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83)
284화 세계 정부 (1)
수호는 세계수를 한번 만져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도 참 오래 걸린다.”
엘프 공주의 영혼이 세계수에 깃든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아직도 세계수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주변에 차원 균열을 억제하곤 있지만, 그것이 전부다.
수호는 세계수의 기능이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시스템 구성이 완료되면 알 수 있겠지.
“낮잠이나 한숨 잘까.”
별로 피곤하지도 않은데 요즘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지금은 세계수가 되어버린 대장나무는 야수 쉼터의 중심부가 되는지라, 야수들이 기를 쓰고 지키는 공간이다.
야수들이 알아서 불청객을 내쫓기에, 딱히 보초를 세울 필요도 없다.
세계수 아래 평상에 늘어져 누우려는데 당진철이 다가왔다.
“형님.”
“넌 꼭 자려고 하면 오냐?”
“아니 시국이 이런데 무슨 잠이십니까?”
내로남불이 언제부터 시국을 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는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왜 왔냐?”
“김미소 부사장이 형님 어디 계신가 찾길래 제가 냉큼 와봤죠. 어지간하면 형님도 휴대폰 하나 차고 다니십쇼.”
“…….”
지구인에게 휴대폰 사용을 권하는 구천 행성인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물었다.
“왜 찾는데?”
“검은 포탈 때문이랍니다.”
“만주?”
“아뇨. 거기 말고요. 일단 가보셔야겠어요.”
검은 포탈은 수호에게 있어 어딘가 모를 찝찝함을 유발하는 대상이다.
수호가 졸음을 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진철을 남겨두고 훌쩍 날아, 열려있는 김미소 부사장실로 쏙 들어갔다.
휘리릭.
“검은 포탈 나왔다고?”
“아, 네. 어서 오세요.”
김미소가 태블릿 하나를 건넸다.
“쉬시는데 죄송해요. 이건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수호는 태블릿을 스크롤해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시체 탑이네.”
“네.”
검은 포탈 주변으로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어디야?”
“세부요.”
필리핀은 여러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현재 필리핀에 남은 도시는 마닐라가 유일.
세부는 3년 전 버려진 도시다.
최근 필리핀 정부가 차원석을 몇 개를 수급한 이후, 마닐라와 세부를 잇는 이동 포탈 건설을 추진 중이다.
세부 도시 복구를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는데, 그때 발견된 것이다.
“뱀파이어야?”
“조사단 말로는 리치 같대요.”
리치라.
“마석 나올 수도 있겠네.”
전에 타이베이에서 리치를 잡고 마석을 얻었었다.
“그래서, 이거 내가 가도 되는 거야?”
자국에 발생한 몬스터를 처치하는 일에 모든 나라가 찬성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당장의 위협이 아니라면 러시아나 만주국처럼 버티는 게 비일비재했다.
사냥 성공 이후 얻게 되는 전리품을 생각하면, 누군가의 원조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외려 필리핀 정부에서 요청한 거예요. 그들은 세부의 재건만 바라고 있어요.”
“세부에 있는 몬스터를 싹 쓸어달라는 거지?”
“네, 맞아요.”
“좋아.”
수호가 곧장 날아오르려 하자 김미소가 만류했다.
“마닐라로 통하는 이동 포탈 구축이 이미 끝났어요. 포탈 타고 가세요.”
“그래?”
이제 어지간한 주요 도시들은 수호시티에서 코앞이다.
수호는 김미소와 오랜만에 걸으며 외성으로 향했다.
수호시티의 외성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남북으로 쭉 잇는 대로를 중심으로 횡으로 쭉 이어진 거리인 1번가부터 7번가는 오래 전부터 공사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그곳뿐 아니라 쭉 이어진 도로마다 여기저기 건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47번가까지 도시건설 계획이 끝났어요.”
빼곡한 건물들이 들어서지만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로간 거리가 넓고 녹지가 어느 도시보다 많은 시티다.
