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31
라인 강 너머의 일은 답이 안 보였다. 이럴 때는 머리 싸매고 있어봐야 소용없었다. 결국 나는 뱀파이어들에게 뒤를 맡기고 발푸르가 수녀회로 향했다.
“마리, 저 왔습니다.”
“오! 왔느냐!”
작은 마르가레타는 반색하며 뽀르르 달려왔다.
“이 녀석! 며칠 늦지 않았냐!”
“미안합니다.”
“진작 마법지퍼를 풀어보았으나, 발러 너와 함께 보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다. 엄청 궁금해서 혼이 났다!”
“하하하.”
어지간히 애가 탔던 듯 마르가레타는 마법지퍼를 열더니 탁자 위에 그대로 부어버렸다.
와르르르!
안에서 엄청난 금화가 쏟아져 나왔다. 마르가레타는 앙증맞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감탄한다.
“오옷! 반짝반짝 아름다운!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다!”
“수녀가 그런 말을 해도 됩니까?”
“이만큼 내꺼!”
마르가레타는 마치 모래성에서 흙을 덜어가는 아이처럼 금화 한 뭉치를 자기 팔로 끌어 모았다. 그런데 워낙 팔이 짧아서 별로 가져가지 못했다. 그녀가 도와준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대가였다. 그래서 내가 양손으로 왕창 밀어주려고 하자 그건 또 거절한다.
“더 받으셔도 됩니다만?”
“애초에 공짜로 해주려고 한 일이다. 이건 나중에 마을에 나가면 빵이랑 사탕을 사먹으려고 챙긴 거다. 고얀 안젤라 녀석이 수녀에게 용돈은 필요 없다고 간식비를 끊어버렸다. 대수녀원장이 되더니 폭군이 되었어.”
“…간식비가 필요하면 제게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정말이냐? 발러 너는 혹시 천사냐?”
뭐랄까, 이 작은 소녀의 환심을 사는 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동전 몇 개면 관계를 다질 수 있었던 거다.
그나저나 마법지퍼에서 나온 돈은 정말 엄청나구나. 테이블 아래로도 왕창 쏟아져 내렸다. 갑자기 주위가 드래곤의 둥지로 변한 느낌이었다. 필립 녀석… 선제후 아니랄까봐 엄청 갑부였군.
“대략 얼마인지 셈해보자. 발러, 이 필립의 마법지퍼는 줄 테니 여기에 도로 넣거라.”
우리는 쏟아진 금화를 마법지퍼에 다시 담으며 계산에 들어갔다. 총금액은 보석류를 빼고도 무려 10만 플로린이었다. 세는 데만 두 시간 이상 걸렸다.
“과연 선제후인가… 이 정도 돈을 용돈으로 들고 다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대체 얼마나 비싼 간식을 사먹으려고? 사탕으로 집이라도 지을 속셈이었나!”
마르가레타는 질렸다는 얼굴이다. 검소하게 사는 수녀인지라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원하시면 나눠드리고요.”
“됐다. 발러, 그대는 큰일을 하려고 하지 않느냐. 이 돈이 요긴하게 쓰일 테니 잘 간수하거라. 사실 마왕군과 싸우려면 이 정도도 한참 부족하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금화와 보석을 치우고 나자 편지 여러 통과 낡은 검 한 자루만 남았다. 마르가레타는 무인이라 그런지 검에 관심을 보였다.
“낡은 검이구나. 소박함을 넘어 궁박하게까지 생겼다. 막 만들어졌을 때는 꽤 쓸만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낡아서 사용할 수 없겠지. 으음… 검신에 룬 문자가 적혀있군. 류블…라냐?”
나는 이미 그 검이 무엇인지 알아본 상태다. 류블라냐. 팔츠 선제후가의 가보이며 제국 12대 명검으로 이름 높은 칼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겉으로만 보면 아주 낡은 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검에 안목이 높은 마르가레타 역시 류블라냐의 비밀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 필립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그가 계속 성장했다면 가문에 내려오는 지식을 바탕으로 류블라냐의 비밀을 파헤쳤을 거다. 하지만 가엾게도 그 전에 죽고 말았다.
