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Corpse-Collecting Warrior RAW novel - Chapter 299
시작의 빛(4)
캬아아악!
거대 거미의 입에서 토해지는 체액.
“흐읍!”
투구를 깊게 눌러쓴 전사, 댈티무르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방패를 추켜올렸다.
촤악! 치이이이···!
마물의 위장에서 나온 부식액이 닿자마자, 방패를 구성하는 금속과 가죽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물렁하게 변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방패를 넘어 손까지 녹아버릴 기세. 전사는 재빠르게 방패를 팽개치고 검을 들어올렸다.
거미의 쩍 벌어진 주둥이가 코앞이었다.
콰지지직!
푸른 검기가 주둥이를 길게 갈라내고.
쿠드득! 쿠득!
거미의 날카로운 집게발이 갑옷을 구기며 그 안의 살을 찢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함성을 토한다. 전사는 격통에 눈물을 머금고 떠올렸다.
연수조차 셀 수 없는 오래 전의 기억. 설산에서 눈을 떠 용병으로 활동하다, 서부의 길드 연맹에 정착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걸 하룻밤만에 불태워버린, 서쪽 대사막을 넘어온 악신의 군세를.
“죽어! 죽어! 악마 새끼들!”
버틴다. 싸워 이긴다.
마물을 찢어발기고 악마를 죽여, 마침내는 재앙의 근원인 지옥을 무너뜨린다.
울컥 치솟는 핏물을 처절한 비명과 함께 뱉어내고,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며 푸른 검기를 폭발시킨다.
이미 도시의 경비대장으로서 한 번 패배했다. 두 번째 패배는 용납할 수 없었다.
‘도시와 함께 불타버린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거미 마물의 심장을 찔러 쪼갠 전사 댈티무르가, 서서히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런. 무리하셨군요.]「대회복(大回復)」
파아아앗―!
의식을 깨우는 청량함. 육신을 재구성하는 순수한 활력.
찢긴 근육이 이어붙으며 힘을 되찾고, 으스러졌던 내장이 순식간에 원래의 형태를 되찾는다.
“으, 으음?”
「축의대지(祝毅大地)」
「천명제례(天明祭禮)」
「위령(衛靈)」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수많은 축복과 강화술식이 몸과 영혼 위에 겹겹이 쌓아올려지고.
철커덕! 철컹!
휘리리―착!
룬 문자를 수놓은 갑주가 찢겨나간 갑옷을 대신하며, 강력한 기사들이나 쓸 법한 검과 방패가 두 손에 각각 쥐어진다.
[자, 다시 가십시오.]「투인(鬪引)」
직후 머릿속을 울리는 전성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의분.
“으아아아아!”
악마에게 짓밟힌 도시를 떠올리며, 댈티무르는 다시 한 번 마물에게 돌격했다.
“저희 생각보다 합이 잘 맞는군요.”
전성의 주인인 성자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곁에 있던 덥수룩한 수염의 대장장이가 껄껄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같은 세계선에 살았으면 더할 나위 없었으련만.”
“허나 그런 일은 존재할 수 없죠. 갈라진 가지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없으니까요. 지금처럼 어느 시점에 서로 닿는 경우만이 가능할 뿐,”
“푸하하! 성기사 양반이 주문쟁이 같은 소리나 해서 되겠는가?”
시답잖은 담소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의 눈과 손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전장을 훑는다.
신성 문신이 번쩍거릴 때마다 전장의 공기가 뒤집히고, 성광을 터뜨리며 아군을 보조하는 기적을 흩뿌리는 성자의 손짓.
축복으로 신체능력과 정신력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이들의 손에는, 대장장이의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무구들이 빨려들어가듯 쥐어진다.
유물 무구에 성자의 축복이 더해지면서, 지극히 평범한 범인조차도 어지간한 초인 이상의 전력으로 거듭났다.
“용족이 몰려오는군요.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인데요.”
“그런가?”
성자의 중얼거림에 대장장이가 고개를 돌렸다.
눈을 조금 찌푸리자 저 멀리 수천에 달하는 용족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겨울을 나기 위해 이동하는 철새 떼처럼, 지평선을 거대한 그림자로 뒤덮은 용들의 군세.
“도마뱀 새끼들은 여전히 지랄이군.”
대장장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가 망치를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드드드드······!
지진이라도 난 듯 지면이 거세게 흔들리고.
「영역 개방 : 용의 숨결이 흩어지는 대장간」
거대한 굴뚝 모양의 대장간이 땅을 부수고 솟구친다.
「만병지주(萬兵之主)」
촤르르르르···!!
굴뚝 첨단에서부터 솟아오른 수만 정의 창칼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은빛 물결로 뒤덮는다.
전측면에 걸쳐 창벽을 쌓아올리는 장창과 방패. 그 뒤에서 지원사격을 준비하는 단창과 활.
눈구멍에서 푸른 기운을 흘리며 짜맞춰진 마법 갑주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쥔 채 진형을 갖춰 도열한다.
