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398)
러스트 [RUST]-398
동상처럼 우뚝 멈춘 늑대의 발아래.
[흐으가- 흐으가-]숨인지 유언인지 불확실한 소리가 이어졌다.
어차피 내장이 파먹혀 살릴 수 없었기에 마루는 살기를 아끼지 않았다. 가늘게 쉬던 호흡이 툭 끊어지는 것과 함께 마루를 향해 달려들던 늑대들이 그대로 얼어붙은 채 소리만 냈다.
크이잉-
캥?
쥐새끼들이었으면 줄줄이 죽어 나갔을 살기에도 커다란 늑대들은 죽지 않았다. 몸이 굳은 채 눈알을 굴리는 늑대들을 향해 마루가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크아아앙-
끼잉-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쿠직-
가벼운 찌르기에 머리통이 관통당한 늑대가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
그 확정된 결말에 늑대들이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뚝뚝- 흘러 떨어지는 노란 국물들 사이로 붉은색 실개천이 흐르기 시작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쿠지직- 덧없는 소리에 또 한 마리가 풀썩.
크아—
덩치가 유달리 큰 놈이 몸을 부르르 전신을 떨었지만, 마루의 살기를 벗겨내지 못하고 눈에서 핏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을 흘리는 것.
마루는 피눈물을 흘리는 우두머리 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똑바로 마주 본 채,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늑대들의 머리통에 구멍을 뚫어대기 시작하는 마루.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걸음. 그리고 일곱 번의 찌르기에 늑대 일곱 마리의 머리통에 빨간 칼집이 생겼다. 그렇게 이제 두 마리만 남은 상황.
마루가 큰놈의 곁에 있는 이쁘장한 늑대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우두머리 늑대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크아-
크아아아-
곁에 있는 늑대는 하얀색 털이 유달리 선명한 늑대였다.
우두머리보다 조금 작은 크기. 어떻게 봐도 깨끗하게 생긴 하얀 늑대를 향해 다가서자, 지금까지보다 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우두머리 늑대가 쉰 목소리를 내다 토하기 시작했다.
커흑-
케엑-
커흑-
발버둥을 무시하자, 토를 해서 마루의 신경을 자기 쪽으로 돌리려고 한 것.
‘어쭈? 먼저 죽겠다는 건가?’
옆에 있던 하얀 늑대는 이미 지릴 대로 지려 바닥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달달달 떨리는 가랑이 사이로 말린 꼬랑지에도 국물이 묻어 흘렀다.
머리가 좋다는 건 그만큼 죽음에 대해서도 안다는 뜻. 그런데도 토를 해가며 마루의 신경을 자기 쪽으로 돌리려는 처절한 행동에 마루가 걸음을 멈추고 칼끝을 까딱였다.
‘짝이라 그러는 건가? 대단하네.’
주둥이에 피가 묻지 않은 것을 보니, 이 두 마리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듯했다. 늑대들 먹이 먹을 때 서열대로 먹지 않나?
“운이 좋네. 새끼들.”
마루가 칼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핏방울과 기이한 금속이 뒤섞인 향이 늑대의 코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짙은 건 죽음의 냄새.
끼이이잉-
낑-
“머리 좋지? 너희. 기억해라. 똑똑히 기억해.”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마루는 한 번 참았다. 이것들까지 죽여버리고 나면 다른 늑대 새끼들이 또 지랄이겠지.
살기에 바로 뒈지지도 않는 늑대들이 돌아가는 도중에 개떼처럼 몰려들면 눈밭에서 칼춤 춰야 했다. 발이 푹푹 빠지면서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뛰는 건 사양이었다.
“알짱거리다. 나한테 걸리면 뒈진다. 알았냐? 알았냐고?”
죽음을 머금은 살기가 울컥, 살아남은 늑대 두 마리를 움켜쥐었다.
케흑- 케엑-
숨통이 틀어막혀 반쯤 눈동자가 뒤로 넘어갔던 늑대들이 꺽꺽 거친 숨을 내뱉었다. 삽시간에 살기가 사라진 것.
“가라.”
살기에서 풀어줬음에도 선뜻 뒤를 돌아 도망치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두 마리 모두 꼬리를 가랑이에 말고 바들바들 떨어댔다.
“꺼지라고.”
그래도 돌아서지 못하고 주춤주춤 그 자리에서 굳어있는 두 마리. 마루가 먼저 뒤돌아서, 죽은 팀원들을 수습했다.
신체능력 강화자 두 명이 3~4분을 버티지 못했다. 일단 총이 문제였다. 샷건과 9mm 기관단총으로는 늑대를 저지할 수 없었다.
