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0
30화. 하오문은 모르는 게 없다.
이 싸움을 가장 객관적으로 본 것은 장득수다.
소군평의 칼에서는 회색빛의 기가 돌풍처럼 뻗어 나가서 놀라웠고.
얼마 전까지 점소이였던 동네 동생의 식칼은 더 불가사의했다.
마늘이나 삭삭 자르던 식칼은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새빨간 양념장에 휘감긴 채로 돌풍을 찢어발겼다.
장득수의 눈에는…….
식칼이 이겼기 때문일까?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장득수가 마지막으로 겨우 확인한 광경은…….
소군평이 양손으로 붙잡은 괴상한 남만 칼로 식칼을 겨우 쳐내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울린 굉음 때문에 장득수는 솥뚜껑을 떨어뜨리자마자 양손으로 귀를 덮었다.
충격의 여파로 소군평의 몸뚱어리는 쏜살같이 날아가서 땅바닥에 처박히더니 떼굴떼굴 굴렀다.
“와아아…….”
장득수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싸움이 멋지네.’
거기까지가 끝이었으면 장득수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터였다.
놀랍게도 소군평은 아직 살아있었고.
점소이 출신의 문주께서는 황소처럼 돌진해서 이제 막 일어난 소군평을 마구잡이로 패고 있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엄청난 고수들의 싸움이 급격하게 동네 사내놈들의 싸움으로 격이 떨어진 상황.
“그것참 찰지게 패네.”
그제야 장득수는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장득수도 이제 보는 눈이 생겼다.
그렇게 날렵하던 흑도 사나이가 지금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이유는 아마도 강호인들이 말하는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 와중에 전직 점소이 동네 동생은 흑도 사나이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두들겨 패면서도 무어라 소군평에게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까진 잘 들리지 않았다.
‘저놈도 제정신이 아니야. 뭐라고 하는 거지?’
저도 모르게 주제 파악을 못 하게 된 장득수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아이고, 자하야. 그만 패라. 사람 죽겠다.”
실은 동네 아우가 광증(狂症)에 휩싸인 게 아닐까 해서 말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국밥을 파는 춘양반점의 주인장이 전직 점소이와 흑도 사나이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나선 모양새도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 * *
나는 소군평의 머리카락을 붙잡아서 들어 올렸다.
“맷집이 좋네.”
이 와중에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소군평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놈의 머리카락을 쥐어짜듯이 움켜쥐면서 말했다.
“흑도 사나이, 정신 좀 들어?”
대답이 없어서 따귀를 한 대 후려치니, 장득수가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죽이려고?”
나는 흑묘방의 고수, 그것도 훗날 삼백갑자라는 별호로 불리는 자를 걱정해주는 장득수의 말이 너무 우스웠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강호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는 사람인 것이다.
사실 염화향을 이렇게 쳐낸 것만으로도 소군평은 뛰어난 실력자다. 하지만 내가 염화향에 주입한 공력을 의도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이놈이 살아남은 것이기도 하다.
“군평아, 이제 항복할 마음이 들어?”
소군평이 나를 바라보면서 히죽 웃었다.
“항복?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나?”
“매우 한심해 보인다만.”
“내가 어찌 점소이에게 항복할 수 있겠나? 마음껏 더 때려봐라.”
나는 소군평의 볼을 꼬집으면서 씨익 웃었다.
‘이거 신기한 놈이네? 비굴하지 않아서 그렇게 오래 살아남았던 건가.’
나는 볼을 꼬집던 손으로 소군평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소군평은 얼굴을 바닥에 처박더니 그제야 기절했다.
“근성이 있네. 마음에 들어.”
장득수가 기절한 놈을 구경하면서 내게 물었다.
“실컷 때려놓고, 마음에 들어?”
“실컷 맞았는데도 비굴하진 않잖아. 사내는 두들겨 패고 나서야 진가를 알 때가 있다니까.”
“그 진가를 알아내려다가 사람 죽겠다. 그나저나 이제 장사 어찌하냐? 흑묘방의 간부 같은데.”
그 말에 나는 장득수와 눈을 마주친 채로 말했다.
