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56
드레스덴으로 이동하면서 오랜만에 비텐바이어에 연락을 넣었다.
-파펜하임이여.
-주군!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지도 제작은 어떻게 됐나?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변동점이 생기면 일부 더하고 있습니다만.
-훌륭하다. 그 지도는 후일 중요한 일에 쓰일 예정이다. 그대의 공이 크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읍할 뿐입니다. 주군.
-참, 한 가지 부탁이 있노라.
나는 비텐바이어에 머물고 있는 샬츠 상사 일행을 불러들일 작정이었다. 벌써 하르프하임 전투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다쳤던 상처도 이제 어지간히 회복됐을 터. 믿을 만한 자들이니 데려다 써야지.
-샬츠 상사와 텔만, 막스, 반호르트. 이렇게 넷에게 말을 전하라. 같이 할 일이 있으니 니더바이에른의 란츠후트로 와달라고.
그 넷은 함께한 용병 중에서도 특별히 신의가 있고 성실한 자들이었다.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주군. 또 하명하실 일이 있습니까?
-나중에 라인강을 넘어 페자무트를 칠 예정이다. 상류 지역에는 분명히 다리가 놓이지 않은 곳에도 도하할만한 장소가 있을 터. 그걸 찾아 보거라.
-알겠습니다. 분명히 적당한 여울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파펜하임과 통화를 끝낸 뒤 나는 드레스덴까지 이동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벨리아 상단으로 찾아갔다.
“상단주에게 발러가 왔다고 전하거라.”
문지기는 전에 본 자와 달랐지만 딱히 위대한 영도자의 위엄을 발동할 필요까지 없었다. 나도 그 사이 많이 달라져, 이제는 일반인은 나와 눈만 마주쳐도 절로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알겠습니다요!”
문지기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가더니, 곧 상단 안으로 안내받았다. 그리고 기대감으로 가득 찬 얼굴의 상단주를 만날 수 있었다.
“귀인께선 어서 오십시오!”
상단주는 들뜬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당당히 돌아온 내 모습에 영약을 찾은 걸 직감한 것 같았다.
“가져오셨습니까?”
“그렇소.”
“아!”
크게 감탄하는 상단주는 허리를 굽힌다.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룡과 함께 마왕 오드가쉬를 물리치셨을 줄이야.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 줄 모르고 그날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주십시오.”
상단주는 극도로 저자세였다. 눈짓만 하면 땅바닥에라도 길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일반인의 시야에서 보면 마룡이니 마왕이니 하는 것들은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그런 것들과 싸운 나 역시 비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자, 이걸 보시오.”
나는 그로스글로크너에서 여유가 있을 때 채취한 영약을 꺼내보였다.
“뤼베룽겐이라 불리는 꽃이오. 뿌리를 잘 다려먹으면 아들의 근육병은 씻은 듯이 나을 것이오.”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상단주는 눈물이 글썽거리며 기뻐했다.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네. 이제 치료할 길이 보였으니 감읍할 수밖에. 하지만 나는 손을 뻗는 그에게 영약을 건네주지 않았다.
“일단 대가를 지불하는 게 우선이오.”
“아! 제가 큰 실례를! 말씀하십시오. 천금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하는 걸 제시했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하오. 당신이 라이테르 기사가문에 대해 갖고 있는 채권을 넘기시오.”
생각지도 못한 요구인지 상단주는 놀란 표정이 됐다.
“상단주. 설마 특약으로 채권의 양도가 금지되어 있는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통보 후에 저쪽에서 승낙하면 가능합니다. 양수인은 발러 경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쪽에서 이미 나라면 이를 갈고 있을 텐데 채권양도를 승낙할 리가 없었다.
“양수인은 레베 샬츠 상사라고 하시오. 누구냐고 하면 하르프하임 전투에 참전한 후 부상으로 은퇴한 자인데, 투자의 차원에서 채권을 적정가에 넘겨받았다고 하면 될 것이오.”
“알겠습니다.”
연락을 하러 갔던 상단주는 한참 뒤 낙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생각나는 이유가 있었다.
“작센 선제후 때문에 그런 거요?”
“그걸 어찌! 맞습니다.”
“역시나.”