‘섬광 폭음탄이라도 까지.’
게다가 들고 있던 무기도 상성이 좋지 않았다.
‘쥐새끼 대응 장비로 무장하고 있던 게 문제였어.’
늑대들은 멀리서 알짱거려 신경을 뺏은 뒤, 눈 속을 땅굴 파듯 파고들어 아래에서부터 갑작스럽게 기습한 것으로 보였다.
‘하- 정말.’
그나마 신체능력 강화자라서 총이라도 쐈지, 일반인이었다면 반응도 못 했을 것 같았다. 마루가 팀원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 뒤에야, 제자리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떨어대던 늑대 두 마리가 비척비척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멀리서 간간이 울리던 늑대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효과 좋네.’
살려주길 잘했군. 마루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옆구리가 찢어진 비행선에서 딕과 듀이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씨발- 복수고 나발이고 이게 뭐야.] [진정해 듀이. 거기 그대로 있었으면 놈들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야.]이렇게 주절거리는 게 녹화되겠지만 상관없었다.
[남부나 중부로 도망쳤으면?] [어떻게? 뭘 타고? 걸어서? 검문을 뚫을 수 있었을 거 같아? 추격은? 날씨는 어떡하고?]검문이고 추격이고 피했다고 쳐도, 가다 말고 얼어 죽었을 것.
[검문만 뚫었으면 돼. 일단 외곽에서 날이 풀릴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였다고. 이렇게 추워지면 추격도 못 할 텐데 뭐가 걱정이야.] [단순해서 좋다. 놈들이 우릴 포기할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버텨? 외곽에서? 불 때면 연기는? 뭘 먹고 버틸 건데?]딕의 말이 맞았지만, 듀이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젠장 개새끼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겠다고 들어온 건 아니잖아. 식인귀에게 복수하게 해준다더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이냐?]딕이 어이없다는 듯 듀이에게 말했다. 그런 딕의 어감을 읽었는지 듀이가 이죽거렸다.
[네이드랑 칼루는 다를 것 같아? 레베카 던져주고 튀었어야 한다고 억울해하더라.] [······.]‘말이 좀 심하네.’
딕이 인상을 찌푸렸다.
‘심하기는 개뿔.’
듀이의 얼굴도 마찬가지.
제대로 쉬지 못하고 툭하면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데 불만이 없을 리가. 영하 20도를 넘어 30도에 육박하자, 이런 추위를 견디면서 외부작업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그랬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은 아니었다.
아무리 고생해서 일한다고 해도 딱히 변하는 게 없었다.
돈? 있으면 뭐하나? 여기서는 쓸 일이 없었다.
집 줘, 밥 줘, 무기도 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요리사에게 문의하면 됐다. 재료가 있으면 즉석에서 만들어 줬고 없으면 나중이라도 재료 구하면 해준다고 연락이 왔다.
빌어먹을 여기가 ‘낙원’이라는 건가?
하지만 뭘 할 게 없었다. 술과 담배도 한정적이었고 약은 완전 금지.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 만한 공간이 없었다. 영화? 당구? 볼링? 농구? 게임? 아니 진짜 여기가 기숙 중학교야? 고등학교만 해도 화끈한 파티가 있는데?
오죽 갑갑했으면 내성의 아크 타워에서 나와 외성 구역인 아크 타운으로 갔을까.
[여자들도 거의 다 임자 있는 년 아니면 미자. 그런데 미자는 건드리면 뒈진다네? 오줌 쌀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어. 이게 말이 돼? 모든 남자의 고자화가 목표인가?] [계속 개소리할 거면 닥치고. 위성 마을 가면 넘치는 게 여잔데 뭔···.] [아니. 누가 뭐래? 근데 갈 시간을 안 주잖아. 한 이삼일 통으로 쉬어야 회포도 풀고 그러지 달랑 하루면 어쩌라고. 그리고 가서도 그래. 물물교환? 패딩 들고 가서 이거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여자가 이건 별로인데요? 아니 씨발 존나.]긴장감과 스트레스를 견디려고 주절대던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것은, 비행선 곳곳에 뿌려진 죽음의 흔적 때문이었다. 마음속에 쌓인 불만을 고스란히 내뱉어도 벗어날 수 없는 공포.
사각-
[위성 마을이고 나발이고 물물교환? 대체 뭐하는 짓거리야.]사각-사각-
[조용.] [아니 씨···]끄긱-
듀이의 입이 합 다물어졌다.
철컥- 샷건이 장전되고, 전술라이트가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쏘아졌다.
딕도 자세를 잡고 MP5를 겨눴다.
