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88)
189화 우리 형
슈아아아아.
수호시티로 돌아온 수호를 김미소가 맞이했다.
하나둘 내리는 사람들을 보다가 미소가 의아한 듯 물었다.
“명진 스님은요?”
“아, 이제 못 볼 거야.”
“네에?”
김미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너무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 어쩌다가…….”
이 소식을 명조 스님에게 뭐라고 전하지?
벌써 눈물까지 맺힌 김미소를 보며 한동수가 서둘러 수습했다.
“자, 잠깐! 대만에 남았어요.”
“살, 살아 있는 거죠?”
“당연하죠!”
김미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수호를 찌릿 쳐다봤다.
“왜? 뭐?”
“나빠요, 정말.”
김미소는 안도하며,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독립한대. 다 키웠어, 아주.”
“……?”
수호가 그리 말하고 훌쩍 매로 변신해 날아가 버렸다.
김미소가 의아한 얼굴로 동수를 보았다.
“어, 그게…….”
동수가 약탈자들과 명진의 심리적 갈등 등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불쌍해서 남은 거잖아요. 자립하는 순간 다시 돌아오는 거 아녜요?”
“그렇죠.”
“독립은 무슨…….”
인재 유출은 막았다.
김미소는 안도하고는 본래의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한 이사는 영상 변환하고 쉬도록 하세요.”
“네.”
고작 삼 일 남짓한 기간의 영상이지만 큰 사건이다.
각 나라, 도시들이 다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급급한 상황에서 암울한 타이베이를 구한 대 업적이다.
영상이 채널에 올라가는 순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수호시티.
내성의 동쪽 밖은 본디 봉림사의 영역이었다.
내성 밖에 있었지만, 기자들을 차단하느라고 작은 나무 방벽을 둘러쳐버려, 내성을 통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들어올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이 되었다.
넓은 부지에 사람 사는 곳이라곤 봉림사 건물 몇 개가 전부였던 그곳에 새로운 이웃이 생겼다.
“이곳이 이제 너희가 머무르게 될 공간이다.”
“네, 사숙.”
열다섯의 아미파 여승들 중에 가장 고수는 태사신니지만, 그녀는 문파 일에서 한발 벗어난 장로 같은 존재다.
“정해의 분타주 취임식을 곧장 하자꾸나. 나는 분타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네, 사숙.”
태사신니를 제외하고 죄다 한 배분 낮은 정 자 돌림의 제자들이다.
그중에 정해는 장문인의 네 번째 제자로.
무림의 명운이 걸린 지구의 아미파 분타주로 낙점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후기지수라고 불리기엔 이미 불혹이 넘은 나이지만, 초절정의 수준에 올랐으니 혈마의 요구에 구색은 갖춘 셈이다.
태사신니는 마지막으로 정심을 보았다.
“그리고 정심의 환속도 진행하겠다.”
“사숙!”
어린 사매인 정심을 아꼈던 사저들이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태사신니는 단호했다.
이미 혈마가 점찍었으니 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서운할 것 없다. 정심은 이후에도 아미파의 속가제자로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태사신니의 말에 정해가 우려했다.
“아미에 속가를 두는 일은 전례에 없습니다.”
“나까지 환속하랴?”
“사숙!”
“전례야 만들어지면 되는 일이고, 최초야 언제든 일어날 일이다.”
“…….”
태사신니는 앞으로 지구 분타의 장이 될 정해를 위해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내 이미 장문인과는 이야기가 되었다. 더는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거라.”
“네, 사숙.”
아미파 고수들은 간단히 정해의 분타주 취임식을 진행하고, 정심의 환속을 마쳤다.
“취아야.”
“어색합니다. 사저.”
“이제 어찌 네 사저란 말이냐.”
“정순의 말은 틀렸다. 속가도 제자이니 배분으로 치면 여전히 우리 사매가 아니더냐?”
“정요 사매의 말도 맞네그려.”
나이 많은 사저들이 그리 말해주자, 취아는 뭉클한 심정에 눈물이 배어났다.
“그런데 사매의 아버지는 어디 계시느냐?”
정해의 물음에 나머지 사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심이 환속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아버지께서는 지금 사장님과 함께 이웃 나라의 백성들을 구하러 가셨습니다.”
