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요염한
임옥진의 집에 도착하니 방 마마가 마중을 나와 속삭였다.
“몸이 안 좋으시다고 방에 누워 계세요. 일단 의원을 불러오라 했어요.”
임근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디가 안 좋으신데?”
얼마 전에 임옥진이 병이 나 드러누운 건 차남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지 정말로 병이 났던 건 아니었다. 차남가가 거침없이 더 많은 곳에 손을 뻗어야 나중에 그 손을 내리찍기도 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육건신이 돌아올 때가 되어 이렇게 드러누운 건 아마 병을 핑계로 육건신에게 기분 나쁜 내색을 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지금 임옥진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임근용 한 사람뿐이었다. 방 마마가 심장 쪽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불편하신거죠. 이소부인께서 잘 좀 위로해 주세요. 추화원 쪽은…….대노야께서 돌아오셔서 그 꼴을 보시고 또 옆에서 사람들이 부추겨대기까지 하면 정말 사달이 날 수도 있어요.”
임근용이 말했다.
“알았어, 마마가 들어가서 어머니께 의랑이랑 내가 문안을 드리러 왔다고 말씀드려 줘.”
방 마마는 그녀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얼른 들어가 말을 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에서 임옥진의 무기력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해라.”
임근용은 반씨 등을 세워두고 의랑을 안고 안으로 들어가 웃으며 말했다.
“의랑이가 할머니께 문안드리러 왔어요. 고모, 좀 괜찮으세요?”
임옥진은 아파서 기력이 없는 듯 큰 베개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녀는 짜증이 나서 임근용에게 성질을 부리고 싶었지만 의랑이한테까지 그럴 수 없어 마지못해 미소 지었다.
“우리 착한 의랑이, 할머니가 한 번 안아 보게 이리 와 봐라.”
임근용이 의랑을 임옥진의 품에 안겨 주자, 의랑은 임옥진의 손가락을 잡고 그녀의 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그녀의 손에 침을 흘렸다.
임옥진은 더럽다며 싫어하지 않고 직접 손수건을 꺼내 침을 닦은 뒤 의랑의 입까지 닦아 주며 담담하게 임근용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말리러 온 거면 아무 말도 하지 마.”
임근용이 말했다.
“제가 고모를 왜 말리겠어요. 고모께서도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저같이 어린 사람이 어르신들의 일에 관여할 수 있나요.”
임옥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다 생각이 있지.”
임근용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소야는 오늘 밤 할아버님 영전을 지킬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 줬는데 쓰려고 하지를 않네요.”
임옥진은 콧방귀를 뀌며 육함이 멍청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려다가 결국 말을 바꿨다.
“할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그런 거겠지.”
“누가 아니라 하겠어요? 할아버님께서 이소야한테 정말 잘해 주셨으니 이소야도 그 은혜를 알고 보답하려는 거겠죠.”
임근용은 임옥진의 얼굴색이 변하는 걸 보고 얼른 말했다.
“우리 의랑이도 자기 아버지가 이렇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배워서 앞으로 자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효도했으면 좋겠네요.”
임옥진의 안색이 약간 누그러졌다. 그녀는 의랑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네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린 거 아니겠니. 네가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안다만, 그 어떤 것보다 덕행이 가장 중요한 거라는 걸 잊으면 안 되는 게야.”
임옥진은 육함과 자신의 관계가 지금 얼마나 경색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임근용과 의랑에게 기대를 걸지 않으면 또 누구에게 기대를 걸 수 있겠는가? 임옥진은 임근용의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임근용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고모 말씀이 맞아요. 고모, 아버님 마중을 나갈 때 의랑이를 데리고 가는 게 좋을까요?”
임옥진이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너 좋을 대로 해라. 아직 어린아이인데 찬바람이 불고 벌써 깊게 잠이 들어 못 데리고 나왔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니.”
임근용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나가는 게 예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험담해대는 거야 상관없지만, 시아버지께서 제가 법도도 모른다고 하실까 봐 걱정돼서 여쭤본 거예요. 저희 부모님께서 절 제대로 못 가르쳤다고 꾸짖으시면 의랑이까지 같이 체면이 상하는 거잖아요.”
임옥진이 정색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임근용은 의랑을 건네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일단 아이를 데려다 놓고 왜 아직도 의원이 안 오는지 확인해 볼게요.”
임옥진이 말했다.
“그 쌍년이 아까 한 말은 무슨 뜻이냐?”
임옥진이 이렇게 먼저 송씨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녀의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는 걸 의미했다. 임근용이 재빨리 대답했다.
“당연히 불안해서 고모를 기분 나쁘게 만들려는 수작이죠. 고모께서 고모부와 싸우고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지면 둘째 숙모께서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임옥진이 냉소했다.
“뱀 같이 악독한 여자가 들어와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구나. 그런 년은 절대 곱게 죽지는 못할 거야.”
임근용은 누가 곱게 죽네 마네 해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전에 고모께서도 아운이한테 첩은 그냥 개나 닭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하셨잖아요. 이런 일로 화를 내시며 드러누우시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요. 고모는 문인 집안 출신의 정당한 정실부인이시고, 황제로부터 봉호도 받은 부인이시잖아요. 또 시아버님과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내시며 자식과 손자를 두셨고, 집에서 이렇게 시부모님을 모시며 효까지 다하고 계시는데 대체 누가 고모를 건드릴 수 있겠어요?”
