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34
533화. 비적의 습격 (2)
임 노태야는 위풍당당하게 육씨 가문의 정당에 앉아 사람들로부터 바깥 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가 오랫동안 관료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고분고분 그의 명령을 따르며 서로 힘을 합쳐 비적들의 첫 번째 공격을 막아냈다.
고택은 마치 어두운 밤에 한쪽에 자리 잡고 있은 난공불락의 성 같았다. 횃불을 던져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무거운 돌로 봉한 대문은 담벼락과 맞먹을 정도로 단단했다. 이에 비적들이 고택 밖에 있는 집들에 불을 지르며 큰소리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임근용은 임옥진과 함께 육씨 가문 친척들 앞으로 가서 육씨 가문 고택의 방과 곡식 창고는 계속 친척들에게 개방할 것이며 절대 그들이 추위나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해야 할 일들을 다 끝낸 임근용은 잠시 그늘에 숨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육함과 육건신은 아직까지도 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 비적들을 마주쳐 벌써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그녀는 온갖 나쁜 상상이 머릿속에 꽉 차서 초조하고 절망스럽고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어떤 거대한 힘이 치솟아 그녀를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근용은 뾰족하게 깎은 대나무 꼬챙이처럼 땅에 단단히 박혀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 없었다.
* * *
어두운 밤, 말이 무거운 숨소리를 내며 구덩이에 빠진 마차를 끌어내려 필사적으로 앞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육함은 진땀을 흘리며 장수와 사람들을 지휘해 나뭇가지로 만든 지렛대를 바퀴 아래에 꽂고 구호를 외쳤다.
“하나, 둘, 셋, 힘 줘!”
마차가 무거운 괴성을 지르며 힘겹게 앞으로 살짝 움직였다. 육함이 큰소리로 외쳤다.
“한 번만 더, 힘 줘!”
육함은 옆에 있던 하인이 비틀거리며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는 걸 보고 그를 밀어내고 그가 메고 있던 밧줄을 받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최대한 부드럽고 가볍게 마차를 구덩이에서 끌어 올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려 노력했음에도 마차는 격렬하게 흔들린 후에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이에 육건신이 분노하며 오열했다.
육함에게는 지금 그를 위로해 줄 여력이 없었다. 그는 육씨 가문 고택 쪽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응시했다. 이 길은 원래 아주 평탄한 길이었는데, 웬일인지 이렇게 크고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더구나 누군가가 구덩이 위에 대나무 돗자리를 덮어 위장까지 해 둔 상태였다. 이 구덩이를 판 사람의 목적이 대체 무엇인지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육씨 가문 고택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땀을 닦다가 구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소를 보고 낮게 욕을 했다.
“젠장, 어떤 육시랄 놈이 이따위 되먹지 못한 짓을 한 건지, 구덩이를 어찌나 크고 깊게 파놨는지 마차가 몽땅 다 빠졌잖아요.”
그러더니 또 한편으로 다행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오는 길에 강도는 안 만나서 다행이네요. 근데 이 구덩이는 왜 파놨을까요?”
육함이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몇 시쯤 됐어?”
주견복이 하늘빛을 살피더니 미심쩍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삼경쯤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마차를 구덩이에서 꺼내는 데 쓴 시간보다 꺼내는 데 쓸 도구들을 찾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육함이 말했다.
“이제 길을 재촉해야겠다.”
그런데 하인 하나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소야, 저기 좀 보세요!”
육함이 눈을 들어 보니 육씨 가문 고택이 있는 쪽의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육함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날개를 달고 고택으로 날아가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제 임근용에게서 소식을 듣고 온 사람이 육건중과 육경이 육 노부인과 일부 하인들을 데리고 그저께 고택을 떠나 태명부로 갔다고 전했다. 친척들 중 청장년층의 사람들과 가산이 풍부해 하인들을 거느린 사람들도 대부분 그들을 따라 떠났다고 말했다. 즉, 지금 고택에는 노약자와 부녀자들 그리고 이곳의 사람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임씨 가문 사람들만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육함은 상상만 해도 너무나 두렵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육건신도 그 말을 듣고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쪽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는 그저 초조한 목소리로 끙끙댈 뿐이었다. 육함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 고택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아마 비적들한테 포위당했을 거예요. 좀 더 속도를 내야겠어요. 고택 근처에 도착하면 일단 아버지를 숨겨두고 제가 먼저 가서 상황이 어떤지 살펴볼게요.”
육건신은 처음에는 눈을 깜빡이며 동의하는 듯했지만, 금세 생각이 바뀌어 “우우…….” 하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벌써 비적들에게 포위된 거라면 몇 명 되지도 않는 그들이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건 그냥 헛되이 목숨을 버리는 짓이 아니겠는가!
육함은 말없이 육건신을 응시했다. 그는 육건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육건신은 그가 자신을 버리고 갈까 봐 걱정했고, 그것보다 더 걱정하는 건 혼자 있을 때 혹시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육건신은 자기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걸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택에는 육건신과 반평생을 같이 산 임옥진뿐만 아니라 그의 친형제도 남아있었다…….
육함은 고개를 돌리고 육건신의 뜻을 모르는 척하며 단호하게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더는 큰길로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길로 돌아가자. 여기서 앞으로 수 십 장 정도 가다 큰길로 내려가서 밭을 가로지르면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있어. 그 길은 고택의 후문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야.”
