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47)
러스트 [RUST]-647
넝쿨 사이사이에 매달린 시체와 뼛조각.
식육 식물도 아닌 주제에 식육 식물처럼 변한 담쟁이넝쿨이었다. 그래서 김 양은 좋았다.
‘이것들 보게? 금을 지키고 있었네. 귀여운 것들.’
후흐흐-
[저기부터 여기까지만 태우도록.] [옛.]그녀는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이것들이 의도해서 지킨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금을 잘 지키고 있었으니까.
활활활!
김 양 전용 엑소슈트가 불타올랐다.
그 옛날.
쥐떼에게 먹힌 마을에서부터 지금까지.
전용 엑소슈트에 빠지지 않고 장착된 기능.
자체발화.
불이 붙은 채, IMF 건물로 들어선 김 양의 앞길을 막는 넝쿨들은 없었다. 로비에 있던 넝쿨들이 움찔움찔 자리를 피하는 모습에 그녀의 뒤를 따른 친위대원들마저 감탄할 지경.
‘지. 지금 저기 넝쿨이 움직였어.’
‘불길을 피하는 건가?’
‘불이 있다고 해도 위험하지 않을까?’
‘역시 그분의 옆자리.’
뭔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들 오고 갔지만, 김 양은 오롯이 전진했다.
두근두근하는 심장의 울림은 없었다.
쿵. 쿵. 쿵.
오직 전진의 북소리만이 그녀의 감각을 고양(高揚)했다.
불도저처럼 냅다 들이대는 김 양의 발걸음에 금고를 뒤덮던 넝쿨들이 ‘뿌리야 살려라.’ 버둥버둥 금고에서 자리를 피하는 풍경.
신의 사도 앞에서 갈라진 바다처럼 녹색의 물결이 흩어진 끝에 거대한 금고. 그것도 반쯤 열린 금고가 드러났다.
움찔!
열린 금고를 본 김 양의 스텝이 살짝 꼬였다. 당당했던 걸음걸이가 허겁지겁 달음박질로 변했다.
[대장님!] [위험합니다!]김 양이 시방 위험한 짐승이었다. 키이이융- 최고 출력으로 달려든 붉은 유성이 반쯤 열린 금고를 활짝 열었다.
오오오오오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그녀는 온몸으로 외쳤다.
‘심—봤다!!!’
주홍색과 금색이 뒤섞인 김 양의 동공에 비친 것은 쌓이고 쌓인 금괴 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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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여곡절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방사능의 영향 때문인지 이상하게 변이한 괴물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빨리빨리. 지금까지 얼마나 챙겼어?] [200톤 정도 됩니다.]말이 200톤이지 1톤 트럭으로 200대 분량을 챙겼는데도 5배? 그 정도는 더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금이었지만 김 양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이상한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고 존엄이 IMF에 2,800톤 넘게 있다고 했거든.] [······.]아무리 넉넉하게 잡는다고 해도 금고에 있던 건 1,200톤가량이었다.
갸웃했던 김 양의 머리 위에 떠올랐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했다.
그랬던가? 그런 것이었나?
반쯤 열린 금고문의 의미가?
그러니까 누군가 내 금을 훔쳐간 것이야.
잡초년들···. 금고를 잘 지켰나 했더니,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었어.
전투에서 진 병사는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는 법.
잡초년들 화형이다.
화르르륵-
그녀의 엑소슈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 어쩌면 금 거래소에 분산 보관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금괴를 열심히 옮기던 친위대원 가운데 하나가 불타오르는 김 양에게 말했다.
[거래소? 금?] [예. 국제적으로 실물 금을 거래하는 거래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어쩐지 김 양을 휘감은 불꽃이 더 강해진 느낌.
[그게 어디야? 거래소.]그녀의 목소리가 붉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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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금을 거래하는 곳은 여러 곳 있었다. 유명한 곳은 4곳. 영국의 런던, 스위스의 취리히, 미국의 뉴욕 그리고 일본의 도쿄.
이 가운데 영국과 스위스의 금 거래소는 유명했다.
