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72)
273화 X신
신이란다.
무려 신이다.
누군가에게 추앙받고, 믿음의 대상이 되는 대상.
오래 살아 영물이라 불렸고, 많은 사람들이 숭배해 신이 되었다.
“너 혹시 말이야.”
수호는 거북이 머리에 꼭대기에 올라타 있었다.
구오오오오.
이제는 구슬프기까지하는 그 울음소리에, 저 멀리서 새로운 몬스터 무리가 날아왔다.
언제나 기동성이 가장 좋은 몬스터 비행 몬스터들이 먼저 접근한다.
“꾸에에엑!”
물론 와이번 비룡과 그리핀들에게 사냥당해 하나씩 추락하는 중이다.
“나 보지 않았냐?”
구오오오오.
수호는 거북신의 울음에 이 의미없는 대화를 그만두기로 했다.
뭐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그가 궁금한 것은, 혹시 이 거북신이 수호가 있었던 그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음에 답도 없고, 증명할 방법도 없으니 남은 건 하나다.
슈우우우웅, 쿠우우우웅.
여전히 느리지만 한 발씩 옮기는 거북신에게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
“어딜 그리 가는 거야?”
구오오오오오.
“한 발만 더 떼면 모가지 날아간다.”
구오오오오.
슈우우우웅, 쿠우우웅.
경고를 무시한 거북이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발을 옮겼을 뿐인데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빌딩이 땅에서 뽑혀, 하늘을 날아 다시 땅에 처박히는 모양새였다.
주변을 울리는 진동과 먼지는 당연지사.
이미 화산폭발로 엉망이 되어버린 지형은 벗어났다.
“나도 참. 무슨 미련인지.”
여기까지 오도록 이 독백 같은 대화를 이어 온 건 분명 미련이었다.
‘나도 오래 살긴 했는데.’
‘이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게 아닐까?’
혹은 그 반대로 되었기에 오래 살아버린 것이 아닐까?
“끝내자.”
길들이기 스킬은 진즉에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괜히 한번 더 스킬을 써봤다.
야수라는 판정을 받지 않아서인지, 혹은 길들이기에는 너무 급이 높은 대상이어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진짜 끝내자.”
수호는 제왕검을 빼들고 거북이 정수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슈슈슈슉!
그때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거북이 머리가 쏙 들어가버렸다.
슈으으으, 쿠우우우우우웅!
머리가 들어가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네 발과 꼬리마저 자취를 감춰 버리니, 지지대를 잃어버린 몽뚱이는 공중에 뜬 채로 잠깐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스스스스.
충돌에 일어난 흙먼지가 사방을 뿌옇게 만들었다.
딛고 설 거북이 목이 사라지자 수호는 땅에 착지하고는 거대한 산 같은 거북이 몸통을 보았다.
“도망치는 건 엄청 재빠르네.”
수호는 정말 거대한 산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거북이를 보며 혀를 찼다.
“숨는다고 달라지나.”
도망갈 수도 없으니, 달라지는 건 없다.
츠츠츠.
수호는 손에 들린 제왕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횡소천군.’
츠앙!
수호의 검이 휘둘러지자 공간이 갈렸다.
검기에 반으로 잘려야 할 거북이는.
즈아아앙!
단단한 등껍질에 검기가 닿기도 전에 무형의 기운으로 이뤄진 방어막에 가로막혀버렸다.
“오!”
수호의 검이 막혔다.
삼재검법을 배우고 나서 그의 검을 처음 막은 상대가 나타났다.
“이것도 막아봐라.”
수호는 검에 기를 집중했다.
직도황룡의 오의로 봉인 해제된 태산압정.
말 그대로 큰 산을 내리눌러 버리리라.
“하압!”
수호가 허공에 검을 내리쳤고, 거대한 기가 휘몰아쳤다.
파파파파팡!
화살비같은 검기가 내리꽂혔으나 보호막을 깨트리지는 못했다.
“뭐야 이거.”
수호는 보호막을 이루는 기운을 느껴보았다.
‘조화력이랑 비슷한데?’
방어막을 두르고 튼튼한 등껍질에 숨어버린 거북이를 어떻게 처치할까 고민하던 수호는 픽 웃었다.
