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15)
215화 위성도시 (3)
후우웅, 후우웅.
비룡이 내성벽의 광장에 내려앉았다.
“넌 아빠한테 가 있어.”
“아빠 던전 가셨잖아요.”
“응? 어디?”
“대구에요.”
“…….”
수호는 수호시에 도착해서야 건우를 데려온 것이 잘한 일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사장 박준호는 지금 홍세희 팀에서 던전 공략 중이다.
“아, 그럼 다시 데려다줄까?”
“아녜요. 여기 있으면 돼요.”
건우의 표정엔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
“그래, 그럼.”
어른이 사냥 나가 있으면 본디 새끼들은 보금자리에서 안전하게 기다리는 게 일이다.
수호는 쿨하게 야수 쉼터로 향했다.
대장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후우웅, 후웅!
비룡마저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버리자, 건우는 씩 웃으며 걸었다.
“취아 어딨지?”
장순필 아저씨를 찾아가야겠다.
보안이 심해 연구소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소식을 듣는 데는 성공했다.
“취아? 아미파에 있을걸.”
“네, 감사합니다.”
연구소 보안을 책임지는 경비 아저씨께 인사하고 곧장 내성의 동쪽으로 향했다.
동문을 열고 들어가면 외부와 분리된 또 다른 공간이 나온다.
봉림사와 아미파가 있는 절간이다.
“명진 스님 안녕하세요.”
“건우 시주, 오랜만입니다.”
“네, 스님도 잘 지내셨어요?”
“허허, 저도 막 도착했는걸요.”
“아 그렇구나.”
아이가 어른과 대화하기가 쉬울까?
명진은 건우가 또래보다 더 똘똘하고 의젓함이 대견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동수 시주가 아니었으면 오늘 돌아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동수 아저씨는요?”
수호를 따라다니느라 건우도 덩달아 외유가 길었다. 구천 행성에서 지내다 곧장 대구로 가버렸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빠를 못 만난 지도 오래되었는데, 보고 싶은 건 왜 다른 사람일까?
“동수 시주는 연구실에 갔습니다.”
중요한 재료 아이템인 차원석을 넘기로 갔다.
“건우 시주는 그간 뭘하고 지내셨습니까?”
“아, 전 삼촌하고 같이 다녔어요. 대구에 있다가 방금 막 도착했어요.”
“오, 수호 시주도 지금 성에 있습니까?”
“네. 삼촌, 나무 숲 가셨을 거예요.”
“한번 뵈러 가야겠습니다.”
“네, 스님.”
건우는 오랜만에 보는 봉림사 아이들과도 어울려 인사했다.
“건우다.”
“청명! 청진도 안녕.”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건우와 어울렸다.
주로 건우가 자신의 모험담을 읊어주고 동자승들이 홀린 듯 상상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건우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말이 끝나질 않았다. 아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도 좋지만, 역시…….
“나 잠깐 아미파에 다녀올게.”
“거기 스님들 엄청 무섭다.”
“맞아. 여자들이 힘도 엄청 세.”
그거야 당연하지.
아미파 고수들이니까.
“하하. 다음에 또 들려줄게.”
겨우 빠져나온 건우가 듬성 듬성 나무들이 자란 길을 걸었다.
졸졸졸.
작은 냇가는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악어나 상어가 통로로 사용할 정도의 유량은 아닌지라, 그들을 피해 도망쳐 온 물고기들이 저들끼리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드문드문 냇가에 만들어놓은 정자를 세 개 지나 아미파의 분타에 도착했다.
분명 한국, 수호시의 일부분인데 건축물들이 아미파의 양식대로 지어져서 그런지 꼭 구천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이다.
높은 담장과 커다란 대문.
그리고 대문 앞마당을 빗질하고 있는 소년 하나.
쓰윽, 쓰윽.
“어?”
“어?”
“왕일 형!”
“도련님!”
왕일과 건우가 포옹했다.
빗자루마저 내팽개친 왕일은 자신의 가슴 어림에 오는 건우를 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형, 왜 울어요?”
“기뻐서 그렇습니다. 소인을 잊지 않으셨군요.”
왕일에게 있어 건우는 높은 사람이다.