“그러니까 런던에 있는 금 거래소에서 하루에 거래하는 금 거래량만 5,000톤이 넘는다고?”
[그렇습니다.]김 양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마루를 향했다. 프랑스 갔다가 왜 영국에 들르지 않았느냐는 눈빛. 하루에 5,000톤이 거래될 정도면 실제로는 더 많이 있지 않을까?
마루가 알기에 런던의 금 거래소에는 그렇게 금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디아나. 런던 금 거래는 어떻게 하지? 실물이 직접 이동하는 건가?”
[실물이동은 극히 적습니다.]김 양의 질문이 뒤따랐다.
“그럼? 금이 없이 금을 거래한다는 것임?”
[은행에서 돈처럼 거래하고 있습니다.]부분지급준비(Fractionally Reserved) 제도가 금 거래에 도입되면서 금 거래가 활성화됐다.
부분지급금 준비제도란 예금액의 일부를 지급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대출할 수 있게 한 제도였다. 즉, 보유한 실물금의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 또는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이것은 금 거래와 투자의 활성화에는 유리했지만, 반대로 보유한 실물금 이상의 금을 대출하거나 투자할 수 있기에,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s Risk)이 발생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런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영국 런던 거래소에서 금 지급 위험 사태가 터진 뒤, 안전금고와 안전은행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취리히가 금 보관, 거래 수요를 흡수했다는 인공지능 디아나의 설명.
“그러니까 실제로는 금이 없다는 소리네?”
일반적인 은행과 비슷한 방식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말에 김 양의 눈을 깜박였다. 은행에는 사람들이 예금한 돈이 있다. 그 돈을 굴려서 수익을 낸다.
그러니까 금을 예금하면, 그 금을 다른 곳에 굴려서 수익을 내니까, 실제로 보관하고 있는 금은 얼마 없다는 뜻인가?
[···비슷합니다. 다만 영국중앙은행에는 세계 각국과 대형 금융사가 보유한 금을 실물로 보관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그게 무슨 말이지? 세계 각국이 보유한 금을 가지고 있다니?
[거래 편의성을 위해, 영국중앙은행에 금을 맡겼다는 뜻입니다.]디아나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4,875톤이 영국중앙은행에 보관돼 있었다.
이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70여 개국 중앙은행과 거대 금융회사가 보유한 금이지만, 보관 안정성과 거래 편리성 등의 이유로 런던에 맡긴 것이었다.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들었음? 지금 들었음?
4,875톤에 거래소에서 지급 준비로 들고 있는 금이랑 대기하고 있는 금을 합해서 300~400톤만 잡아도 5,000톤이 넘는다는 소리잖음.
알고 있었음?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금 거래소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영국중앙은행이 실물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런던 가겠음.”
[아직도 금이 있는지는 불확실합니다.]금융 거래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세계 각국이 금을 인출 했을 수 있었다. 확률적으로 따지자면 그랬을 확률이 더 높았다.
“5,000톤이 있었는데 그게 전부 없어졌겠음?”
못해도 10%는 남았겠지. 500톤이면 어디임.
그리고 이왕 가는 김에 스위스에도 들렀다가 오겠음.
런던과 취리히의 운명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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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연은 김 양이 가져온 넝쿨 식물 표본을 관찰하고 있었다.
투명한 용기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여린 넝쿨과 잎사귀. 그리고 한쪽 모니터에는 불타오르는 김 양을 피해 도망치는 넝쿨의 영상이 떠올라있었다.
“눈이 없는데 어떻게 미리 도망쳤을까요? 감각 신경이 없다는 게 다수설인데 말이죠.”
제약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녀는 최근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이라는 생물학 범주를 넘어 건축,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즐길 수 있었다.
[···식물의 인지능력 연구. 13개 검색결과가 있습니다.]“정리해서 올려줘.”
식물이 자신의 주인을 살해한 살인범을 구별했다는 실험이 있었다. 식물도 인지능력이 있다는 주장은 정설이 되지는 못했지만, 식물이 반응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 뒤 식물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있었다. 식물들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했다.