“이상하구나. 본인이 알기로 류블라냐는 제국 12대 명검의 이름인데, 어찌 이런 낡아빠진 검에 그게 적혀있을꼬?”
“마리, 그게 그 류블라냐가 맞기 때문입니다.”
“뭐! 정말인가?”
놀란 마르가레타는 검을 다시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검을 탁자에 도로 내려놓는다.
“발러, 뻥치지 말거라. 마법으로 위장된 건가 살폈지만 아니지 않나.”
저런 반응은 당연하다. 이건 검이면서도 검이 아니니까.
“류블라냐의 사용법을 몰라서 그러십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엥? 그게 무슨 소리냐?”
“류블라냐는 검이면서도 검이 아닙니다. 겉모습과 다르게 사실 강한 힘이 감춰진 검이 아닐까 생각하셨죠?”
마르가레타의 입이 삐죽 나오는 걸 보니 정답인가 보군.
“흥… 생긴 거랑 다른 용도란 말이냐?”
“맞습니다. 이건 소환의 도구입니다.”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다 싶어 류블라냐를 든 채 팔츠 선제후 가에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구결을 외웠다.
“차원을 건너는 빛이여. 베어 죽이고, 꿰어 죽이고, 썰어 죽이는 빛이여. 여기 그대를 바라는 검객의 손에 깃들라.”
그 말과 함께 낡은 검은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한눈에도 휘황찬란한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가레타는 놀라서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벌떡 일어난다.
“오오오옷!”
명검을 본 그녀의 두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진짜 류블라냐구나!”
“맞습니다. 다른 차원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어서, 그 낡은 검을 사용해 소환할 수 있습니다. 바꿔치기하는 원리라는데 자세한 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차원을 넘어 날아온 류블라냐를 집어보았다.
<류블라냐>
200년 전의 팔츠 선제후였던 발라트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용 골디락스를 구해주고 사례로 받았다는 검. 다른 차원의 기술로 만들어진 장검이다.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S등급 마법무기.
공격력 +1,342
생명력 +310
힘 +120
건강 +122
카리스마 +110
스킬
태양의 랜스-강력한 빛을 쏘아낸다.
정화의 빛-독을 해독한다.
사기라고 할 스펙이었다. 잔뜩 좋은 것만 걸려있고 아무런 제약도 없다. 보통 S등급 아이템이라면 무언가 대가를 요구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이 은혜를 갚기 위해 준 거라 그런지, 소유자에게 조금도 해가 되지 않는 게 이 류블라냐의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게 장점인 검이죠.”
“이것보다 더 강력한 검과 부딪쳐도 말이냐?”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한 검이구나…. 대단해. 그대와 잘 어울린다. 발러. 그나저나 이 검의 비밀을 어찌 안 것이냐?”
마르가레타는 정말 놀란 기색이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도 대답해 주기 곤란했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이지요.”
“그, 그런가? 묻지 않길 원하는 듯하니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발러… 그대는 정말 매번 본인을 놀라게 하는구나.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를 만나면 심장이 이렇게 콩닥콩닥 뛸 정도로 놀라니….”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마르가레타는 나를 슬쩍슬쩍 보는 게 저거 진짜 정체가 뭐야, 란 얼굴이었다.
“호, 혹시 드래곤이냐?”
“아닙니다.”
“…뭐, 아니면 말거라. 그러면 혹시….”
“묻지 않으신다면서요.”
다시 마르가레타의 입이 삐죽 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튀어나왔다.
“흥. 아무튼 잘 된 일이다. 강한 마왕 중에는 그런 특별한 힘을 가진 무기가 아니면 상처입지 않는 부류가 많다. 앞으로의 싸움에 도움이 되겠구나. 아마 페자무트는 류블라냐 정도로 베지 않으면 금방 재생해 버릴 거다.”
맞는 얘기다. 과거에 싸워봐서 안다. S등급 무기가 아니면 페자무트는 쉽게 재생한다. 다친 척하며 빌빌대다가 갑자기 힘을 회복해 반격하는 게 페자무트의 주특기였다.