그것도 까마득히 높은 사람이다.
무려 혈마이자 수호 길드의 최고 지존, 박수호의 조카니까.
혈족 단위 사회에 익숙한 왕일에게는 당연한 개념이었다.
“흑흑, 다들 나를 잊은 줄 알았습니다.”
“에이, 형을 왜 잊어요.”
“열심히 말을 배우고 배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왕일의 한국어 실력이 꽤 유창하다.
“와, 그렇네요. 근데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아미파 고수들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건요?”
건우가 빗자루를 가리켰다.
“이건 몸에 익어서…….”
뼛속까지 머슴이구나.
“형, 자신감 가져요.”
“흑, 고맙습니다. 도련님.”
“저, 근데 취아 안에 있어요?”
“네, 아가씨는 신니 님이 계신 사당에 있을 겁니다.”
“어, 으음.”
“그런데 아미파엔 무슨 볼일이십니까?”
“그, 그게…….”
취아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기엔 7살 소년의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왜 이리 몸이 배배 꼬이지.
끼익.
그때 문이 열리며 태사신니와 장취아, 그리고 아미파 고수들이 우르르 나왔다.
“안녕하세요.”
건우가 화들짝 놀라 인사하니, 태사신니가 그를 보며 눈을 빛냈다.
“호, 우리 제자의 벗이 왔구려.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왜 머뭇거리시오.”
“그, 그것이…….”
쭈뼛거리며 취아를 힐끗 보는 건우를 보며 태사신니가 파안대소했다.
“우리 제자께서 환속한 이유가 꼭 아비 때문은 아닌 것 같소.”
“스, 스승님…….”
환속 후 아미파의 속가제자가 되어 태사신니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취아다.
“벗께서도 성취가 그리 낮지 않아 보이는데…… 어떠신가? 함께 공부해 보는 것이?”
아미파 고수들은 냇가에 가서 담소를 나눌 예정이었다.
그냥 수다는 아니고, 논검비무의 한 형태로 서로 무공 공부를 나누는 것이다.
“예, 좋습니다.”
건우가 흔쾌히 따라붙자 태사신니는 물론 아미파 고수들도 웃었다.
7살 동갑내기 소년소녀의 모습이 풋풋하기도 하고, 다 티나는 둘의 표정이 귀엽기도 해서다.
*
이동포탈을 열 수 있게 되면 어디에 그것을 설치할 것인가?
내성은 유사시에 최후의 보루이자 요새로 쓰여야 하기에, 외부의 통로로서의 역할로 좋지 못했다.
외성 밖에 두기엔 관리가 되지 않기에 외성에 설치해야 한다.
“남문 근처로 해.”
어차피 외부와 유일한 통로가 되는 수호시티 남문이다.
그 남문 근처의 외성 내에 포탈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에너지를 주입하면…….”
첫 실험이지만 모두들 자신만만했다.
리처드 박사의 부실한 논문을 베이스로 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동포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스케치 수준.
참고할 데이터는 다른 곳에서 따왔다.
마법 문명이 꽃핀 행성.
아루카에서는 이미 이동 포탈이 존재한다.
차원석을 이용한 포탈 생성 방법과 유지방법 등의 데이터를 변형해 적용했다.
“그럼 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저희끼리 해도 되는겁니까?”
“맞습니다. 사장님이라도 모시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연구원들이 저마다 불안한 음성을 내뱉었다.
첫 실험이 곧 포탈 생성이다.
연습이 실전이라 이걸 리허설로 삼기도 뭣하고…….
높으신 분들 없이 일선 연구원들만 있다보니 괜히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지는 것이다.
연구소장 장순필이 웃었다.
“괜찮습니다. 여기 한동수 이사가 참석하지 않았습니까?”
“헤헤, 제가 다 보고 저장해 둘게요.”
수호야 의전 같은 거 별로 챙기는 성격이 아니다.
김미소도 그렇고.
그저 역사적인 첫 포탈 운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채널에 올려 널리 홍보할 뿐이다.
장순필이 이동 포탈 생성기를 들고 대리석을 쌓아 올린 제단 같은 곳의 위로 올라갔다.
“그럼 시작합니다.”
