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71)
272화 아프리카의 주인들 (2)
두두두두두.
“크허어엉.”
달리는 사자 무리 옆으로 치타 두 마리가 치고 나왔다.
타타다다다다.
각성자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버리듯, 각성한 동물들 역시 그 한계를 넘어서버린다.
자동차보다 수배는 빠른 속도.
퍼억!
그 속도 그대로 부딪힌 오우거의 목이 돌아갔다.
“꾸에!”
겨우 피한 트롤의 아구창이 찢겨 나갔다.
콰콰콰쾅.
얼룩말 무리가 고블린 무리를 향해 달리며 진영을 무너뜨렸다.
“크허어엉!”
사자 수십 마리가 고블린들을 할퀴고 물어뜯으니 금방 진영이 붕괴되었다.
슈슈슈슉!
기린이 달려왔다.
기다란 목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리고 하이에나가 떼거리로 몰려와 합동해 오우거 무리를 물고 늘어졌다.
“무어!”
익숙한 삼각뿔소가 지나가자 비로소 용병들은 안심했다.
무소1, 무소2, 무소…….
저들은 수호시티에서 가장 흔한 소이자 수호의 야수들.
“형님이다!”
“오셨어.”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좋다고 해야할지.
지금 그들이 사수하고 있는 던전은 수호가 이용하던 던전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때마침 수호와 조우하니 긴장감이 쑥 하고 빠지는 기분이었다.
“뿌우우우우!”
발걸음이 느리지만 누구보다 육중한 남만코끼리의 등장에 트롤들이 코에 걸려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 압도적인 야수들의 돌격에 몬스터들의 진영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용병들의 손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후우.”
“하아, 하아.”
폭풍이 휩쓸고 간 듯 주변에 몬스터들 시체뿐이다.
“사, 살았다.
동수는 긴 한숨을 쉬었다.
전투 중에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허전한 왼팔이 신경 쓰였다.
“아, 이거…….”
팔뚝부터 잘려나가버린 팔.
오우거가 씹어 먹었던가?
아픈 와중에도 이거 유튜브 각이 섰다는 생각에 웃기고 슬펐다.
“외팔이네.”
휘리리릭.
동수의 곁에 흰 연기가 날아와 뭉치더니 수호의 모습으로 변했다.
“뭐냐?”
“혀, 형님.”
수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장님.”
머리가 풀어헤쳐진 홍세희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니야.”
그럴 수 있다.
“새까맣게도 몰렸네.”
어느새 속도가 붙은 돌진은 막힌 상태이고, 야수들과 몬스터들이 어울려 백병전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뒤섞여 괴성과 피가 난무했다.
용병들 몰골을 보니 다들 사투를 벌인 모양이다.
“하이고, 인자 죽어도 못 움직인다.”
털썩 주저앉은 이숙자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 옆에 선 당진철의 지친 기색을 보니,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듯했다.
“넌 또 왜 그러냐?”
수호의 시선이 준호에게 머물렀다.
“형…….”
준호는 눈 하나를 감고 있었는데, 줄줄 흐른 피를 보니 그 기능을 상실한 듯 보였다.
“흠.”
어디 박준호만일까.
서민수는 배의 상처가 터졌는지 둘둘 감아놓은 붕대에 피가 배어나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한둘 정도 죽어도 이상치 않을 몰골을 하고 있었다.
던전 공략을 막 끝내고 다음 타깃을 찾으려는데 낌새가 이상해 야수들부터 모조리 소환해 돌진시킨 게 천만다행이다.
“부상자가 많네.”
수호는 조화력을 끌어모았다.
그 모습에 진세연이 힘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거북이 군주가 모든 치료 행위를 거부해요.”
신성력이 봉쇄된다.
포션도 들지 않으며, 스킬도 봉인된다.
파파파팟.
수호는 모여든 나무정령들을 조화력으로 변화시켜 생명에너지를 나눠주었다.
파파파팟.
뻗어나간 에너지가 준호의 눈에, 동수의 잘려나간 팔뚝에 한참 머물렀다.
츠츠츠츠.
“어? 어?”
동수는 빛무리가 팔뚝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며 나오는 자신의 뽀얀 살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의수 같은 게 아니다.
실시간으로 감각이 확장되고 있었다.
팔에서 손목, 손바닥 손가락으로…….
“와, 시발! 팔이 자랐어!”
상실이 컸기에 희열이 배가 되었다.
