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76)
277화 회귀 (3)
“다했네.”
수호는 마지막 던전 공략을 끝으로 소멸하는 포탈을 보며 후련한 마음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야수들이 L급을 찍었고, 아직 U급에 머무르는 건 상어같이 물에서만 활동하는 녀석들뿐이었다.
녀석들이야 다음에 활개칠 만한 맵이 나오면 그때 올리면 된다.
육상 야수들도 정말 소수의 몇몇만 U급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들 차례야 천천히 있어도 다가온다. 한반도도 이제 강원도 쪽은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필드니까.
굳이 던전 나들이를 시켜주지 않아도, 필드 사냥만으로도 레벨업 여지는 있다.
“조급할 것도 없고.”
하루 이틀 살다가 죽을 것도 아니고, 아등바등할 것이 뭐가 있겠나.
수호는 완전히 꺼져 재만 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다 남은 고기 덩어리를 얻기 위해 대머리 독수리 몇이 서성이는 게 보인다.
“엄청 반갑네.”
털이 벗겨진 머리가 친숙하기 그지없다. 수호는 C급밖에 되지 않는 대머리 독수리 일곱 마리를 자신의 야수 컬렉션에 추가했다.
“음, 근데 이걸 어찌 다 모으지.”
몬스터 시체들이 타고 남은 게 백골뿐일까?
수만 개가 넘는 혈석들이 그 틈에 나뒹굴고 있다.
가진 돈이 많다 하여 땅에 떨어진 돈을 줍지 않는 건 사치다.
수호는 염력 관련 스킬을 구매하려다가 그냥 편하게 정령을 불러들였다.
“다 모아와.”
휘이이잉.
실프가 날았고, 노움이 들썩이며 땅에 스며들었다.
살리만다가 여전히 다 타지 않은 몬스터 사체를 불태웠고, 운디네는 멀뚱히 수호를 보고 있었다.
“넌 노냐?”
우움.
실프처럼 바람에 날려 혈석 여럿을 주울 수도 없고, 노움처럼 땅을 주물러 혈석을 굴러오게 만들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살리만다처럼 채취되지 않은 혈석을 마저 끄집어 낼 수도 없고.
“하나씩이라도 날라.”
우움.
운디네가 물방울을 튀기며 날아가 혈석을 하나씩 주워 모았다.
“군데군데 모아놔. 내가 수거할 테니까.”
수호는 정령들을 일 시켜놓고 천천히 주변을 산책했다.
“많기도 많다.”
주변에 온통 타다 남은 사체와 뼈뿐이다.
누가 봤으면 참 좋아할 만한 참상이군.
수호의 걸음이 멈춘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은 포탈이 존재했던 장소였다.
거북이 군주 사체는 눈 녹듯 사라졌고, 대신 등장했던 검은 포탈도 던전에 잠깐 간 사이 없어졌다.
“어디서 또 신급 군주 하나 더 안 뜨나.”
수호는 일반적인 몬스터들의 우두머리인 군주와 녀석들을 구분했다.
녀석들은 왕으로서 추대받는 것 이상의 숭배를 받아온 놈들이다.
오래 살았고, 거대했으며, 그에 따른 힘이 있었다.
신성력.
수호는 두 손에 조화력을 집중했다.
“설마 이것도?”
박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털었다.
조화력은 자연에서 얻는 힘이다.
가장 많은 조화력을 뿜는 것이 나무들이 나누어준 나무정령의 힘이고 말이다.
치료 능력 또한 그 생명력을 나누는 것 뿐.
수호는 괜한 생각을 쫓았다.
“지금쯤 비룡은 도착했으려나.”
수호는 차이를 소환했다.
휘리리릭.
검은 연기가 뭉쳐 코트를 휘날리며 무릎 꿇는 차이의 동작은 쓸데없이 절도 있었고 멋졌다.
“부르셨나이까.”
고개를 조아리는 뱀파이어를 향해 물었다.
“애들 도착했어?”
“네에. 여섯 시간 전 도착하였나이다.”
“별일 없지?”
“거대 육상군주가 출현했나이다. 두꺼비와 외형이 흡사합니다.”
“두꺼비 군주?”
회귀자 녀석이 입에 달고 살던 놈이다.
“회귀자는?”
“지금 야수 쉼터에 구미가 잡아두고 있습니다.”
“그래?”
수호는 정령들이 모아놓은 혈석더미를 가리켰다.
