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55
54화 – 각성, 그리고 훈련
용훈은 샤커를 데리고 새틀 하우스로 돌아왔다.
말도 없이 샤커를 데리고 가려는 그를 미국의 헌터들이 막아섰지만, 그들의 리더 격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방에 오줌을 질질 싸는 것을 보고서 깔끔히 물러나 주었다.
“이리 와.”
용훈이 거실의 소파에 몸을 던지며 샤커를 불렀다.
샤커는 천장이 낮아 허리를 잔뜩 굽히고서 어기적어기적 걸어 들어왔다.
“그러게 변신 풀라니까. 어떻게 된 놈이 지 맘대로 변신도 못 풀어.”
[샤커는 그런 고차원적인 행위를 할 정도의 정신세계를 갖지 못했습니다. 각성 과정에서 변형계의 이레귤러 능력을 스킬로 재편성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사용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그래, 알았어. 그보다 말 나온 김에 생각 좀 해보자. 자비스. 너는 얘를 어떤 타입으로 각성시키는 게 좋겠어?”
[일단 탱커로서의 자질은 더이상 손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방어력과 회복력, 완력과 순발력 모두가 최고 수준입니다. 샤커에게는 특정한 능력을 부여하기보다는 제어력을 높이거나 정신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제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샤커의 내면에 가득한 어둠을 걷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신성력을 다루는 강화계나 자연계를 추천합니다.]“그건 별로인데. 이놈의 이 말도 안 되는 힘은 바로 그 어둠에서 비롯된 건데 말이야. 신성력을 섞어서 어둠을 희석시키면 반드시 저 힘도 약해질 거라고.”
“그런 건 필요 없어. 내가 이놈한테 기대하는 건 저 무식한 빠워지, 얍삽한 전술 따위가 아니야.”
[전술을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치실 텐데요.]“그래서 니가 있잖아. 그쪽은 니가 책임지면 되지.”
[… 그러면 따로 생각해 두신 것이 있으십니까?]자비스의 물음에 용훈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있지.”
[무엇입니까.]“이놈한테 무술을 가르칠 거다.”
[무리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샤커는 그런 고차원적인 행위를 할 정도의 정신세계를 갖지 못했습니다.]“괜찮아. 그놈이 배울 게 아니니까.”
[네?]“됐고, 바로 시작하자. 각성 타입은 그냥 강화계로 해.”
[강화계 말입니까? 무공을 익히게 하시려면 특질계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강화계는 스킬의 형태가 없으면 마나를 다루지 못한단 말입니다.]“상관없어. 어차피 샤커는 품고 있는 어둠이 너무 커서 마나나 내공을 줘도 제대로 못 다뤄. 그냥 강화계로 해.”
[알겠습니다. 데이터 출력합니다.] [이름 : 르세인 패리쉬 크룩스] [직업 : 없음] [레벨 : 1] [경험치 : 0 / 500 [능력치]– 힘 : 12
– 민첩 : 9
– 체력 : 9
– 지능 : 19
– 마력 : 1
– 생명력 : 900
– 마나 : 100
[여유 포인트 : 0] [특성]– 없음
[이레귤러 스킬] [패시브]– 없음
[액티브]– 변형 : 어둠의 주인
[스킬] [패시브]– 없음
– 없음
[아이템]– 없음
“흠.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놈이네.”
[자신한테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깊은 연구를 했더군요.]“본성은 나쁘지 않은 놈인가 보네. 일단 좋아. 자비스. 니 DB에 무술도 있어?”
[무공이 아니라 무술 맞습니까?]“그래. 태권도나 유도 같은 거.”
[있습니다. 중국 권법부터 무에타이나 주짓수, 칼리 아르니스나 시스테마, 크라브마가 같은 현대 무술까지 모든 종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좋아. 복잡하지 않고 파워를 잘 살릴 수 있는 것들로 좀 추려서 가르쳐. 바로 가르칠 수 있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스킬이나 무공의 형태가 아니므로 숙련이 필요합니다.]“그럴 줄 알았어. 바로 진행해.”
[죄송합니다만, 주인님. 무엇을 기대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궁금해?”
[그렇습니다.]용훈은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 그대로 서 있는 샤커를 올려다보았다.
“자비스. 너는 내가 이놈을 통제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걱정이야. 지금의 나는 숨 쉬듯이 이놈을 통제할 수 있어.”
그것은 이번에 새로 획득한 신격 특성, ‘절대적인 존재’ 덕이었다.
절대적인 존재는 말 그대로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게다가 메인 시스템 내부에서 존재가 흩어질 위험을 없애주는 부가효과도 있었다.
“저놈에게 부족한 건 제어보다 싸우는 방법이야. 저대로 싸움판에 갖다놨다가는 괴물들이랑 어울려서 서로 물고 뜯고 난리를 피울 테니까.“
[그건 그렇군요.]“어둠을 그대로 두자니 말이 안 통하고, 어둠을 건드리면 그만큼 약해져 버리고. 이게 문제잖아, 그치? 어둠을 내버려둔 채 무공을 가르치면 저 돌대가리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테니까.”
[정확합니다.]“그래서 나는 샤커가 아닌 르세인을 가르칠 생각이야.”
[네?]“상승의 무공이 아닌, 일반인도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무술을 샤커가 아닌 르세인에게 가르칠 거야. 자다가도 건드리면 튀어나올 정도로 뼛속 깊이. 이제 무슨 소린지 알겠어?”
[르세인으로 하여금 샤커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 거군요.]“정확해.”
[하지만 주인님. 그러기 위해서는 르세인의 영혼이 상당한 폭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자비스의 말에 용훈은 또다시 짓궂은 웃음을 터트렸다.
