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91
후일 페자무트를 어찌하든 지금은 눈앞의 적부터 처리해야 했다. 세 배의 숫자, 지휘관은 그 유명한 발렌슈타인. 그야말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과연 이길 확률은 있는가?
“흠…….”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발렌슈타인이라는 위명에 너무 겁을 집어 먹은 게 아닐까 싶었다. 분명 발렌슈타인은 대단하다. 하지만 아직 그는 마왕이 되기 전이다.
심지어 일군을 이끌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 터. 아무리 천재라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반면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전장을 구른 백전노장이다.
“좋아. 애송이 새끼. 짬밥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주지.”
발렌슈타인과 내 경험의 차는 크다. 저놈이 워낙 천재니 빠르게 따라잡히겠지만, 지금은 내가 더 지휘관으로서 뛰어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지닌 특별한 힘들은 그가 예측하기 어려운 변칙적인 요수였다. 충분히 해볼만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발푸르기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카드는 바이에른의 귀족 기병대입니다.”
태반이 황금쌍두사자 기사단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귀족과 귀족의 가신들로 구성된 그들의 수가 물경 2,000명이었다.
“그들이 강력한 돌파를 해줘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본녀에게 돌파를 맡겨다오. 반드시 적에게 충격을 주겠다.”
“믿겠습니다. 기병이 오늘 싸움의 주인공일 될 겁니다. 아군의 보병은 겨우 1,000명 밖에 안 되니까요.”
현재 우리의 전력은 이랬다.
-바이에른 귀족 기병대 2,000명.
-총기병 500명.
-경기병 500명.
-보병 1,000명(장창병 500명, 총병 500명).
이에 비해 적은 1만 2,000여 명이나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의 기병은 2,000명 정도로 아군보다 열세란 점이다.
“기병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이미 해가 높이 떠올랐다. 병사들은 젖은 화약을 말리며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재 우리는 라인 강을 옆에 끼고 대치 중이었다. 아군의 오른쪽으로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흠? 적이 수비 진영을 취하고 있구나.”
발푸르기스가 대형을 갖춰가는 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군은 우월한 숫자에도 불구하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단단히 버티는 진영을 구축했다.
“아군의 기병 돌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반면 아군은 중앙에 보병, 양익에 기병이라는 정석적인 배치였다. 중앙에서 싸우는 사이 기병이 양쪽 측면에서 적을 감싸기 위한 진영이다.
“재밌군요. 수가 많은 적은 수비적인 배치고, 수가 적은 아군은 포위 공격을 노리고 있으니.”
발푸르기스는 상대 진영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고슴도치처럼 자리를 잡고 대포랑 총으로 우리를 상대할 모양이구나. 골치 아프다. 저러면 건드릴 재간이 없다.”
언덕 위에서 수비 진영을 치고 있으니 바이에른의 기병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어림없었다. 들이받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무래도 꾀어내야겠네요.”
나는 즉석해서 떠오른 방법을 발푸르기스에게 설명했다. 그녀는 신중히 설명을 듣더니 재밌어 하는 기색이었다.
“본녀가 구하러 가면 된다 그거지?”
“맞습니다. 우선 휘하의 지휘관들에게 이 작전을 설명해서 진짜가 아니라 연기임을 알리겠습니다.”
“아군까지 오해하면 큰일이 나겠지.”
적을 꾀어내려면 속여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속이는 건 내게 꽤 솜씨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휘하의 장교들에게 명을 내려놓고 홀로 적진으로 향했다.
“가자, 필리.”
적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아군도 언덕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필리를 타고 유유히 언덕을 내려가 적과 아군의 중간지점을 향했다.
수많은 적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압박감이 굉장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 도착하자 필리에서 내려 확성마법이 걸린 마법물품을 꺼내들었다.
“본인은 비텐바이어 백작인 발러슈테드 폰 비텐바이어다!”
일단 자기소개를 한 뒤, 곧장 상대를 씹기 시작했다.
“오늘 그대들에게 넘치는 감사를 표하러 이곳에 왔다. 이렇게 승리의 제물이 되고자 직접 찾아와 줬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느냐! 밤새 비 맞으며 온 노고, 그 멍청한 대가리를 잘라 보답하마!”
공용어로 말하는 내 외침에 적이 일순간 술렁였다. 야유가 격렬하게 쏟아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오크어로 외쳤다.
“너희 명예로운 전사들이 좋아하는 죽음을 오늘 실컷 선사해 주마. 아침은 지상에서 먹었으니 저녁은 저승에서 너희 비루한 조상들과 함께 먹거라!”
다시 엄청난 야유가 터졌다. 하지만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번에는 고블린어로 소리쳤다.