아루카 행성이었다면 고위 마법사들이 마나를 끌어모아 작동시켜야 할 포탈이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혈석 에너지로 대체되었다.
차원석을 품은 이동 포탈 생성기에 혈석에너지를 주입했다.
츠츠츠츠츳.
공간 균열의 사전 증상이 일어나며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츠아아앙!
곧 푸른색의 포탈이 생겨나자, 구경하던 연구원들과 남문 출입국 관리 직원들이 저마다 박수쳤다.
“와! 이거 기자들도 초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업적이긴 한데…….”
“성공을 해야 업적이지.”
사람들의 환호와 걱정 속에서, 장순필은 생겨난 포탈에 차원 이동 반응기를 가져다 대었다.
츠츠츳.
생성기와 비슷하게 생긴 반응기는 이 포탈에 대응할 포탈을 열어준다.
슈아아악.
반응기의 차원석이 반응하더니 푸른빛을 띠며 발광했다.
“됐다!”
이론상 이제 이것에 혈석 에너지를 주입하면 대응할 포탈이 열린다.
이미 첫 포탈을 어디에 둘지는 김미소 부사장과 사전 협의를 마쳤다.
“이제 대구로 갑세.”
“네, 소장님.”
사람들이 들뜬 마음에 대구로 향했고, 생성된 포탈 주변은 직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보호했다.
남문을 통해 오가는 외부인들이 저마다 보곤 새로운 던전인가 생각하다가, 포탈 색이 달라 의아해했다.
던전 포탈이 붉은색인데 반해 이동 포탈은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대구 평리 길드 본사.
수호시로 돌아오려다 장순필의 연락을 받고 급히 유턴한 김미소가 평리 길드 부사장과 대면하고 있었다.
“김동완 사장은 아직인가요?”
“네, 아시다피시 저희끼리의 단독 7성 던전은 처음인지라.”
첫 공략을 성공해 봐야 이후에 대략적인 공략시간 등을 산정할 수 있었다.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귀환석을 하나 드리는 건데, 아쉽네요.”
“허윽, 그 귀한 걸…….”
“평리는 이제 저희와 형제 길드 아닌가요.”
김미소의 말에 평리 길드 부사장 이한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럼 포탈 부지는 여기로 결정된 건가요?”
“네, 그럼요.”
평리 길드 본사 앞.
주차장 부지 한쪽을 허물고 급하게 레미콘을 타설해서 제단을 만들었다.
“아시다시피 이제 평리와 수호시는 시간 공간 제약 없이 이웃으로 지내게 됐어요.”
이로서 서울과 영남을 온전히 영역하에 두게 되었다. 김미소는 차오르는 뿌듯함과 야망을 억누르며 미소지었다.
“포탈을 통하면 곧장 수호시가 나오게 되니, 보안에 신경 많이 쓰셔야 할 거예요.”
“아무렴요. 그래서 저희 본사 앞에 이렇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평리 길드의 떠났던 길드원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본래부터 끈끈했던 용병들의 이탈은 애초에 적었지만, 직원들이야 어디 그렇던가.
수호 길드와 평리 길드 간의 업무협약이 공표되자, 대구는 망해버린 도시에서 곧 엄청난 안전이 보장되는 도시로 변모해 버렸다.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자리잡지 못한 이주민들이 돌아오려는 조짐을 보였고, 안동으로 떠났던 이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성이 둘이다.’
김미소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전쟁으로만 성을 뺏고 차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영향력을 온전히 행사할 위성도시를 얻었다.
간접적 지배권 행사로 충분하다.
안전하기 위해, 번영하기 위해, 사람들은 강력한 지배자를 절대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연구소장님 도착했습니다.”
드론이 착륙하고 장순필이 미리 마련된 장소 위에 포탈 대응기를 작동시켰다.
위이이이잉.
혈석에서 에너지를 빨아들인 포탈 대응기가 공간을 찢었다.
츠아아앙.
푸른색 포탈이 열리자 사람들이 박수치며 자축했다.
“자, 그럼 역사적인 첫 포탈 이동을 시범하도록 하지요.”
김미소의 말에, 사람들이 박수치던 그 자리에서 한 발짝씩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