저들 입장에서 벨리아 상단이 이번 일에서 손 털면 작센 선제후의 개입도 사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궁지에 몰린 라이테르 기사가문은 빚쟁이랑 빚쟁이를 돌봐주는 거물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냥 강하게 나가시오. 상단주. 작센 선제후께서 출병해서 라이테르 기사령을 아예 취하실 작정인 거 같다고.”
채찍과 함께 당근도 줘야지.
“대신 샬츠 상사에게 양도를 승낙하면 변제기일을 2년 연장해 주겠다고 말해주시오. 결국 물 수밖에 없을 거요. 아들을 살리고 싶거든 가서 좀 실감나게 협박하란 말이오. 쯧! 사람이 그리 심약해서야! 상단주가 맞소이까!”
내가 혀를 차자 그는 더욱 굽신거렸다.
“죄송합니다. 가서 제대로 협박하고 오겠습니다.”
“좋소. 기합을 넣으시오.”
상단주는 이번에는 표정을 달리하고 갔다. 그리고 한참 뒤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됐습니다! 제가 해냈습니다.”
나는 자기 몫을 해낸 자에겐 관대하다. 밝은 얼굴로 그를 격려해줬다.
“하하핫! 거 보시오. 협박 한 번 맛깔나게 하니까 얼마나 좋소이까? 자, 이걸 받고 아들을 살리시오.”
“제가 아주 으름장을 놨습니다. 으하하하!”
우리는 하하호호 웃으며 거래를 끝냈다. 나는 영약을 넘긴 대가로 채권을 인수했다.
자, 이걸로 완벽해졌다. 작센 선제후는 이번 사태에서 완전히 빠지게 됐다. 그리고 라이테르 놈들의 빚은 내가 받아내게 됐다.
아마 이걸 라이테르 기사가문에서 갚기는 무리겠지. 나도 돈으로 받으려고 인수한 건 아니다.
그냥 땅으로 받으려는 거지.
***
드레스덴에서 일을 처리한 나는 곧장 남하해 발푸르기스가 있는 란츠후트로 향했다.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뛰었다.
백작 관저로 가니까, 어째서인지 정원을 산책 중이던 관료들이 날 발견하고는 뛰어온다. 다들 황급한 표정이었다.
“잡아라!”
“저놈 잡아라!”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서있는데 발푸르기스의 관료들이 사방에서 날 둘러쌌다. 다들 결연한 표정인 게 칼이라도 뽑을 기세다.
“이게 무슨 짓들이오?”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좀 어이없어 하며 묻는데 전에 본 노신 하나가 말한다.
“이번에는 도망갈 수 없소! 발러 경!”
“그게 무슨?”
“지난번에 부담스러워서 튄 거 이해하오. 하지만 제발 다시 생각해 보시오. 우리 백작님만한 여자가 어디에 있다고!”
“맞습니다. 그래도 남자가 자기 여자를 버리고 도망가면 안 되지요!”
“옳소! 책임을 지란 말입니다. 그게 신사다운 태도요!”
황당해서 입이 딱 벌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왜 그러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요즘 잘 나간다 들었소! 게다가 지난번에 한 번 오고 방문이 뜸하지 않소이까! 우리 백작님께서 허구한 날 발러 경 얘기만 하는데 옆에서 이 늙은이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아시오!”
“맞소! 순진한 소녀의 마음을 훔쳐놓고 어쩜 그리 무심할 수 있었소이까!”
“전에 보니까 발러 경을 주겠다고 옷도 만들고 있던데 연락은 제대로 한 것이오? 이래서 과연 니더바이에른의 사위라 할 수 있겠소이까!”
아무래도 다들 발푸르기스에게 소홀했다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째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입이 잘 열리지 않는다. 이들은 내가 발푸르기스랑 결혼하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신경 쓰겠소이다.”
그제야 노신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준엄하게 내게 말했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자가 기사가 아니라, 소녀의 순정을 지켜주는 자가 기사요! 명심하시오!”
뭐지? 지금 오글거리지만 엄청 멋진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알겠소.”
그렇게 내가 항복하자 관료들은 뛸 듯 기뻐하며 외쳤다.
“자자, 아예 도시 앞에 발러 경과 백작님의 동상을 세웁시다!”
“좋소! 우리도 니더바이에른의 사위에게 그 정도 대우는 해드려야 할 터!”
“갑시다! 내가 아는 드워프가 있소이다!”
