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들은 임근용이 미리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육건중과 송씨는 내심 깜짝 놀라며 육경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행적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들은 화가 치밀었지만 절대 그렇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육건중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어디 함부로 생트집을 잡느냐! 셋째는 줄곧 바깥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미처 상복을 입지 못한 것뿐이다. 설마 외출을 했다고 효를 다하지 않는다며 트집을 잡는 것이냐?”
임옥진이 말했다.
“상복을 입지 않은 것도, 외출을 한 것도 다 잘못은 아니지요. 하지만 이런 때에 남몰래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면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차남가는 식구가 많아서 그런가 정말 세력도 크네요.”
육건립은 이 말에 자극을 받아 고개를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긴말 할 필요 없어요. 이 일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고 우리 육씨 가문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지금 즉시 가문 어르신들 앞에 가서 유언장을 읽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후의 일을 처리해요!”
육건중이 말했다.
“셋째 너 감히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거야? 큰형님도 아직 집에 안 오셨고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여자들 말을 듣고 이리 소란을 피우다니. 무슨 사후의 일을 처리한단 말이냐. 남들 앞에서 우리 집안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어머니께서 화병으로 쓰러지게 하고 싶으냐?”
육건립이 말했다.
“큰형님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예요. 어머니와 큰형수, 둘째 조카며느리가 여기 있잖아요. 가문 어르신들과 의랑이도 있고요! 이 일을 하는 것이 우스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소란을 피운 게 우스운 거고 그거야말로 큰 불효라고요! 둘째 형님이 원치 않아도 난 지금 당장 나가서 가문 어르신과 친지들 앞에서 이 유언장을 읽을 거예요!”
이런 강경한 태도를 좋아하는 임옥진이 즉시 그의 말에 찬성했다.
“삼노야도 역시 바보는 아니셨네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방 마마에게 지시했다.
“당장 사람을 보내 가문 어르신들을 모셔와.”
그녀는 또 임 이노야에게 가문 어르신들 쪽에 가서 좀 지켜봐 달라고 말을 전하라 하고 삼남가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사람을 붙여 주겠다고 말했다.
장남가와 삼남가가 힘을 합쳐 차남가에 대항하고 있었고 범포 역시 그들 편에 서 있었다. 임옥진이 여기에 임씨 가문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려 하자 육건중이 길길이 날뛰며 말했다.
“우리 집안일에 임씨 가문 사람들은 왜 끼어드는데요?”
임옥진이 말했다.
“원래는 끼어들면 안 되지만, 이노야를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알죠? 방금 육경이 뭘 하려고 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이노야, 또 무슨 소란을 피울 생각이라면, 그땐 나도 그쪽 체면을 봐 줄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거들먹거리며 임근용을 불렀다.
“가자, 가서 네 큰 어머니한테 인사하자꾸나!”
그녀는 두 걸음 정도 떼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셋째 동서, 같이 갈래? 삼노야, 수고스럽겠지만 노야가 우리 친정 오라버니들 좀 챙겨 주세요. 이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지 누구 혼자만의 일이 아니잖아요.”
육건립이 범포를 힐끗 보고 대답했다.
“예, 형수님.”
임옥진이 큰소리로 말했다.
“삼노야, 몸조심해요.”
그러더니 또 방죽에게 지시했다.
“류오한테 와서 삼노야를 잘 지키라고 해라.”
육건립은 살짝 어리둥절해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허허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여씨가 머뭇거리는 걸 보고 임옥진이 귀밑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의랑이도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거야.”
여씨는 눈썹 끝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전 여기서 둘째 형님이랑 같이 있을게요. 안 그럼 둘째 형님 혼자 너무 고생이시잖아요?”
송씨가 어찌 여씨의 속셈을 모르겠는가? 그녀에게 달라붙어 염탐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송씨는 언짢은 기색으로 눈을 내리깔고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여씨는 빠른 걸음으로 재빨리 그녀의 뒤로 따라붙었다.
육건중은 어두운 얼굴로 임근용, 임옥진, 범포를 차례로 훑어본 뒤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임옥진은 “어휴” 하며 무겁게 의자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방 마마에게 사람을 불러 범포를 데려가 치료하라고 시키고 임근용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늘 일은 다 네가 하자는 대로 했어, 나중에…….”
임근용은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임옥진은 지금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이미 육함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육건신의 마음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그녀가 책임을 회피하면서 임근용에게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임옥진은 사실상 임근용의 보증을 원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엄숙하게 말했다.
“제가 의견을 낸 건 사실이지만, 다 우리 장남가와 의랑이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설령 우리가 뭔가 잘못했다 해도 아버님과 이소야가 우리를 탓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임옥진에게 아무런 보증도 해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임옥진에게 이런 대가를 치러야만 앞으로 수확이 있고, 지금은 흥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임옥진은 눈을 내리깔고 한참을 침묵하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네 할머님께 가 보자. 너도 네 어머니를 한참 못 봤잖아.”