“온 김에 저거나 줍고 가자.”
“……예, 주인님.”
군데군데 언덕처럼 쌓여 있는 혈석들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작업을 마친 수호가 연기로 변해 와이번의 모습으로 변했다.
후우우우, 후우우웅!
단거리 날아가기야 매가 낫지만, 멀리 가자면 와이번이 낫다.
더 높이 날 수 있고, 더 큰 날개로 활공하기도 좋고 말이다.
*김미소는 직접 세계수를 방문했다.
세계수에 볼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앞에 잡혀있는 이성우를 보기 위해서다.
“…….”
김미소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풀밭에 그저 웅크리고 모로 누워있는 그를 잡아뒀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해 보이는데.
“이대로 둬도 됩니까?”
“구미의 환술에 걸렸지 않습니까?”
장순필이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구미의 허락이 없으면 이성우는 잠에서 깰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구미를 속여 나간다 하더라도 주변에 야수들이 수십이다.
날아서 도망쳐도 소용없다.
날개 달린 야수들도 다수니까.
그 개체 하나하나마다 이성우보다 결코 등급이 낮은 이가 없다.
이성우가 이번 생을 완전히 포기하고 방관자의 삶을 사는 동안 파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버렸다.
세계챔피언이던 이성우는 등급만 놓고 보자면 순수 인간으로만 집계해도 1000위 밖으로 밀려난다.
지금은 SS등급이 그리 희소한 등급이 아니니까.
“으음, 잘 잡아두세요.”
“주군께서 오시기 전까진 깨지 않을 겁니다.”
“좋아요.”
장순필은 그녀가 왜 이성우를 보러왔는지 알고 있다.
“미국에서 많이 시끄럽습니까?”
“음, 소장님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김미소가 생긋 미소 지었다.
외교적인 문제까지 연구소장에게 신경 쓰게 할 수는 없다.
각자 맡은 바 일만 잘하면 된다.
괜히 외교적 마찰이 저어되어 이성우에게 정보 얻기를 꺼려하면 안 된다.
“그래도 한시름 놓긴 했네요.”
고문당해 처참한 모습을 걱정하고 직접 확인하러 왔는데, 상상보다 훨씬 양호했다.
아니, 자면서 히죽 웃는 것까지 보니, 장순필의 고문은 신사적이기까지 하다.
“더 캐낸 건 없으시죠?”
“구미야 꿈을 들여다봤겠지만, 제가 알 수는 없지요. 주군께서 돌아오시면 모두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문제네요.”
김미소는 박수호가 돌아와서 이성우와 마주했을 때가 걱정되었다.
사장님이 이성우를 어떻게 할지…….
‘미국이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이야.’
정확히는 서부미국이 이성우의 생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공식성명을 통해 이성우를 구금하고 있는 수호 길드를 맹비난하며 대응 수위도 높이고 있었다.
“미국이든 뭐든 무슨 상관입니까.”
사장님이 명하시면 망치 하나 들고 미국이라도 쳐들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장순필이다.
주군께서 필요에 의해 놈을 고신하겠다는데, 미국이 뭐라고 지껄이든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연구소장님 말이 맞아요.”
김미소는 괜한 고민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수호가 돌아와 이성우를 죽이면…… 미국과 적대적 마찰을 빚으면 된다.
그 싸움에서 결코 질 자신이 없다.
‘핵을 아무리 때려봐라.’
미국이 사분오열되어도 여전히 강력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저리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김미소는 이미 자체적으로 전력 평가를 마쳤다.
저들의 전력은 이미 오픈되어 집계 및 파악이 가능하지만, 수호 길드의 야수 전력을 저들은 잘 알지 못한다.
해양괴수들 때문에 원거리 항해도 어려운 이때 항모를 끌고 동해로 올 것도 아니고, 미사일만 조심하면 된다.
“사장님 의중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이미 세계는 수호 길드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아무리 뭐라 한들.
선택하고 결정하는 건 수호 길드의 몫이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무슨 꿈을 꾸었느냐.
과거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랬구나.
“시발! 시바아아알!”
이성우는 발작을 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묘호호호.”
여우의 웃음이 조롱으로 들렸다.
“시발새끼야, 닥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력함은 저 여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마비는 아닌 것 같은데.
“꺼져, 꺼져버려!”
“묘호호.”
여우가 꺼지기는커녕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꼬리 하나가 날아와 이성우의 따귀를 찰싹 찰싹 때렸다.