병장기의 군대를 보며 망치를 휘휘 돌리던 대장장이가, 성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재밌는 대화였네. 조금 있다 다시 보도록 하지.”
“그러시죠.”
꽈앙─!
지면을 박찬 대장장이가 용 군세를 향해 날아올랐다.
망토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활강하고,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신발로 허공을 걷어차며 뛰어넘는 대장장이.
성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신성력이 번뜩이는 눈은 넘실거리는 누런 고름의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환영궁전.’
본디 라필렘에게 속했던 대지옥의 정경이자, 이제는 에낙사구스에게 하나로 통일된 대지옥의 일부분.
라필렘은 용족과 함께 성기사단을 꾸준하게 괴롭혀온 숙적이었다.
그만큼 그 역시 부패해가는 역병의 악마들을 상대한 적이 꽤 잦았다.
“전쟁의 신이시여.”
놈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무수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성자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에는 한 점 별빛조차 없이 어둠만이 가득했다. 상관없었다.
그가 올려다보는 건 물리적인 하늘이 아니었으니까. 눈을 감은 성자는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마무리했다.
“있어서는 안될 악의 총아를 멸하고, 이 외딴 세상을 구할 힘을 주소서.”
그리고.
「영역 개방 : 세상을 쓰다듬는 신의 숨결」
빛이 있었다.
***
투웅―
귓가에 미세하게 울리는 시위 튕기는 소리.
콰아아아──────!!
제트기 엔진음 같은 소리와 함께, 황금빛 직선이 머리 위를 거침없이 내달린다.
두두두두두두!
마치 저고도로 비행하며 플레어를 흩뿌리는 전투기처럼, 궤적의 뒤쪽으로 황금빛 마력을 쏟아내는 궁사의 화살.
쏟아진 마력은 하나하나가 파괴적인 술식의 응집체. 초월자의 강대한 의념으로 빚어진 폭탄이다.
화살의 기나긴 사로(射路) 아래쪽은 융단폭격을 맞은 것과 다름없는 셈.
「답보(踏步) : 뇌류(雷流)」
꽈릉―!
폭격으로 개척된 길을 주파한다.
뇌성이 깃든 걸음마다 발 아래의 대지가 박살나고, 연이어 터지는 충격파에 폭격에서 살아남은 마물들마저 쓸려나간다.
댈런은 파멸궁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때 쑴의 대지옥이었던 이곳은, 피의 바다와 시체의 산이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곳.
녹아내린 금속의 강을 뛰어넘고, 붉게 달아오른 청동 황소들의 외양간을 지나쳐 내달린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보이는 건, 싸움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심부에 우뚝 솟은 거대한 궁전.
그의 목적지는 그 궁전에서도 제일 높은 첨탑이었다.
[저기가 확실한가?]곁에서 들려오는 전성. 댈라인이었다.
검은 뇌광으로 온몸을 뒤덮은 투신은, 어렵지 않게 댈런의 전력질주를 따라오고 있었다.
댈런은 뭐라 대답해줄까 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아니라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전격술사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었다.
[설계상 그곳뿐이다, 투신. 지옥의 합일은 파멸궁전으로부터 차례차례 쌓아올려졌지. 그렇다면 최초에 이루어진 파멸궁전과 성간옥좌 사이의 결속은 여전히 존재해야만 해.] [썩을. 누가 그 얘길 못 들어서 묻는 걸로 보이냐? 하는 소리는 전형적인 주문쟁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령술사도 동의했어. 지옥에 한해서는 그가 가장 전문가 아니겠나?]댈타리온이 뒤쪽을 고갯짓했다. 파멸궁전의 반대편, 망자의 땅이 있는 방향이었다.
[정 모르겠으면 돌아가서 댈룸에게 물어보던가. 혼자서 망자 군단을 전부 막아내느라 지친 흑마법사가, 그렇게 눈을 부리부리 뜬 야만인에게 얼마나 호의적으로 응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쯧, 됐다. 책상머리 샌님들이랑 언쟁해서 얻을 게 있겠냐.]혀를 차며 고개를 돌린 투신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경로를 가로막고 있던 시체의 산이 그대로 뻥 하고 터져나갔다.
「토륙함(吐陸陷)」
사방으로 비산하는 용암과 불덩이의 향연.
「취우진청(驟雨振靑)」
파지지지지!
전격술사의 손짓에 따라 푸른 뇌전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며, 쏟아지는 용암의 부산물을 막고 벼락의 통로를 구축했다.
[나는 그저 우리의 구도자가 가자고 하니까, 그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뿐이라고.]“···고맙군.”
벼락의 통로 안쪽을 주파하며 댈런이 대답했다.
역천의 우물에서 영웅들을 모조리 불러낸 뒤, 그의 작전은 단 한 가지 골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무한한 지옥의 정경 속에 숨겨진 에낙사구스의 비처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 이 모든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놈의 머리통을 둘로 쪼개버리는 것.