“말했지. 행동강령. 이 모든 일은…….”
“문주님이 하셨다고? 그런 말로 일이 무마되면 나도 좋겠다.”
이때,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타난 차성태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우리 문주님, 대낮부터 누굴 또 패고 계십니까?”
나는 잠시 차성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동네가 좁아서 그런 것일까?
이놈은 싸움이 끝날 때마다 귀신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아는 놈이냐?”
“아니요? 누굽니까? 제법 성깔 있게 생겼네요. 흑도죠?”
“흑묘방의 금룡각주라던데.”
차성태가 중얼거렸다.
“금룡이면 꽤 높은 간부 놈이네요. 근데 왜 혼자 왔을까요. 얼굴이 아주 그냥 만두피가 됐네.”
나는 기절한 놈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추측했다.
“방주 명령으로 혼자 왔겠지.”
“왜요?”
“흑묘방 체면에 많이 오면 쪽팔릴 테니까. 내가 점소이라서.”
“아하.”
“그리고 간을 봤겠지. 일양현에 얼마나 매운 놈이 있는지.”
차성태는 요새 들어 간이 좀 부었는지, 발을 내밀어서 소군평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아직 숨은 쉽니다. 죽일까요?”
나는 차성태를 바라봤다.
이놈이 죽이자고 하니까, 어쩐지 죽이기가 싫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이처럼 묘하다.
그리고 삼백갑자라는 별호를 가지게 되는 인물을 내 손으로 끝내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마치 수백 년을 산 영물 거북이를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느낌이랄까. 전생에서도 그렇게 오래 살아남았다면 그만한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본래 흑도 사나이들의 수명은 무척 짧기 때문이다.
“기루 빈방에 잠시 데려다 놔.”
“아, 고문했다가 죽이시겠다는 거죠?”
나는 차성태의 머리통을 오랜만에 후려쳤다.
“생문(生門)의 문주라는 놈이 왜 자꾸 죽이자고 지랄이야?”
차성태가 머리통을 비비다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 생문이 그런 거였어요? 일단 알겠습니다.”
“끌고 가. 저놈 칼도 챙기고.”
“예.”
차성태가 기절한 소군평과 그의 병장기를 챙겨서 사라지자, 장득수는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서 살펴보다가 놀란 어조로 말했다.
“헉! 이것 좀 봐라.”
장득수가 식칼을 내밀면서 말했다.
“엄청난 고수였네.”
나는 휘어진 식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법이네. 식칼은 내가 하나 사줄게.”
“됐다. 철방 가서 고치면 된다. 금 아저씨랑 나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마음대로 하시고.”
장득수가 걱정스럽다는 것처럼 말했다.
“이제 일양현 망하는 거 아니냐?”
“그럴 리가. 흑묘방이 망하겠지. 각자 일 보자고.”
“그러자고.”
나는 장득수와 헤어진 다음에 공사 현장을 한차례 둘러봤다. 괜히 일하는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먼발치에서 공사를 감독하는 연자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매화루로 향했다.
나는 이 시점에서, 먼저 흑묘방에 쳐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고민했다.
생업이 있는 자들에게 피해를 주긴 싫기 때문이다.
흑묘방이 전부 소군평처럼 밥값을 계산할 줄 아는 놈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 * *
나는 침구 옆에서 소군평을 감시하고 있는 차성태에게 말했다.
“깨워라.”
“예.”
차성태가 침구를 발로 차면서 말했다.
“일어나. 이 새끼야,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
기절했었던 소군평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떴다가 화들짝 놀라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헉!”
소군평은 잔뜩 놀란 눈빛으로 두리번대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왜 살아있지?’
나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놈에게 물었다.
“군평아, 정신 나간 대나찰은 요새 어디 있다더냐?”
“모른다. 내가 어찌 알겠나. 방주님도 모르실 텐데, 우리가 알 리가 없지.”
소군평은 말을 하다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얼굴을 만졌다. 뺨이 퉁퉁 부어 있는 상태였다.
“흑묘방주는?”
“본 방에 계시지.”
“요새 뭐 하느냐는 물음이다.”
“수련 중이시다.”