“너희 난쟁이 똥자루 같이 생긴 놈들은 늘 수다스럽기 짝이 없지. 내 군대에 너희 참새처럼 조잘거리는 놈들을 위한 특등석이 있으니, 바로 교수대이다!”
그러자 고블린들이 격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탕! 탕! 타당!
화승총을 들고 있던 고블린들이 분을 못 이기고 사격을 해왔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사기뿐 아니라 도발에도 꽤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 저쪽에서도 확성 마법으로 욕설이 날아왔다. 하지만 그 원색적인 비난에는 세련됨이 없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외쳤다.
“너희 마족은 주둥이만 나불대는구나! 어찌 도끼를 들고 나서는 용자가 하나 없는 것이냐. 자, 어떠냐!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결투의 여흥을 즐겨보는 것이!”
멍청한 오크 놈들은 이런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오크어로 외쳤다. 그러자 녹색 피부에 우람한 근육질을 가진 오크 전사들이 못 참겠다는 듯 들썩거렸다.
하지만 이런 결투는 빼어난 전사만이 나설 수 있는지라 자기들끼리 누가 나갈지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 이런 흐름은 발렌슈타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터.
만약 억지로 막았다가는 오크들의 반감을 살 테니까. 나는 그걸 알고 일부러 도발을 계속했다. 한데 그때 천둥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좋다! 이 아문드의 아들 아무란이 입만 산 네놈을 상대해 주마!”
오크 하나가 다이어울프를 타고 언덕 아래로 질주해 오는데, 진짜 그린 듯한 오크였다. 흉터 가득한 다부진 상체에 땋은 수염이 성성한 얼굴과 강철조차 찢어버릴 것 같은 육중한 쌍도끼까지.
그야말로 숙련되고 경험많은 전사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비쥬얼이다. 확실히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거의 다 와서는 달리는 다이어울프에서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해서 날 깜짝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간지를 자랑하는 오크였다. 그냥 걷기만 해도 영웅의 풍모가 가득한데, 놈이 말한 대사는 심장을 쿵 울리는 느낌까지 있었다.
“두려워하라! 이 도끼와 만난 순간, 네놈의 운명은 정해졌다!”
대사가 꽤 좋았다. 오크란 놈들은 세련됨이 없어서 보자마자 죽어, 라고 외치는 게 고작인데 운명이 정해졌다니.
필히 낭만을 아는 놈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도 어울려주기로 했다. 류블라냐를 뽑아 겨누며 외쳤다.
“오직 우리 검과 도끼가 이끄는 대로 될 것이다!”
그러자 오크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내 대사가 멋있었나 보다.
“크크크, 제법 운치가 있는 인간이로다.”
“자! 오라!”
우리 둘은 그대로 충돌했다.
카앙!
쇠가 부딪치는 높은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양 진영은 우렁차게 응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오크와 공방을 벌였다.
확실히 이 오크는 강했다. 하지만 뭐랄까, 내겐 어려운 적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근자에 늘 규격 외의 존재들과 싸워왔었지.
수호자나 마왕 등의 거물이나 어둠의 대군 같은 인세를 초월한 존재들과 만났다. 나 역시 그 사이 괴물 같은 스펙을 쌓아올려왔다.
얼마 전 마왕 쟈케르가 불을 토했을 때도 옷만 툭툭 털었던 나다. 이 오크 전사가 날고 기어봐야 소용없었다.
나는 일부러 류블라냐를 놓친 척했다. 그러자 아무란이 크게 흥분하며 도끼를 내리찍어왔다.
“끝이다!”
퍽!
하지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손이 그의 도끼날을 잡아버렸다. 그러자 그의 눈이 찢어져라 커진다.
“어찌! 손바닥으로 도끼를!”
나는 끓어오르는 심연의 가호로 강력한 물리 저항력을 갖고 있다. 이깟 도끼날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미안한데 슬슬 놀아주는 건 그만해야겠네.”
나는 오른손으로 아무란의 배를 강타했다.
퍼억!
내 힘 수치는 무려 532. 오거의 5배나 된다. 이 한 방으로 아무란의 내장은 엉망이 돼버렸다.
“크악!”
놈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멱살은 잡은 뒤 그의 가슴팍을 마구 강타했다.
퍽! 퍽!
몇 방 때리자 급기야 아무란은 심장이 멎어버렸다. 크게 벌린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정말 한순간에 죽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붙잡고 있어 쓰러지지는 않았다.
멀리서 보면 아직도 서로 드잡이질을 하는 걸로만 보이겠지. 나는 즉각 언데드 소환 기술을 사용해 아무란을 데이워커로 만들었다.
