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14)
214화 위성도시 (2)
“왜 안 되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설마!”
진세연은 하얗게 빛나는 자신의 손을 다시 수호의 팔뚝에 대었다.
“왜 자꾸 만져?”
“접촉해야 축복이 걸리죠. 아니, 그게 아니고…….”
진세연은 동그란 두 눈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팔뚝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어때요?”
“뭐가?”
“뭔가 따끔거리거나 느낌이 오지 않아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닌가.”
“뭐가?”
“혹시 어둠 속성의 직업이세요?”
수호가 피식 웃었다.
“네 스킬이 신성력이 아닌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없어요.”
수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믿음과 현실은 다르지.”
“검증했단 말이에요.”
“어떻게?”
“언데드 계열 몬스터에게는 공격으로 작용해요.”
“오.”
수호의 반응에 진세연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람에겐 축복이 되지만 언데드들은 데미지를 입어요.”
“그건 우리집 개도 해.”
“허.”
자랑스러운 능력이 개에 비교당하자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상대가 워낙에 거물이어야지.
“아무튼 도끼를 써.”
“이걸로 뭘 하란 거죠?”
“네가 바라는 언데드는 없으니까, 그걸로 가져다주는 놈들 목을 쳐.”
“살인……. 아니, 사냥. 네, 뭐. 좋아요.”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수호가 그녀의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읍, 뭐죠?”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춘 수호가 되물었다.
“정확히 말해. 할 거야, 말 거야?”
이 남자는 이 자세로 뭘 하자는 걸까?
“하, 하죠!”
“그래. 마음 단단히 먹어.”
김미소가 키워서 데려오라 했으니 어느 정도 말은 됐겠지만, 그래도 일반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몬스터든 동물이든, 그게 곤충이 되었던 살아있는 생명을 취하는 행위는 꽤 힘든 일이다.
신체적 고통보다도 심적 고통이 큰데, 신성력까지 깨달을 정도의 신실한 수녀에게 쉬운 일이까?
위기감 속에서 꼭 살기 위해 저지르는 살인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위의 마음의 고통은 다른 법이다.
“좋아. 그럼 일단 이거부터 해 보지. 백구.”
휘리릭.
수호의 곁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하얀 개가 등장했다.
“왈, 왈!”
가장 처음 길들였던 강아지는 어느새 성견이 되었고 레벨도 SS급이 되어버렸다.
“고블린 하나 잡아와.”
“왈!”
파파팟.
숲을 달려나간 백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꺾여 축 늘어진 고블린 한 마리를 물고 돌아왔다.
“왈, 왈!”
칭찬을 바라는 놈을 보며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살려서 데려와야지.”
“끼잉.”
“다시 갔다 와.”
“왈, 왈!”
백구가 다시 뛰어갔고, 발목을 물린 채 질질 끌려온 고블린이 괴성을 질렀다.
“키엑!”
수호가 조화력을 조금 쓰자, 난동 부리는 고블린의 주변에서 자란 잡풀이 놈을 완벽히 속박했다.
“쳐 봐.”
“알았어요.”
수호는 팔짱을 끼고 한발 물러나 진세연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제대로 된 각오를 보여주지 않으면 미소의 부탁도, 명진의 혈연이라는 사실도 무의미해진다.
초식동물에게 고기를 먹이는 것만큼 잔인한 짓이 어디 있겠나.
적어도 발톱을 세울 줄 아는 맹수 새끼 정도의 독기는 보여줘야 키워줄 만하지 않겠나.
퍼억!
“와우, 도끼 날 엄청 잘 드네요.”
진세연은 깔끔하게 고블린 목을 내리쳤고, 도끼의 위력에 만족했다.
“음.”
“왜요?”
“보기보다 괜찮네.”
“저 E급이에요.”
각성을 했다는 것 자체가 몬스터 사냥을 했다는 증거다. 거기에 더해 등급을 하나 더 올릴 정도면,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죽였을까?
그것도 던전 사냥이 아니라 필드 사냥으로 E등급 정도가 되려면, 못해도 기백 이상의 몬스터를 살육했다는 말.
이제 와 주저할 이유가 없다.
“좋아. 본격적으로 사냥한다.”
고블린 따위 잡아봐야 얼마나 사냥이 될까?
