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 싱가포르, 마케팅 콘퍼런스(4)
BD 매니저는 해외에서는 일반화된 직책으로 보통 다양한 분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맡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BD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조직을 변화시켜야 했다. 그리고 외부의 다른 써드 파티 업체와의 전략적 관계 또는 제휴를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부서였다.
변화를 추구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조직 사이의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동시에 새롭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을 포착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자리에 유빈을 생각하고 있다고 아시아 리전 CEO가 말한 것이다.
“왜 그 자리인지 묻기 전에 왜 저에게 제안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군요.”
“미스터 킴이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최근 본사 회의에 참석해 보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크 램버트 CEO가 본격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죠. 저는 그것을 아시아 리전의 위기로 봤습니다.”
“······그렇군요.”
유빈은 나라옌의 설명을 들으며 그가 마크 램버트의 경영 방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크 램버트가 아시아 리전에 별 애정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아시아 리전의 BD 팀은 현재 조직명만 있는 유명무실한 팀입니다. 현재까지 구성원은 매니저 한 명으로 팀원도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매니저가 있군요.”
“그 직원은 미스터 킴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바로 다른 부서로 배치할 겁니다.”
유빈은 조용하게 나라옌 CEO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명무실한 팀의 매니저라.
이렇게 약점을 먼저 까발릴 때는 이미 대책을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후후, 침착하군요. 저는 BD 팀에 힘을 실어 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하반기부터, 늦어도 내년부터는 팀원도 늘리고 실제로 업무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게 냉정하게 듣지 않아도 됩니다. 미스터 킴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거절해도 됩니다.”
유빈이 보기에 저 사람 좋은 미소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는 나라옌 CEO의 큰 장점이었다. 저 정도 위치에서 갖추기 힘든 덕목이었다.
유빈도 그의 말을 듣고 눈에 들어가 있던 힘을 풀었다. 맞는 말이었다.
마케팅 PM 자리를 예상하다가 다른 자리를 권유받으니 긴장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변화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변화에요. 미스터 킴은 한국에서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단순히 수치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1.5%를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변화시켜야 했을 겁니다. 그걸 당신은 6개월 만에 해낸 겁니다.”
유빈이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변화라면 아시아 본부의 변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요. 언젠가부터 아시아 본부는 아시아 각국의 관리자 역할밖에 못 하고 있습니다. 그게 본부의 일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빈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점점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부분을 유빈이 지난 이틀 동안 그리고 지난 6개월 동안 보여 줬다.
변화를 끌어내는 힘. 그리고 회사의 변화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
“게다가 미스터 킴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충분히 겸손했습니다.”
“아닙니다. 미스터 나라옌이 과하게 좋게 봐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 사실은 콘퍼런스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제가 조금 오버해서 미스터 킴을 띄우기는 했습니다. 당신의 반응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시험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겠지만, 저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파악하는 편입니다. 미스터 킴은 제가 아무리 칭찬해도 그다지 흥분하거나 우쭐해 하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침착하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할 말은 하고 저를 그다지 어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군요.”
“기분 나쁘다면 미안합니다. 조금 과하게 말했을 뿐이지 내용은 전부 진심이었습니다. BD 팀의 매니저에게 필요로 하는 통찰력, 주인 의식에, 권위에 약하지도 않으면서 겸손함까지 갖췄으니 제가 제안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유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BD팀 매니저라.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자리이기는 했다. 하나의 제품을 성공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일도 보람이 있지만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일은 성공만 하면 그 성취감은 비교할 수 없이 컸다.
“팀원은 어떻게 뽑는 겁니까?”
“매니저가 정해지면 그와 상의해서 뽑을 생각입니다.”
“······좋습니다. 미스터 나라옌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팀원을 뽑을 때는 제 의견을 최우선으로 해 주십시오.”
“음, 으음.”
나라옌 CEO가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어울리는 적합한 사람을 찾는 일은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이었다.
유빈을 BD팀 매니저로 찍은 것도 그의 직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사람을 잘 볼 줄 압니까?”
“그렇다기보다는 저와 맞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미스터 킴이 오늘 하루 동안 저와 대화하면서 얼마만큼 저를 파악했는지 말해 주십시오. 대답이 만족스럽다면 두말없이 미스터 킴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아니라면 인사는 상의하에 결정하는 거로 하죠. 어떻습니까?”
나라옌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유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유빈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유빈은 물러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저에 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나라옌은 지금 상황이 그저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배어 있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건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혹시 기분 나쁘시더라도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요. 저는 오히려 저의 단점에 대해서 사정없이 까발려 줬으면 좋겠군요. 하하.”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유빈이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 갔다.
