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육합문의 귀신.
나는 둘째가 너무 악착같이 덤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별호가 귀마(鬼魔)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비무가 너무 격렬하게 이어지는 터라.
무심코 나는 맏형을 쳐다봤다. 맏형도 미간을 좁힌 채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표정은 서로 비슷할 터였다.
‘이건 비무가 아니라 생사결인데?’
맏형과 나는 같은 생각이 담긴 눈빛을 교환했다가 비무를 다시 주시했다.
‘이러다 한 명 죽겠다.’
문제는 둘째가 죽을 수도 있고, 혈교주가 죽을 수도 있었으며, 비무가 너무 살벌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둘 다 죽을 가능성도 꽤 컸다. 때때로 귀마가 동귀어진 수법까지 구사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혈교주는 수준이 높아서 귀마의 동귀어진 수법을 아예 상대해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와서 팔짱을 낀 채로 비무를 주시했다.
둘째의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개입하면 안 되는 비무라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때, 혈교주의 몸에서 핏빛의 거미줄이 또 한 번 폭사하듯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왔다.
둘째는 일전에 내게 알려줬던 검막(劍幕)을 수차례나 전방에 뿌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일부 혈사는 잘려나가고, 검풍에 찢겨나가고, 검막에 막혔으나 공중으로 뻗어나갔던 혈사는 시간 차이를 두고 점점 곡선이나 채찍처럼 변형되더니 계속해서 귀마에게 달려들었다.
파바바바바바바박!
누가 봐도 막기 힘든 절기였다.
결국에 불그스름하게 빛나던 핏빛 채찍 일부가 귀마의 몸에 닿았다. 치익― 하는 끔찍한 소리에 귀마의 기합이 뒤섞이고, 땅을 찍는 진각의 굉음과 혈교주의 웃음이 뒤섞이기도 했다.
결국에 온갖 대처로 절기를 막아낸 귀마가 호흡을 몇 차례 골랐다. 상태는 멀쩡할 수가 없었다.
“…….”
귀마의 거친 호흡을 바라보던 혈교주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네가 정녕 죽고 싶단 말이냐?”
귀마가 대답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닌데 그건 무슨 질문인가?”
혈교주가 말했다.
“문주의 말대로 화산 비무가 실력의 높고 낮음을 확인하는 자리로 알았는데? 이 정도로 부족하단 말이냐.”
귀마가 대답했다.
“그러냐? 그런데 내가 왜 네 밑이지?”
혈교주가 긴 웃음을 내뱉더니 재차 달려들었다. 이 무식한 귀마는 정면으로 돌진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혈교주는 둘째를 죽일 작정인지 대운검을 내밀자, 길쭉한 검기가 갑작스럽게 뻗어 나왔다.
공중으로 솟구친 귀마가 완벽하게 수비를 포기한 채로 육합검을 내밀더니 삽시간에 두 사람이 근접 거리에서 다시 맞붙었다.
혈교주를 상대하기 힘든 이유는 금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공이 깊었기 때문에 귀마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혈교주의 등에서 핏빛의 거미줄이 튀어나와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니까 귀마가 막아야 할 것은 겨우 검 한 자루 수준이 아니었다.
순간, 귀마가 대운검을 쳐내자마자 경쾌하게 신형을 오른쪽으로 회전하면서 예닐곱 개의 혈기를 단박에 쳐내면서 곧장 또 반격에 나섰다.
싸우면서 대처가 더 능숙해진 모습이었다.
이제 귀마를 단순하게 철벽 방어를 해내는 검객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혈교주의 내공도 무한대는 아니다.
귀마를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혈기가 검객으로 따지면 여러 번의 검기를 분출한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이번에는 검으로만 진득하게 맞붙었다.
싸움이 이상하게 보였다.
분명 내공과 무공의 총합이 두 수 정도 뒤처지는 것으로 보였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귀마는 혈교주의 턱밑까지 추격하듯이 따라붙어서 그야말로 맹수처럼 검을 휘둘렀다.
내공은 부족하지만, 외공이 바닥날 때까지 싸울 기세였다.
혈교주가 무섭겠는가, 천악이 더 무서웠겠는가?
귀마는 자처해서 천악 밑에서 수련하고 온 사내다. 강자를 상대로 단 한 번의 위축되는 모습 없이 정말 귀신처럼 싸웠다.
그렇다.
귀신(鬼神).
그것이 귀마의 정체성인 모양이다.
순간 혈교주의 몸에서 폭발하는 기파가 거세게 흘러나오자, 귀마의 대처가 경이로웠다.
