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5)
26화 함정
감지 11팀 대기실.
“아오, 열받네.”
놀리려고 작정을 했는지 키득거리면서 눈치 보는 팀원들 모습을 보니 더 부아가 치민다.
“야! 다 꺼져.”
“에이, 팀장님. 대기실 나가면 저희 갈 데 없지 말입니다.”
“개기네?”
“사실만 말하는 거지 말입니다.”
“안 되겠다. 출동도 없는데 오늘 훈련이나 한번 할까?”
팀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우, 담배나 피워야겠다.”
“아차차, 카페인 충전 시간이네.”
우르르 몰려 나가는 팀원들을 보자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게 정상이다.
‘내가 만만해?’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짝짓기가 어떻게 청혼으로 둔갑하나.
“아오, 이 새끼 확 성추행으로 구겨넣어버릴라마.”
“어떤 간땡이 부은 놈이 널 성추행해?”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김미소를 보며 최수영이 인상을 팍 썼다.
“언니, 나 저기압이야. 건드리지 마.”
“저기압 아니었던 적이 있냐.”
김미소는 최수영의 책상 앞에 서류파일 하나를 올려두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애들 다 어디 갔니? 나 커피 한 잔 주라.”
“손이 없어? 타먹어.”
괜히 심술부리며 최수영이 서류를 손에 쥐었다.
“이건 뭔데?”
한 장 넘기자 나오는 수호의 프로필에 그녀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아놔, 이 새낀 왜?”
“그러고 보니 구면이겠네. 네가 건져왔다며?”
최초발견자 최수영의 11팀이라고 되어있었다.
“등급외 분류했어.”
신행성 추정 각성자다.
“얘를?”
그래서 F급 주제에 그렇게 쌨나?
“한판 했다며? 어땠냐?”
“좀 하더만…….”
최수영은 수호의 프로필을 뒤적였다.
몇몇 커리어가 추가되어 있었지만 크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뭐야? 얘 진짜야? 신행성?”
“그렇게 추정하는 거지.”
확실한 건 모른다.
단순한 던전 귀환자인지, 아니면 이미 연결된 3행성 중에 어디 오지에서 왔는지. 모든 건 포탈이 열려봐야 안다.
인상을 쓰던 최수영이 말했다.
“이거 왜 가져온 거야?”
“뭐긴 뭐야, 일이지.”
“……나 안 해. 다른 데 줘. 아니, 난 왜 맨날 파견이나 보내고 그래?”
김미소가 슬쩍 웃었다.
“감지팀에서 네가 최고잖아?”
“다른 애들 보내도 충분하잖아?”
“사이즈가 크잖아? 무려 신행성 추정이야. 어떤 행성인지도 몰라. 만약 미드얼 같은 곳이라면 시티에 포탈이 열리게 둬?”
그 순간 시티는 지옥이 될 거다.
“네가 적임자야.”
차원 포탈은 생성 전에 미리 차원끼리 충돌하며 에너지를 뿜는다.
감지특성 각성자들은 그걸 미리 캐치해 포탈이 생기기 전에 알 수 있다.
기감이 예민할수록 보다 먼저 차원균열을 감지할 수 있다.
관리국 최고는 최수영.
“쳇. 내가 사표를 쓰든가 해야지.”
“그럼 가는 걸로 알고 난 딜하러 간다.”
“호구처럼 막 퍼주지 마. 이러다 던전 귀환자면 얼마나 손해야?”
“어이구 언제부터 나라살림 걱정했데?”
김미소가 핀잔후에 나서자 프로필을 한 번 더 뒤적인 최수영이 인상을 썼다.
“한번 제대로 까발려보자고.”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 동안 박수호와 함께하게 생겼다.
*
부아앙!
클래식한 오프로드 바이크가 도로를 질주했다.
끼이익!
바이크가 터프하게 멈춰선 곳은 수호클랜 사무실 앞.
탁!
헬멧 안면가리개를 올린 최수영의 눈이 클랜 사무실의 현판을 확인했다.
