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97
97화 – 감사 시작(2)
오라는 사람에게만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생명체는 물론이고 무생물에도 고유의 오라가 존재한다.
유빈은 지금 6층의 회의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의실을 감싸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오라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게임으로 치자면 모든 스탯을 30% 정도 깎아 먹을 던전이 유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유빈이 눈부시게 빛나는 두터운 오라를 몸에 두르고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앉으세요. 여성건강사업부 미스터 킴입니까?”
표정 하나 없는 딱딱한 발음이었다.
유빈이 대답하려고 하는 찰나에 감사팀 남자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이 질문을 통역해 줬다.
그녀 역시 기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영어를 넣어 주면 한국어로 통역해 주는 기계.
원래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겠지만, 감사팀과 마찬가지로 며칠간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표정이 된 것 같았다.
“네, 김유빈입니다. 당신이 어지 데일인가요?”
질문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 나왔고, 그 짧은 영어 발음만으로도 상대방의 영어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음보다도 이 상황에 질문할 수 있는 배짱이 놀라웠다.
“아닙니다. 전 감사팀의 댄 캠벨입니다. 제 옆에 앉아 있는 분이 감사팀의 단장 어지 데일입니다.”
예상외로 친절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의아하기도 했다. 왜 팀장이란 사람이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팀원이 대신 말하도록 놔둘까.
말도 섞기 싫다는 뜻인가?
여성이 다시 통역하려 했다.
“괜찮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유빈의 제지에 처음으로 여성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져 버린 탓일까?
“미스터 캠벨, 통역은 필요 없습니다.”
유빈의 단호한 말에도 댄 캠벨은 고개를 저었다.
마치 ‘여기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라는 무언의 표시 같았다.
“음, 일상적인 회화라면 상관없겠지만, 숫자를 포함한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서 통역이 배석하는 편이 좋을 텐데요.”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유빈의 단호한 태도에 캠벨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렸다.
이 남자는 뭐지?
지금까지 이 방에 들어온 직원은 마치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태도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외국인 두 명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그리고 외국인이 배려 없는 빠른 영어로 살짝만 스쳐도 베일 것 같은 송곳 질문을 연속으로 던진다면 주눅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빈은 여유 있고 당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본 댄 캠벨이 보기에는 허세가 아니었다.
캠벨이 어지 데일을 쳐다보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캠벨의 말에 통역하는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 어지 데일은 유빈이 제출한 자료를 빠르게 넘기고 있었다. 동작이 너무 빨라서 제대로 읽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자료를 넘기는 중간에 잠시 멈추고 뚫어지게 쳐다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노트에 필기했다.
역시 숫자가 주로 쓰여 있었다.
캠벨이 어지 데일의 필기를 슬쩍 훑어보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마케팅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죠?”
“올해 1월부터 근무했습니다.”
“흐음, 아직 반년이 안 되었군요. 그 전에는요?”
“영업팀에서 1년 근무했습니다.”
“영업팀에서 1년 근무하고 마케팅으로 왔군요.”
유빈의 대답을 반복해서 말하는 폼이 꽤 거슬렸다.
“이제 반년 일했는데 여성건강사업부에 대한 개선점이랄까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없나요?”
유빈이 잠시 대답을 보류했다.
이런 페이스라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답만 하다 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오라나 태도로 봐서 캠벨은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이 사람을 빨리 강판시켜야 승부를 걸 수 있었다.
질문의 힘.
질문에는 힘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힘이 있는 사람만이 질문할 수 있다.
감사팀은 감사를 받는 유빈보다 권력이 컸다.
유빈이 생각하느라 말을 안 하자 캠벨이 다시 물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라서 물어보는 건데 굳이 보직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요? 작년처럼 사업부 마케팅 헤드나 피레논 PM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은데요?”
“제 월급이 아깝다는 말인가요?”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요. 아시다시피 감사팀의 목적은 제네스 코리아에서 쓸데없이 사용한 예산이나 비용을 확인해 절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유빈의 반문에 분위기가 미묘하게 전환되었다.
캠벨은 움찔했지만 알아차리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다시 캠벨이 질문을 쏟아부었다.
“제네스 코리아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항암사업부 1인 매출이 여성건강사업부의 2.5명과 비슷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요?”
캠벨은 유빈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여성건강사업부의 일인당 매출이 다른 부서보다 높은 건 사실입니다. 매출액과 직원 수를 비교하면 간단히 알 수 있죠.”
“알고 있습니다.”
“흐음, 알고 있었군요. 다른 분들은 아무 말도 안 하던데 표정을 봐서는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캠벨은 유빈의 마케팅 경력이 짧으니 몰아붙이면 대답을 할 거로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마케팅 매니저로서 영업부의 티오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왜죠?”
“한국의 산부인과 시장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한국은 최근 2, 3년간 신제품 효과로 매출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산부인과 병원의 폐업하는 비율과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감소하는 출산율 등 우리가 분석한 바로는 앞으로는 시장의 성장 자체가 둔화할 거로 예상했습니다.”
“장결희 본부장님이 앞으로의 부서 계획에 대해 말씀드린 거로 압니다.”
“OTC OC팀을 새로 만들고 비뇨기과로 사업부를 확장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계처럼 대답하는 캠벨은 장 본부장의 대답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감사팀에서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군요.”
