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97)
197화 노괴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덜하지만, 뱃사람들은 예부터 미신을 맹신하는 이들이 왕왕 있었다.
“용왕님이 노한겨!”
“아재! 용왕이 어딧는교. 퍼뜩 들어오소!”
젊은 선장의 재촉에 중년인이 정신을 차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그나마 이 배는 결단이 빨랐다.
그물을 걷을 생각은커녕 빠르게 버리고 배를 돌렸다.
부아아아앙.
선원들은 선실로 다 대피했고, 선장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사는 것만 생각했다.
고기 욕심에 서둘러 그물을 걷던 몇몇 배는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걸 보고 뒤늦게 대피하던 배 하나가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았다.
푸아아아아.
정확히는 무언가 거대한 집게가 배를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끔찍한 건 그다음이었다.
콰지직!
거대한 집게발이 다물어지자 어선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으아아!”
그 와중에 바다로 떨어지는 어부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배와 함께 짓이겨져 그대로 절명한 사람이 세 명은 넘었으니까.
푸우우우우우!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쳤다.
배가 넘실거리며 파고에 가려졌던 괴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어어어어어어.”
낮은 뱃고동 소리 같은 음파가 괴수의 입에서 쏘아졌다.
“크윽!”
그리 크지 않은 소리인데 귀가 웅웅 거린다.
“아재들 꽉 잡으이소!”
부우우우웅.
배는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지근거리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 네 척이 벌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더 선명하게 모습을 보이는 괴수.
“오, 온다.”
괴수는 꽃게를 닮아 있었다.
끔찍하게 커다란 꽃게였다.
벌써 주변 선박들을 죄다 아작내고 도망치는 배를 쫓아오고 있었다.
쏴아아아.
섬이 떠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아재들! 물에 빠질 준비하이소!”
선장 방상준이 소리쳤다.
“다 틀렸다!”
“이미 뒈진기다!”
“뭔소리하는교! 조끼 입으이소!”
방상준이 키를 잡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시발, 돈 욕심에…….’
하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몰래 나가 만선으로 돌아온 첫 어업이후 일주일의 평화.
그것이 독이 되었다.
난파되어 버린 다른 선박들이 자신의 책임 같아 방상준이 이를 악물었다.
“아재들! 내 미안쿠마.”
“되따마!”
아버지 대부터 어업을 도와주던 인부들이다. 배를 물려받고 선장질 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돈 욕심에 이 좋은 사람들과 저승길 동행할 판이다.
쏴아아아.
이미 괴수가 지척이다.
놈의 집게발이 들어올려졌다.
푸아아아아.
하늘에 해를 가린 거대한 산이 들어선것 같다.
물보라가 비가 되어 내렸다.
슈아아아.
거대한 집게발이 내려온다.
비현실적이다.
저렇게 큰 꽃게도, 그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금의 상황도.
저것과 충돌하면 배가 부서지고 그대로 죽겠지.
[내가 왔다.]슈아아아아.
저 멀리서 하얀 화살이 날아왔다.
[빼애앰!]요란한 음성은 대기가 아닌 마음에 울렸다.
머릿속을 울리는 이것은 염라대왕의 소리인가?
[인간들 안심.]촤아악!
하얀 화살이 집게발을 쪼갰다.
“쿠어어어!”
괴성과 함께 잘려나간 집게발이 떨어지며 운 나쁘게 선박 한쪽을 쳤다.
콰직!
그것만으로도 어선 한쪽이 뜯기며 기우뚱했다.
괴수가 난동부리는 탓에 주변 파고는 더 없이 높다.
“아재들 꽉 잡으이소!”
“상준아! 다 뛰 내리야 된다! 이거 못 살린다!”
“알구마! 일단 붙잡고 있으이소! 지금 빠지면 다 죽심니더!”
배는 못 살린다.
배 욕심에 그러는 게 아니다.
지금 뛰어내리면 여기저기 소용돌이치는 미친 바다에 빠져 죽는다.
그나마 천천히 침몰하는 배에 기대어 정체모를 것의 공격에 괴수가 죽기를 바랄 뿐이다.
어떻게든 키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를 붙잡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제발 저 괴수를 처치해 주십시오!
[빼애앰!]군주는 화가 났다.
중국 대륙에서 날아온 미사일도 그의 갑각을 파괴하지 못했는데, 어디서 날아온 기생충 같은 작대기가.
[기생충이라니!]군주의 사념을 읽은 백사가 대노했다.
집게발 사이에 박혔던 그의 몸체가 커졌다.
꾸구구구궁.
뱀이 허물을 벗듯 거대한 몸은 금방 꽃게 괴수를 압도했다.