“미스터 나라옌은 카리스마보다는 배려를 중시하는 CEO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요?”
“보통 콘퍼런스는 늦어도 오전 아홉 시에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시에 시작했죠. 그건 미스터 나라옌의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직원이 저녁 비행기를 타고 어제 들어온 것을 알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배려해 준 겁니다.”
“음, 제 입으로 말하기 간지럽지만, 도저히 아니라고 말할 수 없군요. 제가 시작 시각을 정한 게 맞습니다.”
라지브 나라옌은 유빈의 처음 분석에서부터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시작 시각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성향을 유추해 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그였다.
“훌륭합니다. 그리고요?”
“미스터 나라옌이 아시아 리전 CEO로 발령 난 지 이제 일 년이 되신 거죠?”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스터 나라옌은 급격한 변화 그러니까 변화를 위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어째서죠?”
“일 년 전과 현재의 본사 스태프에게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걸 어떻게······.”
“제가 확인한 메일에는 본사 스태프가 변경되었다는 메일을 본 적이 없습니다.”
“메일 내용을 다 확인해 본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런 편입니다.”
“으음······.”
나라옌 CEO가 점점 말보다는 신음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변화가 생각대로 잘 안 돼서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금 민감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유빈은 가감하지 않고 말했다. 이미 양해는 구해 놨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대답도 없이 그는 계속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루이자 우드의 태도를 보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미스터 나라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더군요. 그건 미스터 나라옌이 추구하는 변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방증으로 생각합니다.”
“뭘 보고 그녀가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생각했나요?”
“표정입니다. 억지로 웃더군요. 저를 과하게 칭찬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요. 미스터 나라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대화를 하는 내내 ‘나와 루이자’라는 말을 자주 하시더군요. 일부러라도 동질감을 만들어 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소름이 끼치는군요. 마치 셜록 홈즈와 대화하는 느낌입니다.”
“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저도 말하고는 있지만 잘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추측일 뿐입니다.”
“발가벗겨진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미스터 킴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대단하군요.”
라지브 나라옌이 감탄한 표정으로 유빈을 바라봤다.
능력 있는 젊은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런 통찰력이라니.
유빈의 나이로 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계속할까요?”
“물론입니다. 더 들어 보고 싶군요.”
“BD 팀에 관한 생각은 최근에 결정한 거로 예상됩니다.”
“그건 왜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미스터 나라옌이 BD 팀을 만들면서 과격한 변화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어지 데일의 감사 때문이겠죠.”
“허흡!”
나라옌은 놀란 나머지 헛바람을 들이켰다.
“미스터 나라옌은 마음이 따뜻한 분입니다. 아시아 리전에 속한 국가에서 직원들이 해고되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 과격한 변화를 선택한 겁니다.”
나라옌은 지긋이 유빈을 바라봤다.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알아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미스터 나라옌은 아마도 서양에서 영미식 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바는 서양식이지만 결정적인 선택을 할 때는 행동 기준을 인도식으로 두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겸손’은 동양의 미덕이죠. 서양의 리더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하하. 이거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유빈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경청하던 그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졌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처음 문장에서 이미 그는 넘어간 상태였다.
라지브 나라옌이 고개를 끄덕였다.
“BD팀의 인사는 전적으로 미스터 킴에게 맡기겠습니다. 이건 약속입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유빈도 긴장을 살짝 풀었다.
“아닙니다. 전혀요. 전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제가 미스터 킴을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전에 과하게 띄워 줬다는 말도 취소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미스터 나라옌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저는 부하 직원인데 이렇게 정중한 태도로 마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대해 주는 모습은 배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유빈의 솔직한 평가였다.
어쩌면 이 차이가 해외 기업과 한국 기업 문화의 결정적인 차이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말단 사원이라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무시하지 않는 문화. 그리고 의견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문화.
그것이 기업 문화가 경직되지 않는 비결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칭찬을 들어서 다행이군요. 하하. 미스터 킴. 저는 당장에라도 발령을 내고 싶지만 그건 힘들겠죠?”
“네, 지금 맡은 OC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발령은 비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요. 좋습니다. 발령은 내년 1월 2일로 하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나라옌 CEO의 배려를 받으며 유빈이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또 다른 기회의 문이 열린 참이었다.
‘앤이 실망하겠군.’
나라옌 CEO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니 미래전략연구소는 날아간 셈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BD 팀 매니저는 유빈에게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미래전략연구소의 연구원보다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유빈이 업무실에서 내려와 건물 로비로 다가가자 커다란 원형 기둥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유빈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서윤아, 많이 기다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