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58
1658화. 나는 그런 멍청한 놈들을 좋아하지. (3)
타아앗!
땅을 박차면서도 윤종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뒤로 향했다.
당원들이 하나같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빠르게 따라붙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는 걸 테다.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뛰어들고 있는지.
하지만 지금 윤종의 머릿속을 채운 건 앞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촉박하다.
지금껏 그들이 종횡했던 곳들을 생각해 볼 때 섬서에서 무한은 사실 그리 먼 거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다. 사패련에 비해 일찍 도착할 수 있느냐 하는 상대적인 거리가 중요했다.
당원들을 돌아보는 윤종의 얼굴 역시 슬그머니 굳어진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사패련보다 먼저 무한에 도착할 방법이 많지 않다.
그들은 무턱대고 속도를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서 달리고 있다. 소속된 문파가 다르고 사용하는 병기가 다른 것처럼 무공수위도 각각 달라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를 내 버리는 순간 낙오자가 발생할 테니까.
낙오하는 이가 생기건 말건 일단 늦지 않게 무한에 도착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패련이 노리는 게 뭔지 확실하지 않은 이상, 낙오자는 절대 만들어서는 안 돼.’
자칫하다가는 낙오자들이 사패련에게 ‘이삭줍기’를 당할 수도 있다.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머리가 둔중해져 왔다.
청명이 놈이 지시를 내린 이상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게 옳다는 건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선 조금의 의구심도 없다.
하지만 저 많은 이들의 목숨이 제게 달려 있다는 부담이 발끝을 점차 무겁게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윤종이 옆을 슬쩍 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달리고 있는 조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도 평소답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녀석도…….’
윤종은 다소 씁쓸해졌다.
평소 멋모르고 까불거리기 바쁜 조걸도 이런 상황에 놓이니 어쩔 수 없이 중압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부당주라는 자리가 쉬운 게 아닐진대, 조걸이라도 부담이 전혀 안 될 리는 없었다. 사형으로서 조금 더 살필 것을.
그때 마침 조걸의 얼굴이 살짝 더 어두워졌다. 윤종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걸아.”
“…….”
“걸아.”
“아!”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는지 조걸이 퍼뜩 시선을 마주쳐 왔다. 윤종이 부드럽게 물었다.
“부담이 많이 되느냐?”
“어, 그게……. 네, 사형. 으음. 확실히 이게 쉽지 않네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적당한 게 생각이 안 납니다.”
“응?”
조걸이 제 굽슬굽슬한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쥐어뜯었다.
“갑을병정무는 죽어도 못 쓸 것 같고, 그렇다고 흑백적청황은 너무 뻔하고…….”
“……으응?”
“아! 청룡! 청룡당 어떻습니까? 고전적이지만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 아닌가. 백호당이 나으려나?”
……윤종의 얼굴이 살짝 뒤틀리기 시작했다.
“뭘 고민하는 건데?”
“청명이 놈이 당 이름은 적당히 알아서 정하라고 했잖습니까? 뭔가 간단하면서도 듣자마자 머리에 탁 박히는 그런 이름으로 정해야…….”
……우득.
검 손잡이를 잡은 윤종의 손목이 살짝 뒤틀렸다. 성질 같아서는 진짜…….
“지금 이름 같은 게 중요하냐!”
“아이, 사형! 무슨 그런 태평한 소릴 하십니까? 잘못하다가는 혼전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그때 갑당 여기로, 을당 여기로 하다가는 다 뒤섞여서 끝장날 수도 있는 겁니다! 듣자마자 ‘아! 나는 여기로 가면 되는구나!’ 할 만한 이름이 있어야죠!”
“어…….”
이건 반박하기 좀 어려운데?
다른 사람도 아닌 조걸을 상대로 말문이 막히니 자존심이 상한 윤종은 이를 악물었다. 조걸이 그런 심정도 모르는 채 여전히 심각하게 말했다.
“저길 좀 보십쇼. 다른 부당주들도 얼굴이 심각하지 않습니까? 모두 지금 적절한 이름을 정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그런 거면 강호는 망해.”
