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73
373화. 장사 (1)
“아가씨, 이소야께서 돌아오셨어요.”
방금 전에 한참 훈계를 들어서인지, 늘 기복이 없는 두아를 제외하고 앵두를 포함한 다른 시녀들은 그녀의 환심을 사려 애를 쓰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육량의 말을 듣고 혼자 서재로 가셨어요.”
임근용이 비녀를 정돈하며 지시했다.
“좀 전에 찐 밤떡이랑 뜨거운 차를 한 주전자 가져와. 나랑 같이 서재에 좀 다녀오자.”
화를 삭이고 있던 육함은 문밖에서 재잘대는 쌍전의 목소리를 듣고 창밖을 힐끔 내다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 글씨를 쓰려고 먹을 가는 척했다.
임근용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녀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육함은 소리를 듣고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쌍전에게 물건을 내려놓고 나가라고 지시한 뒤 책상 쪽으로 다가가 육함이 들고 있던 먹을 빼앗았다.
“민행, 글씨 쓰려고요? 내가 먹을 갈아 줄게요.”
육함이 곁눈질로 힐끗 그녀를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예뻐 보였다. 임근용은 임신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배는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은 벌써 조금 풍만해져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지분을 하나도 바르지 않았음에도 피부가 곱고 윤기가 흘렀다. 살짝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육함은 말없이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는 척하다가 결국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한 당신한테 어찌 이리 힘든 일을 시키겠소?”
임근용이 손을 멈추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도자기 인형도 아니고 먹 좀 간다고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요? 민행, 옷 안 갈아입을 거예요? 배는 안 고파요? 새로 찐 밤떡이랑 따뜻한 차를 가져 왔는데 일단 요기를 좀 해요.”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굴수록 육함은 더 화가 났다.
“아용, 당신 꼭 이렇게 내 뜻을 거슬러야겠소?”
임근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물건과 사람이 벌써 도착했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헛수고만 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일은 하인들이 다 할 거고 난 그냥 앉아서 말로 지시만 하는 거예요. 오늘도 송붕한테 가서 일을 보라고 시키고 나니까 또 할 일이 없어져서 이렇게 시녀들이랑 같이 밤떡을 만들었어요. 내가 직접 만든 건데 정말 맛도 안 볼 거예요?”
육함이 말했다.
“입맛 없소.”
임근용이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민행, 그때 내 기분도 지금 당신이랑 똑같았어요.”
사실 이쯤 되면 두 사람 다 이 가게는 여는 것으로 확정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누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반쯤 내려진 창문 발 사이로 들어온 한 줄기 햇살이 마침 활짝 피어 있는 황매에 드리워져 찬란하게 금빛이 반짝였다. 육함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같이 고집 센 여자를 참아 줄 수 있는 남자는 아마 나밖에 없을 거요.”
만약 그가 참아주지 않는다면, 오늘 같은 이런 화목한 일상도 없었을 것이다. 임근용은 말없이 밤떡을 하나 집어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육함은 그녀를 호되게 한 번 노려본 뒤 입을 열고 떡을 받아먹었다.
* * *
며칠 후 요탁 일행이 반루가 부근의 계신항(界身巷)에서 가게 자리를 하나 찾았다. 이전의 가게보다 훨씬 넓었지만 가격도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임근용은 계약을 할 때 돈이 너무 아까워서 속으로 육함을 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는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장사가 계속 그럭저럭 평범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요탁이 임근용에게 가격을 좀 낮추는 것이 어떻겠냐고 건의했지만 임근용이 단호히 거절했다.
“여기는 평주랑은 달라, 경성 사람들이 돈이 부족해서 안 오는 게 아니야. 우리 가게가 아직 명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 가격을 낮추면, 우리 가게 물건이 다른 집 물건보다 별로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또 주변 가게들에 미움을 살 수도 있어.”
요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래 새로 개업한 가게는 장사가 잘 안 되는 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가게의 명성은 계속 버티다 보면 천천히 쌓이겠지요. 다만, 여기 경성에는 워낙 희귀한 물건들이 많고 가게는 더 많지 않습니까. 다들 연줄 하나씩은 잡고 있으니 우리도 활로를 찾으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평주였다면, 임근용은 자기 가게에서 파는 괜찮은 물건들을 들고 여러 집안 안식구들의 꽃구경이나 다과회 같은 곳에 참석해 자연스럽게 물건을 선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경성에서 그녀가 왕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말단 관료의 가족들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대부분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절대 이런 물건들을 쓸 수 없었다. 임근용이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혹은 그런 집안 연회에 이런 물건들을 들고 가서 선을 보이는 건, 장님에게 추파를 던지는 짓이나 다름없어서 괜히 남의 반감만 사게 될지도 몰랐다.
임근용은 턱을 괴고 한참 동안 생각해보다가 요탁에게 지시했다.
“정교하고 쓸 만한 물건을 몇 개 골라서 나한테 보내. 예를 들면 왜국의 채색 회선(*桧扇: 전나무 부채), 화접선(*画摺扇: 그림이 그려진 접는 부채), 송선(*松扇: 소나무 부채) 같은 것들 말이야. 내가 이소야한테 쉬는 날 상국사(相国寺)쪽으로 한 번 놀러 가자고 해 볼게. 넌 앞으로 그쪽에 사람을 보내서 노점을 열고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게 좋은 물건들을 펼쳐놔.”
