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그것은 심마가 아닙니다.
나는 문득 입을 다문 채로 모용백의 집무실을 바라봤다.
저 안에서 전생 독마와 검마가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니 나조차도 기분이 이상했다.
솔직히 말해서 검마의 상태는 복잡하고 어렵다.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면.
검마 정도 되는 사내가 풀지 못하는 난제인 것이다.
모용백에게도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만남을 주선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늘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 문제는 모용백이 해결할 수 없고, 검마도 해결할 수 없으며,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셋이라면 혼자보다 나을 것이다.
* * *
모용백은 마주 앉은 검마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침부터 삼켰다. 자꾸 하오문주가 어디서 이렇게 괴물 같은 사내를 데려오는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 실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신세계도 굳건해 보여서 말문이 막힌 상황.
검마는 젊은 의원이 긴장한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긴장할 것 없네.”
“예. 제가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나를? 글쎄. 그것이 애매하군.”
모용백이 웃으면서 물었다.
“연장자이시니 형님이라고 부를까요?”
검마가 고개를 저으면서 대꾸했다.
“그런 호칭으로 나를 부른 사람은 없네. 의원인 줄 알았는데 자네도 무공도 익혔으니 하오문주처럼 선배라 부르게.”
모용백이 대꾸했다.
“선배가 편하시겠습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용백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환자라고 부를까요?”
검마가 눈을 껌벅이면서 바라보자, 모용백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농담입니다.”
검마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괜히 하오문주의 의형제가 아니었군.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것은 듣는 자의 자유지.”
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가 서재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책을 많이 읽는군.”
“예. 무공 서적도 있고. 의학 서적도 있고. 고서와 구하기 힘든 옛 소설도 있습니다. 선배님도 책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네.”
“주로 무엇을 보셨습니까.”
“무공 서적이지.”
“다른 것은요?”
“노자서(老子書)를 가끔 보았는데 이것도 역시 무공을 대입해서 읽었네. 자네도 봤나?”
“봤습니다.”
“어떠하던가?”
“대체로 못 알아들을 말이 많아서 금세 덮었습니다. 선배에겐 도움이 됐습니까?”
“없네. 불필요하다 여겨 모두 잊었지.”
모용백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가차 없으시군요.”
“그런 편이네.”
“문주께서 선배님을 환자라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광명검을 끌러내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뽑아보겠나?”
모용백이 긴장한 낯빛으로 대꾸했다.
“제가 죽는 건 아니겠지요?”
검마가 미소를 지었다.
“설마 문주의 지인을 내가 함부로 대하겠나.”
“예, 그럼 제가 한 번.”
모용백은 두 손을 뻗어서 광명검을 뽑은 다음에 귀청을 때리는 귀곡성을 듣자마자 급히 집어넣었다.
모용백이 말했다.
“검이 비명을 지르는군요. 어디가 아픈 모양이죠?”
검마가 보기 드물게 소리 내어 웃으면서 대꾸했다.
“자네는 웬만하면 전부 환자로 보는군.”
“직업병입니다.”
“아주 희귀하게 스스로 검명(劍鳴)을 토해내는 검들이 있네. 정상적인 검은 아니지.”
“이것이 바로 마검(魔劍)이라는 것이군요. 선배가 만드셨습니까?”
“그럴 리가. 어렸을 때 내게 강제로 귀속되었던 검이네.”
“가문에 의해서요?”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백은 헛기침을 한 다음에 서랍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이마를 닦았다.
“혹시 그 귀속이라는 것은 해제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있을 것이나 나는 배우지 않았네.”
“혹시 방법을 안다면 귀속을 해제하실 겁니까?”
“지금은 그럴 수 없네.”
“어째서요?”
“나더러 죽으라는 뜻일 테니까.”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죽음의 의미가 귀속을 해제하자마자 죽는다는 것인지요? 아니면 마검을 잃은 것이 전력 약화로 이어져서 적들에게 당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후자일 것이네.”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함부로 귀속을 해제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지.”
“그런데도 문주께서 선배님을 데려오신 것은 마검을 지닌 것만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해주시지요.”