“이거, 스킬 하나 봉인 풀겠는데?”
삼재검법을 익히며 배운 3가지 스킬.
직도황룡, 횡소천군, 화룡점정.
앞의 두 가지 초식은 숙련도가 올라 봉인된 오의가 풀렸다.
태산압정과 팔방풍우.
찌르기인 화룡점정의 오의 스킬이 여전히 ‘???’로 봉인해제 전인데…….
“버텨봐라, 한번.”
수호는 산과 같은 거북이의 몸통을 빙 둘러가 목이 숨은 곳을 보았다.
잔뜩 움추린 거북목, 말려 들어간 단단한 피부 사이로 눈알이 보였다.
“안녕?”
수호는 씩 웃으며 자세잡고 검을 찔렀다.
파앙!
보호막에 막혀 밀려난다.
파앙!
개의치 않고 다시 찔렀다.
파앙!
계속해서 찔렀다.
숙련도가 올라 스킬 봉인이 풀릴 때까지…….
*후우웅, 후우우웅.
이성우는 마몬비족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날개를 바지런히 놀려 숲으로 향했다.
“확실히 예사 기운이 아니야.”
이성우가 거대한 대장나무를 보곤 그대로 날아가 숲에 착지했다.
“이건.”
바닥에 내려선 이성우는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곤 눈을 부릅떴다.
“미친, 세계수잖아!”
어떻게 세계수가 아루카 행성이 아니라 지구에 뿌리내릴 수 있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박수호는 세계수를 옮겨 심는 법을 터득한것인가?
“이게 균열을 억제하는군.”
“회귀자도 세계수의 효능에 대해서는 처음인 모양이구려.”
“……!”
방심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이성우가 흠칫 놀라 검을 빼들었다.
“누구냐?”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 검을 겨눴다.
세계수 근처 나무둥치 아래 움막 하나가 지어져 있었다. 그 앞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사내는 다름아닌 장순필.
“객이 물으시니, 이거야 원 허허허.”
장순필의 소탈한 웃음에 이성우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죽고 싶냐?”
죽일 수 있다.
눈앞의 장순필은 고작해야 S등급으로 보이니까.
거기에 별다른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회귀자가 마음먹으면 이 노복의 목이야 취하기 쉽겠지요.”
“……연구소장이군.”
“영광이구려. 회귀자께서 이 몸을 다 아시고.”
“…….”
이번 생에 처음으로 알게 된 인물이다.
그 전의 회귀 동안 한 번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
박수호에 의해 발굴되어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인물.
“그런데 그거 아시오?”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지껄여 봐.”
이성우가 이죽거렸다.
마침 잘됐다.
야수들도 다 사라졌고, 세계수가 지구에 심어지는 것도 확인했다.
‘어떻게 옮겨 심었는지만 밝혀내면…….’
균열 억제는 인류사를 바꿔버릴 정도의 획기적인 아이템이다.
더 이상 내부의 던전브레이크로 도시를 잃지 않아도 되니까.
‘연구소장 장순필.’
박수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인물 중 하나다.
사장에 대한 충성이 대단하다고 평가되는 인물.
‘고문에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충성심이 고통에 대한 인내심을 넘어설지는 실험해 보면 아는 일.
자박.
“오! 더 오지 않으시는 게 좋소.”
“한다는 개소리가 겨우 그건가?”
먹히지도 않을 위협이라니.
이성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입 빼면 아무것도 없는 놈이군.
“나라면 더 이상 오지 않겠소. 이건 정말 당신이 걱정되어 하는 소리요.”
“말이 길어지는 건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소리지.”
이성우가 한 발 더 다가섰다.
장순필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쫄았군.’
이성우의 입이 비틀리며 웃음 지었다.
“네놈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잘라주마.”
“거 위험한 소리를 하시는구려.”
“네가 아는 모든 걸 실토해야 할게다.”
“노복이 아는 게 뭐가 있겠소.”
“크크, 지난 회귀 동안 사람을 고문하는 데는 도가 텄지.”
“악당같은 말을 하는구려.”
“영웅이겠지.”
그 말을 끝으로 이성우가 돌진했다.
아니, 하려 했다.