일전에 임소백이 우리 앞에서 전진하면서 펼쳤던 그 검법이 딱 반대 방향으로 똑같이 이뤄지면서 결국에 땅을 부술 듯이 진각을 밟고 전방을 향해 거대한 검기를 쏟아냈다.
쐐애애애애액!
달빛이 반달 모양으로 지상 위를 질주했다.
놀란 표정으로 변한 혈교주가 양손으로 대운검을 붙잡더니 칼날에 핏물을 휘감은 채로 쳐냈다.
순간, 모든 관전자의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발생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이어서 혈교주가 대여섯 걸음을 뒤로 물러난 채로 귀마를 바라봤다.
“…….”
눈이 잔뜩 커진 상태였다. 방금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면 혈교주도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귀마의 상태도 확인했다.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가슴이 한 차례 들썩이더니 이내 핏물을 바닥에 내뱉었다.
가진 것 이상의 힘을 쏟아낸 모양이다. 그러니까 진기를 소비해가면서까지 검기를 사용한 상태였다.
나는 귀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 정도 미친 혈교주도 이곳에서는 내가 제안한 비무의 형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다들 귀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제야 나는 귀마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예전 일을 떠올리면서 알 수 있었다.
“음.”
삽시간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방심했다가 죽을 뻔한 혈교주는 아무 말 없이 귀마를 노려보고 있고.
귀마는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입 밖으로 터지는 핏물을 계속 삼키고 있었다. 올라왔던 핏물이 꿀렁거리더니 다시 목울대를 지나서 내려갔다. 이대로 더 싸우면 귀마가 스스로 자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
혈교주가 대운검을 치켜들더니 잠시 귀마를 쳐다봤다.
“…….”
귀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와라.”
혈교주가 물었다.
“내가 이긴 것 같은데 꼭 그렇게 아득바득 덤볐다가 죽어야겠나?”
귀마는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오라고. 끝장을 보자.”
“아니, 대체…….”
귀마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우사! 들어와라.”
결국에 귀마가 또 달려들었다.
적잖이 놀랜 혈교주가 대운검으로 막았으나 이번에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달랐다.
귀마는 진기가 흐트러져서 잠시 내공의 흐름이 막힌 모양인지 외공만으로 육합검을 휘둘렀다. 그런데도 제법 빠르고 강했다.
혈교주도 귀마의 내공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귀마의 검을 쳐내다가 멱살을 붙잡더니 한쪽으로 던졌다.
귀마의 신형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두 발로 멀쩡하게 착지한 다음에 혈교주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입에서 핏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으나 귀마는 손으로 닦다가 그것도 소용없다고 여겼는지 재차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혈교주가 귀마의 처참한 얼굴을 보더니 슬쩍 웃었다.
“육합, 보기 좋구나.”
혈교주가 갑자기 대운검을 집어넣자, 귀마가 미간을 좁힌 채로 노려봤다.
“끝나지 않았는데 뭐 하는 짓이냐?”
혈교주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더니 괴이쩍은 표정으로 귀마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습이었다.
혈교주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육합선생.”
“…….”
혈교주가 땅을 한 번 쳐다봤다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통천방에서의 일을 사과하겠네.”
귀마는 입을 다문 채로 혈교주를 주시했다.
혈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자네의 과거를 들어서 알고 있네. 육합문의 유일한 생존자라지. 내가 통천방에서 사내들을 골라 죽인 것. 자네가 특히 더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때 하오문주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나머지도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지. 나로서는 내가 봐준 것이라 생각해서 넘겼던 일인데 자네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로군. 육합문을 잊지 않았다면 통천문의 일도 잊을 수 없겠지.”
그런가?
귀마는 어금니를 꽉 문 채로 혈교주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통천방을 아무렇지 않게 몰살한 혈교주를 상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어진 고통을 감내했던 모양이다. 애초에 이 싸움을 비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혈교주가 자신의 상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귀마가 벌떡 일어난 셈이다.
귀마가 말했다.
“그렇게 사과한다고 죽은 자들이 돌아오지 않네.”
혈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혈교주도 온통 피에 휩싸여 있는 사내였는데 지금은 귀마에 눈도 그에 못지않은 핏빛에 휩싸여 있었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온통 핏물을 뒤집어쓴 두 사내가 서로를 마주했다.
귀마가 말했다.
“통천방은 약해서 그대에게 복수할 수가 없다. 나도 실패했군. 비무의 형식으로 받아줬음을 알고 있다. 내가 진 것이지. 혈교주, 왜 그렇게 무고한 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나? 복수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도 그대와 다를 바 없는 시기가 있었네.”
귀마는 혈교주에게 질문을 던진 다음에 제자리에 앉더니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았다. 바로 운기조식을 하려는 모양인지 귀마의 읊조림이 흘러나왔다.
