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강호의 연결고리.
십삼 수는 본래 장주의 것이라서 여기에 매화를 더해 돌려줬다. 장주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당장 알 수 없었다.
“장주, 잘 보셨나?”
매화장주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예.”
나는 항마검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느낌이 어때? 검법에 대한 소감이랄까.”
잠시 고민하던 매화장주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것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예. 너무 많은 것을 받아서 소감을 말로 전달하는 게 어렵군요.”
성실한 성격을 가진 사내의 답변이었다.
연계 과정이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장주의 화두는 검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화두에 맞춰서 내가 펼친 검법을 해석한 셈이었다. 하지만 검법은 연계가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에 도움 줄 수 있는 말을 보탰다.
“연계는 물론 이어졌지. 하지만 시작도 있었고. 끝도 있었어.”
“그렇습니다.”
“검의를 파악하면 여기서 더 보태도 되고, 걷어내서 세 가지 초식으로 압축해도 무관하다는 뜻이야. 때에 따라서는 단 일검(一劍)으로 줄여도 돼. 왜 그럴까?”
“결국에 일검으로 끝나는 승부도 있어서…….”
“그렇다면 그 일검에는 이 모든 뜻이 담겨 있겠지? 그걸 검의라고 부르자고. 검의를 이제 이해했나?”
“아.”
표정을 보니까 매화장주도 이해한 모양이었다.
사실 검의는 짧게 말해도 어렵다. 굳이 말을 보태서 더 어렵게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적당하다. 매화장주가 홀로 생각해서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던 색마가 내게 질문했다.
“검의를 파악하면 걷어 내거나 추가해도 상관없고. 변형해도 무관하다는 뜻이 맞지?”
이번에는 색마 차례인가?
“맞다.”
나와 교대하듯이 넓은 장소로 걸어온 색마가 돌아서더니 우리를 바라봤다.
내가 펼친 매화십삼수에서 얻은 심득을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색마가 우리에게 말했다.
“검의를 얻었다 함은…….”
이어서 색마가 장법으로 매화십삼수를 펼쳤다. 무공 천재는 맞는 모양인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똑같이 펼쳤다.
그러니까 매화장주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이 이어지는 장법이었다.
나는 색마가 일부러 똑같이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반복이 시작될 때부터는 손에서 피어나는 매화가 계절처럼 변했다.
보법이 먼저 확연하게 달라지고…….
심득을 다듬으려는 것처럼 장법이 길어졌다. 하지만 변형된 모든 동작이 검의 안에 있는 것처럼 비슷했다. 난잡하게 보이는 두 번째 시범이 멈춘 다음에 색마가 우두커니 선 채로 양손에 냉기를 휘감았다.
이어서 처음 보는 장법이 세상에 등장했다.
색마가 정식으로 펼치는 보법을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땅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면서 규칙과 절도가 있었다.
장법은 보법 위에서 변화했다.
보는 것만으로 저 장법을 막는 게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대단한 장법이 맞을 것이다.
‘훌륭하네.’
십삼 수의 연계가 보법에 적응되어 있고, 보법에서 연계된 장법이 때로는 묵직하고 강맹하게, 때로는 가벼우면서도 음험하게 변했다.
보법이 미끄러지는 것처럼 특이했기 때문에 타격점을 예상할 수 없고. 때때로 냉기가 흩날렸기 때문에 장기전을 펼쳐도 상대하기 어려운 장법처럼 보였다.
내가 검으로 자줏빛으로 된 기의 꽃을 흩날렸다면.
색마는 백색으로 된 냉기의 꽃으로 사방을 채웠다.
똥싸개 본인에게도 나름 역사적인 순간처럼 보였다. 사람의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라서, 저렇게 흩날리는 백색의 꽃잎을 보고 있자니 코를 막고 싶었으나 끝내 잘 참았다.
상대는 세상 진지했기 때문에 이런 순간까지 똥으로 공격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천재적인 똥싸개가 된 색마 놈이 새로운 장법을 창안해서 시범을 보인 다음에 우리를 쳐다봤다. 색마 놈의 표정에도 놀라움과 감탄, 일종의 후련한 표정이 잔뜩 뒤섞여 있었다.
맏형이 물었다.
“새로 창안했구나. 이름은 정했느냐?”
색마가 대답했다.
“……화산에서 얻었으니 백화장법(白華掌法)이라 부르겠습니다.”
빙공을 상징하는 백색과 화산이 조합된 작명이었다.
색마의 말이 이어졌다.
“요란이에게 가르치려면 조금 더 다듬어야겠습니다. 제가 홀로 만든 것이 아니고 사부들이 함께 만든 장법으로 전하겠습니다.”