슈슈슈슉.
날름거리는 혀가 채찍처럼 휘둘러지자 괴수의 눈알이 떨어져나갔다.
“크어어어어!”
꽃게 따위가 어찌 저리 울부짖을 수 있을까?
괴상하게 생긴 입은 수십 개의 촉수로 이뤄져 있었다. 놈이 백사를 물려고 했으나.
[감히 네놈 따위가 어울릴 몸이 아니다.]꽈드드드득.
점점 더 덩치를 키워가던 백사가 조여버리자, 꽃게 괴수의 갑각은 한계점을 넘었다.
콰직! 꽈드득!
“끄으으.”
맹렬한 기세로 뻗어오던 뻣뻣한 촉수가 축 늘어졌다.
무려 군주급 몬스터가 죽으며 그에게 응축되어 있던 차원에너지가 퍼졌으나, 백사는 한 줌의 에너지도 얻지 못했다.
레벨 99 이무기.
그 지독한 세월을 살생 없이 견뎠건만.
[잘 가라, 용생이여.]커다랗고 하얀 이무기는 눈물을 흘렸다.
슈우우우웅.
미친 듯 널뛰던 바다는 금세 잔잔한 너울이 되었고, 침몰하던 배의 끄트머리에 선 어부들은 커다란 이무기를 보며 기도했다.
“용왕님, 감사합니다.”
“아이쿠, 용왕님.”
“용왕님. 우리 손자 병 다 낫게 해주십시오.”
그저 감사하거나 놀라거나, 틈새소원공략을 하거나 어부들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기뻐했다.
이미 난파되어 반 이상 잠긴 배에서 뛰어내려 저마다 부유물에 의지했다.
위이이이잉.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전력으로 날아온 수송 드론이 그들의 상공에 멈췄다.
슈우우우웅.
해치가 열리고 사람 하나가 잠수하듯 뛰어내렸다.
퐁당.
한참 잠수 후에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았다.
그의 손에는 노란 광석이 들려 있었다.
“푸우!”
“뉘, 뉘신지.”
“아, 한동수입니다.”
동수는 해맑게 웃으며 배틀슈트 어깨에 장식된 엠블럼을 가리켰다.
“수호 길드에서 왔습니다.”
“아!”
대한민국 사람치고 수호 길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자, 갑시다.”
무려 SSS급의 신체능력을 지닌 동수다.
거기에 온갖 잡다한 스킬들을 다 배운 그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보급형 여포 수준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파팟.
사람들을 건져 드론에서 내려온 줄을 잡고 올라갔다.
“읏차!”
“갑시다.”
“넵.”
수송 드론 조종석을 잡은 지원부 직원이 몰아갔고, 그사이 몸을 확 줄인 백사가 수면 위를 튀어오른 날치처럼 날아 드론에 쏙 들어왔다.
“어이쿠, 용왕님.”
“용왕님!”
늙은 어부들이 앞다퉈 백사를 보고 절을 했다.
[감회가 새롭군.]인간들은 오래된 식물이나 동물을 섬기는 버릇이 있었다.
‘오래된 인간을 숭배하는 인간은 없나?’
이무기 백사가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저런 인간들의 숭배야 전에 없었던 일이 아니다.
종종 있어왔던 일이나, 지구에 와서까지 이리 대접받을 줄이야.
“어이쿠, 용왕님.”
“이번에 우리 아들 취업 좀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 며늘아기 이번에 손주 건강히만 낳게 좀 도와주십시오.”
준비라도 된 듯 곧장 소원부터 말하는 그들을 보며 동수는 황당함에 고개를 저었다.
[정성이 모자라구나.]“아이쿠, 용왕님.”
저마다 물에 젖은 지폐를 꺼내는 걸 보면서 동수는 백사의 귀에 대고 살짝 말했다.
“형님한테 다 이릅니다.”
[쳇.]오랜만에 인간들 숭배 받으며 자존감 좀 찾으려고 했더니 초를 친다.
자신을 길들인 인간을 언급하다니.
[또 군주나 나오면 불러라.]슈슉.
백사는 거의 지렁이 만하게 작아져 드론의 수납함 속을 쏙 사라져 버렸다.
드론이 해상에 난파된 선박들 사이로 보이는 생존자들을 하나둘씩 건지는 사이, 저 멀리서 항공모함이 접근하고 있었다.
수호 길드 항공모함 1호.
수호함.
위이이잉.
수송 드론이 복귀해 생존자들을 내려주었다.
함장이 부리나케 달려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한동수를 반겼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색휘 씨.”
“하잇!”
“어우, 힘 빼요. 힘. 같은 식구끼리.”