예를 들어 소나무 숲도 생존 전쟁의 승리로 생긴 것이었다.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군집을 이루기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했다.
특수한 화학적 성분을 분비해 화학전을 치르기도 했고 지표의 영양소부터 우선 흡수해서 다른 식물의 영양소 보급을 끊는 등, 어지간한 동물들 뺨치는 생존 전쟁 끝에 생긴 것이 소나무 숲이었다.
‘영하 40~50도에도 얼지 않고 움직이다니. 수액 속에 부동액 성분이라도 감추고 있는 걸까요?’
나주연의 미소에 보존 용기 벽을 더듬던 여린 넝쿨이 움찔! 뒤로 물러섰다.
‘역시 신기하네요.’
눈도 없는데 말이죠.
동영상 속 불타오르는 김 양의 모습에는 반응하지 않더니만, 자신의 미소에 반응하는 넝쿨.
“아무래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짐작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넝쿨은 자신의 미소라는 외형에 반응한 것이 아닌, 미소를 지었을 때 그녀의 뇌에서 발산한 뇌파에 반응했을 가능성.
“음···. 그게 좋겠네요. 서로 대화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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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식물과 대화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섞인 당혹스러움.
“네. 동물들과 대화를 하실 수 있으니, 식물하고도 한 번 해보셨으면 해서요.”
나주연의 태연한 말에 오노 나나에는 당황스러웠다.
“에또- 모든 동물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닌데요.”
하다못해 쥐도 그랬다.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다지만, 처음에는 대략적인 어감만 알 수 있었다. 그런 마당에 식물이라니.
‘근데 식물이 뭔가 말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어쩐지 무서웠다.
최근 즐겨 먹는 김치만 떠올려도 그랬다.
그러니까 김치란 배추의 시체를 소금에 절인 뒤, 양념에 버무려 숙성시켜서···.
후에에엣!
치킨무도 마찬가지였다. 토막 낸 무의 사체를 설탕과 식초에 혼합한 액체에 담가···.
히에에엑!
식물과 대화?
무리.
절대 무리.
간호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거 무리요. 무리에요.”
그런 간호사를 향해 김 양이 무심하게 말했다.
“치킨은 잘만 먹었으면서 무슨 소리니?”
“치킨은 치킨으로 나오잖아요. 고기는 고기로 나오고요.”
간호사의 처절한 항변에 김 양이 ‘아? 그런가?’ 하며 넝쿨이 담긴 보관 용기를 집어 들었다. 마치 김 양의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용기 한쪽 구석으로 도망치는 여린 넝쿨의 모습.
부르르-
[아. 악마···.]???
파르르-
[사. 살려줘···.]에?
간호사가 김 양과 넝쿨을 바라봤다.
‘······.’
꾸물꾸물-
[타죽고 싶지 않아. 제발 누가 좀···]에에에엣?
간호사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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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넝쿨이 담긴 보관 용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넝쿨이 말을 한다고?”
“하. 하잇-”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일본어로 답하는 간호사였다. 마루가 살짝 살기를 일으켰다.
부르르르-부르르- 떨리는 넝쿨 잎사귀.
[히에에엑 괴. 괴물!]마루가 이리저리 넝쿨을 살피며 물었다.
“생각보다 팔팔하게 움직이네. 혹시 이게 뭐라고 그러는 건가?”
마루의 질문에 멍했던 간호사의 눈빛에 어쩐지 습기가 차올랐다.
“괴. 괴물이라고 하고 있어요.”
“괴물? 내가?”
피식- 마루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2~3년 만에 세상이 어찌 된 건지.
‘괴물이라···.’
넝쿨이 괴물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좋지 않네.’
지금이야 넝쿨뿐이라지만, 다른 식물들도 이렇게 변한다면? 변이 괴수도 쉽지 않은데, 변이 식물까지?
마루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이거 머리가 있나?”
“머. 머리요?”
그래. 머리.
살고 싶으면 머리부터 박으라고 해.
마루의 말에 간호사의 눈빛이 다시 흐려졌다.
그리고 잠시 뒤, 동그랗게 휘어진 넝쿨이 브릿지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