“……내가 부족해서 졌네.”
마치 통천방에서 죽은 사내들에게 전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육합문의 귀신이 통천방의 귀신들에게 사과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귀마가 따로 없었다.
혈교주는 귀마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그 자리에서 똑같이 가부좌를 틀더니 눈을 감았다.
비무가 순식간에 이런 식으로 마무리될 줄이야.
위 좌사가 패배했을 때는 혈교주의 조롱과 내 박수까지 난무했으나 이번에는 아무도 이런저런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운기조식하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무척이나 고요해진 가운데 매화장주가 직접 쟁반을 든 채로 등장하더니 운기조식하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물을 가져오라고 했었는데, 왜 이렇게 늦었나 했더니.
교주와 우리에게 대접했던 과일 차를 들고 온 상태.
매화장주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로 천악에게 가더니 말없이 과일 차를 내밀었다.
천악이 그것을 먼저 받고, 백의서생도 말없이 과일 차를 받았다.
매화장주가 천악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선배님, 삼재의 일원이심을 후배가 아는 게 적어 몰라뵈었습니다.”
천악이 찻잔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대부분 몰라보니까.”
“예.”
매화장주도 고집이 있는 사내여서 백의서생에겐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에 교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교주님,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교주가 대답했다.
“괜찮다.”
쟁반에 여분의 과일 차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바로 내가 대답했다.
“나 줘.”
“예.”
“이 맛있는 차를 왜. 이거는 맏형 줘.”
“알겠습니다.”
매화장주가 점소이처럼 대답했다. 아주 훌륭한 화산제일검이었다. 나는 맏형에게 과일 차를 건네는 매화장주에게 물었다.
“장주는 안에서 지켜봤나?”
“예, 문주님.”
“어떠했나?”
내 질문에 모든 사람이 빈 쟁반을 들고 있는 매화장주를 주시했다. 실은 다들 비무에 대한 감상을 내뱉고 싶었을 텐데 분위기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비무의 감상평을 매화장주에게 맡긴 셈이었다.
매화장주가 말했다.
“제 실력이 미천하여 실력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반평생을 이곳에서 한가롭게 애들 장난하듯이 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육합선생과 혈교주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강호가 이런 곳이었나? 그런 심정입니다.”
역시 화산제일검이다.
나이 많은 후배가 잘 말했네, 라는 말로 사람들의 표정을 공격하고 싶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나는 과일 차를 마신 다음에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매화장주에게 말을 건넸다.
“장주.”
“예, 문주님.”
“일생일대의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겠나?”
“말씀하십시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하늘의 색을 확인했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밤이 찾아올 터였다.
매화장주에게 말했다.
“마침 내상을 치료해야 하는 사람들이 비무 장소를 차지한 채로 운기조식을 하고 있으니 이어서 비무를 하는 것은 분위기상 옳지 못해. 해가 지고 있으니 저녁을 준비해주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 같이 밥을 먹고 싶은데. 운기조식도 그전에는 끝이 나겠지.”
매화장주가 눈을 몇 차례 껌벅이더니 나를 바라봤다.
“밥은……당연히 준비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런가?”
“예.”
나는 매화장주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당연하게 넘길 일은 아니야.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천하에 있어서나 강호에 있어서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서 그렇다.”
순간, 놀란 표정으로 매화장주가 교주와 천악을 바라봤다.
“아, 예. 서둘러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매화장주가 들어가는 사이에 나는 무심코 백의서생과 눈을 마주쳤다. 백의서생이 찻물을 홀짝이고 있어서 갈구는 어조로 물어봤다.
“……맛있냐?”
백의서생이 기분 잡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너는 말투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재수가 없었느냐?”
“응애도 재수 없게 했다던데 어떻게 알았어?”
가만히 있었던 색마 놈은 과일 차를 못 마셔서 화가 난 모양인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유치하다. 유치해. 진짜 세상 유치하다.”
나는 천악과 교주를 바라보다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몽랑 별호 중에 똥싸개라는 별호가 있는데 그 사연을 들어보시겠소?”
색마가 정색했다.
“하지 마, 이 새끼야. 그 얘기를 지금 왜 해.”
맏형이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근엄한 어조로 날 불렀다.
“셋째야.”
“왜.”
맏형이 나를 쳐다봤다.
“밥 먹기 전에 굳이 들어야 하는 사연이었나?”
“음.”
“그만해라.”
“알았어.”
사대악인이 이 정도로 합심 공격했는데도 아무도 웃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천하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런 강적들을 대체 어디 가서 만나겠는가?
세상일이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