피콜로도 아닌데 팔이 자라디니!
“누, 눈이!”
고블린의 갈고리에 긁혀버린 눈알이 복구되었다.
“허윽.”
서민수는 통증이 사라지는 감각에 서둘러 붕대를 풀어보니, 배에 뚫렸던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상처 자체가 사라지는 그 신비함에 저도 모르게 배를 쓰다듬었다.
“마, 말도 안돼.”
진세연은 서둘러 신성력을 일으켜 봤으나…….
“…….”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세연의 시선이 여전히 눈 감은채 동료들을 치료하는 박수호에게 머물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기에.’
거북이 군주의 광역 억제를 이겨냈다. 거기에 본인은 진세연의 치료나 축복도 들지 않는 몸이 아닌가?
‘누구시기에.’
사장님을 인간으로 봐야 할까?
적어도 진세연에게는 신 그 자체로 보였다.
기적을 행하는…….
파파팟.
한차례 바람 같은 에너지가 지나가고 부상자들이 사라졌다.
“사장님.”
“와아…….”
수호는 회복된 용병들을 보며 말했다.
“저기 신입 오네.”
등 뒤를 가리키는 수호의 손짓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후다다다다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람이 하나 뛰어오고 있었다.
우다다다다!
덩치는 전보다 더 슬림해졌지만 영락없는 강석호의 모습.
“왜 옷을 벗고…….”
짐승 가죽으로 만든 듯한 거적때기 하나로 겨우 하체만 가린 차림에 육상선수 같은 폼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형니이이임!”
급 정거한 강석호가 수호의 곁에 멈춰서 숨을 헐떡였다.
“허윽, 허윽, 저만 두고 가시면 어쩝니까. 허윽, 허윽.”
“저기 가서 마저 레벨업이나 해.”
수호가 격전중인 몬스터들을 가리켰다.
“허윽, 허윽, 넵!”
우다다다다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다.
강석호가 뛰어가 숄더차지로 어우거를 밀어버리고는 주먹으로 죽빵을 때렸다.
퍼억, 퍼억, 콰직!
죽을 때까지 때렸다.
등 뒤에서 트롤이 달라붙고, 오크가 검을 내쳐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깡, 까앙.
그의 피부가 철이라도 되는 듯 칼을 튕겨냈다.
콰직!
오우거를 끝장내고 등뒤를 노린 오크의 칼을 뺏어 들더니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남자는 주먹!”
무기 따위 쓰지 않는다.
형님의 가르침은 숭고하다.
근조직의 끝을 본 자.
나 강석호가 이 전장을 끝내주마.
퍼억, 퍼억, 퍽!
몸으로 견디며 주먹으로 끝낸다.
강석호가 야수들 사이에 뒤섞여 전장을 종횡무진했다.
그 모습을 본 동수가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 석호 형님 어쩌다가…….”
“애가 맞는 게 체질이더라고.”
고통을 즐긴 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즐긴 자.
트레이너 강석호는 진화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동수는 강석호와 수호의 던전 수행이 궁금했지만 지금 묻지는 않았다.
“사냥 안 할 사람은 뒤로 빠져.”
수호의 말에 용병들이 일어나 무기를 챙겼다.
“그럴 리가요.”
“이 정도 당하고 반격 안 하면 병신이죠.”
“시부럴, 나가 저 괴물들 창자를 쑤셔부릴 것이여.”
이숙자의 말에 모두 말없이 웃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비전투원인 이숙자도 칼자루 쥐고 고군분투했다.
쌓인 게 많은 모양.
“좋아.”
수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몸이 부상당했지, 마음이 꺾인 부하는 없어 보였다.
“사냥해. 난 거북이 잡아오지.”
수호는 매로 변해 하늘을 날았다.
야수들을 모조리 소환했기에 이제 포위공격 당할 염려는 없다.
“아, 한 놈은 안 왔네.”
소환에 불응한 그 녀석은 돌아가면 조금 훈육해 줘야겠다.
슈아아아아.
매로 변한 수호가 날갯짓하며 거북이 군주를 향해 날아갔다.
“많기도 많네.”
야수들과 교전중인 몬스터 군단은 그저 선발대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기북이 군주의 곁에 강력한 기운의 열 마리 군주가 보인다.
그들이 이끌고 온 수많은 몬스터 군단들.
이건 아프리카 일부의 몬스터를 죄다 끌어모은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숫자다.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도 넘어 보인다.
