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 문책 (2)
“터무니없는 소리!”
육건중이 벌컥 화를 냈다.
“내가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게냐? 셋째야, 네가 좋은 사람 행세를 하고 싶대도 이건 아니지! 설마 그 시동 아이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 그 아이 눈이 멀기라도 했어?”
그의 말에 육건립은 반감이 확 솟구쳤다. 육건립은 그 시동 녀석이 육건중에게 무슨 말을 했든, 그 녀석이 누구의 사람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고 있는데도 누군가가 곁에서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화가 날 뿐이었다. 육건립도 육 노태야의 자식이었다. 차남가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건 정말로 사람을 무시하는 거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육건립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말했다.
“둘째 형님,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조급해하는 거예요? 그럼 나도 형님한테 하나만 물을게요. 형님은 그 시동 말을 믿어요, 아니면 내 말을 믿어요? 내 말을 안 믿을 거면 그냥 형님 마음대로 생각하면 되지 나한테 묻긴 왜 물어요?”
육건중은 이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 화를 꾹 눌러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좋아, 이 일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건 잠시 보류하기로 하자. 하나만 더 묻자, 어젯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깨신 적이 있어?”
육건중의 이 질문은 아주 교묘했다. 만약 임근용이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육건립의 대답에서 바로 진상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임근용, 임옥진, 범포가 전부 긴장한 눈빛으로 육건립을 응시했다. 방금 임근용은 육건중에게 육 노태야가 육건립에게 유언장을 주었다고 말하며 범포가 비밀 서랍에서 꺼내 육건립에게 주었다는 사실은 감췄다. 만약 육건립이 사실대로 말한다면 육건중은 범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 유언장을 범포가 위조했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지금 육건립이 육 노태야가 깬 적이 없다고 대답하면 육 노태야가 육건립에게 직접 그 유언장을 주었다는 말 또한 자동으로 거짓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육건립은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며 빨갛게 부은 눈으로 범포, 임근용, 임옥진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는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실마리라도 얻길 바랐다.
육건중이 이를 보고 냉소하며 말했다.
“셋째야,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바로 너잖아. 이게 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야? 혹시 뭔가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는 건 아니지?”
여씨가 목청을 가다듬고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또렷하게 말했다.
“둘째 아주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우리 바깥사람이 아버님을 해치기라도 했다는 말씀이세요? 아주버님께서도 방금 저 이가 성실하고 충직하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핍박하실 수가 있어요? 저희 삼남가가 힘이 없다고 얕잡아 보고 이렇게 괴롭히시는 건가요? 아버님, 제발 눈 좀 떠보세요……! 아버님 셋째 아들이 핍박을 받아 죽게 생겼습니다!”
육건중은 정신이 산란해 시끄러운 여씨의 입을 마핵으로 틀어막아 버리고 싶었다. 송씨가 심란해하는 그를 보고 여씨에게 말했다.
“셋째 동서, 이러지 마. 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 이렇게 울고불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여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애처롭게 울었다.
“내 팔자가 어찌 이리 고달플꼬……! 이렇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울지도 못하게 하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어머님한테 저 이가 어르신들 친아들이 맞느냐고 여쭤봐야겠네요……!”
육건립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닥치시오!”
여씨는 그가 이렇게 소리를 지른 건 처음이라 깜짝 놀라 절로 입을 다물고 눈을 껌뻑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예쁜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
“당신…….”
육건립이 여씨가 여태껏 본적이 없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예상 밖의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즉시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귓가가 조용해졌다. 육건립은 양손을 모으고 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둘째 형님은 내가 아버지한테 뭘 받았는지 묻고 싶은 거죠?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께서 유언장을 남기셨어요.”
그는 자세한 상황을 몰라 아예 말을 흐렸다.
육건중은 원래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속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온 신경이 다 그 유언장에 가 있는 상태였다. 그는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려 허둥대며 육건립에게 말했다.
“그럼 어젯밤에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왜 그 유언장을 여태 안 내놓은 건데?”
육건립이 분노한 눈으로 육건중을 바라보았다.
“둘째 형님, 지금 날 의심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돈 챙기는 데 혈안이라 슬퍼해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나보네요. 난 그런 불경한 짓은 못 해요. 아버지 대신 죽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정도로 슬픈데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었겠어요? 더구나 아버지께서는 이 유언장을 큰형님, 육함, 육륜이까지 전부 오기를 기다렸다가 중양절이 되었을 때 열어서 가문의 어르신들께서 가지고 계신 서신과 대조해 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마지막의 이 말은 당연히 육건립이 덧붙인 것이었다.
육건중이 잠시 생각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큰형님께서 돌아오신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임근용은 일을 질질 끌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육소가 제일 먼저 돌아올 것이고 그럼 차남가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 * *
육건신과 육함이 집에 돌아오는 건 빨라야 한 달 후였다. 정말로 그때까지 기다린다면 차남가는 숨을 고르고 움직일 기회를 포착할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변수가 크고 수지도 맞지 않는 짓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던가. 설령 차남가의 진짜 얼굴까지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는 만들어야 했다. 임근용이 임옥진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몇 마디 속삭였다.