군데군데 자란 나무는 겨울 초입이라 가지뿐이지만, 곧 봄이 오면 무성해져 그늘을 만들어 낼 것이다.
중랑천에서 흘러나온 지류가 만들어내는 수변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평화롭군.”
오가는 사람들 어느 얼굴에도 그늘이 없다.
왜 아니겠는가, 가족들 구성원 하나는 분명 수호 길드 직원일 것이고, 모든 복지를 수호 길드에서 책임지는데.
수호시티 자체가 수호 길드의 사유지다.
기업이 사유지 위에 건설한 도시.
중세 봉건시대의 성을 가진 영주가 연상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유도시다.
21세기에 어찌 이런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대격변 이후 위기 앞에 놓인 세상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수호시티 시민.
시민증 부여가 어느 도시보다 까다로운 이 도시는 세계인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순위다.
수호는 대로를 따라 걸으며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늘아래 모였나 싶었다.
‘이 정도면 문명 그 자체.’
수호 호텔에 투숙중인 사람들과 관광을 위해 찾은 사람들의 수도 꽤 되었다.
여러 대도시간 이동 포탈이 연결되다보니 수호시티를 구경하기 위해 찾는 외국인도 많아, 상업거리는 동서양 인종 가릴 것 없이 북적였다.
거리를 걸어 수호는 남문에 당도했다.
콜로세움처럼 생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포탈존이에요.”
도쿄의 방벽처럼 내부에서 외부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져 있었다.
포탈을 통해 허가되지 않은 자들, 범죄자나 테러리스트의 입국에 대비해서다.
“입구는 저기 하나예요. 출입국사무소 역할도 하죠.”
수호시티는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소속의 도시다.
대한민국에서 파견되어 나온 공무원들이 나와 있었다.
사실 그들이 입국을 제한하거나 허가하는 권한은 없다.
그저 수호 길드에서 정부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아 배치된 이들이다.
통제한다기보다는 출입국 명단을 정부와 공유한다.
수호는 입구를 통과해 전망대로 올랐다.
“어떠세요?”
“멋지군.”
수호의 그 말 한마디에 김미소는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세계를 잇는다.
아직 북미 쪽의 대도시는 거의 꺼져있지만,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또 어디서 8성 던전이 터져 신급 군주가 출몰할지 모를 일이다.
아직 인류는 신급 군주를 막아설 능력이 없다.
북미라고 다를까.
꺼져있는 북미 대륙의 포탈들도 곧 들어올 것이다.
“다녀올 테니 일봐.”
“네, 사장님. 건너가시면 저희 직원들 있을 거예요.”
“그래.”
수호는 지도 위를 걸었다. 필리핀 마닐라로 통하는 포탈 앞에 서자, 따라온 직원이 혈석 주머니를 내밀었다.
“투입하시면 활성화됩니다.”
이동 포탈에 이용되는 혈석의 양은 거리에 비례한다.
대구, 익산 정도의 도시는 아주 적은 혈석으로도 이동이 가능하지만, 마닐라까지는 한 주머니의 혈석이 필요했다.
파팟.
파란색 포탈이 일렁이며 활성화되었음을 알렸다.
“그럼 나 간다.”
“네, 다녀오세요.”
파팟.
수호가 사라지고 김미소는 주변을 둘러봤다.
“자자, 일합시다.”
오늘 중으로 5대 공격대가 모두 구성을 갖춘다.
대략적인 팀원 모집이 끝났기에, 이제 그들의 전력 향상을 위한 훈련 일정이 남아있다.
하위 던전을 돌아보면서 팀웍도 높이고, 아직 각성 등급이 낮은 이들은 등급 향상도 노린다.
그리고 던전에 따른 전리품.
혈석과 여러 던전산 채취물들은 창고에 쌓이게 된다.
‘창고 확장을 또 해야겠네.’
수호가 아프리카를 다녀오며 쏟아낸 혈석만 해도, 앞으로 수호시티의 에너지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양이다.
힘을 가졌고, 돈을 가졌으며,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뻗어가고 있다.
