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16)
216화 어쩌면
수호 길드에서 먼저 U등급에 올랐다고 해서 가장 베테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등급인 홍세희와 한동수의 경력차이는 얼마인가?
적어도 길드 내부에서 등급의 차이는 수호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로 대변된다.
SS급에 오른 용병들만 해도 수십 명.
그들 하나 하나가 포텐이 있는 자들이다.
미래 검객으로 이름 날릴 장재식은 어떠하고, 몬스터 레이더라고까지 칭해지는 최수영은 어떤가.
옛 히로의 팀이었다가 구출된 박용필을 필두로 한 팀 또한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다.
2, 3공격대 모두 주력이 SS등급, 최하가 S등급 수준으로 팀을 짜다 보니 차츰 손발이 맞아 떨어졌고, 던전 공략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2공격대 던전 공략 현장.
홍세희는 어차피 사냥해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다.
다른 팀원들이 각자 조를 짜고 사냥에 나서는 이때, 홍세희는 막내 용병인 조민규의 호위이자 교관 역할을 맡았다.
“이 정도는 잡지?”
“무, 물론입니다.”
고블린 다섯 마리를 맞이해 열심히 싸우지만, B급 용병의 전력이라 하기에는 초라해 보였다.
‘키워야 할 게 등급이 아니라 담력 같은데.’
막타만 치게 해 등급만 냅다 높인다고 베테랑 용병이 짠 하고 태어날까.
어거지로 B등급에 오른 조민규지만 아직 전투스타일이나 의식, 개념 등은 F등급에 머물러 있는 게 보였다.
“앞으로 고블린 한 마리당 칼질 한 번 이상 한다고 생각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단답으로 해.”
“넵.”
“신중하게 보고 급소만 노려. 언제나 침착하고.”
“넵!”
아, 친절하셔라.
과외 선생님이 다들 홍세희와 같다면 누구나 서울대를 가지 않았을까?
“저쪽에 네 마리 정도? 사냥해 봐.”
홍세희는 최수영만큼 감지에 뛰어나진 않다.
하지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기에, 고블린 정도의 하급 몬스터는 기척이나 냄새 등의 관찰로도 충분히 개체 수 파악이 가능했다.
조민규가 워낙 약하기에, 특별과외는 베이스캠프 근처의 고블린 부락을 상대로 했다.
조별로 나눠 흩어진 사냥조는 거의 오우거만을 노리고 있었다. 달려드는 고블린이야 처치하지만, 굳이 고블린을 쫓으려 하진 않았다.
이 던전의 최고 수확은 무엇보다 오우거의 큰 경험치니까.
파파팟.
그때 약속된 시간이 되었는지, 흩어졌던 사냥조들이 속속 복귀했다.
인근의 오우거 토벌을 모두 마쳤으면 오늘 중으로 베이스캠프를 옮겨 다시 흩어져 사냥할 것이다.
“돌아가자.”
“넵.”
가장 가까이 있는 홍세희가 먼저 돌아왔다. 베이스캠프는 천막이 두 개였는데 한쪽은 오늘의 휴식조가 수면을 취하고 있는 휴식공간이고, 한쪽 천막은 가재도구들을 늘어트린 식당이다.
조민규는 막내답게 신속하게 꺼진 불씨를 살려 불을 피우고, 솥을 걸고 물을 부었다.
하위 던전이었다면 허드렛일이나 보급품을 옮기기 위한 짐꾼을 두겠지만, 상위 던전은 하나의 전투원이 아쉽기에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그 와중에 등급에 맞지 않게 7성 던전 레이드에 끼게 된 조민규가 짐꾼 역을 자처하는 건 당연했다.
파팟.
최수영의 조 세 명이 먼저 도착해 인사했다.
“언니.”
“왜?”
“저쪽 협곡은 기록 남겨야겠던데요?”
사냥을 끝마친 게 아닌 모양이다.
“어떻길래?”
“저번에 발견 못한 굴이 있던데, 오우거이거나 비등한 전투력의 몬스터 수십이에요.”
“던전 속의 던전이네.”
그 정도 몬스터 무리가 모인 소굴이라면 안전을 위해 공략팀 전원이 나서야 할 것 같다.
기록을 위해 영상기억 스킬을 가진 조민규는 반드시 대동하고 말이다.