구우웅.
시커멓고 사이한 기운이 일어나더니 아무란의 코와 입을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다시 눈을 떴다. 언데드화의 힘에 굴복한 그는 죽기 전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의 주인이시여!”
“일단 나는 밀어 쓰러뜨린 뒤 걷어차라.”
아무란은 당황하는 기색이었으나 복종했다. 녀석은 나를 힘껏 밀친 뒤에 옆구리를 걷어찼다. 마력 방패 때문에 아무런 고통은 없었지만 나는 일부러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러갔다.
“크아아악!”
“괜찮으십니까! 주군!”
“싸우는 척 연기하라.”
우리는 그때부터 공방을 주고받으며 대화했다.
“이 결투는 내가 패퇴해서 볼썽 사납게 도망가는 걸로 끝낼 작정이다. 기회를 봐서 저기 뒤에 있는 말을 타고 도주할 터이니, 그대는 다이어울프를 타고 쫓으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 진영에서 기사들이 나와 구출하고자 할 것이다. 그대는 적당히 응하다가 다이어울프를 돌려 도망치라. 그리고 오크들에게 가서 크게 승리를 외치고 싸움을 선동하거라.”
나는 아무란에게 오크 전사들이 수비진영을 벗어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크의 특성상 수비진영을 갖추고 기다리는 건 내키지 않을 터.”
“실로 그렇습니다.”
“결투에 이긴 그대가 가서 외친다면 오크들이 동요할 테고, 결국 발렌슈타인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 결심을 더해주기 위해서 아군은 후퇴하는 듯한 연출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아무란, 그대에게 제일로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말씀하십시오. 죽은 목숨이었으나 주군의 자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모든 걸 바쳐 이뤄낼 것입니다.”
그리 말하면서 그는 도끼를 휘둘러 왔다.
“크악!”
나는 크게 얻어맞은 듯 뒤로 굴렀고 그대로 도망가기 직전 외쳤다.
“발렌슈타인을 암살하라! 전공을 세웠으니 만남을 청하면 그가 응할 것이다. 기회를 봐서 반드시 죽여버려라!”
그 말을 끝내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필리에 올라 박차를 가하자, 아무란이 다이어울프에 타더니 노호성을 지르며 쫓아온다.
“주군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지금 이를 지켜보는 양 진영에선 저 말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으니, 도망치는 적을 보고 분노해 소리치는 것 같겠지. 나 역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를 살려두면 크게 후환이 될 자다. 필히 죽여야 한다!”
그때 아군의 진영에서 발푸르기스를 선두로 십여 명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아무란을 공격했고, 결국 그는 몇 합을 겨루다 쫓겨갔다. 그러자 발렌슈타인의 진영이 분노로 들썩이며 야유를 쏟아냈다.
“이제 됐습니다.”
나는 약속대로 와준 발푸르기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발렌슈타인이 암살되면 적군이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때 바이에른의 최정예를 이끌고 언덕 아래로 돌격해 주십시오.”
“본녀가 적들을 버터처럼 뭉개버릴 것이다.”
나는 본대에 돌아가자마자 위장으로 후퇴할 준비를 하게 했다.
“최대한 질서정연하게 퇴각한다. 낚시가 아니라 정말로 후퇴하려는 기색을 보여야 한다!”
이미 상황을 전달받고 있던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자, 애송이를 낚아볼까.
***
“적이 철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발렌슈타인은 전방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인간들 특유의 장창 방진이 해체되어 행군 대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로 이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려는 것 같았다.
“무모하게 지휘관이 날뛰다 부상을 입더니 그대로 빠지려나 보군.”
“무척이나 어리석은 인간이었습니다.”
그 말에 발렌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적의 총대장도 어쩔 수 없는 심경이었을 거다. 우리가 세 배나 많으니 도발이라도 해서 빈틈을 만들어 보고 싶었겠지.”
“그러다 실패해서 망신까지 당했으니 이 싸움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군요.”
“아무래도 시작부터 초를 쳤으니까.”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이미 오크들의 진영이 앞으로 슬글슬글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괜히 의심암귀에 빠져 공격의 적기를 놓치면 곤란하다.
결국 발렌슈타인은 전군의 전진을 명했다.
“도망가는 적을 두들겨서 최대한 이득을 보겠다.”
그리 결정하고 진영을 변경하던 중 부하 하나가 보고해 왔다.
“무훈을 세운 오크족의 아무란이 장군님을 뵙고자 청합니다. 전투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발렌슈타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전부터 큰 공을 세워줬기에 안 그래도 불러서 포상하려 하던 차였다.
“좋다. 내 직접 만나 치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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