수백의 영웅들과 여섯 명의 초월자들이 지옥의 군세를 상대하는 가운데, 댈런과 두 사람만이 적의 진형 안쪽으로 파고드는 건 그런 이유였다.
어찌됐건 대지옥의 군세는 무한히 쏟아져 나올 터.
아무리 날고 기는 초월자들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몰려오는 악마들만 막다가는 힘이 다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으어어어어어!]등뒤 지평선 너머에서 울려퍼지는 망자의 외침.
신위에 오른 사령술사, 댈룸 자이브의 영역 강림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그 여파를 전달한다.
[저 양반이 벌써 강림이라니. 버텨내기가 썩 쉽지는 않나 본데.]“······.”
영웅들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록 영역의 일부로서 소환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받는 고통은 엄연한 실재.
성자와 대장장이의 지원으로 수백에 달하는 죽지 않는 초인의 군세가 양성되었다지만,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는 정신은 결국에 마모되기 마련이다.
홀로 망자 군단을 막아내는 사령술사뿐만 아니라, 다른 지옥의 군세와 치고받는 무투가나 소환사, 궁사의 형편도 그리 여유롭지는 않을 터.
“······.”
허나 그럴수록 해야할 일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뿐이다.
이 싸움을 빨리 끝맺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죽음을 넘어서까지 싸우는 영웅들이 바라마지않을 결말일 테니까.
[다 왔다, 예언의 주인공님. 어서 올라가 보라고.]어느새 파멸궁전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함께 달려온 두 사람이 즉시 몸을 반전해 자리를 지키고, 그들에게 등을 맡긴 채 첨탑을 향해 도약한다.
「답보(踏步)」
수직에 가까운 벽을 디뎌 오르고.
「회명(回冥)」
공간의 틈을 뛰어 넘어가며 첨탑의 꼭대기를 향한다.
하늘을 향해 십수 킬로미터 높이로 뻗은 거대한 궁전의 첨탑.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고 지어올려진 지옥의 건축물은, 문자 그대로 하늘에 닿아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흑뢰(黑雷)」
「무명답인(無明答刃)」
「영역 완전개방 : 지옥을 삼킨 뇌전의 대해」
「홍색정령(紅色晶囹)」
첨탑 저 아래쪽에서는 새까만 전격과 붉은 뇌전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세 사람을 추적해온 파멸궁전의 악마와 마물들을 향해 쏟아내는 초월자의 권능.
달아오르는 공기를 뒤로 한 채 첨탑을 오른다. 마침내 그 꼭대기에 닿아 자리를 박찼다.
휘이이이이···!
귓가에 거칠게 맴도는 바람소리.
상승하는 몸을 밀어내는 공기저항.
눈앞에 보이는 하늘은 한 줌 빛마저 없이 어두컴컴하다.
그곳에서는 어떤 기척이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곳은 사방에 지옥의 사특한 마력이 끓어넘치는 끔찍한 세계.
이렇게나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같은 맥락에서 다섯 대지옥이 하나가 된 이곳에서, 유일하게 에낙사구스의 지옥만이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놈이라면 분명 자신의 권속들을 앞으로 몰아넣은 채, 배후에서 전투를 관망하며 기회를 지켜보고 있을 테지.
허나 그것도 여기까지다.
첨탑을 박찬 추진력을 잃는 순간, 그대로 공중에서 반전시킨 육신.
「영역 강림」
「거꾸로 솟아오르는 폭포」
그가 있는 국소 범위에 한해 위와 아래의 개념 자체를 뒤집고.
「반전(反轉)」
이로써 땅에서 물결치던 일으키던 호수의 풍경을, 새까만 바다와 같은 하늘의 모습과 대치시킨다.
후우웅────
곧장 하늘을 향해 낙하하는 댈런의 신형.
발밑으로 보이는 어두운 창공이, 점차 드넓은 수면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착!
발밑에서 일어나는 동심원의 파문.
「거꾸로 솟아오르는 폭포」
「가중(加重)」
쨍그랑―!
영역의 권능으로 기존의 법칙을 깨부수며 내려간다.
하늘이라 생각했던 건 사실 수면이었고.
수면이라 생각했던 건 사실 또 다른 하늘.
거꾸로 뒤집힌 채 마주보는 세계의 천구를 깨부수고 내려가는 댈런의 눈에, 저 아래 펼쳐진 진짜 바다와 그 한가운데의 옥좌가 보였다.
[···댈런.]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악신의 목소리.
가면 같은 얼굴에서 번뜩이는 안광은, 금강궁의 하늘 위 비처에서 마주했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발현이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현혹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의지를 꺾는 악신의 마력.
다섯 대지옥이 연합한 권능의 파도 앞에서, 이를 악문 채 메어두었던 검을 뽑아든다.
악신의 가면에 웃음기가 맺혔다. 심지를 뒤흔드는 권능의 격이 한층 더 강해졌다.
“닥쳐 씹새야.”
[······?!]━━━━━━━━!!
옥좌가 반으로 쪼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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