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게 된 사과.
맹주에게 칭찬을 받았는데 기쁘지 않은 사람은 강호에서 내가 유일할 것이다.
여러모로 유일무이한 존재, 그것이 나다.
회동을 마친 다음에 훌륭한 무인이 된 나는 당당하게 맹주전을 빠져나왔다.
사실 공손월의 미모는 나도 눈이 달려 있는 터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공손월은 임소백을 보조하는 무림맹의 총군사가 될 여인이고, 나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무인인 데다가 하오문을 끌고 있다.
처자를 만나는 것도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전생에는 왜 그렇게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는가?
그걸 알면 내가 혼자 지냈겠는가.
나도 잘 모르겠다.
알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월하관으로 향하는 도중에 삐쩍 마른 맹원이 나를 조심스러운 어조로 불렀다.
“문주님.”
나는 젊은 맹원을 쳐다봤다. 불이 밝았기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는 편이었으나 누군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어쨌든 맹원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무슨 일인가?”
이놈의 표정이 왜 이러지?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어 있었는데 뜻밖에도 벅찬 감정도 엿보였다. 그제야 나는 맹원의 눈빛이 예전에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너, 설마.”
춥지 않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팔뚝에 소름이 올라왔다.
맹원이 웃으면서 물었다.
“제가 누군지 기억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문득 고개를 돌려서 맹원의 뒤쪽을 바라보니 서너 명이 우리의 재회를 잠시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는 새카맣게 탄 얼굴로 웃고 있는 수하에게 말했다.
“몰라보게 살이 빠져서 잠시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예.”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보기 좋구나. 장산(張山).”
“기억하시는군요.”
눈앞에는 남악녹림맹의 젊은 산적이었던 장산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그때 살아남은 산적들의 이름을 한 차례 외우긴 했는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은 사실 장산이 유일했다.
내가 거뒀던 사람들의 운명을 내가 어찌 일일이 알겠는가? 흑묘방으로 데려갔었는데 그동안에 내가 흑묘방에 자주 가지 않았었기 때문에 장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장산이 대답했다.
“흑묘방에서 수련하는 동안에 무림맹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군평 방주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셔서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랬군. 입맹 시험도 다 통과한 것이고?”
“시험이 무척 깁니다. 그전에 흑묘방에서 매일매일 굴렀던 경험이 있어서 잘 버텼습니다. 그리고 신분 보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 방주가 저는 하오문에 속한다는 서찰을 써주셔서 문주님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나는 그제야 몰라보게 달라진 장산을 위아래로 훑었다. 훈련 때문에 산적 때와는 모습이 너무 달라진 상태였다.
“무림맹은 힘든 곳인데 후회는 없어?”
장산이 내게 포권을 취하면서 대답했다.
“예, 저는 후회 없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구검대(九劍隊)의 장산이 하오문주님을 뵙습니다.”
나는 답례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장 무인, 또 보자. 건강하고.”
뒤에서 맹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보내주는 게 맞았다. 개인 활동이 어려울 텐데, 선배들에게 부탁을 해서 나를 찾아온 모양새였다.
장산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문주님.”
나는 장산이 검대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새삼스럽게 남악녹림맹의 산적들을 전부 몰살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전생에는 아마도 임소백 맹주에게 전부 팔다리가 잘려서 죽었을 놈들이었으니 내 기분이 이상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장산이 맹원들과 돌아서더니 나를 향해 말없이 또 예를 갖췄다. 나는 강호의 인사가 싫어서 그저 손을 몇 번 흔들었다.
다시 월하관으로 향하고 있을 때.
아마도 장산과 재회해서 그런 모양인지 개방 방주의 제자인 노신도 떠올랐다. 임소백의 성격으로 봤을 때, 노신이 잘 지내고 있다면 내게 몇 마디 했을 것이다.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니까 장산과 달리 노신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실 사부를 배신하려던 사람을 임소백이 중용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나는 굳이 노신을 찾지 않았다.
장산 때문에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서 객잔을 찾아가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었으나 무림맹에 머물고 있는 터라 그냥 월하관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싶어서 식사를 하는 곳을 가봤더니 그래도 귀빈을 대접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늦은 저녁이나 술도 마실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간단한 안주 요리 하나에 술을 좀 달라고 한 다음에 혼자 탁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마른안주에 술을 마시면서 홀로 장산의 입맹을 축하했다.
그때 내게 죽어서 장산처럼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지 못한 어리석은 놈들에게도 술을 한잔 따르고, 그것을 내가 대신 마셔줬다.