치지직.
최수영과 팀원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축한 몬스터 고기는 훌륭한 육류가 되어 준다.
지구의 것이 아니라서 뭉뚱그려 몬스터라 불릴 뿐이지, 아루카 행성에서는 가축으로 사육하는 종이기도 하니까.
“와, 이거 냄새 죽이네. 무슨 고기야?”
“야롱사슴이라던데.”
아루카 행성에서 수입해 오는 식자재야 도축된 상태로 오기에, 야롱사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적다.
익숙한 빛깔의 고기를 보고 그저 군침 흘릴 뿐이다.
서너 명씩 조를 이뤄 나갔던 전투조들이 속속 복귀하는 가운데, 박준호의 조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냥한 박준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는데, 홍세희는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유추했다.
“박 부사장님 결국 만렙 찍으셨나 보네요.”
“예에.”
박준호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는 침착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와! 부사장님 이제 7성 던전도 졸업이시네.”
7성 던전에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건 79레벨까지다. 7성 던전의 만렙은 다름 아닌 80레벨.
U급 각성자가 되었음을 뜻했다.
“공격대 나눕니까?”
“전 무조건 부사장님 라인입니다.”
“저도 데려가십시오.”
저들끼리 왁자지껄한 모습에 홍세희가 피식 웃었다.
“이거 내가 배신자 새끼들만 키웠네.”
“어유,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늘 홍 대장님 편이지 말입니다.”
“에이, 전 U급 찍어도 홍 대장님 따를 겁니다.”
“새끼들 아부는……. 좋다. 오늘 내가 한턱 쏜다.”
홍세희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여러 먹을거리를 꺼냈고, 던전 안에서의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사실상 동굴 탐험 전에 체력을 비축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기에, 일행은 지난 며칠간 이어온 사냥을 잠시 쉬었다.
*
지이이잉.
던전 공략을 끝내고 나온 2공격대를 대기 중이던 직원이 반갑게 맞이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 부사장님부터 측정해줘.”
“아, 넵.”
등급이 오르는 건 누구보다 각성자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준호는 이상 없이 8000이 찍혔고, 수호 길드의 다섯 번째 U급 용병이 되었다.
현재도 SS급에 머무르고 있는 각성자들이 많다.
이 속도면 조만간 U급으로만 이뤄진 공격대도 만들어질 판.
간단한 검사와 측정이 이어졌고, 홍세희는 공략의 끝을 알렸다.
“다들 하루 쉬고, 내일 7시에 집합.”
“네, 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공략대 해산식 이후 홍세희가 박준호에게 붙어 물었다.
“쉬실 거죠?”
“어후, 그래야죠. 아들놈 못 본 지도 오래됐네요.”
더 이상 경험치도 얻지 못하는데 던전 공략에 나설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맡는 스킬을 새로 배우거나, 숙련도 연습이나 피지컬 훈련이 더 낫다.
2공격대 팀원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러 가는 이들도 있었고, 곧장 호텔을 찾아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준호는 수호 길드 수송 드론을 찾아 왔으나 주차장은 휑했다.
“어? 수송기 다 어디 갔어요?”
“아, 부사장님 아직 모르시겠구나.”
평리 길드 직원이 하나 붙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제 수호시까지 금방이에요, 금방.”
“예?”
“하하, 따라오십시오.”
던전 현장과 평리 길드 본사는 꽤 거리가 있었다.
차를 타고 가보니 붉은색의 던전 포탈과는 다르게 푸른색의 포탈이 덩그러니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뭡니까?”
“게이트죠. 하하. 수호시티까지 양방향으로 뚫립니다.”
“허…….”
“엊그제 실험까지 다 마쳤습니다. 오, 저기 지금 누가 나오시네요.”
파란색 포탈이 일렁거리더니 모르는 사람이 튀어나와 평리 길드 본사로 향했다. 아마 평리 길드 직원인 모양이었다.
“이거 그냥 입장만 하면 되는 겁니까?”
“네. 저기 측정 장비 보이시죠?”
파란색 포탈 옆에는 기계장치와 작은 디스플레이 화면이 떠 있었다.