임근용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두 고부는 서로 의지하며 영경거를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임근용은 오늘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자세히 떠올려 봤다. 갑자기 임옥진이 입을 열었다.
“의랑이를 영경거에 데려다 놓았니?”
“예.”
임근용이 어디로 가든 의랑은 그녀와 함께해야 했다.
임옥진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솔직히 거기가 네 집도 아니고 행동하기 불편하지 않겠니. 네가 바빠지면 아이를 돌보는 것도 힘들 테니 나한테 보내라, 내가 봐 주마.”
임근용은 의아해하다가 이내 거절했다.
“고모는 저보다 더 바쁘시잖아요. 의랑이는 그냥 영경거에 둘게요. 대부분은 제 시야가 닿는 곳에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임옥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도 아이를 보고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우리는 지금 차남가와 완전히 원수지간이 됐어. 네 둘째 숙부가 범포를 발로 차는 거 못 봤어?”
하지만 오늘 임옥진도 바쁜 건 마찬가지 아니였던가? 임근용이 눈을 들고 임옥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고모도 한가하시지 않잖아요. 만약 정말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의랑이는 며칠 외갓집으로 보낼 거예요.”
임옥진은 임근용이 의랑을 도씨에게 보내겠다고 하자 바로 기분 나빠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사람들이 법도도 모른다고 흉보면 어쩌려고?”
임근용이 말했다.
“의랑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외갓집에 간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 외갓집에 가서 며칠 지낸다고 해서 뭐가 문제겠어요. 더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고모 말씀대로 사람들 속을 가늠하기 어려우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외갓집에 데려다 놓는 게 제일 안전해요.”
임근용더러 임옥진과 도씨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녀는 당연히 도씨를 고를 것이다.
임옥진이 말했다.
“아이를 품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어? 더구나 의랑이는 먼 길을 달려와 이제 겨우 집에 도착했고, 아직 적응도 다 못 했잖니. 그런 아이한테 또 어미하고 떨어져 있으라 하다니, 아이가 울며 보챌 거란 생각은 안 해?”
임근용은 더 이상 그녀와 의랑의 거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제 말은 상황이 정말로 여의치 않을 때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고모께서 정말로 그렇게 걱정되시면 시간이 날 때 의랑이를 좀 더 많이 챙겨 주시면 되요. 지금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생각해봐야 할 때예요.”
임옥진은 반 정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용, 만약 네 할머님께서 원랑이와 호랑이처럼 의랑이도 데리고 가서 키우겠다고 하시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임근용이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며 말했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아이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면 전 끝까지 싸울 거예요. 고모, 무슨 말을 들으셨어요?”
임근용은 이 말을 하며 아주 냉랭한 눈빛으로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임옥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이러면 아이가 어찌 발전을 하겠니? 아무튼 사람들이 그냥 떠들어대는 소리 아니겠어?”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말했다.
“제 말이요, 할머님께서 몸이 그렇게 안 좋으신데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는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하시겠어요? 중간에서 누가 농간을 부리는 거 아니에요? 고모,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정말 가만 안 놔둘 거예요!”
임옥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가만 안 놔두면 어쩔 건데?”
빗방울 하나가 우산 끝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자 임근용은 집게손가락을 뻗어 물방울을 손가락 위로 살짝 받으며 가볍게 말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야죠.”
목숨을 걸고 싸울거라니! 임옥진의 동공이 확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문득 절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단단히 각오하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임근용은 지금 그녀와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방금 전에 육경 서방님이 몰래 측문으로 빠져나갔다고 한 건 제가 둘째 숙부를 압박하려고 지어낸 말이에요. 하지만 서신을 전하려 몰래 빠져나간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지금쯤이면 육건중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그가 얼마나 분노했을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임옥진은 다시 이 문제로 돌아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임근용이 말했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못된 짓을 딱 잡아내지는 못하더라도, 그쪽에서 만든 판을 깨서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게 만들어야죠. 앞길이 구만리니까 고모도 앞으로 되도록이면 이 일로 가문 어르신들과 얼굴을 붉히지 마세요.”
유언장을 가지고 있는 가문 어르신들이 차남가와 어떤 관계이든지 간에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해야지 단번에 적으로 돌려 미움을 사는 건 좋지 않았다.
임옥진이 못마땅해하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밥을 먹어도 한참 더 많이 먹었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이렇게 말하면서도 임옥진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약삭빠른 늙은이들에게 크게 한 방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경거에 도착해 마당에 들어서자 의랑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임근용은 임옥진을 내팽개치고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의랑은 반씨의 품에 안겨 뭐가 그리 슬픈지 주먹을 물고 울고 있었다. 도씨, 평씨, 두아가 장난감을 들고 한쪽 옆에 서서 필사적으로 그를 달래려 노력했지만 의랑은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