저 정도 근력에 도끼질이면 오우거를 가져다줘도 된다. 몇 번 패고 패다 보면 목 하나 정도는 따겠지.
수호는 본격적으로 고블린 학살을 위해 움직였고, 곧 거대한 코끼리가 돌돌 말린 오우거를 축구공 차듯이 차면서 왔다.
“저, 저게 뭐야?”
“오우거예요, 이모.”
“이모?”
“네.”
박건우의 나이 고작 7살이다.
애한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도 진세연을 괜히 멋쩍게 웃었다.
“호호호. 누나란다.”
“네, 누나.”
건우는 가타부타 토 달지 않았다.
“누나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얼른 목 따죠.”
“하하, 너도 참…….”
보고 듣고 자란 성장 환경이 그리 중요하다더니, 건우를 보니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하긴, 세상이 이러니.’
어쩌면 이것도 조기교육으로 괜찮다 싶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한다는 건 구시대의 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니까.
힘없는 아이는 보호자가 사라지는 순간, 자신과 동생처럼 그저 짐짝 취급받는 고아가 되어버릴 뿐이다.
“뿌우우우.”
코끼리가 배송해준 꽁꽁 싸맨 오우거를 앞에 두고 진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필드에 이런 게 돌아다니진 않는다.
여태 그녀가 상대해 온 가장 강력한 몬스터가 오크다.
몸이 묶여도 바둥거리느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잘 가라.”
어차피 죽여야 하는 몬스터.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가 무엇일까?
한 방에 죽여 고통을 최소화해 주는 거다.
콱!
“크아아아아아!”
진세연의 마음과 다르게 그녀의 근력은 형편없었고, 한 뼘쯤 파고든 도끼날로 절명하기엔 오우거 목살이 너무 두꺼웠다.
팟!
“엇!”
바둥거리는 오우거에게 박치기 당하기 전, 건우가 진세연을 안고 훌쩍 물어져 피했다.
“누나 조심하세요.”
“어, 어, 그래.”
꼬마가 힘도 좋다.
“제가 잡아 드릴게요. 될 때까지 한번 해보세요.”
“으, 응. 고마워.”
콰직.
7살 고사리 같은 손이 오우거 머리를 붙잡았다.
“꾸어어어! 뀌어어어!”
부랄 잡힌 사자가 저러할까?
오우거는 7살 아이의 손에 머리를 내어주고 괴성만 지를 뿐 움직이질 못했다.
쯔걱, 쯔걱.
“자, 잘 안 뽑히네.”
“꾸어어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우거를 보며 미안한 감정이 더 커졌다.
‘제발 한 번에 죽어라.’
근육에 박힌 도끼를 겨우 빼내 다시 내리쳤다.
콱!
“꾸어어어!”
두 방으로도 죽지 않은 오우거가 눈물을 흘렸고, 진세연도 마음으로 울었다.
‘제발 죽어라.’
콰직!
E등급의 각성자가 SS등급의 몬스터를 잡으려면 얼마만큼의 데미지가 필요할까?
수십 번의 도끼질에야 오우거는 겨우 숨을 거두었고,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초췌해진 진세연은 훅 치고 들어오는 에너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읍.”
단번에 등급이 오른 게 느껴진다.
그녀는 모르지만, 수호가 봤다면 분명 이런 메시지 창을 봤을 거다.
건우의 도움으로 진세연의 도끼질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흘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
신을 원망할 정도의 살육을 끝내고 지구의 공기를 맡았다.
‘아, 신이시여.’
슬쩍 드는 현기증에 쓰러진 그녀에게 김미소가 다가왔다.
“근데 왜…….”
미소의 의문은 주저앉았던 진세연이 일어서며 모두 풀렸다.
“아,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서요.”
“괜찮으세요?”
김미소는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네, 긴장이 갑자기 풀려서 그랬나 봐요.”
몸을 일으킨 진세연은 어딘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미소는 그녀를 일주일 만에 보는 거고, 진세연은 미소를 14일 만에 본다.
“정말 안 끝날 줄 알았는데…….”
진세연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많은 사연이 느껴졌다.
“일단 들어가시죠.”
김미소가 지원부 직원을 눈빛으로 독촉했다.
“이상 없으십니다.”
“등급은?”
“U급 나오셨습니다.”
“……?”
잘못 들었나?