“감동임뉘다!”
한국 이름 사색휘.
그는 얼마 전 귀화한 사세키 중위다.
일본과 감옥선 탈취와 함께 사로잡은 해군들의 포로 송환 문제로 한동안 언론전을 벌였다.
감옥선은 그대로 전리품으로 취하고 포로들을 모두 송환하기로 하였는데, 절반이나 남는 인원이 자의로 남아버렸다.
‘돌아가도 군법으로 다스려집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특히나 사세키 중위는 가장 먼저 오체투지하며 빌었는데, 김미소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정확히는 항공모함 운항 경험이 있는 숙련자를 찾기 어려워서지만, 귀화까지 한 사색휘는 알아서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실제 그는 꽤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무려 함장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수호 길드에 적을 두고 있으니까.
‘같은 식구.’
사색휘는 눈물이 나려는 걸 애써 참았다.
무려 한동수 이사님의 따스한 한마디.
그 말이 사색휘를 감동받게 했다.
“그럼 꽃게 시체 잘 건지시고요.”
“하잇!”
“에헤이, 같은 식구끼리 힘 빼라니까.”
“알겠수무니다.”
수호함이 곤죽이 되어버린 군주 시체를 회수하는 사이, 동수를 태운 드론은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
구천 행성을 양분하던 무림인과 마몬족.
수호가 합류한 무림맹의 기세는 놀라웠다.
잃었던 영역을 모두 되찾고 본래의 경계까지 다다르는 데 불과 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불타고 잿더미가 되어버린 마을들과 지난 짧은 순간에 착취당한 양민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무림맹 무사들은 그들을 수습하는 한편, 지낼 곳이 마땅찮은 무림맹 수뇌부의 막사 설치에 공을 들였다.
무림맹주가 지내는 것보다 두 배는 큰 막사.
하급 무사들이 정성스레 설치하고, 화롯불까지 피워두고 막사의 주인을 모셨다.
[여기서 주무시면 됩니다.]혈교에서 온 정체불명의 고수.
아직 한 번도 출수하지 않은 숨은 실력자.
혈마에게 하대하는 자.
혈교의 노괴.
“이잉, 젊은이들 고생혔어.”
[히익!]이숙자가 등을 두드려주자 무사들이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사람이 행동에 앞서 그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아무런 살기도 없이 등을 내어주었다.
노파가 장법의 고수였다면 그대로 척추가 뽑혔을 것이다.
“이잉, 가봐. 얼른들 자.”
노파가 손을 흔든다.
물러나라는 뜻인가?
척.
[편히 쉬십시오.]포권한 두 명의 하급 무사가 서둘러 물러서며 이마에 난 식은땀을 훔쳤다.
“대단한 실력자다. 전혀 낌새를 못 챘어.”
은연중에 이런 실력 행사를 하다니.
혈교에서 온 노괴.
이숙자는 손을 흔들며 웃었다.
“아따, 뭔 씨부렁 말인지 한 개도 모르겠당게.”
젊은이들이 늙은이 잠자리까지 봐주고 얼마나 기특하고 이쁜지.
“외국 애들이 참 착혀.”
이숙자는 흡족해하며 막사로 들어갔다.
훈훈한 공기가 그를 맞이했고,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된 침상은 푹신했다.
노숙에서 이 정도 잠자리면 호텔이 부럽지 않다.
자려고 누운 이숙자는 눈을 감았다가 곧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씨부럴 놈이 하도 주께싸 놓으니까 헛것이 들리네.”
당진철이 어찌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외국말인데도 이제 다 외울 지경이다.
혼내 보고 역정내 봐도 막무가내다.
“이놈시끼 듣느 거 다 알어! 들어와.”
휙.
대기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당진철이 막사 안으로 쏙 들어왔다.
“엄마 무슨 일?”
“이 잡놈의 새끼! 말 한 개도 안 들으면서 잘도 엄마다.”
“나 효자. 준비된 효자.”
이숙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입으로 두말하는 새끼가 있다면 바로 저놈을 두고 하는 말이다.
효자라고 씨불이면서 동시에 전음으로 구결을 외고 있다.
“참말로 지독한 놈이여. 내가 어찌하면 되냐?”
이숙자의 백기 선언에 당진철이 만세를 불렀다.
“엄마 고수 만들어준다. 여기 앉아라!”
구결의 뜻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내공 입문부터 운용까지 자신이 도와준다.
가부좌를 튼 이숙자의 명문혈에 당진철의 손이 닿았다.
“으음.”
뜨뜻한 기운이 척추를 흐르며 이숙자는 천천히 상승 내공심법을 배움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