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56
56화 – 애프터 서비스(1)
자신을 두고 어떤 이야기가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유빈은 커피숍에서 인터넷에 빠져 있었다.
유빈이 보고 있는 것은 산부인과의 홈페이지였다.
정보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인 승규가 만들어 준 홈페이지가 각 병원의 상황에 맞춰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홈페이지가 운영된 이후로 의사들은 젊은 환자가 많이 늘어났다고 고마워했다.
당연히 피레논의 처방도 그에 맞춰 증가했다.
유빈은 요즘 가장 핫한 사랑산부인과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Q&A 게시판에는 수많은 상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비밀 글이라 볼 수 없었지만, 간간이 오픈되어 있는 글도 있었다.
그런 글들은 질문이라기보다는 김이진 원장에 대한 감사 글이 대부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는 며칠 전에 방문했던 000입니다.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했는데, 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진찰해 주시고 마음 편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전에는 산부인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졸업하더라도 사랑산부인과로 진료 받으러 와야겠네요. 원장님 짱이에요! 감사합니다!
-산부인과라고 해서 처음에는 꺼려졌는데, 인테리어가 카페같이 예뻐서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편하게 진료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너무 친절히 상담해 주시고, 간호사 언니도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리한 처방도 안 하시고 일상에서 지켜야 할 방법을 잘 가르쳐 주셔서 좋았습니다. 저 같은 대학생은 약값도 걱정이라 ㅠㅠ 내 병원이 아니었지만 글만 읽어도 가슴이 훈훈해졌다. 당사자가 보면 얼마나 기쁠까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죽 스크롤을 내리며 글을 읽어 가던 유빈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대기 시간이 너무 기네요. 예약제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진료는 5분밖에 안 했어요. 원장님은 좋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기다려야 하면 다른 병원으로 갈 것 같습니다.
최근 게시 글에 대기 시간이 길다는 글이 몇 개씩 보였다. 환자가 많아져서 좋기는 하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진 건 사실이었다.
지금은 초기라 감사 글이 훨씬 많았지만, 앞으로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가 커질 게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매출 증대는 단발성의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유빈은 일부러 김이진 원장을 만나지 않고 사랑산부인과 대기실에서 환자들을 살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표정도 그렇거니와 오라의 색도 어두워졌다.
긴 기다림 끝에 겨우 이름이 불려 진료실에 들어갈 때 반짝 오라가 밝아졌지만, 영향은 남아 있었다.
저런 상태로 진료받으면 만족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김이진 원장이 친절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홈페이지에 남겨 놓은 글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진료실에서 만난 김이진 원장도 어렴풋이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하루에 보는 환자 수가 열 명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꼼꼼하게 진료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도 환자들이 대기실에서 오래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 진료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간호사를 한 명 더 뽑았지만, 예전의 병원 시스템으로는 밀려드는 환자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게 아니에요. 더 당부할 말도 있고 이야기도 꼼꼼히 들어 보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니까 저도 스트레스를 받네요. 환자들은 저보다 더하겠죠.”
김이진 원장은 유빈에게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상황만으로도 유빈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뭔가를 더 부탁한다는 건 그녀의 성격이 용납하지 않았다.
유빈도 김이진 원장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산부인과는 그에게도 중요한 병원이었다. 꼭 원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병원이 너무 안 돼도 문제지만 잘돼도 문제네.’
고심하던 유빈은 생각을 멈추고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때가 있었다.
우선 사랑산부인과와 규모는 비슷하면서 A급을 유지하고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겉으로 보기에 두 병원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의 오라가 나쁘지 않았다.
“시스템이요? 글쎄요. 우리 병원은 예전부터 이랬어요. 환자들도 단골이 많아서 한 시간 기다리는 건 예사로 알고 와요.”
명의로 불리는 원장의 담담한 대답에서 포스가 느껴졌다. 결국, 차이는 기다리는 환자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시스템과는 상관이 없었다.
규모가 같다고는 해도 사랑산부인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흐음,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악화할 것이 분명했다.
사랑산부인과가 A급 병원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B급 병원에서 멈추느냐는 대기 시간에 대한 컴플레인을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고민에 쌓여 있는 유빈의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전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무의식 층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전생이 ‘옜다’ 하며 힌트를 던져 주는 것 같았다.
미국인 영업사원이었던 전생에서 유빈은 수많은 일을 겪고 해결했다.
그중 대부분은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사건을 기억할수록 혼자서 해결한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렸다.
힌트는 간단했다.
‘혼자서 낑낑대지 마.’
전생이 말해 주고 있었다.
물론 유빈에게는 범인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었다.
‘그런 뜻인가.’
유빈보다 병원 운영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는 넘쳤다.
중요한 점은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끌어낼 수 있느냐였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인맥을 활용할 때였다.
유빈은 우선 대형병원의 사무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처음에는 안부 인사로 시작해서 컨설팅에 관해 물어봤다.
