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76
프로그래마 모르티스를 언급하자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네놈, 어찌 그걸 알고 있는 건가? 아! 그렇군. 저 사기꾼 년이 말해줬구나.”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내 갑옷을 힐끔 보고는 비웃음을 머금는다. 방금 전부터 그랬지만 그는 누미디아의 사기꾼을 굉장히 경멸하는 기색이었다.
게다가 왜 누미디아의 사기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거지? 그녀는 수다스러운 성격인 데다가 과거 어둠의 대군까지 속인 전력이 있다. 상대가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라고 해서 입 다물고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속으로 아무리 불러 봐도 누미디아의 사기꾼은 대답이 없었다.
“좀 내놓으쇼.”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이 아닌가. 힘은 힘대로 쓰고 독립하겠다니.”
“이번 일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받아야지 않겠습니까. 대승적으로 갑시다.”
“어림없는 소리! 그걸 내줬다가는 여러 행성에 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 모두 힘을 잃어버린다. 이 몸의 사업장이 어디 여기뿐인 줄 아느냐?”
사정은 알겠지만 나도 단호했다. 독립 안 시켜주면 일 맡길 생각하지 말라고 버텼다. 지금은 똥배짱으로 나가도 되는 상황이었다.
“아니, 솔직히 요즘 일하는데 다들 어찌나 머리를 굴리시는지 뒤통수가 남아나질 않겠더이다. 그러니 힘을 내어주쇼. 받은 만큼 일할 테니.”
이 문제로 한참이나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와 옥신각신했는데 결국 그가 한 발 물러났다.
“썩어 문드러질 놈. 좋다. 대신 복제품을 주지. 네놈이 원하는 독립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거다.”
복제품으로도 충분히 독립이 가능하나 두 가지 점에서 원본보다 부족했다.
1)프로그래마 모르티스를 이용해 다른 이를 후원 할 수 없다.
2)프로그래마 모르티스를 조작해 단번에 피도 눈물도 없는 자 만렙이 될 수 없다.
이 정도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바라는 목표 달성이 가능했다. 앞으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와 상관없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로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으니까.
“음… 이 정도라면.”
애초에 프로그래마 모르티스를 통째로 내놓으란 게 너무 무리하긴 했다. 훔쳤으면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 타협해야지. 독립 자체도 대단한 성과였다.
“감히 이 몸에게 그런 무례한 요구를 하다니. 만약 성과를 내지 못하면 리켄티아투스를 통째로 갈아버리겠다.”
“걱정 마쇼. 받은 뒤에는 일처리를 확실히 할 테니까.”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칠흑의 오브를 꺼내 보여줬다. 어찌나 그 색이 검던지 주변의 빛조차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프로그래마 모르티스-복제품]SSS등급 마법 물품.
사령술 체계에 관한 명령어 집합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자가 발휘하는 힘의 근원이다.
“오!”
절로 감탄사가 터졌다. 이것은 오로지 초월자만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인간 중 가장 뛰어난 마법사도 이 검은 오브가 무엇으로 이뤄진 건지 감도 못 잡겠지. 이 엄청난 물건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수락하면 바로 넘겨주겠다. 그러니 나불거리는 입 좀 처닫고 얌전히 들어라.”
“말해보쇼.”
“영원의 보석은 발버둥치는 죽음과 같이 봉인됐을 확률이 높다. 그 교활한 녀석이라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지.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애초에 영원의 보석은 총 다섯 개라고 한다. 그러니 분산됐을 확률이 충분하다.
“발버둥치는 죽음의 화신 가운데 하나가 영원의 보석을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다.”
화신을 시켜 일부 빼돌린다라, 그럴 듯한 얘기다.
“그의 화신들을 조져보지 않은 거요?”
“당연히 그러려고 했으니 녀석이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현재 발버둥 치는 죽음의 화신이 누군지 정확히 파악 못하고 있다.”
힘을 감추고 숨어버려 찾기가 무척 힘들다고 했다.
“얼마 전에 나타났던 파도치는 핏물은 애초에 우리가 존재를 허락한 화신 가운데 하나다. 그런 화신들은 보석을 갖고 있지 않다.”