민간에서는 여름날에 19일~29일은 부채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부채는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제일 유행하는 장신구였고, 사람들은 이 부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했다. 누군가의 취향, 품격, 신분 등이 전부 그 사람 손에 들려 있는 부채에서 드러났다. 임근용이 무슨 경국지색의 절세미인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곱고 우아한 자태를 가지고 있어서 예쁜 부채까지 들고 있으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될 것이 분명했다. 상국사는 한 달에 다섯 번 개방해 백성들이 안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경성의 희귀한 물건들은 전부 거기에 몰려들어서, 많은 부잣집 여인들이 매번 구경하러 왔다. 임근용은 몇몇 중요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만 있으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요탁은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고 얼른 돌아가서 물건을 골라 저녁 무렵쯤에 예쁜 부채 몇 개를 집으로 보냈다. 그가 보낸 것들 중에 왜선(*倭扇: 일본풍 접이 부채)이 두 자루 있었는데, 그중 한 자루는 금칠병(*琴漆柄: 나무로 만든 부채 손잡이)에 두꺼운 암청색 종이가 붙어 있었고 연분홍색으로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가까운 기슭에는 시든 갈대와 여뀌(*蓼: 버들가지처럼 생긴 식물)가, 하늘에는 약간의 구름과 날아다니는 새가 그려져 있어서 정취가 오묘하고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다른 하나는 은으로 도금한 부채 자루에 34개의 얇은 향나무 부채 살을 실로 꿴 것이었다. 부채 면을 운모(云母)를 칠하고 그 위에 금박과 은박을 붙인 다음 중간에는 모래알로 장식해 모래톱 위에 피어 있는 매화와 외바퀴 수레, 한 쌍의 반딧불이를 그려 냈다. 또 송선도 두 자루 있었는데, 소나무 살을 실처럼 가늘게 잘라 붙이고 정교하게 엮어 만든 물건들이었다. 한 자루에는 한 쌍의 난새 무늬가, 다른 한 자루에는 설산의 송학이 그려져 있었다.
임근용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두아와 시녀들을 불러 부채에 어떤 장식과 술을 다는 게 좋을지 의논했다.
집에 돌아온 육함은 집안에서 들리는 웃고 떠드는 소리에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재미난 일이 있기에 이렇게 신이 난 거요?”
두아를 비롯한 시녀들은 그가 방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약속이나 한 듯 물러갔다.
임근용이 웃으며 부채를 그에게 건넸다.
“이것 좀 봐요, 예전에 시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난새 단화 부채랑 비슷하지 않아요?”
일전에 육건신이 보낸 하지절 선물 중에 난새 단화 부채 두 자루가 있었는데 육 노부인이 그걸 임옥진과 려씨에게 주자 여씨가 배가 아파 죽으려 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임근용은 아직 새신부여서 내심 부러우면서도 감히 탐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자기가 이런 물건을 팔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육함이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것보다 이게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구려.”
그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른 두 개의 왜선에 눈길을 돌리더니 칭찬을 늘어놓으며 손에서 놓지 못했다.
“화법이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군. 무척 호화로워서 사람들 확 눈에 띄겠소.”
임근용이 약간 의기양양해하며 말했다.
“전부 우리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이에요. 요탁이 사람들을 시켜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이런 물건이 있는 집은 몇 군데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회선(桧扇)을 만지며 말했다.
“당신, 이 부채가 얼만 줄 알아요?”
육함이 대충 어림짐작하며 말했다.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면 아마 몇 만 전은 할 것 같은데?”
임근용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한 자루를 팔았는데 8만 전을 받았어요. 사 간 사람도 궁중에 공물로나 들어가는 희귀한 물건을 아주 싸게 잘 샀다며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사실 왜인(倭人)한테서 사 올 때는 이삼만 전밖에 안 준 거예요.”
육함은 잠시 멍해졌다가 말했다.
“역시 이윤이 많이 남는군.”
임근용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 쉬는 날, 나랑 같이 상국사에 가 줄 수 있어요?”
육함이 대답 없이 그녀를 응시하자 임근용이 말했다.
“그냥 기분 전환을 하러 가자는 거지, 부채 장사 하러 가자는 거 아니에요. 설마 내가 당신 체면 깎아 먹을 짓을 할까요.”
임근용은 그저 이 부채를 들고 부녀자들이 많은 곳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와서 물으면 어디서 샀는지만 알려 주면 그만이었다.
육함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를 했다.
“배고프군.”
평주에서는 육씨 가문이 장사를 한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어서 육함이 마음껏 돌아다니며 집안에서 운영하는 가게들을 관리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여기는 또 달랐다. 경성에서 그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그의 동료들이었고, 그중에는 고리타분한 서생도 적지 않았다. 체면을 차리길 좋아하는 육함이 창피를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임근용은 들고 있던 부채를 내려놓고 밥상을 차리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