“예? 왜요?”
“…….”
윤종은 대답 대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이 부담감을 느낄까 염려한 자신이 세상 제일가는 등신처럼 느껴졌다.
그때, 조걸이 물었다.
“그런데 우리 속도를 좀 더 높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리다.”
“예? 왜요? 잘 따라오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야 그렇겠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걸이 갸우뚱하며 뒤를 살폈다. 윤종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본디 사람을 이끌고 이동하는 건 그 규모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고 하더구나.”
그의 시선은 무리의 끄트머리 쪽으로 멀리 던져졌다.
“따라붙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뒤는 더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 아마 지금 끝부분은 거의 한계에 달해 있을 거다. 무학이 약한 이들은 벌써 낙오할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르지.”
“예? 그럼 큰일 아닙니까? 누구라도 가서 정비해야죠.”
“하고 있다.”
“누가요?”
“…….”
“헤에에에에엑! 헤에에에에에엑! 아이고오오, 나 죽는다아아아아!”
“아, 시끄러워!”
“아니이이! 진짜 죽는다니까요?”
땀으로 흠뻑 젖은 임소병이 눈을 반쯤 까뒤집은 채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청명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흘겨보고는 면박을 주었다.
“뭔 녹림왕이라는 새끼가 이 정도로 헉헉거려? 산에서 좋은 것만 처먹고 자랐을 놈이!”
“사, 사람마다 장기가 다른 거라고요! 저는 머리 쓰는 게 장기지, 몸 쓰는 게 장기는 아니란 말입니다. 애초에 타고나기도 약했고요!”
“그게 무인이 할 소리야?”
“아, 아니, 실제로 그런 걸 어떻게 하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힘을 쓰는 것 자체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체력, 그러니까 지구력이 영 아니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관은 이미 이마에서 배어난 땀에 젖어 흐물흐물 구겨지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고, 조금 구겨져 있긴 해도 단정하던 학창의는 비에 쫄딱 젖은 것처럼 몸에 철썩 달라붙어 안 그래도 달리기 힘든 그를 더욱 고통 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게 왜 그런 걸 처입고 다녀! 그거라도 벗어!”
“문사가 문사복을 입지 그럼 뭘 입습니까? 이건 제 자존심입니다!”
“산적 새끼가 문사는 얼어 뒈질.”
“아니, 거! 건드리면 안 되는 걸 자꾸 건드리시……. 헤엑! 아오! 말 걸지 마십시오. 숨차니까!”
“하여간 엄살만 느네. 저번에 항주 갈 때는 잘도 달리더만.”
“그때랑은 다르……. 아오! 말 시키지 마시라니까!”
임소병은 더 대꾸할 힘도 없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속에 차오르는 원망을 토로할 힘조차 없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항주로 향할 때는 그냥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니 문제였다.
“저쪽 낙오한다.”
“아, 싯팔!”
헉헉거리던 임소병이 청명이 가리키는 쪽으로 달려가 뒤처지는 이의 등을 떠받쳤다.
“가, 감사…….”
“감사고 나발이고 뛰라고 이 새끼야……. 확 배때기에 칼을 쑤셔 박아 버리기 전에. 아니, 어차피 못 뛸 발모가지 그냥 잘라 줘? 어?”
“히익! 죄, 죄송합니다!”
코앞에 불쑥 들이밀어진 살벌하고 오싹한 임소병의 얼굴에 기겁한 이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핏속에 흐르는 녹림의 본성을 자신도 모르게 끄집어냈던 임소병은 그 뒷모습을 보고야 아차 하며 제 표정을 정비했다.
그런 그의 눈에 또 다른 한 열이 출렁이며 거리가 벌어지는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다시 녹림의 본성이 벌떡 일어난다.
“달려! 뒤처지지 말고 달려, 이 새끼들아! 더 빨리 뛰라고!”
임소병이 악쓰듯 외치자 뒤처지던 이들이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앞 열에 따라붙었다. 임소병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빌어먹을.’
