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iting Filmography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다 덤비라 해!
예고편에 공을 들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한 『너와 나의 시간』과,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기 시작한 『거짓말』.
시청률은 『거짓말』이 압도적이지만, 분위기는 『너와 나의 시간』 쪽이 더 좋았다.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5화에서 11.3%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건 『거짓말』의 시청률이 0.4%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방영한 21화의 내용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거짓말』에 유입되어야 할 시청자가 유입되지 않고, 오히려 일부가 『너와 나의 시간』으로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클라이맥스를 앞둔 상황에서의 시청률 하락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KNC 드라마국은 위기감을 느꼈다.
잘못하면 클라이맥스에 시청률 50%를 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종영까지 계속해서 시청률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KNC 드라마국이 시청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비장의 한 수를 썼음에도 오히려 하락세를 맞이했다는 점에 있었다.
여론전.
『거짓말』과 관련된 기사의 수를 대폭 늘려,『너와 나의 시간』과 관련된 기사가 묻히게 만든다. 화제성을 차단해 『너와 나의 시간』의 시청률 상승을 최대한 억제해 보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시말서를 쓰겠다는 CP를 만류하고, 제작진과 배우들이 흔들리지 않게 분위기를 잘 잡으라 하고서 내보낸 뒤, KNC 드라마국 국장은 책상 위에 쌓인 신문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살펴보았다.
“허허허…….”
이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9시 55분 수목드라마 관련 기사의 지분은 『거짓말』이 60%,『너와 나의 시간』이 35%, 나머지 5%를 『사랑하고 싶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기사의 수를 대폭 늘렸음에도 비율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거짓말』과 관련된 기사가 늘어난 만큼, 『너와 나의 시간』과 관련된 기사 또한 제법 늘었기 때문이다.
‘MBS는 아니야. 그쪽은 아직까지 『너와 나의 시간』에 큰 관심이 없어.’
MBC 드라마국은 『너와 나의 시간』에 아직까지 큰 관심이 없었다.
평균치의 절반밖에 안 되는 제작비를 책정하고, 블록버스터 드라마와 동시간대에 편성한 걸로도 모자라, 홍보마저도 적으며 마지못해 해 주는 티를 냈다.
버리는 카드로 쓰려는 의도가 팍팍 묻어났다.
이 와중에 『너와 나의 시간』의 기사가 대폭 늘어났다. 마치 KNC에서 여론전을 펼칠 거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타이밍 딱 맞아떨어졌다.
MBS에서 한 게 아니라면, KNC의 여론전을 방해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이거, 진석 형님 작품이로군.’
JM액터스의 김진석 대표.
연예계 마당발이자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인 그가 『너와 나의 시간』의 흥행을 예상했다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
JM액터스는 KNC 드라마국 국장 입장에서도 까다로운 상대다. 좋은 배우를 다수 보유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김진석 대표의 인맥은 연예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서 더 여론전에 박차를 가한다고 해서 KNC 드라마국이 패배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압승을 낙관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결국『너와 나의 시간』이 이득을 본다.
별다른 방해 요소만 없다면 이대로 상승세를 이어 나갈 테니까.
패배 아닌 패배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
KNC 드라마국 국장이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예상 못한 변수가 있었다고 해서,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시청률 50%라는 상징성을 포기할 순 없었다.
‘23화와 24화에서 내려오더라도, 일단 22화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청률 50%를 넘긴다.’
시청률 50%까지 부족한 건 단 0.5%.
KNC 드라마국 국장은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기로 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순순히 인정해야겠지. 『너와 나의 시간』이 『거짓말』 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대박이 날 드라마라는 걸 말이야.’
* * *
KNC 드라마국 국장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그 시각, JM액터스 사옥.
김진석 대표는 박정상과 함께 차를 마시며 한참 동안이나 웃음꽃을 피웠다.
“박 대리.”
“네, 대표님.”
“지금 이 상황, 재밌지 않나?”
김진석 대표의 손에는 시청률표가 들려 있었다.