-수호 클랜
“쯧, 촌스럽게.”
헬멧을 벗어 걸어놓고는 클랜 사무실 초인종을 찾다가 보이지 않자 문을 두드렸다.
탕탕!
“계세요?”
“누구세요?”
잠깐의 정적 후에 들려온 목소리가 앳돼 보였다.
개인의 사적 감정이 어떻든 간에 최수영은 유능한 요원이다.
수호 클랜의 간단한 정보는 이미 숙지한 그녀다. 건후라는 아이겠군.
“삼촌 계시니?”
“안 계시는데요.”
“문 좀 열어볼래?”
“잠시만요. 할머니!”
어디로 향하는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한참 뒤에 문이 열렸다.
“뉘슈?”
이숙자라고 했던가?
늙은 비서.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박수호 씨 있죠?”
“아유, 우짠데? 다들 아침부터 동굴인가 머시기에 나섰는지.”
“…….”
분명 오늘 관리국에서 사람이 나올 거라고 알렸을 텐데도 던전 스케줄을 잡다니.
“손님 오신다더니 그짝 아가씨인갑네잉. 어쨌든 들어오슈.”
“아뇨.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나는 그런 거 몰러.”
“으음. 그럼 이따 올게요.”
“편한 대로 하슈.”
이숙자가 미련 없이 들어가자 최수영이 어깨를 으쓱하곤 바이크 시동을 걸었다.
“어디로 간 거야?”
알아낼 방법이 없진 않다.
모든 각성자는 던전 출입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귀환자관리팀은 관리국 내에서 꽤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최수영은 바이크 헬멧을 쓰곤 김미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만났어?
“만나긴 개뿔. 얘들 던전 갔다는데?”
-엄청 열심히네?
수호 클랜의 이력을 보면 미친 듯한 속도로 던전 공략 업적을 쌓고 있었다.
“어디로 갔어?”
-좌표 보내줄게.
“알겠어.”
잠시 후 AR화면에 네비게이션이 작동했다. 다행히 필드는 아니고 4구역 내다.
그것도 상당히 가깝다.
부아아앙.
*
수호의 지금 레벨은 7.
추측으로 10이 되면 E등급으로 오른다. 다른 각성자와 자신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더럽게 안 오르네.”
경험치가 안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느릴 수밖에 없는 일.
처음엔 고블린 하나만 잡아도 업적포인트를 주던 것이, 이제는 여섯 마리는 잡아야 겨우 업적포인트 1이 올랐다.
저레벨 몬스터를 잡아서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속도의 레벨업은 불가능하다.
각성자들이 왜 E급에 몇 년씩 머무르는지 알 것도 같았다.
클랜원들도 스킬 백화점에서 새로운 무기들을 장착했다.
“이야! 이래서 스킬, 스킬 하는구나.”
기존에 보지 못했던 몬스터들의 흔적을 탐색과 추적 스킬로 볼 수 있게 되자, 동수는 제3의 눈을 뜬 듯했다.
파파팟!
명진의 새로운 스킬 ‘신룡질주’ 또한 위력을 발휘했다.
본래 위협적이던 봉술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 기동력을 얻자 전투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스억!
적의 목을 따버리는 준호의 솜씨 또한 깔끔하다. 표정은 아직 영 좋지 못했지만, 전처럼 망설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셋이서 충분할 것 같은데.’
수호가 끼어버리면 사냥이 아니라 혈석 수집밖에 되지 않는다.
사냥꾼이 되려면 사냥을 해야 하는 법.
이번 던전을 끝으로 공격대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저것만 잡고 가자. 셋이서 해봐.”
“네.”
보스몬스터 고블린 전사를 상대하는 셋은 제법 합이 맞았다.
십여 분을 투닥거리더니 준호가 목을 날렸다.
“으으.”
“나무관세음보살.”
“와, 저번보다 월등히 빨라요.”
자축하는 셋의 뒤로 출구포탈이 생겨났다.
지이잉.
“나가자.”