맏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맏형은 딱히 십삼 수에 대한 감상이나 소감을 밝히지 않았다. 내가 넋이 나가 있는 동안에 수련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맏형은 요즘 그냥 편해 보였다.
장원에 있는 꽃들을 오래 바라보기도 하고, 장주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해준 다음에는 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공에 관한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근래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맏형이었다.
어느새 맏형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내가 되었다.
“제자가 새로운 무공을 만들고 셋째도 하산했으니 오늘은 술 한잔하자.”
“그러자.”
술을 즐기지 않는 사내가 술을 마시자고 하면 알았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
잠시 후 우리는 장원의 탁자에 술을 깔았다.
장주는 많지 않은 가솔과 유유자적하게 사는 사내라서 수련 이외의 삶은 소소한 취미에 맞춰져 있었다. 그 취미에는 술을 담그는 것도 있어기에 탁자에 올라온 술은 객잔에서 맛볼 수 없는 특이한 술이었다.
땅에 묻어두고 나이에 따라 일매(一梅), 이매(二梅) 같은 이름이 붙은 술이었는데, 우리가 마시는 것은 팔매(八梅)였다.
팔매주가 얼마 남지 않아서 칠매주를 가져올까 하던 순간…….
우리는 술잔을 내려놓고 입구를 바라봤다.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는데,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황당한 등장이었다.
이놈이 대체 왜 등장했고, 왜 피투성이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전 광명우사, 혈교주가 며칠 잠을 못 잔 것 같은 지친 기색으로 탁자에 오더니, 내게 말했다.
“한 잔 줘라.”
누가 이 사내를 이렇게 몰아붙였을까.
나는 술잔에 마지막 팔매를 따라서 혈교주에게 넘겼다. 혈교주는 술을 물처럼 마시더니 갈증을 해소했다는 것처럼 숨을 길게 내뱉었다.
“……교주한테, 그러니까 마교주 말이다. 약속한 대로 도착했다고 전해. 그리고 네 짓이냐?”
혈교주가 나를 노려봤다.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혈교주, 뭔 개소리냐? 다짜고짜 설명도 없이.”
혈교주가 나를 보더니 미친놈처럼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탓하지 않으마.”
“혈교주, 주화입마냐?”
맏형이 나섰다.
“무슨 일인지 말하게. 문주는 근래 화산에서 수련에만 집중했다.”
혈교주가 맏형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마교주의 호출을 받아서 화산으로 출발했었다.”
“그런데?”
혈교주는 손에 쥐고 있었던 술잔을 종이처럼 구긴 다음에 말했다.
“곳곳에서 내 화산행을 방해했단 말이다.”
“음.”
“처음에는 늙은 거지들이 기웃대더니, 갑자기 무림맹에 몸에 담았었다던 고수가 나타나질 않나. 마지막엔 흑도와 서생 놈들까지 따라붙었다. 이 오만가지 세력을 한꺼번에 부를 수 있는 놈이 문주밖에 더 있나?”
이제 다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혈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마치 온 강호가 화산행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건 저번에 통천방에서 사고를 쳐서 그런 것이겠지. 제천맹주를 비롯한 흑도 사내들은 그런 원한을 잊지 않는다.”
“그러냐? 제천맹은 이해한다. 다른 놈들은 어찌 알고서?”
“나는 모르지.”
“이것들이 왜 전부 나를 노리고 있단 말이냐?”
나는 혈교주의 말을 통해 사정을 대충 이해했다. 혈교주는 범인을 찾고 있었다는 것처럼 나를 노려봤다. 미친놈이 쳐다보는 것이라서 살짝 찔리긴 했는데, 결국에는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웃음이 나오느냐?”
그러니까 이미 혈교주의 인상착의와 용모파기는 통천방에 의해서 퍼졌을 터였다. 통천방이 알면 제천맹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방도 당연히 소식을 전달받았을 테고. 개방을 통해 무림맹도 공적 명단에 올렸을 터. 강호인들은 복수를 잊지 않는다. 다만 이번 일은 백도, 흑도, 거지, 서생들이 연합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어서 사태를 파악한 색마도 웃음을 다짜고짜 터트렸다.
“하하하하.”
결국에는 맏형마저도 고개를 젖히더니 웃음을 내뱉었다. 혈교주는 분노와 당혹감이 섞인 표정으로 우리 셋을 노려봤다.
내가 이유를 설명해줬다.
“우리 탓이 아니다. 화산으로 가는 마도 고수를 강호가 막았나 보군. 그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신新 자하객잔에서 벌어졌던 일의 반대 상황이다. 이번에는 교주가 불러 모은 마도 고수들을 백도가 각개격파하는 형국이다.