“또 서열전이냐?”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는 표정으로 소군평이 나를 바라봤다.
“왜? 내가 아는 게 이상해?”
“이상할 수밖에.”
“우리 하오문은 모르는 거 빼고 다 안다.”
소군평은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방금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렸다.
“뭔 개소리야.”
말을 해놓고 나는 살짝 뿌듯했다.
사실은 과거로 회귀를 했기 때문에 아는 것이었지만, 앞으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나 지식은 내가 하오문 소속이기 때문에 아는 것으로 치부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강호 최고의 정보단체 역시 하오문이 될 것이다.
물론 내 회귀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차성태도 소군평을 노려보면서 내 말을 따라 했다.
“우리 하오문은 모르는 게 없다.”
나는 차성태의 말을 정정해줬다.
“그건 아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아, 그래요?”
“중요한 것은 모르는 것도 금세 알아내는 실력이다.”
“그렇습니다.”
차성태는 뜬금없이 소군평을 갈궜다.
“알겠냐? 우리는 모르는 것도 알아내는 자들이다. 결국에 하오문이 모르는 것은 없다는 얘기지. 최강의 정보단체, 그것이 하오문이다.”
그러나 정작 소군평은 하오문이 어떤 단체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소군평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군. 하오문이라는 세력의 끄나풀이었다니.”
“끄나풀?”
“점소이 출신이라고 들었다.”
차성태가 소군평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소군평이 다시 침구 위에 널브러지자, 차성태가 말했다.
“어디서 싸가지없는 새끼가 문주님한테 점소이라느니, 돌았나.”
차성태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문주님, 이 새끼도 매를 버는 재주가 좀 있네요.”
나는 문득 차성태를 바라보다가 이놈이 나중에 간신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시 했다.
소군평이 성난 표정으로 몸을 벌떡 일으키자, 화들짝 놀란 차성태가 뒤로 물러섰다.
“아이, 깜짝이야.”
소군평은 타고난 신체가 튼튼했던 모양인지 맷집이 보통 수준은 아니었다. 소군평은 사실 차성태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사내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에 간신배가 될 확률이 높은 성태는 옆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기죽을 놈이 아니었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 자리에서 죽고 싶으냐?”
나는 차성태에게 말했다.
“넌 잠시 나가 있어라.”
차성태가 공손하게 대꾸했다.
“예, 문주님.”
소군평이 나를 위아래로 새삼스럽게 훑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하오문주라고? 점소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소군평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군평아,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있나?”
나는 당장 긍정적인 대답을 바라지 않은 채로 질문을 던졌다.
소군평이 즉각 대답했다.
“없다.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의 밑에 들어가겠냐, 는 뒷말을 예감한 나는 바로 놈의 말을 끊었다.
“닥쳐라. 그 입 찢기 전에.”
“…….”
소군평의 입장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허접한 단체가 하오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소군평을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노려보다가, 감정을 배제한 채로 딱딱한 질문을 던졌다.
“너는 관상을 보아하니 수명이 제법 길어 보이는데, 여기서 죽여주랴?”
나는 소군평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소군평은 입을 열지 못했다. 죽여달라고 하면 어쩐지 바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객기부리지 말고 잘 대답해. 죽여달라면 바로 죽여줄 테니. 늑대 새끼가 뭐? 너 설마 개의 밑에 어찌 들어가냐는 말을 하려고 했냐? 이거 어디에서 누가 지어낸 말이야? 찾아서 죽여버릴까 보다.”
이거 은근히 마음에 남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이런 놈을 수하로 거둘 수 있는 비책을 하나 알고 있다.
굉장히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검증이 된 방법이다.
말을 잘 안 듣는 놈을 수하로 거두는 방식의 정석은 제갈량 선생께서 맹획을 잡으셨을 때 훌륭한 본보기를 남기셨다.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
뚜들겨 팼다가, 풀어줬다가 또 뚜들겨 패는 것이다.
소군평은 아직 내게 한 번만 뚜들겨 맞았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나는 뇌에서 스치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입밖에 내뱉었다.
“……이래서 사내들은 삼국지를 읽어야 해.”
“…….”
도저히,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소군평은 처음으로 나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