“넵.”
필드의 포탈은 전부 정부에서 관리하기에 잘해봐야 푸드트럭이 전부지만, 시티의 포탈은 달랐다.
포탈 주변에 카페는 물론, 던전 공략의 피로를 덜어줄 마사지 샵이나 사우나 시설을 갖춘 곳도 있었다.
저런 게 다 길드의 수입이 된다.
지금 있는 곳은 출입을 막은 도로에 테이블을 깔고 만들어진 노천카페.
“제가 한잔 살게요. 카페모카 네 잔이랑 와플 다섯 개랑, 여기 샌드위치 네 개랑…….”
이번 전장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한 동수는 신나 보였다.
확실히 동수의 역할이 컸다.
수호가 간간히 도와주긴 했지만 겨우 2시간 만에 클리어했다.
셋으로 도전해도 3시간 정도면 클리어 가능하리라.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아요?”
“조금 쉬고 한 번 더 갈까요?”
스킬 몇 개 배웠다고 전보다 피로도가 대폭 감소한 느낌.
셋의 대화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독립시켜도 되겠어.’
확실히 던전에서는 전투력만이 아닌 다재다능함이 필요했다.
하나의 스킬을 배운 다수든가, 다수의 스킬을 배운 하나든가.
“이제 따로 사냥하자. 너희끼리만 해도 하루에 세 번은 돌 수 있겠어.”
“으음. 확실히…….”
수호와 함께 했을 때보다야 수입이 확 줄어들겠지만, 이제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멀리 봐야지.’
차원에너지를 축적해 등급을 올리려면 직접 사냥에 가담해야 한다.
언제까지 레벨1 던전에 머무를 게 아니라면, 수호에게 의존하는 건 좋지 않다.
“저는 찬성.”
“소승도 동의합니다.”
“나도.”
“좋아. 그럼 난 레벨2를 뚫지.”
레벨2 던전을 50번 클리어하면 클랜 레벨을 2로 갱신 가능하다.
클랜 레벨을 올리는 건 중요하다.
앞으로 영역 안에 생성될 포탈의 주도권을 쥐는 거니까.
‘레벨2 찍고 땅 보러 간다.’
그럼 수호 클랜의 영역 안에 생성되는 레벨2 던전까지는 모두 권한이 생긴다. 그 이상은 상위 길드가 가져간다.
수호 클랜은 필드에 자리잡을 거니, 공략 불가능한 던전은 국방부로 넘어간다.
영역을 구축하고 안전이 보장되면 짐승은 새끼를 깐다. 자신의 경우엔 길드 식구들을 더 받는 것일 테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사람 하나가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수호 클랜분들이시죠?”
“네, 그런데 누구?”
“아, 전 BDG길드 최명우 대리입니다.”
방금 공략을 끝내고 온 눈앞의 포탈이 BDG길드가 관리하는 곳이다.
“요즘 한창 뜨거운 수호 클랜원들을 보니 영광입니다. 하하, 바로 옆 동네인데 이렇게 뵙네요.”
4구역 내에서 레벨5 길드는 6곳.
BDG길드는 나름 끗발 있는 곳이다. 친해져서 나쁠 것 없는 곳인데 이렇게 먼저 다가오니 반가웠다.
사람하고 대화하기 좋아하는 동수가 맞장구 쳐주니, 한참 떠들던 최명우 대리가 기분 좋은 듯 슬쩍 제안했다.
“이거 제가 뭐라도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겨우 대리 나부랭이라 권한이 적네요. 하하.”
“아유, 아녜요. 클랜 근처라 DGB 포탈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오며가며 인사나 하죠.”
“하하, 그러시죠. 아까 슬쩍 듣기로 레벨2 던전 도전하신다는데. 어떻게…… 서비스로 제가 첫 회 입장료를 무료로 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예?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레벨2 던전이면 1회 입장료가 1천을 넘는다.
“수호 클랜이 저희 길드 포탈 이용해 주시면 저희가 더 감사한 일이죠. 영업비용입니다. 하하하.”