“그 점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네.”
검마가 광명검을 쓰다듬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자 내가 강해지는 속도는 점점 더뎌지고, 이놈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적들을 먹어치울 때마다 제한이 없는 것처럼 강해지고 있네. 나는 이 검 때문에 마귀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으나…… 지금은 내가 이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멸감을 주고 있네. 환멸이랄까. 어떤 느낌인지 알겠나? 내가 이 마검보다 약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하지만 쉽게 버릴 수도 없네. 어쨌든 패배해서 죽는 것보다는…….”
검마가 말을 멈추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용백이 물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검명(劍名)이 무엇입니까?”
“광명(光明)이라 부르네.”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군요. 검을 다시 만져 보겠습니다.”
검마가 허락하자, 모용백은 다시 광명검을 뽑았다. 귀곡성이 이번에는 처음과 다르게 잔잔하게 이어졌다.
모용백이 침을 한 번 삼킨 다음에 말했다.
“아까 들었던 귀곡성과 다릅니다.”
“광명검이 불안한 것은 제멋대로라는 점이네. 살아남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예측 불가한 면모 때문에 어느 순간 내가 잡아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고 있네.”
모용백은 광명검을 내려놓은 다음에 팔짱을 꼈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흔히 만나는 강호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사람들이 광명검을 얻으면 사람을 죽여대면서 계속 강해질 겁니다. 죽이고, 죽여서 점점 더 강해지겠죠. 크게 후회하지도 않을 겁니다. 일단 원수를 갚고, 원수 갚을 일이 없으면 천하제일이 될 때까지 싸우겠죠. 물론 그 전에 이 마검으로도 어쩔 수 없는 고수를 만나면 죽을 겁니다. 강호가 그렇습니다. 상식과 마땅한 도리가 천대받는 세상, 모든 것을짓누르는 힘이야말로 진리라고 여겨지는 곳이 강호이기 때문입니다.”
검마가 모용백을 바라봤다.
“그런데?”
“선배의 출신은 마도가문이 아닙니까?”
“맞네.”
“가문에서 가르치던 것을 받아들이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고. 스스로 생각하시다가 가문의 생각과 다른 지점에 닿으셨을 겁니다. 예를 들면 무차별적인 학살을 해서라도 강해질 필요는 없다던가……. 약자까지 흡수할 마음은 없다던가. 이런 마음들 말입니다. 가문이 가르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 데다가 홀로 수련까지 열심히 하셨다면 충분히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저는 심마(心魔)에 빠진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심마가 아니라고?”
“예.”
“그럼 대체 무엇인가? 이 지독한 모멸감과 공허함,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은…….”
“그것은 책임감일 겁니다.”
“…….”
모용백이 깍지를 낀 채로 검마를 바라봤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도의 영향은 받았으나 인간의 마지막 도리는 지키고 살겠다는 책임감일 겁니다. 이것은 높은 수준의 책임감입니다. 왜냐하면, 선배가 처했던 환경이 무척 살벌했을 테니까요.”
“그것을 자네가 어찌 알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셨다고. 마귀들의 수준이 높을수록 선배가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인 압박감도 컸을 겁니다.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주변에 온통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겁니다. 성정이 약했거나 다소 경망스러운 사람이었다면 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마검이나 휘두르다가 그에 걸맞은 운명을 맞이했겠지요. 선배는 그 검을 누군가에게 선뜻 물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마가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겠지.”
“누가 이 검을 지닌 채로 그렇게 힘든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살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신에 사용하시다가 나중에 정 힘든 시기가 오면 하오문주에게 전달하십시오.”
검마가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문주에게? 문주가 쓰게 하라는 말인가?”
모용백이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문주의 성격이면 이 불길한 검을 즉시 부러뜨리겠지요.”
검마가 다소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것을 왜?”
모용백에겐 “이 귀한 것을 왜?”라는 말로 들렸다.
모용백이 덤덤한 어조로 대꾸했다.
“검보다 선배가 더 중요하니 검을 부러뜨리겠지요.”
“음.”
