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72
71화 – 칼론 다이오노스
용훈은 기가 막히게 꾸며진 정원 같은 복도에 마구잡이로 불을 질렀다.
아마도 이 복도의 짙은 꽃향기는 정신계 마법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용훈과 샤커는 겨우 그 정도에 영향을 받을 만큼 약하지 않았지만, 불쾌한 것을 그냥 놔둘 필요도 없었다.
복도를 전소시키며 나아가자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그곳은 세계수의 안쪽이라는 생각이 사라질 만큼 신비로운 곳이었다.
작고 반짝거리는 빛무리들이 수도 없이 허공을 날아다녔고 짙은 운무 같은 생명의 기운이 공간 전체에서 일렁거렸다.
빛무리의 색깔이 붉지 않았다면, 생명의 기운에 음습함이 덜했더라면 천국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공간의 중심에 칼론 다이오노스가 서 있었다. 광택이 흐르는 검은색 찰갑을 걸친 그는 엘프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크고 튼튼해 보였다.
그의 뒤로 총 서른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얼굴까지 가린 새카만 갑옷 때문에 그들은 정말로 그림자 같았다.
칼론은 등뒤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었다. 폴른 엘프 대적자들이 사용하던 길고 날렵한 칼과 비슷했는데, 칼론의 것은 훨씬 더 화려했고 은은한 핏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인님. 칼론 다이오노스는 폴른 엘프를 이끌고 어둠의 세계수를 개척한 장본인입니다. 순찰자, 추적자, 암살자, 대적자, 파괴자라는, 폴른 엘프의 다섯 직업은 모두 칼론에게서 파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칼론 다이오노스는 그 다섯 직업의 정수를 전부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그래. 엄청 강해 보이긴 하네. 근데 저 뒤에 서 있는 그림자들은 뭐야?’
‘샤커와의 상성은?’
[예전이었다면 필패였죠. 하지만 어둠을 자유롭게 다루게 된 지금의 샤커는 다를 겁니다. 그의 어둠은 비물질화한 존재의 실체까지도 상처입힐 수 있으니까요.]‘좋아. 그러면 그림자들은 샤커한테 맡기자. 칼론은 내가 상대할게.’
[조심하십시오. 칼론은 강합니다. 또한 주인님의 신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유의하셔야 합니다.]‘알았어.’
말을 마치자 자비스에게 언질을 받은 샤커가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서른 명의 그림자들 역시 그를 따라 움직였다.
용훈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과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한 칼론이 우스워서였다.
‘아마 샤커가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이라고 생각하겠지. 당해봐라. 그래야 알 거다.’
용훈의 손이 허리춤의 홀스터에 꽂힌 멸절의 여섯 날개 근처에서 꿈틀거렸다. 그러자 칼론 역시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며 슬쩍 자세를 낮췄다.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말총머리가 칼론의 등 뒤에서 길게 나부낀다. 블루블랙의 눈썹이 날카롭게 휘어진 것이 자못 위압감이 들었다.
‘볼수록 잘생겼네. 이래서 엘프 엘프 하나 봐.’
[그렇군요. 부러우십니까?]‘그래.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용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순간 그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멸절의 여섯 날개를 뽑아들었다. 그것은 나타남과 동시에 황금빛 광휘의 창을 쏘아냈다.
광휘의 창은 소리를 한참 앞지르며 칼론 다이오노스의 가슴팍을 노렸다. 그때까지도 칼론은 여전히 양팔을 내린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안 피해?’
이상하다, 싶었던 순간 칼론이 움직였다.
그의 손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순간 황금빛 섬광이 터져나간다 싶더니 그의 검이 뽑혀 있었다.
용훈은 그의 길게 뻗은 검을 바라보았다. 날 길이만도 칼론 자신의 키보다 긴 그것은 공간에 구멍이 난 듯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살짝 휘어있는 칼날이 아름다웠다.
용훈은 그의 양옆으로 흩뿌려지는 황금빛 섬광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설마 광휘의 창을 받아친 거야?”
[그, 그렇습니다.]얼마나 놀랐는지 자비스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칼론은 새카맣고 기다란 검을 슥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더니 바닥을 박차며 검과 함께 뛰쳐나왔다.
그는 마치 빙판을 미끄러지듯 불가사의한 움직임을 보이며 용훈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디멘션 슬라이드?”
지금 칼론 다이오노스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용훈의 디멘션 슬라이드와 똑같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용훈 역시 디멘션 슬라이드로 빠르게 몸을 물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용훈이 서 있던 자리를 칼론의 새카만 검이 훅 꿰뚫었다.
“질풍!”
짙은 회색 기류가 용훈을 감싸자 감각이 극도로 끌어 올려졌다. 단숨에 의식이 가속되며 주변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칼론 다이오노스는 미친 듯이 빨랐다.
달려드는 그를 피해 옆으로 몸을 피하면 디멘션 슬라이드를 사용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든다.
게다가 칼론의 검격은 커다란 검에 걸맞지 않게 가볍고 날렵했다.
칼론은 그 길고 날카로운 검을 젓가락처럼 다뤘다. 한 손으로 쭉 밀어 찌르고 그 상태에서 손목만을 비틀어 목을 베어 들어오는 것이다.
게다가 디멘션 슬라이드로 거리를 벌릴라치면 똑같이 디멘션 슬라이드로 밀고 들어오니 도무지 한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쳇!”
용훈은 이를 드러내며 조급해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무기였던 속도와 움직임이 완전히 봉쇄되었기 때문이었다.