최명우 대리의 말에 수호가 솔깃한 얼굴이었다.
“레벨2 던전이 있어?”
“아유, 그럼요. 저희 DGB 권한이 레벨5까지입니다.”
DGB의 영역 안에라도 레벨5가 생성되면 그 윗길드, 4구역의 방위길드인 신라 길드가 가져간다.
“저희도 레벨1이나 2 같은 자잘한 포탈은 아랫길드에 주는데, 여긴 DGB 직할령이라 저 같은 직원이 나와서 관리하는 겁니다. 하하.”
최명우 대리는 한참을 자신의 직급 권한에 대해 자랑하더니 또 기분을 냈다.
“어디, 지금 당장 구경하시겠어요? 수호 클랜 정도면 레벨2 던전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준호가 말렸다.
“그래도 레벨2 던전인데 준비 좀 해야 하지 않아?”
“하하, 별 걱정도 다하십니다. 완벽한 공략집에 공략 물품까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좋아. 너흰 그냥 돌아가. 나 혼자 가볼 테니까.”
“예?”
“너흰 있으나 마나잖아. 잠깐 들렀다가 가지 뭐.”
“크.”
수호의 팩트폭행에 동수를 위시한 일행이 할 말을 잃었다.
최명우 대리가 미간을 좁혔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하하. 마침 가까운데 제가 모시겠습니다. 재차로 가시죠.”
최명우 대리는 웃는 낯으로 운전하며 전화를 걸었다.
“어, 47번 포탈 이용할 거니까 준비해 둬. 그래 임마.”
차는 멀리 가지 않아 멈춰섰다.
“뭐야? 레벨2 던전이라더니 왜 이리 후져?”
주변에 기반시설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공터에 컨테이너 몇 개 정도.
“하하, 생성된 지 얼마 안 되는 포탈이라 준비 중입니다. 일단 가시죠. 입장절차는 제가 다 처리해뒀습니다.”
“이거 너무 신세지는데?”
“아유, 아닙니다. 앞으로도 DGB 포탈 자주 이용해 달라는 뇌물입니다. 하하.”
최명우 대리는 그를 이끌고 곧장 바리케이드로 막힌 포탈로 향했다. 포탈을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
“준비물품은?”
“여기 공략집하고 생존키트입니다.”
수호는 두툼한 배낭을 메곤 최명우와 악수했다.
“나오면 밥이나 한 끼 사죠.”
“아유, 저희가 더 감사하죠.”
철제로 된 바리케이드를 치우자 수호가 망설임 없이 포탈로 들어갔다.
지아앙.
수호가 입장하자 붉은 포탈이 은은한 푸른빛을 띠었다.
“와, 진짜 위기감 없는 새끼네.”
듣기로 최소 C등급 이상 전투력이라고 했나? 그러니 레벨2 던전 정도를 산책 가듯 가지.
“뭐, 쉽네.”
B급 각성자라고 해도 살아 돌아올 리가 없다. 지금 들어간 던전은 최근에 생성된 레벨5 던전.
추천 공략인원이 B급 풀파티 15인이거나, A급 5인 파티 이상이다.
혼자서 살아 돌아온다?
제놈이 S급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다.
부아아앙!
“아오! 그렇게 부르는데도 쏙 들어갔네.”
빠르게 다가온 푸른 오토바이가 멈추고 최수영이 그들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도 수호 클랜 소속이니까 알아서 출입기록 해줘요!”
빨리 입장하지 않으면 수호와 다른 던전에 진입한다.
소리치며 달려간 최수영이 포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
지이잉.
최수영이 통과한 뒤 아슬아슬하게 푸른빛이 사라졌다.
“어, 으음. 누구죠?”
“모르지. 알 필요도 없고.”
각성자 둘이 사라졌다.
“엄청 급했나 보네. 휴대폰이고 뭐고 다 떨어졌네요.”
최수영이 통과하며 오토바이 헬멧을 비롯해 소지품들이 포탈 앞에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