“그럼, 또 봅시다! 니더바이에른의 사위!”
우르르-.
관료들은 바람처럼 나타나서 바람처럼 떠나가 버렸다. 뜻하지 않은 강습에 정신줄이 탈탈 털린 나는 다음부터는 관저의 뒷문으로 출입하겠다고 다짐했다.
***
“발러!”
시녀의 안내를 받아 가보니 발푸르기스가 있었다. 여전히 갑옷 차림이었다.
“정말 와줬구나!”
날 보더니 발푸르기스는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껏 껴안아왔다.
“경은 껴안는 걸 너무 좋아하십니다.”
“그대니까 그렇다. 본녀가 다른 이를 안는 걸 봤느냐?”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쩐지 기뻐져서 나도 마주 안아주었다.
“이래저래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니다. 큰일을 했더구나. 그대가 자랑스럽다.”
이대로 밤새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처리해야할 현안이 많았다. 우선 발푸르기스에게 모병의 진행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많이 모집할 필요는 없으니 한두 달 정도 투자했으면 합니다만.”
“그게 다소 문제가 있다.”
“아? 전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부담할 것입니다.”
발푸르기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뭐지, 용병 모집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게 방해를 받고 있다.”
“방해요?”
누가 니더바이에른의 백작을 방해한다는 걸까. 선뜻 이해가 안 됐는데 이어진 설명을 들어보니 아차 싶었다.
“라이테르 기사가문에서 모병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은 전투가문으로, 굳이 설명하자면 용병사업자라고 할 수 있었다.
문학 속의 기사도를 숭상하는 기사랑은 상당히 거리가 멀다. 병력을 모집해 제국 여기저기의 싸움터에 끼어드는 전투 집단인 것이다.
당연히 이 일대의 용병들과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 그걸 이용해서 니더바이에른 백작의 소집령에 응하지 않게 수를 쓰고 있다는 것.
“미안하구나. 발러. 시일이 좀 걸릴 것 같다. 라이테르의 영향력을 벗어난 다른 지역의 용병사업자에게 연락하면 될 문제긴 하다.”
어차피 용병도 많고 용병사업자도 많다. 모집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시간이 약간 더 걸릴 예정이라는 것. 하지만 당장 놈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나는 그게 맘에 안 들었다.
“민병대를 빌리죠.”
이 시대에는 정규군이라는 존재가 없어 전쟁이 일어나면 전문 군인인 용병을 모집해서 싸움을 했다. 란츠크네히트 같은 용병단이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다만 몇몇 부유한 영주는 시민으로 구성된 민병대를 갖고 있었다. 발푸르기스의 숙부인 바이에른 선제후도 그런 대영주 가운데 하나였다.
“숙부님에게 말인가?”
다만 이들은 전투력에서는 전문 군인인 용병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용병보다 수가 두 배 많아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니까.
“네, 민병대의 고용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500명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겠나? 라이테르에서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용병이 30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민병대 1,000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역시 발푸르기스도 민병대의 전투력을 못 미더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차라리 제대로 된 용병대를 고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했다.
“본녀가 왈룬인들로 이뤄진 정예 연대를 알고 있다. 숙부님을 위해 오래간 일해 왔지.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 제국 서북쪽에 가 있지만 바이에른의 위기를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70년이나 된 연대이며 전투력 또한 막강하다. 왈룬인들이 온다면 그깟 기사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발푸르기스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충성스러운 왈룬인 연대가 오는데 반년이 걸린다고…. 나는 절대 그 정도까지 못 기다린다.
“걱정 마십시오. 민병대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대규모 전투 따윈 없을 겁니다.”
내가 자신하며 말하자 발푸르기스는 흠칫 뒤로 물러난다.
“왜 그러십니까? 경.”
“이제 본녀도 발러 그대와 함께한지 좀 됐기에 바로 알아보겠다!”
“뭘 말입니까?”
“또 엄청 음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아니더냐? 방금 그대 얼굴이 무지 사악하게 보였다!”
이런, 우리 귀염둥이 여기사께서 안 본 사이에 눈치가 좋아지셨구나.
하지만 변명이 없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악하지 않다. 내 계획이 사악한 거지.
참, 이번 계획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기사령을 가지려면 진짜 기사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보다 저 좀 기사로 임명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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