“으음? 사장이 뭐니?”
“교주 같은 거예요.”
“음?”
“설마 혈마가!”
사형제들은 사장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한 것보다 그 행위에 더 놀랐다.
“혈마가 백성을 구해?”
“세상에!”
장취아의 아버지가 누군가?
혈겁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이자 혈마의 부하다.
“그 말이 정말이니?”
“네…….”
장취아는 혈마도 사실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를 옹호하기엔 죽은 무림의 고수들이 너무 많았다.
아미파 고수들은 믿기지 않는 듯 저마다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결국 태사신니를 보았다.
태사신니는 사질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정심을 빼고 혈마를 직접 목도한 자가 있더냐?”
“…….”
“겪어 보지 못한 일에 공연히 마음 쓰지 말거라.”
“하오나, 겪지 못했다 하여 어찌 혈겁을 그냥 넘어가나이까?”
전 무림이 타격을 입은 사건이다.
균형추가 하나 사라져 마몬족에게 속절없이 밀릴 정도의 피해를 입은 대 사건이다.
“은원이 어디 복수만 있더냐?”
“하오나.”
“되었다.”
더 말하려는 사질의 입을 윽박질러 막았다.
“강호의 도리가 어디 윤리를 따르더냐?”
결국엔 힘을 따른다.
혈마도 장순필의 복수를 위해 남궁가를 멸했고, 무림이 복수 대신 고개를 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힘이 있으면 행하고, 힘이 없으면 행하지 못한다.
“어찌 탓만 할쏘냐? 이번 혈겁에 전혀 거든 것이 없는 아미파는 말할 자격도 없느니라.”
태사신니가 나서서 그리 말하니 아미파 제자들은 더 말할 수 없었다.
아닌 말로 혈겁 때는 조용히 있다가 끝이 나니 떠들어대는 꼴이다.
지리적 여건상 혈겁을 운 좋게 피해 갔을 뿐이다.
태사신니는 여러 사질들을 뒤로하고, 거멓게 얼굴이 죽어있는 장취아의 손을 잡았다.
“마음 쓰지 말거라.”
“…….”
좀처럼 표정이 풀리지 않는 취아를 보곤 여러 정 자 배 제자들이 그제야 실수를 알아차렸다.
혈겁의 원흉이라 하기에는 저 아이가 한 것이 무엇이랴?
그저 태어났고, 아비와 생이별했으며, 지독히 아팠으며, 운 좋게 살아있을 뿐이었다.
취아에게 혈마는 아비를 거둬 주었으며, 어미의 원수를 갚고, 자신의 병을 낫게 한 은인이다.
그럼에도 저 여린 아이는 아미파의 제자로서, 구천 행성 무림인으로서 가슴속에 싹트는 원한을 밀어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곪아가고 있었다.
“미안해요.”
“…….”
취아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럼에도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네가 미안할 것이 없다.”
태사신니는 천명하듯 선언했다.
“외려 전 무림은 네게 고마워할 것이다.”
“네?”
그저 어린 사질의 면을 세워주고, 기운내기 위해 꾸며낸 말은 아니다.
“네가 있으니 그나마 전 무림이 마지막 희망은 얻은 게다.”
원수지간에 놓인 화해의 증표다.
취아는 아직 본인이 이해하긴 어려워보였으나, 여러 사형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미안하구나.”
“맞아. 소문만으로 사람을 평하는 건 아니지.”
그때 하늘에서 매 한 마리가 활강하다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더니 갈색 연기로 화했다.
휘리릭.
매는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자리에 앉았다.
“거 대머리 말 잘하네.”
수호가 태사신니를 보고 히죽 웃었다.
“음, 오셨소.”
“서비스로 애들 몇 더 조져줄게.”
“고맙소이다.”
“말 나온 김에 후딱 다녀오지. 가면 길잡이 있지?”
“맹으로 찾아가면 되오리다.”
“알았어. 갔다 와서 소주나 한잔 하자.”
“…….”
수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연기로 화해 매로 변신해 날아 가버렸고, 지구가 처음인 정 자 배 사형제들이 물었다.
“방금 그자는 누굽니까?”
“여태 말한 혈마다.”
“헙, 그자가요?”