쉬쉭.
소름끼치게 섬뜩한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하얀 뱀 하나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무슨!”
재빨리 다리를 털어 작은 뱀을 떨치려 했으나, 접착제라도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꽈직!
설상가상, 몸을 타고 오른 뱀이 아가리를 벌려 목을 물었다.
“젠장!”
빠르게 손바닥으로 쳤으나, 재빠른 뱀이 피해버려 애꿎은 목만 쳤다.
찰싹!
“재수없게 뱀 따위…….”
이성우는 말을 잊지 못했다.
‘뭐, 뭐지?’
혀가 굳었다.
혀만 굳었으면 다행이겠으나, 몸 전체가 굳어 버렸다.
“오, 저런. 제가 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능글맞게 웃은 장순필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장순필의 다리를 타고 오른 백사 하나가 그의 어깨에 자리잡고 혀를 날름거렸다.
[죽여버리면 되지, 굳이 저런 걸 왜 살려두지?]장순필의 부탁으로 죽이지 않고 마비독만 주입했다.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하여 물을 게 조금 있습니다.”
[흠, 알아서 해.]“그보다 왜 소환에 응하지 않으셨습니까?”
[가서 뭐하나.]레벨99의 백사다.
사냥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경험치도 없다.
슈슉.
백사가 수풀을 가로질러 세계수 나무를 타고 올랐다.
[마비 일주일 간다.]“고맙습니다.”
일주일의 취조 시간을 얻었군.
모자라면 그때 또 마비 독을 부탁하면 된다.
“아까 고문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
“저런, 혀가 굳어 대화가 되지 않겠군요.”
장순필은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왔다.
마몬비족의 모습을 한 이성우다.
구천 행성 귀환자인 그가 전음을 못할 리가 없다.
[날 풀어라.] [대화 좀 하고 생각해보지요.]장순필은 웃으며 육성을 뱉었다.
“고문은 저도 좀 합니다.”
그의 웃음이 짙어졌다.
“같은 행성 귀환자니 잘 아시지요? 구천 행성이 워낙 또 그렇잖습니까?”
장순필의 웃음에 대조적으로 이성우는 굳어버린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젠장!’
이게 무슨 추태인지.
개한테 두드려 맞은 이후에 곧장 내뺐어야 했다. 괜히 조금만 더 정보를 수집하려다가 이게 무슨 꼴인지.
‘도망치기만 하면…….’
기회는 늘 있다.
회귀하면 된다.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려 시작하면 된다.
언제나 내게는 기회가 있다.
나는 이 생의 주인공이니까.
*지루하고 긴 찌르기가 끝냈다.
수호는 검을 거두었다.
무슨 뜻이지?
“내로남불!”
수호의 외침에 저쪽에서 사냥을 마치고 쉬고 있던 당진철이 나는 듯한 경신법을 발휘하며 뛰어왔다.
“왜 부르셨소?”
“선인지로가 뭐냐?”
“오! 깨우치셨구려. 역시 형님이시오.”
당진철이 무공초식의 해석을 내놓았다.
“신선이 가리키는 길을 의미하오. 이게 뭐냐면…… 선인에게만 보이는 약점이 있다는, 뭐 그런 뜻 아니겠소?”
“신선이라…….”
수호는 검을 들고 움츠린 거북이 눈알을 보았다.
사정없이 떨리는 저 눈알은 뭘 알고 저러는 걸까?
“선인.”
수호는 손을 뻗어 만져지는 무형의 기운을 느꼈다.
‘신의 방패.’
거북이 신이 되어 부리는 힘이 신성력이 아니고 무엇일까?
착.
수호가 검을 들어 거북의 눈알을 가리켰다.
거대 거북의 커다란 눈동자와 오래 산 인간의 눈이 마주쳤다.
“쫄았냐?”
수호가 검을 내질렀다.
쑤우우우!
신성력으로 이뤄진 보호막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길을 내주었다.
파앙!
날카롭게 내질러진 기가 거북이 얼굴을 꿰뚫고 관통했다.
거대 육상 군주.
아니, 그저 그런 군주가 아니다.
신화급 군주라 해야 할까, 신급 군주라 해야 할까?
거북신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