과연 지력이 높은 간교한 악당이다. 나도 페자무트의 교활한 수작질에 넘어가지 않게 주의해야지.
“장점이 더 있죠. 평소에는 낡은 무기라 누가 훔쳐갈 생각도 안 한다는 점입니다.”
진짜 류블라냐를 돌려보내자 낡은 류블라냐가 돌아왔다. 마르가레타는 신기한지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결국 그녀도 직접 소환과 소환 해제를 해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다.
“하하하! 아주 재미있다.”
“자, 다음 것도 살펴보죠.”
그 다음은 편지다발이었다. 마르가레타와 나는 차분히 그것을 살폈다.
“로엘린이군요.”
“그렇네. 로엘린이다. 필립과 뜨거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구나.”
연애관계로 뜨거웠다는 말은 아니다. 둘은 정치적으로 뜨거웠다.
“세상에, 로엘린이 필립을 황제로 밀어붙이려고 했구나.”
“정말입니까?”
마르가레타가 편지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살펴보니 정말이었다.
“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장미의 마왕 로엘린은 황제와 사이가 무척 안 좋으니까요.”
현 인간 제국의 황제 프란츠 4세는 장미의 마왕 로엘린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관계다. 황제의 직할령과 로엘린의 로제란트가 붙어 있는 것도 원인이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돈 때문이었다.
“최근에 그녀는 무역 문제로 고생 중이라고 한다. 황제 프란츠 4세가 로제란트를 압박하기 위해 경제 봉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재 로제란트에서 생산되는 유려한 예술품과 마족제 마법 물품은 제국에서 최고 인기였다. 수많은 상단이 로제란트로 향했다.
이에 제국 황제인 프란츠 4세는 세금을 요구했는데, 당연히 로엘린은 반발했다. 인간 황제가 왜 마왕한테 세금을 걷는 것이었다.
“경제 봉쇄요?”
“그렇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옆동네 사는 장미의 마왕이 돈을 쓸어 담는 게 배 아프셨던 거지. 그래도 그렇지. 하하하! 마왕에게 세금을 걷으려 하다니 폐하는 배포가 큰 건지, 멍텅구리인 건지.”
자신할 수 있는데 프란츠 4세라면 높은 확률로 후자다.
“폐하의 입장에서는 제국이라는 수요 덕에 돈을 버는 로엘린에게서 뭐라도 뜯어내고 싶으셨겠지. 마왕과의 오랜 갈등 때문에 제국의 살림살이가 엉망이니까.”
그래도 황제라고 다 망했어도 그 부유한 로엘린과 치고받을 여력은 남아있었다. 그러다보니 돈 좀 토해내라고 시비를 걸었던 것.
“로엘린의 성격상 어림없었을 텐데요. 어떻게 경제봉쇄에 들어간 겁니까?”
“그게 말이다.”
황제가 경제봉쇄를 위해 동원한 방법이 참으로 원초적이었다. 세금도 안 내는 여자에게 관세를 물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 황제는 머리를 쥐어짜냈다.
“무역로 근처에 있는 기사 가문들에게 사략 나포 면장을 발급했다.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었지. 마왕 로엘린과 연관 있는 상단이나, 로제란트로 향하는 인간의 상단은 제국법에 의거 압류하라. 그래서 지금 제국 남부에서 기사들이 미쳐 날뛰고 있지.”
맙소사. 황제의 경제 봉쇄가 이렇게 세련미가 넘치는 방법이었을 줄이야. 말이 압류지 마음껏 약탈해도 좋단 소리다.
“그 날뛰는 기사 중에 특이한 자가 하나 있다고 하더구나.”
“누군데 그렇습니까?”
“본인 말로는 대검호의 마지막 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엄청난 검술 솜씨에 다들 혀를 내두르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은 들은 순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검호의 마지막 전인, 그게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절세검객. 수호자 클래스를 의미한다.
강철 선제후인 필립을 해치운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또 다른 수호자의 행적을 알게 된 것이다. 수호자가 끼어든 걸 안 이상 이번 일에 반드시 개입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좀 알려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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