“요컨대, 보석을 빼돌린 화신은 정체조차 모르고 있단 거 아뇨?”
나는 황당한 기분에 혀를 찼다.
“그런 화신을 어찌 찾으라고? 어둠의 대군들도 못 찾는데….”
“네놈에게 바라지도 않는다.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일 뿐, 우리의 표적은 어디까지나 발버둥치는 죽음이 갖고 있는 걸로 추정되는 보석이다.”
“지금 나보고 그 보석을 찾아내는 걸 도우란 거요?”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다.”
“아니, 그걸 무슨 수로….”
“멍청한 놈아. 얘기를 끝까지 들어라. 누가 네놈 따위에게 영원의 보석을 구해 바치라고 하겠나? 애초에 그건 말이 안 된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쏘아봤다.
“네놈은 신성을 밟아가고 있다. 그런데 영원의 보석까지 얻으면 어떻게 되겠나? 네놈 성격상 중간에 반드시 가로채겠지.”
정곡을 찔려버렸다. 내 머릿속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신하는 그림이 떠올라 그저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이 몸이 원하는 건 간단하다. 제국으로 돌아가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을 모두 풀어라. 그 뒤에는 이 몸이 해결하겠다. 네놈에게 원하는 건 그거다.”
“봉인을 모두 풀라니.”
“지금 발버둥치는 죽음은 약화된 상태다. 발러슈테드, 네놈의 덕이지. 반면 나는 오래 전쟁을 준비해 왔기에 만전이다. 정면으로 붙으면 누가 이기겠나?”
아니, 그것보다 봉인이 풀리면 발버둥치는 죽음은 자기가 머물던 외차원으로 도망치려 할 거다. 그 전에 잡으려면 물질계에서 쳐야하는데, 인과율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나직하게 웃는다.
“원인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과거에 종언의 석판을 작성할 때 발버둥치는 죽음이 날 속였으니 이미 원인이 발생한 거다. 게다가 오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아껴온 또 다른 원인들이 있다.”
집요한 점은 알아줘야겠군. 이번 공격을 위해 원인을 계속 적립하고 있었다는 거다.
나 역시 그렇게 잡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로 임무를 느긋하게 진행하다가 이를 계속 노려온 그에게 당하했지. 하여간 치졸한 방법에는 일가견이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원인이 부족하지 않겠소. 화신도 아니고 어둠의 대군의 본체가 강신하는 건데….”
“물론 행성까지 내려가진 않을 거다, 그랬다가는 인과율이 눈덩이처럼 부풀 테니까. 우주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발버둥치는 죽음을 공격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쓰게 웃었다.
“나머지는 직접 감당할 것이다. 어차피 영원의 보석만 얻으면 그런 손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승부수를 던졌구려.”
“이미 한 번 주류에서 밀려났다. 강자는 더욱 강해지고 약자는 계속 약해지는 게 우주의 이치임을 모르지 않겠지. 이번에 만회하지 못하면 이 몸은 영원히 2류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니 승부하겠다. 어둠의 왕관을 써 지존이 될 수 있게.”
그의 결의를 듣는 내 표정은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게, 지상이 초토화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본체가 행성 근처로 접근하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다. 비록 우주 공간에 있겠다고 했지만 지상의 생물들이 떼죽음 당할 건 안 봐도 훤하다.
게다가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이 풀릴 때도 난리가 나겠지. 그의 봉인은 아퀼라의 정보에 의하면 제국 북부에 있다. 분명히 봉인이 풀리는 순간 제국 북부가 증발할 터.
“수백만의 목숨이 아침 이슬처럼 사라질 텐데….”
내 걱정에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무슨 상관이더냐?”
그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잡초 밭에서 잡초가 반절 가령 죽었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반이나 남았지 않느냐? 그리고 비가 오면 풀은 또 자랄 것이다. 행성만 남아있으면 그걸로 다행이 아닌가?”
역시 초월자라 그런지 수백만의 인명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인간만 해도 목청이나 석청을 위해 벌집을 초토화시켜 버린다. 그때 누가 벌을 불쌍히 여기는가. 얼마나 많은 벌이 죽는지 신경 쓰는 채집꾼은 없다. 오히려 벌까지 잡아 술로 담그겠지.