“계획은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 나와 있는 숫자입니다.”
탁구공처럼 질문과 답이 두 사람 사이를 왕복했다.
유빈이 잠시 탁구채를 내려놓았다.
예상하지 못한 한 방으로 서브권을 가지고 올 필요가 있었다.
“혹시 감사팀에서는 올해 제네스 차이나 일반의약품 부서의 상황을 알고 있나요?”
“제네스 차이나요?”
유빈의 뜬금없는 질문에 캠벨이 되물었다.
“네. 마케팅만으로 충분하다는 어지 데일 씨의 리포트로 영업부 전체가 ERP를 받고 회사에서 나갔죠.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기억은 하겠죠.”
“물론입니다. 감사 결과 불필요한 조직이었습니다.”
“감사 이후, 제네스 차이나의 조직이 개편되고 새로운 일반의약품 부서의 상반기 매출은 작년의 80%까지 떨어졌습니다.”
유빈의 단호한 말에 캠벨이 입을 다물었다.
감사팀의 일은 감사를 해서 효율적인 운영방식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 매출이 어떻게 됐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시아 리전에 문의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인원을 줄여서 비용은 줄였지만 동시에 매출도 줄었습니다. 감사팀은 리포트만 내면 그다음은 나 몰라라 하는군요?”
캠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유빈이 자신의 말투를 따라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캠벨이 찝찝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최선의 리포트를 낸 겁니다. 단기적으로는 매출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시스템이 갖춰지면 매출은 다시 회복할 겁니다.”
“전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미래가 아니라 지금 보이는 숫자라고 방금 들은 것 같은데요.”
“······.”
“그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감사 결과로 제네스 차이나에 대한 중국 내 여론은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존경받는 회사에서 직원을 함부로 자르는 회사로요. 감사팀이 적으로 만든 건 직원 100명이 아닙니다. 그들의 가족과 친척, 친구를 넘어서 언론에도 제네스는 나쁜 회사가 된 겁니다. 이런 사회적 비용에 대한 보고는 안 하나 보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캠벨이 질문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대화의 주도권이 유빈에게 넘어간 모양새였다.
“미스터 킴! 듣자 듣자 하니까 감사팀을 뭐로 보는 겁니까?”
참다못한 캠벨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건강사업부의 티오가 많다는 건 감사를 받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대비책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한 거고요. 고작 그런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먼 한국까지 오신 건가요? 월급도 저보다 훨씬 많이 받는 것으로 아는데 제가 모를 만한 내용은 없나요?”
“이 사람이!”
“댄, 잠깐.”
어지 데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빈이 어지 데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것보다 그의 영어 발음이 매우 독특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하지.”
“······알겠습니다.”
씩씩대던 캠벨이 어지 데일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빈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린 것이다.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감사팀의 일원으로서 그의 특기 중 특기였다. 그런데 그 자신 있는 부분에서 상대에게 당한 것이다.
캠벨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채로 마운드에서 강판되었다.
“미스터 킴, 제네스 차이나는 제네스 코리아 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감사팀은 마크 램버트 CEO의 경영방침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유빈은 그가 왜 말하는 걸 꺼리는지 알았다.
웅얼거리는 영어 발음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부정확하게 들렸다.
하지만 웅얼거리는 그의 발음과는 달리 어지 데일의 주관은 확고했다.
“이곳은 토론 장소도 아니고 우리가 제네스 코리아 직원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미스터 킴은 감사팀에서 하는 질문에만 답해 주십시오.”
“······.”
유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캠벨이 유빈의 페이스에 말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면 어지 데일은 처음부터 싹을 잘랐다.
“올해 프로젝트 예산으로 책정된 10억 원의 사용처는 어디입니까? 전산상으로는 에이전시와의 계약과 간단한 PPT만 올려져 있더군요.”
“드라마 PPL과 텔레비전 광고, 그리고 성교육 캠페인에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이전시 수수료 비용도 포함되어 있고요.”
“5년 동안의 캠페인으로도 피임약 복용률의 변화는 미미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더는 가망이 없는 프로젝트에 예산을 쓰는 건 낭비로 보입니다. 프로젝트를 당장 중지시키는 편이 현명한 일인 것 같은데 미스터 킴 생각은 어떻습니까?”
보기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었다.
유빈의 자리가 불필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격이었다.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는 게 오히려 예산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요?”
“순조롭다는 말은 너무 모호하군요.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 수치가 있나요?”
“피임약 복용률의 변화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서베이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말은 자료가 없다는 이야기군요.”
“만약, 피임약 복용률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증가했다면 감사 결과를 결정하는 데 고려 사항이 되나요?”
어지 데일은 유빈의 질문을 듣지 못한 양 자료를 뒤적거렸다.
유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복용율이 증가했다는 것은 피임약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3%가 6%가 되면 피임약 시장은 2배 이상으로 커질 겁니다. 그럼 영업팀 일인당 매출도 크게 증가할 겁니다.”
“영업팀도 영업팀이지만 본인 자리부터 신경 써야 할 것 같군요. 지금 미스터 킴이 말하는 것은 다 가정이지 않습니까.”
“가정이 아니라면요?”
유빈이 어지 데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역시 눈길을 피하지 않고 유빈을 마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