믿기지 않아 측정기를 뺏어 보았다.
‘미쳤어.’
늦게 나온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진세연이 경험치를 모조리 독식한 모양.
“어? 사장님도 이제 SS등급 되셨네요.”
박수호를 측정한 장비에 숫자가 떴다.
“기분 나쁘니까 함부로 들이대지 마.”
“헙, 넵.”
잘 몰랐던 직원이 즉시 사과했고, 기억의 돌이 붙은 측정기를 치웠다.
“이제 내가 할 일 없지?”
수호의 물음에 김미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가 있어 그에게 일을 시키겠나.
미소의 부탁을 이렇게 잘 들어주었는데 흔쾌히 보내드려야지.
“나 집에 간다.”
“네, 저희도 곧 수습해서 갈 겁니다.”
“그래.”
휘리릭.
수호가 와이번 비룡을 소환했고, 초췌한 얼굴의 건우를 태웠다.
“가자.”
“네, 삼촌.”
비룡이 훌쩍 떠올라 사라지자 김미소가 진세연을 이끌고 용병 대기실로 향했다.
“놀랍네요. 솔직히 단번에 U급에 도달하실 줄은 몰랐어요.”
“고통스러웠습니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혹시 새로운 초능력이 생겼나요?”
등급만 올린다고 그 사람이 베테랑 용병이 될까?
아니다.
인간의 한계가 늘어날 뿐이지, 육체단련을 극한으로 해 피지컬을 한계에 근접하게 해야 하고, 다양한 스킬들도 배워야 한다.
김미소가 진세연에게 기대하는 건 애초에 전투력이 아니라 스킬이다.
그것도 신성력을 품은.
‘치료 계열도 좋고, 축복 강화 계열도 좋아.’
“생기긴 생겼는데요…….”
진세연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털어놓았다.
“마비 계열 하나하고요.”
“그리고요?”
수술치료를 할 때 쓸모 있겠군.
“음, 죽음을 조금 앞당기는 주문 하나랑.”
이건 사냥 계열이라 나름 괜찮다.
“또요?”
“회복 주문이 생겼어요.”
“오오!”
김미소가 바라던 스킬이다.
헌데, 진세연이 겸연쩍게 웃었다.
“근데 자가 회복이에요.”
“아……! 타인에겐 안 되나요?”
“네, 아쉽지만.”
진세연으로서도 아쉽다.
도움과 베품의 미덕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 새롭게 생긴 스킬들은 죄다 자기중심적이었으니까.
고통 삭제, 죽음의 기도, 체력 회복.
어느 것 하나 타인을 위한 건 없다.
고통 삭제는 그나마 진통제 대신 쓸 만할까…….
“그래도 고생하셨어요. 성직자들의 스킬북은 아루카 행성에서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의 직업이 수녀인 것이 중요했다.
“네.”
두 여인은 모를 일이다.
수호가 최종적으로 확인한 진세연의 프로필을.
레벨 80 – U
신의 처형인
*
완벽한 연구논문은 아니었다.
차원산업 발명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토들러 박사와 그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천재 리처드 박사.
무슨 사정인지 리처드 박사의 논문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지만, 비서실장 이소진이 모조리 다운받아 놓았기에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수호 길드 연구소장 장순필이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에 매달린 지 일주일째.
지이이잉.
아주 작은 공간 균열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드디어!”
많은 혈석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아주 찰나의 균열을 발생시켰지만,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차원석만 결합하면 제대로 된 이동포탈 생성기가 완성될 것이다.
이후 얼마만큼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유지되는지 등의 실험이 남아있지만, 완성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축하합니다!”
“이제 연구소장님의 명성이 세계에 울릴 겁니다.”
“허허, 아닙니다.”
그사이 연구소 소속의 엘리트 연구원들만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수호 길드의 직원들이 다방면으로 늘고 있지만, 연구소는 그중에서도 핵심시설이기에 가리고 가려서 인재를 채용하다 보니 연구원의 증원이 더디다.
하지만 하나하나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기에, 장순필을 도와 훌륭한 연구를 성공시켰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했던 차원산업발명에 이제 장순필의 이름이 오르내리리라.
“카피한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장순필에게 있어 명성 따위는 한 줌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것으로 인해 수호 길드의 영역이 넓어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만큼 인류가 영위할 평화의 땅이 넓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