일전에 내게 죽었고, 앞으로 내게 죽을 놈들을 대신해서도 한잔 마셨다.
취기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월하관의 내부가 잠시 자줏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내가 알게 모르게 취기신공(取氣神功)을 터득한 모양이다.
나는 오늘따라 금세 취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방으로 기어가서 침구에 누운 다음에 눈을 감았다. 부산한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날이 훤해진 상태였다.
이게 잠을 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황당했다.
창문을 열어서 바라보니 아침이 아니라 대낮이었다. 살다가 잠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무림맹에 와서 자면 되겠구나 하는 삶의 지혜를 얻었다. 지엄하신 무림맹주를 보호하기 위한 철통 경계 덕분에 숙면을 저절로 취하게 된다.
그나저나 내가 하룻밤을 잔 게 맞을까?
월하관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인 상태였다. 방금 일어나서 귀찮았기 때문에 그냥 계속 구경했다. 지켜보고 있으려니 월하관에서 나가는 자들이 더 많았다. 혼란 속에서 이런 대화가 들렸다.
“누가 오셨다고?”
“남궁검제(南宮劍帝), 서문무제(西門武帝), 오호(五虎)와 육룡(六龍)에 속한 자들, 구경꾼들까지. 일봉이선(一鳳二仙)에 속한 여인도 왔다는군.”
맹주나 제왕들의 비무를 구경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옆방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분 탓일까? 일봉이선이라는 말에 들리자마자 색마가 움직이더니 방문을 열고 나섰다.
“…….”
그제야 잠이 좀 깼다.
왜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왔는지는 이해가 된다. 육룡이나 일봉이선에 속한 후기지수들도 남궁가나 서문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명문세가의 선봉을 다투는 자들이고, 차기 맹주를 배출한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전부 임소백의 위세에 눌려서 내가 알고 있는 시점까지도 맹주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물론 이 제왕들이 맹주에게 도전했다는 전생의 일은 알았기 때문에 그게 오늘일 가능성은 높았다.
‘새삼스럽게 맹주 노릇 하기 피곤하구나.’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최고의 자리에 있으려면 계속 증명해야 한다. 더군다나 임소백이 삼재와 같은 천하제일 수준은 또 아니라서 제왕들이 얕잡아보는 경향도 있을 터였다.
어쨌든 이번 방문 목적은 제왕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서 나도 세수를 하고 비무대로 나갈 채비를 했다.
검제나 무제는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위소선을 제외한 일봉이선의 젊은 시절도 궁금했다. 나는 월하관을 나서서 비무대로 향했다.
간밤에 맹원들이 미리 준비를 해놓은 모양인지 비무대 주변에 의자도 놓여 있었고,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횃불도 군데군데 세워놓은 기둥에 붙어 있었다.
구경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색마 옆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이미 귀마와 검마는 의자에 앉아서 아무도 없는 비무대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제야 나는 유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남궁가의 검제와 서문가의 무제가 나란히 상석 같은 곳에 앉아 있었는데 나머지 인원들은 전부 수행원들처럼 서서 대기했다.
왜 저렇게 심통이 난 얼굴인가 했더니 임소백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나는 뒷짐을 진 채로 비무대에 올라가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이렇게 여유롭고 당당하게 거닐면 내가 하오문주인지 무림맹의 간부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터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비무대의 외곽을 걸어 다니면서 몰려온 자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봤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들어온 놈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문득 색마와 눈을 마주쳤는데, 색마가 인상을 쓰면서 입을 열었다.
“……뭐하냐?”
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쉿.”
이름표를 붙여놔야 누가 누군지 알 터인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도 제법 많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비무대를 도는 와중에 유난히 하얀 부채로 자신의 얼굴을 슬쩍 가리는 사내를 잠시 쳐다봤다.
옆에 사람과 속삭이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사내가 부채를 치울 때까지 멈춰서 기다렸다.
내가 비무대에 서서 한 사내를 계속 주시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가 도대체 내가 누굴 노려보고 있는 것인지 관심이 모였다. 결국에 사람들의 시선도 내 눈빛을 따라서 부채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모였다.
‘네가 언제까지 부채로 얼굴을 가리나 보자.’
내가 움직이지 않자, 부채가 갑자기 탁― 소리와 함께 접히더니 살기 어린 눈빛의 사내가 나를 노려봤다.
“…….”
나는 이놈이 이렇게 당황하는 표정을 처음 본다. 거의 넋이 나간 백의서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놈은 나중에 무림맹에 들어오는 놈이라서 오늘 암살이라든지 비무의 목적으로 여길 오진 않았을 터였다.