거북이 군주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늘에서 아래를 보니 거대한 산이 하나 움직이고 있는게 훤히 보였으니까.
“청소부터 하고 잡을까?”
보스전을 하자니 날파리들이 많다.
수호는 드넓은 초원.
나무정령의 힘을 빌렸다.
본디 그의 조화마법은 그저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수준이라 광역 공격엔 좋지만, 그것을 버티는 수준의 일정 이상의 몬스터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공격을 합칠 수 있게 된 지금은…….
‘대지 강타!’
꾸구구구궁.
일대의 모든 초원과 황무지, 숲이 진동하며 내려앉았다.
갈라지고 흔들리고 솟았다.
단번에 조화력이 쑥 빠져나가며 허한 기운이 들었으나, 아직 반이 남았다.
‘자연 발화.’
남은 조화력을 모두 쏟아부어 하나의 마법을 더 얹었다.
레벨업하며 해금된 스킬.
두 가지 조화마법을 연달아 쓰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는 마법.
‘조합.’
땅이 꺼지며 몬스터들을 삼켰고, 불기둥이 터지며 용암이 흘렀다.
콰콰콰쾅!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 화산이 터졌다.
“크아아!”
토네이도 정도의 마법이었다면 굳건히 버티고 날아가지도 않았을 오우거들이 용암에 화상 입었다.
꾸어어어엉!
수호의 조화마법이 촉매가 되어 시작된 화산 폭발은 미친 듯이 가속화되어 여기저기 지형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아아!
매캐한 화산재가 하늘로 솟으며 시야를 제한했다.
슈아아아.
검은 하늘을 가르며 매가 거북이를 향해 날았다.
휘리릭.
수호의 접근에 검은 연기가 날아와 응수했다.
“흡혈귀네.”
“크아.”
박쥐로 변한 뱀파이어 귀족이 호기롭게 달려들었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금세 제압당했다.
“크핫!”
매의 날카로운 발톱이 박쥐의 머리를 뜯으며 금방 소멸시켜 버렸다.
“슈아라라!”
저 아래 군주 하나가 펼친 주술공격을 수호가 여유롭게 피하며 거북의 등에 내려앉았다.
땅은 갈라지고 용암이 들끓는 지옥인데, 거북이 군주는 용케 고통을 참으며 걷고 또 걸었다.
슈우우우우, 쿠우우우웅.
느리지만 육중한 덩치의 발이 내딛어질 때마다 거북이 등껍질이 진동했다.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은 살기 위해 거북이 다리를 타고 올랐다.
그 와중에 아홉의 군주 몬스터들이 수호를 에워쌌다.
“이야, 너네 참 다양하구나.”
대통합이 유행이라 그런지 리저드맨에 고블린, 오우거에 다양한 종의 군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방금 죽인 뱀파이어까지 합치면 정말 다양한 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을 한데 뭉치게 한 거북이 군주의 정체는 이따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어쩌지.”
밝은 미래를 위해 힘을 합쳤을 군주들이지만. 대통합 따위는 쓸모없을 정도의 전력 차이가 났다.
수호는 제왕검을 꺼내 뽑았다.
스르르릉.
검을 뽑아 쥔 것만으로도 달라진 존재감에 위기감을 느껴서일까?
구오오오오오.
거북이 군주가 울었고, 군주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호가 검을 그었다.
스컹!
촤아아악!
단 일검에 아홉의 군주가 양단되었다.
츠츠츠츳.
모조리 절명했는데 단 하나.
황금 리저드맨만이 꼬리 하나와 다리 하나만 잘려 도망치고 있었다.
슈아아아.
알 수 없는 빛이 뭉쳐져 놈의 잘린 사지가 재생되었다.
“오.”
리저드맨을 치료한 생명에너지가 익숙하다.
수호는 훌쩍 도약해 황금 리저드를 걷어차곤 목을 잘라버렸다.
스컥!
“끄르.”
목 없이 발버둥치던 몸이 스러지며 군주들이 모주 죽었다.
단 하나.
발을 딛고 선 거북이 군주만 빼고.
“어디 보자.”
황금 리저드맨이 도망친 곳이 목 쪽인지라, 거북이 머리가 코앞이다.
수호가 모든 관찰 계열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수명을 초월하여 오래토록 산 생물은 숭배받기 마련이다.
리저드맨의 숭배를 받으며 신으로 추앙되어버린 전설의 거북신.
수호는 거북이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