[… 왜 웃으십니까?]낄낄거리던 용훈은 여전히 웃음기를 띈 채 입을 열었다.
“자비스.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고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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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용훈은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침실을 나선 용훈이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자비스.”
[네, 주인님.]“잘 돼가?”
[네. 기대 이상입니다.]그 말에 용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거기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주인님이 잠드신 이후로 55,018시간이 지났습니다.]“… 뭐? 야, 시간을 몇 배로 올려놓은 거야?”
[5천 배로 올려두었습니다만.]“이런 무식한 놈. 오리지날 정신과 시간의 방도 겨우 365배인데 5천 배? 너 걔한테 악감정 있냐?”
[단순 작업도 아닌 무술을 배우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혼의 격도 성장시켜야 하고 말입니다. 적어도 6년은 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에휴. 그래, 잘했다. 그보다 걔, 몇 번이나 죽었냐?”
[사망 42회. 신체 완파 67회. 전투불능 286회. 이렇군요.]“… 그놈 정신은 멀쩡하냐?”
“그건 좋군. 샤커로 변신하는 건 확실히 봉인해뒀지?”
[그렇습니다. 변신은 단 1회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잘했어. 이제 그만 데려와. 같이 식사나 하게.”
[알겠습니다.]잠시 후 거실 한복판에 흰색 나무문이 돋아나더니 벌컥 문이 열리며 르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훈은 흥미롭다는 듯 르세인을 살폈다.
“6년이나 죽음과 싸우고 온 놈치고는 상당히 깔끔하다, 너? 자비스가 신경 좀 써줬나 봐?”
르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 날카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용훈은 흡족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 일단 먹자고. 먹고 나서 이야기하자.”
용훈과 르세인은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곧바로 자비스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차려주었다.
르세인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미친놈처럼 식탁에 달라붙었다. 그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커다란 솥에 담긴 맥앤치즈를 손으로 열심히 퍼먹었다.
‘… 자비스. 너 저 안에서 쟤 제대로 안 먹였냐? 왜 저래?’
[훈련의 일환으로 식사도 알아서 처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차차 나아지더군요. 참고로 사망 42회 중 6회는 굶어 죽은 것입니다.]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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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후 용훈은 르세인과 간단히 술을 한잔 기울였다. 그들의 현실적인 관계를 떠나서, 그라는 사람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자비스가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To live & die in LA’. 그 느긋한 비트를 듣자 르세인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샤커라는 이면과는 다르게, 르세인은 굉장히 사려 깊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변화와 깨어날 때마다 발견하는 살인의 흔적을 겪으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고 했다.
문에 달려있던 수많은 자물쇠들은 사실 침입자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용훈은 그의 잔에 맥주를 따르며 작게 사과를 건넸다. 본의(?) 아니게 그를 6년이나 지옥에 처박아둔 것에 대해서.
르세인은 그런 용훈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원망 대신 감사를 표했다.
“정말 힘들었어요, 힘들었지만···. 덕분에 얻은 게 더 많아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했고, 육체적으로도 물론이구요. 이제 어쩌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직 힘들어.”
“… 역시 그렇습니까?”
“그래.”
용훈의 날카로운 단정에 르세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용훈은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다고 영원히 안된다는 건 아니야.”
“네?”
“가자. 가능성을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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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진입 확인. 레전드 특성 ‘아키텍처의 눈’ 발동으로 숨겨진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던전의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등급 : 에픽] [던전 타입 : 유적] [환경 타입 : 평야] [면적 : 124㎢] [인스턴스 : 고대의 투기장] [인스턴스 면적 : 31㎢] [퀘스트 난이도 : C] [퀘스트 : 모든 도전자를 쓰러트려라.]자비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용훈이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날개를 달고 양손에 칼과 도끼를 든 거대한 석상이었다.
용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두세 배 정도 키워놓은 것 같은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용훈은 지금 그 고대의 투기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르세인이 보였다.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C 난도의 퀘스트로 클리어는 어렵지 않습니다. 도전자는 총 일곱이 정해져 있군요. 마지막 단계의 보스는 확인이 안 되지만, 나머지는 전부 에픽 F등급에서 D등급으로 파악됩니다.]‘첫 번째는 누구지?’
[우르크 투사입니다. 난폭하고 완력이 좋은 것이 특징입니다.]‘몸풀기로 딱 좋겠군.’
대화가 끝나자마자 멀리서 괴성이 들려왔다.
“취아아악!”
비강을 흔드는 괴성이 잦아들자 멀리 반대편의 석벽이 그그긍, 소리를 내며 위로 들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거대한 덩치의 우르크 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놈. 더럽게도 생겼네.”
용훈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보통 오크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에 잿빛에 가까운 진녹색의 피부, 입가를 비집고 튀어나온 송곳니에 강철같은 근육질. 어느 모로 봐도 위압적인 외모였다.
용훈은 르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우르크 투사를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무섭냐?”
“… 네.”
“그래서. 도망가고 싶어?”
“네.”
“자식, 솔직하네. 근데 아쉽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다. 나가 봐. 저놈은 니 몫이니까.”
그 말에 충격을 먹은 듯 르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 혼자서 말입니까?”
“그래.”
“그, 그런···. 여기서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일 따윈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제가 어떻게···.”
“뭘 어떡해. 쟤보다 니가 더 세니까 걱정 말고 나가 봐.”
그의 말에 르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봉인은 이미 풀어뒀어. 가서 한번 확인해 봐. 정말 니가 그놈을 지배할 수 있는지. 그 정도로 성장했는지.”
상기된 표정의 르세인이 눈을 들어 우르크 투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눈에는 공포 대신 투지가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