임옥진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자꾸 가르치려 드는 임근용이 내심 짜증 났지만, 임근용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어서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삼노야! 이노야께서 얼마나 마음이 급하시면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을 끌고 와 죽이네 마네 하며 이 난리를 피웠겠어요. 그냥 말이 나온 김에 가문 어르신들 앞에서 공개해 버려요. 또 나쁜 맘을 먹고 사람을 해칠지 누가 알아요!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몰라보고 몇 달 동안 배 속에 품은 친자식이 잘못 되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삼노야께서 계속 그 유언장을 가지고 계시다가는 길 가다가 괜히 넘어지고, 정원을 구경하다가 그냥 물에 빠지고, 자다가 이유 없이 죽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임옥진이 가장 잘하는 짓이 바로 이런 짓이 아니던가? 그녀는 이렇게 억지를 부리며 사람 성질을 돋우고 아픈 곳만 골라 밟는 능력이 아주 탁월했다. 그녀의 이 말은 아주 신랄했다. 차남가가 재물을 탐해 그들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걸 대놓고 까발리고 있었다. 송씨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같은 표정을 유지했지만,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갔던 육건중은 노발대발하며 참지 못하고 분노와 원한을 쏟아냈다.
육건중이 화를 내며 말했다.
“큰형수께서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누가 나쁜 마음을 품고 사람을 해친단 말입니까?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 했어요! 방금 형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가만히 안 있겠다고? 육건중이 감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임옥진은 경멸 어린 눈빛으로 육건중을 바라보며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뭐 찔리는 거 있어요? 제가 서방님 이름이라도 말했나요? 내가 괜히 겁주려는 게 아니라 솔직히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방죽이가 전에 왜 물에 빠졌죠? 큰 조카며느리의 아이는 왜 유산됐죠? 하……. 그때 아버님께서 그래도 두 사람의 체면만은 지켜 주려 하시기에 우리도 그냥 아버님 뜻에 따라드린 것뿐이에요. 우리가 바보라 아무것도 몰라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고요.”
육건중은 그녀의 경멸에 몹시 화가 났지만, 그녀가 약점을 제대로 찌르는 바람에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세차게 소매를 뿌리치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처럼 악랄하고 말버릇이 고약한 막돼먹은 여자랑 똑같이 천박하게 굴 필요는 없지! 당신이 무슨 장남가의 주인도 아니고!”
그는 고개를 돌리고 육건립을 바라보며 말했다.
“셋째야, 큰형님이 집에 안 계시니 지금 우리 집안을 다스릴 사람은 너와 나 우리 형제 둘뿐이야. 말해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냐? 여자들이 하는 헛소리는 듣지 말고!”
그는 이 말로 또 다시 임근용 고부를 배제했다.
임옥진이 분노하며 말했다.
“삼노야, 긴말은 하지 않을게요. 당신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세요!”
육건립은 잠자코 있었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거나 이 일이 얼마나 위급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임근용이 앵두에게 눈짓하자 앵두가 임근용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임근용은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나가보라고 지시한 뒤 기침을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 숙부, 숙부님 말씀대로라면 여자는 집안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거네요. 그럼 우리 장남가 같이 아버님과 제 남편이 다 밖에 나가 있는 경우에는 무슨 일이든 둘째 숙부의 말을 따라야 하는 건가요? 숙부님 행동이 옳든 그르든 우리는 한 마디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세요?”
육건중은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둘째 조카며느리야, 철부지처럼 굴지 말거라. 어르신들 말씀하시는데 네가 어디 말참견을 하는 게냐. 네 시어머니를 말릴 생각은 안 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구나! 너희 임씨 가문은 문인 가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둘째 숙부님 말씀대로 저희 임씨 가문은 문인 가문이지요. 그래서 지금 제가 도리와 삼강오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더 크고 더 사나운 목소리로 말한다고 해서 옳은 건 아니니까요.”
임근용은 더는 육건중을 상대하지 않고 육건립을 보며 말했다.
“셋째 숙부, 평소에 즐겨 읽으시던 성현서(圣贤书)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해 주세요. 둘째 숙부가 저희 장남가의 주인 노릇을 하실 수 있나요? 의랑이는 장남가의 적손이지 않나요?”
사실 임근용이 육건립에게 묻는 건 따로 있었다. 육함이 육건립의 친자식이니 의랑이 또한 당연히 그의 친손자이지 않은가? 그럼 육건립도 그녀들 편에 서서 그녀들과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는가?
육건중이 냉소했다.
“의랑이는 아직 이도 나지 않은 젖먹이인데 뭘 안단 말이냐?”
임근용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저는 알지요! 아이의 할머니도 아시고요!”
육건중이 차갑게 비웃었다.
“두 사람이 아이를 대신해서 결정할 수는 없지!”
임근용이 기다리던 것이 바로 그의 이 한 마디였다.
“숙부님 말씀대로라면 할머님께서도 둘째 숙부를 대신해서 결정하실 수는 없겠네요? 숙부님 말씀은 이런 뜻이시죠? 둘째 숙부께서 말씀하시는 효도가 이런 건가요? 둘째 숙부께 또 하나 여쭤볼게요, 상복이 없는 것도 아닌데 육경 공자는 왜 손님 접대도 안 하고 상복도 안 입은 채로 사람들 몰래 측문으로 빠져나가셨을까요. 대체 어디 가서 뭘 하시려고요?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효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