21화에서 50%를 넘을 거라던 『거짓말』의 시청률이 방영 이후 처음으로 하락했고, 그 대신 『너와 나의 시간』 11.3%로 상승세를 탄 그 시청률표가 말이다.
김진석 대표는 이 상황이 너무 재밌었다.
“최고 시청률 55% 중반대를 기록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상승세를 타고 있던 드라마가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방영 후 처음으로 시청률이 감소했어. 언론까지 대대적으로 동원했음에도 말이야.”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솔직히 저 또한 『거짓말』이 최고 시청률 55%는 가뿐하게 기록할 거라 예상했거든요. 『너와 나의 시간』이 『거짓말』의 시청률을 끌어 내릴 줄이야…….”
“웃긴 건 뭔지 아나? 이 와중에도 MBS 드라마국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거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자존심이 상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와 나의 시간』의 흥행에 썩 도움이 되는 제스처는 아니지.”
MBS 드라마국 국장은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대박 드라마를 낚아 오지 못했을 거다.
다만 모든 작품의 흥행을 맞추지는 못했다.
『너와 나의 시간』은 그의 예상을 벗어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분위기만 보면 『거짓말』의 최고 시청률 갱신을 저지할 가능성이 높다. 『거짓말』이 종영하는 순간부터는 상승세를 막지 못할 거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MBS 드라마국은 『너와 나의 시간』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뭐, 그래 봐야 얼마 버티지는 못할 테지만.’
이유야 어쨌건, 『너와 나의 시간』에 대한 MBS 드라마국의 무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청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혹은 이사회의 지시로 인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거다.
문제는 그 전이다.
KNC 드라마국에서 작정하고 여론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MBS 드라마국은 『너와 나의 시간』에 아무런 도움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김진석 대표가 나섰다.
KNC 드라마국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너와 나의 시간』과 관련된 호의적인 기사를 연달아 냈다. 최소한 여론전 이전의 기사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일단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언론 플레이는 김진석 대표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배우 때부터 꾸준히 쌓아 온 그의 인맥은 어마어마했다. 판이 깔렸을 때 우호적인 기사를 줄줄이 쏟아 내는 거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KNC 드라마국이 의도한, 압도적인 물량의 기사로 인해 『너와 나의 시간』에 대한 관심이 묻힐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걸로 보였다.
“박 대리는 『너와 나의 시간』의 시청률이 어느 정도로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
“이 분위기면…… 40%는 넘지 않겠습니까?”
“역시 그렇지? 그럼 시현이는 브라운관 데뷔작부터 최고 시청률 40%를 넘긴 배우가 되는 거야. 흐름만 잘 타면 50%도 넘볼 수 있을 테고.”
김진석 대표가 박정상에게 카드를 건넸다.
“이럴 때일수록 몸 관리를 잘해야 하지 않겠어? 조만간 짬 내서 시현이 데리고 몸보신 좀 해. 먹고 싶은 음식 있다고 하면 원 없이 사줘. 그 녀석, 연기에 집중하면 다른 걸 잘 못 보더라고.”
“안 그래도 최봉팔 사원 통해서 몸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무리 바빠도 아침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것 같았고요.”
“아주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챙겨.”
“네, 명심하겠습니다.”
박정상이 나간 뒤.
신문들을 살펴보며 김진석 대표가 미소를 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블록버스터 대박 드라마 머리끄덩이 한번 제대로 잡아 보자고.”
* * *
2000년 8월 3일 목요일 오후.
『사랑하고 싶어』제작진과 배우들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며, 주연 배우 중 한 명이 하차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STS에서는 부정했지만 기사는 연속으로 쏟아져 나왔고, 해당 배우의 소속사 측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의혹이 증폭됐다.
이에 대중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합심해서 뭉쳐도 모자랄 마당에 제작진과 배우들이 싸우고 있으니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며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뜩이나 시청률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악재까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오후 9시 55분.
『너와 나의 시간』6화, 『거짓말』22화, 『사랑하고 싶어』 8화가 나란히 전파를 탔다.