던전처럼 유동적으로 장소가 변경되는 게 아니기에, 고정식 측정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통과할 때마다 에너지 차감되던데, 혈석으로 충전 가능한 모양이에요. 수호 길드나 평리 길드 사원은 무료입니다.”
평리 길드 직원은 조용히 귀띔했다.
“물론 사사로운 사용은 비용 청구한다더라고요.”
“아, 네. 고맙습니다.”
준호가 포탈로 가보니 몇 명의 보안요원과 출입 기록을 작성하는 인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 용병증 대 주시겠어요?”
삐빅.
“아, 부사장님이셨네요. 이번에 관리부로 인사 발령된 대리 이종숩니다.”
“아, 네 반가워요.”
평리 길드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포탈 관리는 수호 길드에서 맡고 있는 모양이다.
“이동 승인 났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태블릿은 인터넷으로 저 반대편 포탈 관리인과 통하는 모양이었다.
“예, 수고하세요.”
“넵, 살펴 가십시오. 부사장님.”
꾸벅 고개를 숙이는 직원의 부담스런 인사를 뒤로하고 포탈에 진입했다.
파팟.
던전에 진입할 때와 마찬가지의 부유감과 어지러움이 찾아왔고, 곧 익숙한 나무 성벽이 그를 맞이했다.
“어…….”
두어 번 눈을 깜박이고 보니 수호시티 외성벽이다.
“어서 오세요, 부사장님.”
“어, 반가워.”
익숙한 직원의 얼굴이 보인다.
“차로 모실까요?”
“아냐, 그냥 걸어가지.”
수호시티 외성은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옛 의정부시 전체를 아우르는 크기.
일반인이었다면 걸어간다는 게 가당치도 않은 말이겠으나, 무려 U급에 오른 각성자는 걸음도 빠르고 마음먹고 달리면 자동차와 맞먹는 속도를 낸다.
준호는 조금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밥값은 해야지.’
언제나 박수호의 동생으로 설명되어 온 박준호다.
이를 악물로 사냥한 이유도 별다른 게 아니다.
‘팀을 만들어야겠어.’
용병이 밥값을 하려면 뭘 해야겠나?
적어도 간부급이라면 자신의 팀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상위의 던전이 발생하면 간부들만으로 새로 선발대를 꾸리고 말이다.
이제 수호 길드도 다수의 공격대를 양성할 때가 되었다.
*
키 큰 나무들의 숲.
솨아아아아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좋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곤히 잤다.
“으음.”
슬쩍 눈 떠 보니 대장나무 아래다.
그새 더 자라 다른 나무보다 세 배는 더 큰 나무.
위이이이.
나무정령들의 편애가 얼마나 대단한지, 대장나무에만 초록색 전구를 달아 놓은 것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읏차!”
대장 나무 아래 깔아놓은 평상에서 훌쩍 일어섰다.
휘리릭.
수호의 기상과 동시에 그의 앞에 검은 기류가 뭉치더니, 뱀파이어 차이가 나타나 공손히 무릎 꿇었다.
“어, 왜?”
“나흘을 주무셨습니다.”
“음? 그렇게나?”
체감으론 삼십 분 달게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말이다.
“명진이란 중이 다녀갔고, 그 뒤로 김미소, 박준호, 당진철…….”
“아 됐어.”
잠깐 자는 사이 많이도 왔다 갔다.
아니, 잠깐이 아닌가?
“허, 어이가 없네.”
수호는 배를 쓰다듬었다.
나흘을 굶은 것치고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정신까지 그런 건 아니다.
“나흘이나 굶었단 말이잖아.”
생각이 몸을 지배하기 마련.
가만히 있던 배가 주린 용트림을 했다.
꼬르르륵.
“허, 가자.”
“네, 주인님.”
수호가 자리를 뜨자 대장나무 근처에 흩어졌던 늑대들이 다시 돌아와 나무를 지켰다.
파팟.
수호는 가벼운 걸음으로 숲길을 뛰었다.
나흘 굶은 것치고는 어째 몸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거 시간 개념 이상해지네.”
수호는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어쩌면 천년보다 더…….”
어차피 날짜를 체크하며 센 건 500년까지가 전부니까.
그 뒤로는 얼마나 생존했는지…….
“알게 뭐야.”
숲을 빠져나간 수호는 가장 먼저 식당가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