강호인들은 복수를 잊지 않는다.
백도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흑도에 가까운 제천맹과 서생들까지 연합해서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혈교주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사실 황당했으나, 이 사내가 들고 온 소식은 그야말로 친구들의 소식을 들은 것처럼 반가웠다.
이때 장원 입구에서 허름한 잿빛옷을 입은 노고수가 가볍게 착지하더니 뒷짐을 진 채로 다가왔다.
“……겨우 따라잡았구나. 혈교주. 그만 도망가게.”
혈교주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만 쫓아오면 안 되겠나?”
“안 되겠네.”
“아니면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붙자. 이곳이 결전 장소다. 휴전하는 게 어떻겠나?”
노고수가 대답했다.
“자네와 내가 겨루는데 결전 장소가 웬 말인가? 이어서 하세. 참고로 자네를 찾는 다른 자들은 자네와 비무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혈교주가 욕을 내뱉더니 이어서 경공을 펼치더니 금세 사라졌다. 노고수는 나를 한 번 쳐다본 다음에 혈교주를 쫓아갔다. 노고수는 사라졌으나 그의 목소리는 흔적처럼 귓가에 남았다.
“……문주, 오랜만이네. 오늘은 바빠서 술자리에 못 끼겠군.”
나는 급히 떠나는 노고수의 말에 내공을 담은 목소리로 대답해줬다.
“고생이 많소. 또 봅시다.”
쾌당주라는 말은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나도 사실 왜 전 총군사 공손심이 전 광명우사를 쫓고 있는지 의아했다. 예상했던 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충 말을 요약하면 화산 결전에 마교주가 혈교주를 호출했고, 오는 동안에 행적이 들통나서 공손심에게도 쫓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공손심은 경공이 빠른 사내라서 그렇다. 나이가 제법 많아서 무공 수위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강호에서 쾌당주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고수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다섯 명이 넘지 않을 터였다.
“……전 총군사가 은퇴한 줄 알았더니 복귀하셨군.”
쾌당주에게 쫓기는 악인이라…….
사정을 다 알고 나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쾌당주는 본래 저런 사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림맹을 은퇴하고 나서야 본연의 업무에 복귀한 것처럼 보였다.
한바탕 먼지 바람이 일어났지만 술맛은 오히려 더 좋았다.
맏형이 말했다.
“우사가 끝내 교주의 그늘에서는 벗어나지 못했구나.”
“그러게.”
미친놈도 떠나고, 발 빠른 노인장도 떠난 입구에 이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서 있었다.
맏형과 비슷한 연배였다.
양쪽 귀밑에만 흰머리가 있는 독특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는데, 우리쪽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좌사, 들어가도 되겠나?”
맏형이 손을 내밀었다.
“들어오게. 수하들은 어쩌고 혼자 왔나?”
“번잡해서 주변에 대기하라 일렀네.”
마도의 많은 고수가 그렇듯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무뚝뚝한 사내였다. 하지만 맏형과 아는 사이여서 대충 누군지는 감이 왔다.
낯선 손님은 탁자까지 오더니 빈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봤다.
“소개해주겠나?”
맏형이 나와 색마를 가리켰다.
“하오문주, 이쪽은 내 제자일세.”
맏형이 이번에는 우리에게, 등장한 손님을 소개했다.
“일대공이자 일마조라 불리는 사내. 본명은 나도 모른다.”
대공자의 외숙인 일마조가 도착한 상태였다.
일마조가 나를 위아래로 훑은 다음에 말했다.
“반갑다. 하오문주.”
커다란 새가 한 마리 앉아서 나를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꽤 무서운 분위기, 기도, 어조, 눈빛을 가진 마도의 고수였다. 마교에서도 일대공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보통 사내는 아닐 터였다.
어쨌든 나를 보자마자 반말을 했기 때문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적절하게 응수했다.
“……나도 반갑다.”
마도 고수도 예의를 중시하는 것일까? 대뜸 미간을 좁히더니 나를 노려봤다. 이때, 아예 인사 과정에서 무시를 당한 색마도 잔망스러운 어조로 끼어들었다.
“나도 반가워. 나는 백응지의 색마라고 해.”
맏형과 나는 급히 색마를 쳐다봤다. 우리는 방심하는 순간에 언제나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불쌍한 사내 놈들이었기 때문에 색마의 상태를 급히 점검했다.
색마도 원래 미친놈이어서 주화입마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어서 뜻하지 않게, 매화장주도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매화장의 주인장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 하셨으면 준비하겠습니다.”
“…….”
일마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분위기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서 그렇다. 정상적인 말과 비정상적인 말이 뒤섞여서 나도 정신이 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