육함이 기억하기로 그 길의 끝에 고택의 비밀 문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육소, 육경, 육륜과 함께 그 문을 통해 몰래 밖으로 나가 놀았던 적이 있었다.
육건신은 자신의 반대 의사가 전혀 먹혀들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는 육함이 그를 데리고 큰길가로 내려가 밀밭을 가로지르는 걸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밀밭이 울퉁불퉁한 데다 마차를 끄는 것도 소에서 말로 바뀌어 마차는 움직일 때마다 격하게 흔들렸다. 육건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분개해 소리를 질렀다.
육함이 마차를 멈추고 주변에 있는 모든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모아 육건신의 몸 아래에 깔았다. 또 주견복과 장수에게 마차에 올라타 그의 몸이 움직이지 않게 잘 잡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육함은 이를 악물고 상대적으로 평탄한 길을 고르며 계속 앞으로 전진하라 지시했다. 일행은 말없이 밀 맡을 가로질렀고 차를 두 잔 정도 마실 시간이 지나자 이내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여기도 도로 상황이 그다지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밀밭보다는 훨씬 나았다. 다만 회전을 할 때는 아무리 조심해도 마차 바퀴가 밭두렁에 부딪히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육함이 문발을 걷고 고개를 들이밀어 육건신을 살폈다. 그는 걸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육건신에게 바깥의 상황을 보고했다.
“아버지, 이제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으니 더는 아까처럼 흔들릴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속도로 가면 아마 한 시간 정도 후에 고택에 도착할 것 같아요. 제 기억에 그 부근에 버려진 토지신의 사당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일단 거기 숨어 계세요. 주견복이랑 하인 몇 명을 아버지 곁에 두고 갈게요.”
육건신이 “헉헉” 하며 노성을 내질렀다.
“알았어요, 아버지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랑 가족들이 고생하시지 않도록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 상황이 괜찮아지면 곧바로 모시러 올게요.”
육함은 만약 육건신이 지금 움직일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를 때리며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욕하고 길길이 날뛰었을 거라 확신했다.
육건신이 더욱더 심하게 고함을 질러댔다. 주견복은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육건신이 지금 그에게 화를 내며 육함을 막으라고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야, 대노야도 급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소야께서 둘 정도 데리고 먼저 앞장을 서시고 노비가 마차를 몰고 뒤에서 따라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육건신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낮아지며 흐느낌으로 변했다.
육함이 잠시 침묵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빨리 갔다 오는 게 더 나아.”
그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문발을 내리고 사람들에게 고택에 도착한 뒤 각자 무엇을 해야할지 하나하나 지시했다.
육씨 가문 고택과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밝아지는 걸 보니 고택에 불이 난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다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 말없이 걸음만 재촉했다. 모두들 아직 고택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할 수만 있으면 날아서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육건신은 육함이 주견복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가 버리겠다고 한 뒤로 계속 침묵했다.
또 차를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를 걷자 말을 탄 사람 하나가 도깨비처럼 갑자기 도로 한복판에 나타났다. 빛을 등지고 있어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체격이 우람한 것만은 확실했다. 그는 손에 긴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말 위에서 칼을 도로에 꽂자 모두들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일행들은 그가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육함이 작은 목소리로 즉시 마차를 세우라 지시했다. 곧이어 일행들은 각자 몸에 지니고 있던 무기를 꺼내 마차 주위를 호위하며 조용히 최적의 공격 시점을 기다렸다.
좁은 길에서 싸우면 더 용감한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까짓것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니겠는가!
장수가 숨을 들이마시고 크게 소리 지르며 손에 든 칼을 높이 들고 용감하게 먼저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그가 가볍게 칼을 휘두르며 장수를 땅에 내동댕이쳤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육함이 장수를 막으려 입을 열기도 전에 장수는 벌써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혈기가 갑자기 확 끌어 오르며 뜨거운 피가 머리로 치솟았다. 육함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크게 소리쳤다.
“목숨을 다해 싸워라!”
그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칼을 들고 돌진했다.
주인도 저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데 하인들이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목숨을 걸고 싸우면 살아날 길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냥 죽은 목숨이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육함과 함께 달려들자 그가 말고삐를 틀어 재빨리 뒤로 물러서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다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장수 너 왜 찍소리도 안 해! 칼등에 맞아서 죽기라도 했냐?”
이 목소리! 이 말투! 이 말! 육함은 깜짝 놀라 곧바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하늘가에 아직 남아 있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살펴보니 낯익은 그림자와 눈빛을 한 울퉁불퉁하고 흉측한 얼굴이 보였다!
“이소야, 소인은 괜찮아요.”
방금 전까지 땅에 고꾸라져 있던 장수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장수가 그를 향해 구르듯 달려가더니 고삐를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맞죠? 오공자 맞으시죠? 그쵸? 우리가 힘들어하는 걸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서 저승에서 우릴 구하러 오신 거죠?”
육함의 귀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와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퉤! 역시 개는 개소리 밖에 못 한다니까, 저리 꺼져!”
그가 말고삐를 당기자 말이 불안한 듯 발굽으로 땅을 긁는 통에 장수는 하마터면 떠밀려 넘어질 뻔했다. 장수가 떼를 쓰듯 그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애걸복걸했다.
“오공자, 공자께서 사람이든 귀신이든 상관없으니 제발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