패를 다 쥐고도 수호시티를 정상에 올리지 못하면 모사로서 실격이리라.
김미소는 미소지으며 부사장실로 복귀했다.
*서부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하워드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몇 개 도시라고?”
“42개 도시가 수호시티와 연결되었습니다.”
“후, 망할. 멍청한 놈들.”
왜 모른단 말인가?
이대로 끌려가면 죄다 수호 길드의 속국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주국방을 이루지 못한 나라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신급 군주.
거대한 육체는 걸음 그 자체로 도시를 파괴해버리는 불도저와 같고, 몬스터 종 하나를 집단 버프시키며, 신성력을 사용한다.
이 거대한 적 앞에 세계의 도시들이 하나 둘 수호시티의 그늘아래 들어갔다.
이동 포탈 설치는 하워드가 보기엔 아주 굴욕적인 징표처럼 보였다.
마치 정복자들이 내건 비석과 같지 않은가?
“빌어먹을.”
요즘은 영 신경질 낼 일밖에 없다.
이동 포탈 설치에 대한 조사격으로 파견된 이성우와 외교부 장관은 연락두절이다.
이후 외교부 장관은 무사 귀환했고, 이성우는 뜬금없이 일본 게이트를 통해 구천 행성으로 넘어가 버렸다.
완전히 내빼버렸는지 그 이후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믿을 놈이 못 됐어.”
자신을 서부미국 대통령에 올리는데 한몫을 한 이성우지만, 그의 가치는 애초에 그 정도였는지도 몰랐다.
이성우와 박수호.
하워드는 배팅에 실패했다.
‘너무 섣불렀어.’
이성우가 구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호 길드를 압박해보려 했는데, 미친 언론사들이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
망할 놈들.
그저 자극적인 소재만 좋아하는 족속들이라 그런지 수호 길드를 맹비난 해버렸고, 이제는 그것이 서부미국의 공식 입장처럼 비춰져 손을 잡기도 글렀다.
‘이건 막지 못하는 흐름이야.’
모든 것을 가졌다.
저 작은 나라.
작은 도시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데 하워드는 이견이 없었다.
비록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 배에 가장 먼저 타고 싶었던 그이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져버렸다.
위대한 아메리카는 이제 지난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릴 수도…….
“대통령님.”
비서의 방문에 하워드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으음, 동부에서의 연락입니다.”
“동부?”
정통적인 미국의 후계자.
사분오열 갈라진 미국의 모두가 동부미국이라 부르지만, 자신들은 아직도 그저 USA로 불리길 바라는 나라.
상징일 뿐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큰 상징인 백악관을 가진 나라.
“또 그 소린가?”
동부 미국은 언제나 한 목소리를 냈다.
위대한 미국을 위해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
주 정부를 중심으로 분리되어버린 미국이지만, 다시 한번 위대한 아메리카를 위해 하나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것만이 미국의 살길이다.
드넓은 영토가 약점이 되어 분리되었지만 이제 다시 그 방법이 생겼다.
‘망할 이동 포탈.’
필드가 갈라놓은 도시를 다시 합치고 있었다.
외려 대격변 이전보다 더 가깝고, 더 빠르게.
“협력은 없어.”
“이번엔 조금 다릅니다.”
“뭐?”
하워드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또 비서를 갈아치워야 할 때인가?
하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온 비서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의회의 성명서입니다.”
서부미국도 행정부 외에 입법부가 있었고, 의원들이 존재했다.
“허, 반기를 들겠단 건가?”
“대통령님. 서부미국은 독재국가가 아닙니다.”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다.
하워드 또한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가 원수.
국민들이 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동부미국의 요청은 수락할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젠장할.
의회에서 저리 강력하게 나오면 재선은 어렵다.
의회를 장악하고 완전한 독재국가로 거듭날 게 아니라면,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야 할 때다.
“후, 좋아. 내 실책을 바로잡아 주어 고맙군.”
“별말씀을요.”
하워드는 동부 미국의 초대장을 받아들였다.
미국이 다시 한번 세계의 패권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