하지만 유빈의 생각과는 달리 10년 이상 된 대형병원은 컨설팅 없이 시작한 경우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병원 컨설팅 사업 자체가 자리를 잡은 지 몇 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돌리던 유빈은 써니힐병원 사무장과 연결되었다.
시위녀와 엔젤로 사건 이후로 유빈을 좋게 본 사무장은 다른 사람보다 자세하게 대답해 줬다.
-컨설턴트요?
“네, 사무장님. 작은 클리닉도 컨설팅해 주는 곳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우리도 병원도 규모가 커지면서 컨설팅을 받기는 했지만, 그쪽은 대형병원 위주로 하는 곳이었어요……. 음. 잠깐만요.
무언가 뒤적이던 소리가 들렸다.
-혹시 몰라서 봤는데 명함첩에 남아 있네요. 그때 여기저기 많이 알아봤거든요.
“아, 다행이네요.”
-우리도 마지막에 두 군데로 압축되었는데 우리가 계약한 곳은 미래프렌즈라는 업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어디였더라…… 아, 메디파트너스 여기네요. 이 두 회사가 제일 괜찮았어요.
사무장은 유빈이 또 어떤 일을 꾸미고 있나 궁금해 하면서 설명했다. 영업사원이 컨설팅 회사를 찾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미래프렌즈라는 곳은 대형병원 위주로 한다고 하셨죠? 메디파트너스도 그런가요?”
-그 회사는 아, 이제 생각이 나네요. 메디파트너스 대표는 꽤 젊었는데 저서도 있고 컨설팅 계획도 좋았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보였는데 뭐라 할까나, 사람이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원장님과 부딪혔을 때도 굽히지를 않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또 그런 게 아니잖아요.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은 미래프렌즈로 결정했죠.
“사무장님, 혹시 제가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편할 때 들르세요.
써니힐 병원 사무장에게 컨설팅 회사의 명함을 받은 유빈이 하나씩 연락해 봤다.
다행히 미래프렌즈와 메디파트너스 모두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전화뿐이었지만 첫인상은 미래프렌즈에 한 표였다.
깔끔한 비즈니스 매너로 전화를 받아 미팅을 잡은 미래프렌즈와 달리 메디파트너스는 일단 통화음이 한참 울리고서야 전화를 받았다.
게다가 전화를 받은 여성은 확신 없이 말하면서 대답도 우물쭈물했다. 약속을 잡기는 했지만 영 미덥지가 않았다.
마음이 살짝 기울었지만. 유빈은 그래도 두 회사를 다 방문하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우선은 인터넷으로 두 회사를 검색해 보려는데 마침 유빈의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기 화면에 뜬 이름은 부산팀으로 발령 난 동기인 김기석이었다.
“기석아, 오랜만이네.”
-형님, 잘 지내셨어요? 아니지, 형님, 축하드려요!
마산이 고향인 김기석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도 유빈에게 늘 존댓말을 썼다.
김기석 역시 신입사원 교육 때 유빈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다. 그저 나이만 많은 사람보다 그에게 김유빈은 진짜로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응? 뭘?”
-에이, 알면서 그러신다.
“…….”
-형님, 설마 아직 DDD 안 본 거예요?
유빈이 침묵을 지키자 김기석이 놀란 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DDD 자료가 나오는 날이었다.
매달 15일에 자료가 나오는데 유빈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게, 아직 확인 못 했네.”
-진짜요? 형님 실적 대박이에요! 전체 달성률이 190%를 넘었어요!
“그래?”
김기석이 민망할 정도로 유빈은 이야기를 듣고도 담담했다. 200% 정도를 예상한 그로서는 적절한 실적이었다.
유빈의 머릿속을 여전히 채우고 있는 것은 실적보다는 사랑산부인과였다.
초반에는 유빈도 숫자에 매달렸지만, 언제부터인가 실적보다는 병원과 고객이 그에게 더 중요했다. 그런 마음으로 영업하다 보면 실적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기석과 통화를 마친 유빈이 문득 지금까지의 달성률로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계산해 봤다.
3분기 통틀어 50% 가까이 초과 달성을 했으니 인센티브로 거의 1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4분기에 실적이 더 오른다면 유빈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강아지들과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마련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미소가 저절로 그려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동생인 인아도 하늘나라로 간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어머니뿐이었다.
유빈은 그저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하는 일은 모두 지지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백서제약을 다닐 때는 마음뿐이었지만, 이제는 실제로 어머니를 도울 수 있었다.
비록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예전처럼 아버지와 인아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기석을 필두로 동기들로부터 몇 통의 전화를 연속으로 받은 후에야 전화기가 잠잠해졌다.
자기 일도 아닌데 축하해 주는 동기 동생들의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유빈도 당장 DDD 자료를 분석해 보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사랑산부인과 건을 해결하는 일이 먼저였다.
다시 검색해 보려는데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일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