용훈은 코앞을 스쳐 가는 새카만 검을 바라보며 멸절의 여섯 날개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단숨에 카트리지를 비워내며 폭발 화살을 난사했다.
그들 주위에서 수십 발의 폭염이 터져 나왔다. 용훈은 그 틈을 타 훌쩍 거리를 벌렸다.
후웅! 갑자기 묵직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거대한 폭염의 허리가 썽둥 잘리며 그 너머의 칼론이 눈을 빛냈다.
“… 저거 저놈 진짜 장난 없네. 뭔 엘프가 칼을 저렇게 잘 써. 말이 안돼잖아.”
[칼론 다이오노스의 선조 중에 대단한 검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 검술도 그쪽을 통해 전해 내려온 것이고 말입니다. 아슬나하 류(流) 일도술이라고 하는군요.]“이름까지 궁금하진 않아!”
철컥, 투두두둥! 번개처럼 카트리지를 갈아 끼운 용훈이 힘차게 방아쇠를 당겼다. 극강의 속도를 자랑하는 푸른 섬광의 차원 화살이 비처럼 공간을 갈랐다.
광휘의 창을 받아친 칼론 조차도 차원 화살의 속도는 부담스러웠는지, 함부로 받아치지 못하고 연신 몸을 물렸다.
디멘션 슬라이드를 섞으며 물러서는 칼론의 몸동작은 질풍을 부른 용훈이 봐도 놀랄 정도였다.
풍차처럼 검을 휘둘러 화살을 받아내면서 복잡한 궤도로 쉴 새 없이 이동한다. 과연 저런 움직임을 나는 할 수 있을까?
‘지금 감탄할 때야?’
용훈은 스스로를 탓하며 카트리지를 갈았다. 차원 화살의 비가 끊기자 칼론 다이오노스는 어느새 용훈의 면전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새카만 칼날이 그의 미간을 노리며 날아왔다. 그 기세가 마치 산이라도 날아드는 것 같다.
용훈은 그 칼의 궤적에 왼손 손등을 가져다 댔다. 신력을 두른 손등이 흰빛을 내뿜었다.
카각! 손목을 젖히자 불꽃이 튀며 칼날이 용훈의 귀밑을 갈랐다.
신력을 두른 덕에 손목이 썽둥 잘리는 것은 피했지만 끔찍한 고통까지는 막지 못했다.
용훈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칼론의 허벅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칼론 역시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설마 자신의 칼날을 맨손으로 받아낼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게다가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광휘의 창이 그의 허벅지를 노리고 있었다.
칼론 다이오노스는 육체의 내구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광휘의 창을 정타로 먹으면 치명타를 맞는 거나 다름없었다.
칼론은 이를 악물며 다리를 잡아뺐다. 광휘의 창이 그의 허벅지를 스치며 바닥을 때렸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 피해냈다. 이제 내 차례다, 하고 칼론이 고개를 드는 순간.
쾅! 반대쪽 옆구리에 격렬한 충격을 느끼며 칼론의 몸이 날아갔다. 바닥을 구르며 한참을 미끄러진 그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 무서운 새끼. 그 상황에서도 칼질을 멈추질 않네.”
용훈 역시 낭패한 표정이었다. 그의 이마가 길게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칼론은 옆구리에 붕산각포를 얻어맞고 날아가면서도 손목을 비틀어 검격을 날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어 피해냈지만 칼끝에 스치는 것 까지 막진 못했다.
칼론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마치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보자는 듯, 그가 두손으로 검을 잡았다.
칼론이 검도의 중단세로 길고 날렵한 검을 겨누자 마치 이미 칼날에 찔려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편한 느낌에 몸을 슬쩍슬쩍 옮겨봤지만 그럴때마다 칼론의 칼끝은 자석처럼 용훈을 향했다.
“피곤한 놈이네…”
용훈 역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어쩌면 한방 승부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꽈과광!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굉음이 터져나왔다. 아마도 샤커가 날뛰는 소리겠지.
돌아보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칼론 다이오노스와의 거리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미터는 됐지만, 그정도 거리는 칼론에게 한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칼론이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하늘을 꿰뚫을 듯이 쳐들린 검이 떨어져 내리자 20여 미터의 거리를 격하며 시커멓고 음습한 기운이 엄습했다.
날카롭진 않았지만 넓은 범위를 휩쓰는 파도 같은 기운. 피하기에는 너무 넓다.
불길한 느낌에 얼른 몸을 날렸지만 몸의 절반 가량이 그 기운에 적중됐다.
그러자 어쩐지 몸이 축 처지면서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제야 자비스의 말이 기억났다. 칼론은 모든 폴른 엘프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이것은 폴른 엘프 파괴자의 저주 마법인가?
질풍으로 가속된 상태였으니 어찌 보면 지금 용훈의 상태는 +-1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칼론 다이오노스.
무시무시할 정도로 날렵하고 재빠른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쾅! 바닥을 터트릴 정도로 강하게 걷어찬 그가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용훈은 다급히 신력을 끌어올려 저주를 몰아냈다. 하지만 그사이에 이미 칼론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크윽! 군체분신!”
다급하게 군체분신을 사용하자 용훈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단숨에 일곱 개로 분화했다.
일곱 명의 용훈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후웅! 순간 월광처럼 창백한 검광이 허공에 그려졌다.
서걱. 깔끔한 절삭음과 함께 세 명의 용훈이 반토막났다.
나머지 네 명의 용훈은 목과 허리와 정수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격통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맡은 바 임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칠연굉뢰포!”
사실상 세 명이 빠졌으니 사연굉뢰포가 되어버린 칠연굉뢰포가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