짜증이 밀려들었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이동 중 긴 열이 만들어지면 앞쪽이 느릿하게 걷기만 해도 자연히 간격이 벌어진다. 대열을 유지하려면 결국 뒤쪽은 걷다 뛰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처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게 길게 늘어진 행렬이 만들어지고 만다.
잘 모르는 이들은 긴 행렬이 무어가 문제냐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사패련이란 승냥이 떼가 기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열을 무너뜨리는 건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청명과 임소병이 머리에 꽃 단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낙오하고 뒤처지는 이들을 다독이고(?) 밀어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다만!
“그걸 왜 내가 하냐고, 왜!”
이 모든 걸 머리로야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수습하고 있자니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심지어 저 앞에 체력 빵빵한 놈들이 남아도는 마당에, 왜 그걸 연약한(?) 임소병이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 불합리한 일은 모두 저 악귀 놈의 농간이 분명했다.
“헤엑! 헤엑!”
어쨌거나 그와 청명의 움직임 덕에 제각각이나 다름없는 천우맹도들이 어떻게든 대열을 유지하며 달리고는 있다. 이대로 무한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면 아마…….
“녹림왕.”
“……왜요? 또 뭘 시키시려고?”
임소병이 짜증 섞인 얼굴로 청명을 획 돌아보았다. 그러나 의외로 청명의 얼굴이 진지하게 굳어 있자 표정을 풀었다.
청명이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뭘요?”
“아까 나왔던 이야기 말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을…….”
청명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장일소 그놈이 하는 일에는 일정한 경향이 있다. 지금 이놈이 벌이는 일도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다.”
“…….”
“정말 그럴까?”
임소병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왜 이걸 묻는 걸까?
“……뭐, 저는 아까도 말했듯이 이번엔 그 방식대로 가지 않으리라고 봅니다만, 예전에는 확실히 제갈 가주님의 말씀처럼 그런 경향이랄 게 있기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침묵에 잠긴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청명이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 말을 꺼냈으면 마무리를 해 주셔야…….”
“야. 저기 또 낙오하네. 뛰어라.”
“……아오! 진짜 내가 더러워서!”
임소병이 풍성한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획획 끌어 올리며 달렸다. 그의 두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너 이 새끼, 아주 여기에 묻어 줘? 어? 너 녹림이야? 이 새끼가 미쳤나?”
낙오자에게 달려가는 임소병을 빤히 보던 청명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앞에 달리는 이들 너머의, 저 먼 곳에 있을 무한 방향으로.
아니, 정확히는 그들보다 먼저 무한으로 향한 이들이 있을 곳으로.
‘장일소…….’
짙은 위화감이 밀려왔다. 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바뀌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본능적으로 검 손잡이를 콱 움켜잡은 청명의 손등에 새파란 힘줄이 불거졌다.
* * *
사그락.
붉은 단화 발이 느릿하게 수풀을 밟았다.
“흐음.”
화려한 붉은 장포로 몸을 감싼 이의 시선이 굽이굽이 이어진 산등성이와 높이 솟은 한 산봉우리로 향했다.
아직 멀디멀지만, 새하얀 구름을 뚫고 삐죽이 솟아난 봉우리는 그 능선의 형상만으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해 주었다.
“저곳인가?”
호가명이 짧게 대답한다.
“예, 련주님. 무당입니다.”
“흠.”
푸른 풀과 옅은 황토빛 암석, 거기에 새하얀 구름까지 아름다운 조화였다. 장일소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않겠니?”
“……예?”
“저기가 앞으로도 무당이라고 불릴지는 말이다.”
호가명이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제는 알 수 없게 되겠군요.”
“그렇지?”
장일소의 입술에 만족감이 드리웠다.
“가자꾸나. 아마 목이 빠지도록 간절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기대에 응해 줘야지.”
“예. 모두 전진하라!”
호가명이 곧장 명했다. 커다란 대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군을 뱀의 눈으로 지켜보던 장일소가 흘끗 옆쪽을 보았다.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럼 재미가 없잖니? 안 그래?”
휘어진 그의 기다란 눈 사이로 혼돈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