“이번 일의 대가로 이 몸이 해줄 수 있는 건 명확하다. 리켄티아투스의 만신전을 모조리 치워주마. 이 행성에서 신처럼, 왕처럼 살아라.”
잔인하긴 하지만 달콤한 제안이었다.
“영원의 보석을 얻으면 이 몸의 힘은 가히 백천만겁과 아승기겁에 다다를 터. 그 무진무궁하고 미래영영 이어질 힘에 걸고 약속하지. 네놈을 리켄티아투스 행성계의 대신격으로 올려주마.”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행성계 대신격이란 게 얼마나 지고한 위치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혹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유혹은 더욱 노골적이 됐다.
“네놈의 욕망이 보인다. 발러슈테드. 대신격에 이르면 원하는 건 뭐든 갖고 창조할 수 있겠지. 생각해 봐라, 영원한 권력을!”
그는 권력에 비하면 다른 가치들은 무의미하고 단언했다.
“이런 승리와 성공 앞에 그깟 풀포기 수백만이 무슨 상관이더냐?”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보증하겠다고 했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정말 이번 일에 올인할 작정인 것 같았다.
“제가 대신격이 되어도 좋겠습니까?”
“크하하하! 영원의 보석에 비하면 이딴 촌동네를 누가 다스리던지 무슨 상관일까. 발러슈테드, 좋은 제안이 아닌가? 리켄티아투스에서 그토록 아끼는 인간을 이끌고 번영하라.”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마법을 부려 내게 환영을 보여줬다. 리켄티아투스 행성 인간들의 문명이 발전해, 행성계 여러 별들을 점령해 가는 모습을.
그 가운데 나는 인간의 정점이자 인간을 돌보는 대신격으로서 모두를 이끌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신격들은 모두 내 아내이자 연인이었다.
나는 황금 권좌에 앉아 헐벗은 여신격들의 요염한 몸을 희롱하며, 다른 행성계의 세력과 끝없는 전쟁을 명하고 있었다.
환상 속의 나는 야심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적들의 위대한 도시는 불바다였고 수많은 정예병들이 그 속에서 나를 찬양했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를 위하여!
“헉!”
환상에서 깨어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면서 저 환상이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사이 나는 마음속의 욕망이 구현된 삶을 보았다. 그리고 그걸 진짜로 갖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떤가?”
입술을 절로 깨물 수밖에 없었다.
“대신격이 된 후 마음대로 하라. 어차피 우주는 넓다. 잘 다니지 않는 길에 잡초가 무성하다고 그걸 일부러 뽑을 정도로 이 몸은 한가하지도 않고.”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애초에 거절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지, 환영을 보고 창백해진 날 내버려둔 채 주절주절 얘기한다.
“돌아가거든 일단 황제를 정리해라.”
“황제 말이오?”
“봉인을 원활히 풀기 위해선 네놈이 제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가야한다. 그러려면 황제를 치우는 게 우선이지. 마침 잘 됐지 않느냐. 안 그래도 네놈은 황제와 싸우기 직전이었으니까.”
팔츠 사태 이후 알게 된 거지만 황제는 발버둥치는 죽음과 손을 잡았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그 점을 언급하며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발버둥치는 죽음에게 마지막으로 짜낼 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도 급할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딱 한 번만 묻겠다. 그리고 딱 한 번만 제안하겠다. 올바르게 결정하라.”
“…….”
“이 몸의 요구대로 제국으로 가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을 풀겠느냐?”
번뇌와 고민이 밀려왔다.
과연 내게 인간을 위해 제국 북부를 통째로 날려버릴 자격이 있는 걸까. 아니, 피해를 최소한으로 잡아도 그 정도겠지. 봉인이 풀리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예측하기 어렵다.
게다가 발버둥치는 죽음도 바보가 아니란 점이 걸렸다. 일이 묘하게 변해서 봉인을 유지하는 게 안전해 보이는 상황이 됐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봉인을 풀고 나오려고 노력했었다.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으니까 그랬던 게 아닐까. 어쩌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무리하는 것도 사실 발버둥치는 죽음의 계략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자, 발러슈테드. 대답하라.”
위험천만한 게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나 자신과 인류의 자유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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