다음 날.
밤을 지새워 8화의 편집을 끝마친 최창국 PD가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기 전에 잠시 드라마국에 들렀다.
“뭐야, 최 PD 또 밤 샜어?”
“편집하느라 무리 좀 했습니다. 잠 좀 자고 오후에나 현장에 나가 보려고요.”
“고생 많네. 그래도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시청률 괜찮던데? 국장님도 반응 좋으시더라고. 어쩌면 조만간 제작비 추가 편성될지도?”
“……얼마나 나왔습니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봐.”
최창국 PD는 선배 PD로부터 시청률표를 건네받았다.
동시에 두 눈이 커졌다.
그는 시청률표를 확인하자마자 그것을 들고서 회의실로 뛰어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음이 잘 되는 장소가 회의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회의실의 문을 잠근 그는…….
“으아아악! 아악!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고! 『거짓말』이고 뭐고 전부 다 덤비라 해!”
문을 닫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댔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춤을 춰 댔다.
소리는 안 들려도 창문을 통해 모습이 보일 테지만, 지금은 눈곱만큼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장 이 벅찬 감정을 표출해야 할 것 같았다.
육체를 지배하던 피로는 어느새 잊어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 배우들과 소통하며 한 신이라도 더 촬영하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만든 걸작을 편집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최창국 PD가 회의실 안에서 난리를 치고 있을 때.
KNC 드라마국 국장은 시청률표를 받아 들고서 쓴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인 22화가 방영됐음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자, 마침내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못한 게 아니라 상대가 너무 잘한 거니까.’
KNC 『거짓말』 – 48.7%
MBS 『너와 나의 시간』 – 13.8%
STS 『사랑받고 싶어』- 3.5%
시청률 50%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말이다.
다윗이, 골리앗의 급소를 제대로 후려쳤다.
* * *
6화가 방영되고 나자, MBS 드라마국 내부에서 『너와 나의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다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5화에 6화에서 연달아 『거짓말』의 시청률을 끌어내린 건, 『너와 나의 시간』이 좋은 드라마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어서라고 말이다.
게다가 이사회에서 지침이 내려오기까지 했다.
『거짓말』의 종영과 맞물려 시청률이 치고 오를 것 같으니, 제작비를 추가 편성해서 어디 한번 제대로 각 잡고 만들어 보라고 말이다.
심지어는 어째서 제작비를 평균치의 절반 정도밖에 편성하지 않았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쩌겠는가.
이사회에서 하라면 하는 거지.
결국 MBS 드라마국 국장은 최창국 PD를 불렀다. 이에 최창국 PD는 쪽잠을 자고 촬영장으로 향하기 전, 시간을 내서 국장실을 방문했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요즘 고생 많지, 최 PD? 드라마 잘 보고 있어. 대박의 향기가 솔솔 나던데?”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바쁠 테니까 본론만 말할게. 제작비가 추가 편성될 거야. 부족한 제작비로 고생 많았던 거 내가 잘 알아. 내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점 이해해 주고,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추가 편성해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서운한 마음은 없습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 그리고 또 하나.”
추가 제작비 편성을 밑밥으로 깔고, 국장은 이사회로부터 내려온 또 다른 지침을 이야기했다.
“연장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연장…… 말입니까?”
“자네도 느끼고 있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잖아. 『거짓말』이 종영하는 대로 시청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 같단 말이지. 이왕이면 연장을 해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게 좋지 않겠어?”
추가 제작비 편성 및 연장 방영.
이사회에서 『너와 나의 시간』에 바라는 것이었다.
드라마국 입장에서는 낮은 제작비를 책정하고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한 책임을 덜기 위해서라도, 최창국 PD를 설득해서 연장 방영을 성사시켜야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최창국 PD는 단호했다.
그는 눈곱만큼도 고민하지 않은 채 연장 방영에 대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가 제작비 편성의 조건이 연장 방영이라면 그 또한 받지 않겠습니다.”
그는 조건부 제작비 추가 편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장 방영은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