“아마 성질에 못 이겨서 부러뜨린 다음에 철방으로 달려가서 화로에 집어 던진 다음에 쇳물이 될 때까지 지켜볼 겁니다. 재수 없다고 욕도 하겠지요.”
“그렇군. 그럴 것 같군.”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광명검을 쓰다듬었다.
“그렇습니다. 보기 드물게 희귀한 검이긴 하지만 돌아보면 그저 병장기일 뿐입니다. 저라고 이것이 언제 폭주하게 될 것인지 감히 알겠습니까? 이 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선배입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검을 구속할 수 있는 사람도 선배일 겁니다. 이것은 심마에서 오는 고통이 아닌 책임감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네.”
“예.”
“왜 내가 이것을 들고 그런 책임감을 느꼈다고 보는 건가? 그러니까 내 말은 나도 이것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말이 꼬이는군. 이해했나?”
“예. 만약 그렇게 폭주하시는 분이라면 문주가 저런 표정으로 선배를 이곳에 데려오지 않았겠지요. 자제력이 있으시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니까 저를 소개했을 겁니다. 저는 선배나 문주처럼 엄청난 고수가 아닙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눠보니 저도 알겠습니다. 그저 검이 흉측한 것이지, 선배는 마귀(魔鬼)가 아닙니다.”
검마가 모용백을 노려봤다.
“내 별호가 검마(劍魔)라네.”
“알고 있습니다.”
“문주가 알려줬나?”
“아니요. 별호를 들어봤을 뿐입니다. 선배님, 이런 불길한 마검의 이름이 하필이면 광명(光明)이고, 검마라 불리는 사내가 마귀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만, 이 검으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검의 이름은 계속 광명으로 남고, 사람은 사람으로 남겠지요.”
모용백이 두 손으로 광명검을 들더니 검마에게 내밀었다.
“마검이냐, 명검이냐. 이 문제는 검객에게 달렸습니다.”
검마는 모용백과 눈을 마주치다가 광명검을 붙잡았다.
“검객에게 달린 일이었군.”
“예.”
“가슴에 새겨놓겠네.”
“너무 깊이 새기진 마십시오.”
“왜?”
“그것도 다 상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바깥에 넋이 종종 빠지는 문주도 잘 부탁드립니다. 한가하실 때 종종 놀러 오십시오. 넋이 나간 인간의 헛소리에 가끔 말대꾸해주시면 실소할 때가 있을 겁니다.”
“가끔 그랬네.”
“실소도 웃음이니 좋은 겁니다.”
검마도 그제야 표정을 좀 풀었다.
“좋은 것이었군. 오늘 반가웠네. 모용 선생.”
모용백이 무언가 농담하려다가 참은 다음에 손을 내밀었다.
“같이 나가시지요.”
“무슨 말 하려던 거 아닌가?”
“농담은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어색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 * *
나는 잠결에 모용백과 검마의 인기척을 알아차리자마자,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색마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부님, 나오셨습니까.”
나는 쌍꺼풀이 겹친 눈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뒷짐을 지었다.
“나오셨소? 좋았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목이 말랐는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검마가 나를 보면서 대꾸했다.
“문주, 잘 잤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아무 데서나 잘 수 있는 것도 실력이요.”
“그렇군.”
나는 검마와 모용백의 표정을 구경했다. 둘 다 평상시와 같아서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전낭으로 손을 넣었다.
“모용 선생, 또 봅시다.”
모용백이 다가오더니 내 팔을 붙잡았다.
“문주님, 오늘은 받지 않겠습니다.”
“왜?”
“검마 선배님에게 약도 안 지어드렸습니다. 나중에 저희도 밥이나 사주시지요.”
“그럴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손가락으로 색마 놈을 가리켰다.
“이놈은 각별하게 조심하도록. 혼자 오면 환자로 받지 말고. 내 말 알아들었나?”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색마와 눈을 마주쳤다가 선수를 쳤다.
“닥쳐라.”
“…….”
분위기가 실로 오묘하게 어색해서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상한데 분위기? 이 분위기 나만 어색해? 나만 이상해?”
대꾸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나도 포기했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