“맙소사.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태사신니가 고래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도 사람이다. 더 이상 그에 대해 논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분타주 정해가 물었다.
혈교의 요청으로 인해 이곳에 분타를 내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녀다.
“제자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 되오리까?”
직접 겪어 보니 상상속의 혈교가 보인 흉악한 일은 아닐 성싶었다.
“무엇을 하긴.”
아미파는 평화의 상징이다.
혈, 아니, 지구의 수호 길드와 구천 행성의 무림맹 사이의 동맹의 증표다.
“분타의 업무가 무엇이겠느냐? 본단과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후학을 양성하면 될 일이다.”
“정말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럼 뭐 특별할 일이 있겠느냐?”
태사신니는 새로 지어진 한옥들을 가리켰다.
지구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구천 행성의 가옥들과 꽤 비슷한 구석들이 많았다.
“분타의 일은 네게 모두 일임할 터이니 잘해보려무나.”
“네, 사숙.”
태사신니는 여러 건물 중 가장 작은 암자에 자리를 잡았다.
졸졸졸.
암자 옆으로 작은 개울도 지나가고 우거진 수풀이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을 선사해줬다.
이 모든게 자연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박수호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호 길드라.’
공포가 혈교를 낳았고, 경각에 달린 목숨에 혈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더 이상 혈교도, 혈마도 없다.
*
복지부장 개인 요리연구실.
이숙자는 겨우 한 병 나온 투명한 액체를 들고 흡족하게 웃었다.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는 괴상한 지식들의 정수다. 가장 만들기 까다롭고 오래 걸리지만 가장 독한 놈이다.
이놈을 만들어내느라고 이틀을 꼬박 샜다.
“어머니!”
“잉, 마침 잘 왔뎌. 이거 함 보드라고.”
이숙자야 만들 줄만 알았고, 당진철은 볼 줄만 알았다.
“흠!”
이리저리 살펴보던 당진철은 미약한 박하향에 흠칫 놀랐다.
“미, 미독!”
청량한 기운이 유혹하고, 그 맛에 중독된다는 극약이다.
너무 맛있고 황홀해 행복을 주지만 끝내 죽음을 내리는 독약.
“이거면 벌거지들 싹 다 잡것지?”
미독을 만들어놓고 벌레가 문제인가!
“엄마! 지금 등급 얼마?”
“에슨지 뭐시긴지 허제. 와?”
“엄마 강해진다. 내가 책임진다.”
S등급. 겨우 60레벨대에 미독을 만들어냈다.
더 레벨업을 하고, 그녀가 절정, 초절정에 입문하면 어떤 독을 만들어낼 것인가?
극독 중의 극독.
독약의 정수라는 무형지독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먼저, 그녀를 강하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강해질 필요가 있다.
겨우 절정지경. SS등급으로는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다.
그때 마침 수호가 당진철을 찾아왔다.
“염려왕.”
“오, 우형!”
“왜 이렇게 반가워하냐?”
“하하, 소제가 형을 반기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인 일이십니까?”
“구천 갈까 싶은데, 같이 갈래?”
당진철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이 그날이군.
“당연히 따라 나서야지요. 그런데…….”
당진철은 조끼를 들어 안쪽을 보여주었다.
“뭐? 젖꼭지 뭐?”
“아니, 우형. 여길 보시오.”
당진철이 조끼 안에 교차로 맨 가죽띠를 가리켰다. 본디 12자루 비도가 꽂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응? 잃어버렸냐?”
“하하, 그것이.”
본디 스스로 성장해 복수를 다짐한 당진철이지만…….
‘누가 하면 어때.’
무인의 자존심이 밥먹여주나.
본디 힘에 부치는 일이 있거든, 형을 찾기 마련이다.
새삼 박수호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 신의 한 수다.
‘그자가 부럽군.’
저런 괴물을 진짜 친형으로 두고, 엄청난 아들까지 둔…….
아무튼.
“내 비도 좀 찾아주시오.”
박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이젠 심부름까지 시키려 드는구나.
“싫어.”
“아니, 이건 우형의 일이기도 하오. 야수문의 고수 둘이 지구에 숨어 있다오.”
그러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지.
“어디야?”
“역시, 형님밖에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