수신호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앞으로 가려는 순간. 마루의 통신이 들어왔다.
[위에서 경계하던 두 사람 사망했다. 늑대의 습격이다.]칼루와 네이드가 죽었다는 말에도, 듀이와 딕의 신경은 오직 한쪽에 쏠려있었다.
[시체 수습한 뒤 내려갈 테니, 오발사고 조심하고.] [······.]대답이 없자, 마루가 되물었다.
[문제 있나?] [여기 뭔가 소리 나는 게 있습니다.]딕이 이를 악다문 느낌으로 대답했다.
도도도독- 무언가 달려가는 소리에
쾅! 철컥- 쾅!
철컥- 타앙!-
듀이의 샷건이 전방을 휩쓸었다.
[씨발 저거 뭐야. 방금 봤어?]철컥-
[봤냐고? 딕?] [조용! 조용히 해!]마루는 어이없었다. 두 사람이 하는 짓을 보니 말해봐야 소용없어 보였고.
이따위로 해서 어떻게 국토안보국, 연방수사국의 추적을 떨치고 도망친 거지? 신체능력 강화로 그냥 냅다 도망친 건가? 도마뱀처럼 꼬리 자르고 도망치듯?
쯧-
마루는 기대를 접고 비행선으로 내려갔다.
쾅! 철컥- 쾅- 철컥!
틱-
투다다다닥-
[씨발 저거 뭐야. 저게 쥐라고?] [닥쳐.]다다다닥-
틱-
허겁지겁 장전하는 두 사람을 향해 오도도독- 내달리던 쥐의 머리통에 손도끼가 틀어박혔다.
헉! 헙!
뒤를 돌아보니 블라디마루가 보였다.
팔뚝만 한 쥐새끼가 지그재그로 달려오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맙소사.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산탄을 피하는 쥐새끼. 근데 그걸 손도끼로 잡는 건 뭔가.
두 사람의 생각보다 중요한 건 ‘쥐새끼가 얼마나 있나?’, ‘생존자는 있는가?’ 였기에, 마루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뒤로. 맞추려고 하지 말고, 한 방향을 점한다고 생각하고 쏴.] [예? 옛.] [넷.]동작감지기와 생체탐지기를 최대한 올리자 HUD 화면이 변했다.
곧이어 띠- 띠- 배터리 잔량 경고음이 울렸다. 배터리가 또 나갔다. 24시간을 버티는 배터리가 고작 6시간에서 8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마루는 묵묵히 배터리를 갈아끼고 다시 동작감지기와 생체탐지기를 작동시켰다. HUD에 찍히는 붉은 점들. 언뜻 봐도 백 단위는 될 법한 작은 점들이 전방에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전방?’
적외선 카메라와 열영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작감지센서 생체탐지기에는 있다고 하는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마루의 시선이 천장과 바닥을 훑었다. 천장에 있거나, 바닥에 있거나.
[쥐새끼들이 함정을 팠다.] [함정이요?] [그러면 방금 그건 뭡니까?]조금 전에 한 마리 달려든 거?
정찰이나 미끼겠지.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둘 다려나? 그나저나 혹을 둘이나 달고 할 견적은 아니었다. 살기를 쓰는데 거추장스럽기 때문.
[둘 다 밖으로 나가.] [예? 함정이라면서요?] [밖에 늑대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늑대는 전부 죽였어. 쥐새끼들 숫자가 많아서 그래. 조용히 소리 죽이고 나가.] [알겠습니다.]딕은 듀이를 끌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동안 마루는 칼로 바닥과 천장을 긁었댔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이어지며 불편한 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 새끼들 보소.’
신경이 거슬리는 소리를 냈음에도 쥐새끼들은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자, 동작감지기에 찍힌 붉은 점이 흔들렸다.
위냐? 아래냐?
마루가 화물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르는 순간, 천장이 무너지며 쥐새끼들이 쏟아졌다.
찍?
끽-
그들을 반겨주는 깊은 살기. 새까만 살기의 바다에 뛰어든 쥐떼가 이빨을 들이민 모습 그대로 꼬르륵 침몰했다.
툭툭- 후두둑- 천장에서 우박처럼 떨어진 쥐떼는 이미 굳어버린 주검이었다. HUD에 붉게 찍힌 점들이 도미노 무너지듯 줄줄이 사라졌다.
마루는 바닥에 쌓인 쥐떼를 툭툭 토막 치며 걸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을 타고 가죽 풍선이 터지는 느낌이 올라왔다.
쯧-
화물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물품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 소리에 살아있다고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단단한 폴리카보네이트 상자가 들썩였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