착, 착, 착!
“치워! 안 치워?”
적당히 기분 나쁘게 아프다.
그게 이성우를 더 열받게 했다.
하찮은 짐승 따위가 날 조롱하다니!
“다 죽었어. 너나 박수호나 죄다 죽여버릴 거야.”
개새끼들.
회귀만 해봐라.
“어떻게?”
그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을 움직일 수 없어 눈알만 겨우 굴려 사람의 얼굴을 파악했다.
툭.
수호는 이성우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죽이려고?”
“…….”
수호의 곁으로 구미가 다가와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수호가 구미의 정수리를 만져주자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묘오.”
기억이 전이된다.
구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전이된다.
“으음. 그렇구만.”
수호는 씩 웃으며 이성우를 보았다.
“회귀해서 나 죽이게?”
“…….”
“역사의 눈이 회귀 포인트구나.”
“어, 어떻게…….”
이성우는 말을 하다 말았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더라니, 모조리 꿈이었다.
시발, 날 가지고 농락하다니.
차마 욕은 뱉지 못하고 원망 가득한 눈알만 굴리는 이성우를 보며 수호가 희게 웃었다.
“너 하나만 물어보자.”
“…….”
침묵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너 이번 생에서 나 처음 봤다고 했지?”
“…….”
“왜 처음 봤을까?”
“…….”
“대답하기 싫어?”
“…….”
수호는 여전히 침묵한 이성우의 얼굴을 보았다.
원망 가득한 눈동자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쉽네.”
수호가 고개를 흔들곤 일어섰다.
그의 얼굴엔 정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애걸복걸하지는 않았다.
“죽여.”
슈슉!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수호의 명령에 구미의 날카로운 발톱이 이성우의 목을 노렸다.
“자, 잠깐!”
꾸욱.
이성우는 목을 지그시 누른 발톱의 촉감에 등허리가 축축이 젖은걸 느꼈다.
‘시발.’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죽었다.
뭐 이리 무식한 놈이 있지?
“구,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
“내가 죽으면 해답을 못 얻을 텐데?”
“그렇지. 네놈이 회귀자니까.”
누가 있어 이 생을 반복해 봤겠는가.
수호가 궁금한 것은, 그의 과거에 왜 자신이 등장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시간축이 다른가?’
‘귀환 포탈이 랜덤으로 열리나?’
의문에 대한 추측은 많지만 답은 없다.
혹시 이성우가 그 답을 알고 있나 싶어 물은 거지, 굳이 대답하지 않겠다는데 얻어낼 생각은 없다.
“혀, 협상하자.”
수호는 픽 웃었다.
“협상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이성우가 인상을 팍 썼다.
없긴 왜 없나.
죽음은 면해야 하지 않겠나?
“살려줘. 그럼 말하지.”
“좋아.”
“어?”
망설임 없는 수호의 대답에 이성우가 깜짝 놀랐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자신은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건가?
뭐 이리 대답이 쉽지?
“내, 내가 회귀하면 어쩌려고 놓아주지?”
이성우는 물어놓고 아차 싶었다.
살려준다는데 넙죽 받을 일이지, 괜히 물었나?
“회귀? 나 같으면 시도 안 한다.”
“……날 감시하겠단 거냐?”
역사의 눈을 찾아가지 않으면 과거의 어느 접점을 고르기 어렵다.
“굳이 감시까지야.”
수호는 어깨를 으쓱했고, 이성우는 답했다.
“이전 삶에서도 네놈의 흔적은 있었다.”
던전에서 발견된 한글은 꽤 이례적인 일이니까.
그때야 그 출처가 박수호인지 몰랐지만, 이젠 다 안다.
“나는 없었고?”
“없었다. 단 한 번도.”
“왜 그랬을까?”
“그것까진 모른다.”
“음, 몰라?”
수호는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좋아. 가봐.”
“……정말 놓아주는 거냐?”
“죽여줘?”
“아, 아니다.”
이성우는 온몸을 누르던 무기력함이 사라지고 몸의 감각이 돌아오자마자 마몬비족으로 변해 날아가버렸다.
한쪽에서 그것을 보던 장순필이 염려를 담아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회귀 작용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가 회귀하면 이 세상은 사라질까?
장순필의 걱정스런 얼굴과 상반되게, 수호는 일말의 걱정도 없었다.
“회귀는 무슨.”
놈은 회귀하지 못한다.
허락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