내가 놀랬다기보다는 백의서생이 놀라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감정이 읽힐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나는 백의서생에게 짤막하게 말했다.
“……왔는가?”
백의서생이 대답할 말을 고르다가 결국에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나는 백의서생과 함께 한 자들을 둘러보다가, 옆에 있는 놈이 오호(五虎)에 속하는 고수일 것이라 추정했다. 어쨌든 간에 천악서생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다행이었다.
나는 백의서생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다시 비무대 위를 걸었다. 백의서생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있었지만,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이러면, 사건과 시간 순서를 다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오늘 비무에서 백의서생이 임소백의 육전대검을 직접 관람하는 모양이다. 이후에 정체를 숨긴 채로 무림맹에 입성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일 테고. 사실 정체를 숨긴다기보다는 이미 여러 개의 정체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나는 백의서생을 그냥 내버려 뒀다.
이제야 서문가와 남궁가가 모여 있는 곳을 지나는데,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자네는 누군데 비무대를 그렇게 돌아다니나?”
물어본 사내가 검제나 무제는 아니어서 대충 대답했다.
“사마외도 고수가 있진 않은지 살피는 중이오.”
대답이 꽤 적절했나? 질문을 던졌던 사내는 별말이 없었다. 이때 서문무제의 뒤에서 일전에 형산 지부에서 봤던 소가주 놈이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서문무제가 내게 말했다.
“하오문주, 비무대에서 설쳐대지 말고 내려가게.”
나는 서문무제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예, 선배님.”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월하관 방향에서 군검왕, 도왕, 권왕 무리가 한데 뭉쳐서 다가오고 있었다.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해서 내게 뭐라 하는 놈도 없었다. 나는 하던 대로 비무대를 걸으면서 관객의 모습을 자세히 훑었다. 이번에는 군검왕 무리가 다가오든 말든 간에 나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사내가 있었다.
“…….”
그놈 참 살벌하게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무섭진 않았다. 무리 지어서 있는 것을 보아하니까 이쪽도 무림세가였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세가의 가주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처음 보는데, 내게 원한이 있소?”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사마세가 가주 사마운(司馬雲)이다.”
검왕 무리에게 꽂혔던 시선이 다시 일제히 내게 돌아왔다. 나는 사마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먼저 예를 갖췄다.
그러니까 형산 지부에서 내가 중상을 입혔던 사마학의 아들 또는 후계자인 모양이었다. 사마학의 아들이라면 나를 이렇게 쳐다봐도 된다. 분통이 터질 테니 말이다.
나는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사마 가주, 오셨소.”
딱히 비무에 대한 변명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마운이 내게 말했다.
“그대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군.”
자칫 잘못하면 부자(父子)에게 모두 중상을 입힐 수도 있는 노릇이라서 나는 사마운을 도발하지 않았다.
“그렇게 됐소. 비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셨으면 내가 사과하리다.”
나는 말을 내뱉고 나서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예의 바른 사람이었던가. 정말 시간이 약인 모양인지, 나도 슬금슬금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마운이 말했다.
“전대 가주께서는 그 후로 본래의 무공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시네. 그게 백도의 비무였나? 전해 들은 바로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네.”
나는 비무대에 서서 사마운 가주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딱히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운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참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백도의 비무였다기 보다는 감정이 섞인 비무였소. 내가 과한 면이 있었으니 가주와 사마세가 여러분들에게 사과하리다.”
나는 사마운의 화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쩐 일인지 어젯밤에 봤었던 장산의 옛 모습이 겹쳐 보였다.
딱히 관계는 없을 테지만, 속내라는 게 항상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사마운의 무력은 전대 가주인 사마학보다도 약해 보이는 터라, 여기서 나와 복수 비무전이라도 벌이면 사마세가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게 될 터였다.
사마운은 겨우 화를 억누르는가 싶더니 도로 자리에 앉았다.
놀랍게도 사마운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 문주보다 실력이 뒤처진다는 것을 알고 있소. 고되게 수련해서 나중에 문주에게 정식으로 비무를 청하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사마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합시다. 기다리겠소.”
이상하게도 속에서 큰 숨이 빠져나왔다. 새삼스럽게 둘러보니 백도의 고수들이 전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제야 비무대를 내려갔다. 끝내 백의서생에겐 다시 아는 척을 하지 않은 다음에 사대악인들이 있는 곳에 돌아와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곧 무림맹주가 올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