검마가 대꾸했다.
“세상사에 통달한 것 같은 늙은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은 없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그러나 소개할 사람은 젊은이요.”
검마가 한 방 맞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젊은이라고?”
“늙은이의 고리타분한 말도 싫고. 젊은이의 어리석은 말도 싫다면 앞으로 선배는 황야에서 운기조식을 하다가 객사할 팔자요. 부담 갖지 말고 만나보시오. 결과는 나도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
검마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와중에 색마가 옆에서 조언했다.
“사부님, 한 번 만나보시지요. 시건방진 놈이면 제가 알아서 혼을 내겠습니다.”
나는 색마를 바라봤다.
“지랄을 해라. 네가 누굴 혼내? 정신 나간 놈.”
문득 기운을 좀 차린 검마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일단 잔당들을 다시 확인한 다음에 전부 죽이고 떠나세. 일 처리는 확실해야 하는 법. 다친 놈들도 멀리 못 갔을 것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검마에게 말했다.
“나뭇가지라도 하나 꺾어서 사용하시오.”
검마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겠네.”
* * *
“선생, 선생, 모용 선생! 내가 왔소.”
나는 모용의가로 쳐들어가서 당당하게 모용백을 불렀다. 용명까지 데리고 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어서 복귀 도중에 혈야궁으로 돌려보낸 상태. 사류곡의 전리품은 혈야궁이 수거한 다음에 나누기로 해서 용명도 할 일이 많았다.
어디선가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모용백이 놀란 표정으로 뛰어나왔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바쁘신가?”
“아닙니다.”
모용백이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옆에 계신 분들은?”
나는 검마를 슬쩍 바라봤다가 대꾸했다.
“……환자를 데리고 왔소.”
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모용백이 내게 물었다.
“아, 환자를 데려오셨는데 왜 그렇게 즐거워하십니까?”
“그러게? 생각해 보니 그렇군.”
모용백이 자신을 소개했다.
“여하튼 잘 오셨습니다. 저는 모용의가의 모용백입니다. 그런데…….”
“…….”
모용백이 색마와 검마를 살피다가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어느 분이 환자신지요?”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대꾸했다.
“오, 날카로운 질문이군. 일단 이쪽이오. 중증 환자요.”
나는 검마를 가리켰다.
모용백이 자신의 집무실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검마와 눈을 마주쳤다가 엄지를 한 번 올려줬다.
“……선생님 말씀 잘 들으시오. 선배.”
“…….”
“내 의형제 같은 사내니까 화난다고 때리지 마시고.”
“그럴 일 없네.”
검마와 모용백이 집무실에 들어가고 나서, 낯선 여인 두 명이 내게 다가와서 인사를 올렸다.
“문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인사를 올린 의녀들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처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흑백소소입니다.”
“흑소령과 백소아입니다.”
나는 그제야 처자들의 얼굴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예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진 상태였다.
“아, 너희였구나. 얼굴이 좋아져서 몰라봤다.”
“좋아졌는데 왜 몰라보세요.”
“닥쳐라.”
“예.”
“너희는 들어가서 다른 의녀에게도 오늘은 이쪽으로 코빼기도 내비치지 말라고 전해라. 다들 복면을 착용하고 일하도록.”
“예?”
나는 인상을 썼다.
“어디서 말대꾸야. 빨리 들어가. 강호 최정상의 변태가 이곳에 있다.”
나는 손을 내저어서 처자들을 쫓아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색마가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이봐, 문주.”
“왜.”
“내가 이런 데서도 처자들을 건드릴 것 같으냐? 적당히 해라.”
“몽랑아, 너는 스스로 고칠 마음이 없어서 환자 축에도 못 낀다. 의녀들 불러서 네 일화부터 이야기해주기 전에 얌전히 있어라.”
색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일화? 그게 무슨 소리냐.”
“…….”
내가 입을 다물자, 색마가 이내 눈치를 챈 모양인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색마를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기승전똥을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못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