임옥진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런 일 때문에 꾀병을 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귀밑머리를 어루만지고 말했다.
“너도 날 그렇게까지 얕잡아 보지 마. 그런 천한 첩들이 뭐가 대수라고? 내가 어디 안중에나 둘 것 같아? 내 발톱에 때만도 못한 것들인데!”
그러더니 방 마마에게 지시했다.
“몸단장을 해야겠으니 들어오너라. 그리고 대노야께서 드실 따뜻한 밥과 국도 준비해 두라 일러라.”
임근용은 그녀가 추화원 쪽의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지 않고 계속 앉아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무렵이 되자 방령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말했다.
“부인, 대노야께서 곧 도착하실 거예요! 이소야께서 벌써 대문 쪽으로 마중 나가셨어요.”
임근용이 얼른 의랑을 반씨에게 안기고 직접 임옥진을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중문 근처에 도착하니 육건중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미 전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송씨는 고부 두 사람이 오는 걸 보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들을 힐끗 보았다.
두 대의 마차가 중문 밖에 멈춰 섰다. 육함이 다가가 첫 번째 차의 문을 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아버지께 인사 올립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조악한 상복을 입은 육건신은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었고, 수염도 길었다. 그는 육함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더니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확인하더니 갑자기 팔을 벌리며 육건중과 육건립에게 말했다.
“둘째야, 셋째야…….”
두 사람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육건신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곧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버지! 아들이 불효자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아가며 그를 말렸다. 임근용이 천천히 뒤따라가며 고개를 돌려보니, 뒤에 있는 노세 마차에서 상복을 입은 두 명의 아리따운 여자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은 고개를 숙이고 마차 옆에 서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임근용이 그녀들을 바라보자 그녀들은 임근용의 환심을 사려는 듯 웃으며 인사를 했다. 행동이 마치 가늘고 부드러운 버들가지처럼 요염했다.
임근용은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방죽에게 지시했다.
“두 사람을 안내해주고 잘 대접해 줘. 따뜻한 국과 밥을 가져다주고 함부로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
방죽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활짝 웃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일행은 몇 명인지, 짐은 어디에 두었는지 물은 뒤 재빨리 시녀들을 지휘해 두 사람의 짐을 옮기고 추화원으로 데려갔다.
임근용은 반씨에게 의랑을 데리고 들어가라고 지시한 뒤 사람들을 따라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육건신의 소란스러운 울음소리를 따라 다시 빈소로 향했다. 육건신은 빈소에 도착하자마자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하더니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슬퍼했다. 이에 육건중을 비롯한 사람들도 또 한바탕 울음이 터졌다.
하인들을 비롯해 주변에서 돕고 있던 친척, 친구들은 이런 육건신을 보고 다들 그가 정말 효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생을 살고 있는 임근용의 생각은 달랐다. 육건신은 연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밖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가 부모상이라는 실에 당겨져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마 그는 정말로 낙담해서 울고 있을 것이다.
물론 육건신은 겉으로는 늘 잘했다. 각종 절기와 명절 때마다 항상 집으로 선물을 보냈고 한 번도 빼먹거나 늦은 적이 없었다. 그는 매달 한 번씩 집으로 서신을 보내 노부모의 건강을 묻고 수시로 진귀한 약재를 챙겨 보냈다. 육건신은 육함과 육운에 대해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종종 육함의 학업이 어떤지 묻고 육운의 혼인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육함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육함에게 편지로 경성에 있는 그의 지인들을 소개해 주며 가서 인사하고 왕래하라 말했고 또 어떤 사람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의랑이 태어났을 때도 인편에 선물을 보내며 기쁨과 관심을 표현했다. 집으로 가져온 재물 중에는 따로 임옥진을 위해 준비한 선물도 있었다.
하지만 육건신은 가정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나 그리움이 거의 없었다. 그는 육함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육함은 비록 이 집을 싫어하며 하루 빨리 독립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정말로 이 집을 버리거나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이건 전부 임근용의 직감일 뿐이었지만 전생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합치면 임근용은 더더욱 육건신에게 호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멀리 떨어져 군중 속에서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임옥진도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쪽에서 계속 울었다. 그녀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며 효심을 보일 기회가 있을까 싶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거침없이 펑펑 울어 재꼈다.
육건중은 눈물을 흘리며 육건신을 훔쳐보고 있었고 육건립은 울면서 육건신을 말렸다. 송씨는 다소 초조한 듯 수시로 임옥진, 임근용, 육함의 표정을 살폈다. 여씨는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지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가끔씩 흐느낄 뿐이었다. 진심으로 울고 있는 육함과 육륜을 제외하고, 육소 세대의 형제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우는 행세를 하고 있긴 했지만 정말로 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략 반 시진 정도가 지났는데도 육건신이 여전히 울고 있자 사람들은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특히 관절염이 있는 육건중은 더더욱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가 육건신에게 다가가 만류하자 육건립도 나와 말렸다. 하지만 육건신은 들으려 하지 않고 울며 말했다.
“너무 죄송해서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구나. 난 정말 불효자야. 아버지 영전 앞에서라도 효도를 다할 수 있게 해 줘. 둘째랑 셋째 너희는 할 일이 있으면 먼저 가 봐. 난 신경 쓰지 말고.”
그러더니 다시 한 번 긴 울음을 내뱉으며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맏형인 그가 이러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찌 감히 움직이겠는가? 목숨을 걸고라도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