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89)
290화 9성 던전 (2)
츠츠츳!
검은 포탈이 요동쳤다.
“어?”
동수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심상찮은데.”
동수가 재빨리 포탈로 다가갔다.
포탈 주변엔 하얼빈에서 온 장비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삐비, 삐비.
요동치던 수치가 점점 범위를 줄이더니 곧 숫자 하나를 도출해냈다.
“포탈이 완성되려는 모양입니다.”
“그래요?”
지원부 직원의 말에 동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포탈에너지 측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인 거다.
“어때요?”
“으음, 9성 던전인 것 같습니다.”
“허, 9성 던전은 등장도 특이하네.”
색이 다른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발생이 특이하다.
신급 군주가 남기고 간 에너지가 뭉쳐 포탈이 되었다. 그리고 그 포탈이 요동치다가 이제야 진정 국면에 들었다.
“이거, 입장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에너지가 안정화되어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입장 가능하다 하더라도 혼자 들어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무려 9성 던전이 아닌가.
“일단 형님께 알리죠.”
“내가 알리겠다.”
차이가 휘리릭 사라졌다.
한동수도 전화를 걸어 김미소 부사장에게 사실을 알렸다.
“예, 예. 이게 9성 던전 에너지값 나왔네요. 아뇨. 안 들어가죠. 예, 예.”
참 특이한 던전이다.
본디 던전 포탈은 균열 이후 급작스럽게 생긴다. 그런데 이 검은 포탈은 미리 포탈 먼저 만들어놓고, 입장이 불가능한 상태로 한참을 있었다.
“어음, 며칠 걸리진 않았네.”
동수가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함께 파견 온 수호 길드 지원부 직원 12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포탈의 데이터를 기록했다.
“이거 참 특이하네.”
“뭐가요?”
“아니, 던전 에너지값은 나왔는데, 나머지 수치가…….”
던전 규모 – 레벨 9 (9300)
남은 횟수 – 1 (9300)
브레이크 – ???
“그냥 한 번만 깨면 소멸하는 던전 아녜요?”
“그럴 수도 있는데 이게, 브레이크 타임까지 시간이 안 나오네요.”
제대로 측정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기계 오류 아니면 잘 없죠.”
전문가의 말이니 허투로 들을 일이 아니다. 동수의 마음 한편이 찝찝해지는 그때, 던전이 변했다.
“어어? 저거 모양이…….”
검은 던전이 찌그러졌다.
누군가 주무르는 듯 이러저리 변하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다, 다 철수해요!”
“어디로 말입니까?”
“하얼빈으로 일단 튀어요!”
부르르릉.
황급히 차량에 시동이 걸리고, 지원부 인력들이 일사분란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동수는 한 발 물러나 이러저리 반죽처럼 움직이는 검은 포탈을 지켜보았다.
“끼아악.”
곁에 선 그리핀이 더 없이 든든하다.
조금만 더 보고 도망치자.
조금만 더 보고…….
검은 포탈은 거대한 손이 만지는 반죽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꼭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찰흙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르르.
이상한 괴음과 함께 검은 포탈의 모습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젠장. 그놈이네.”
검은 짐승이다.
동수는 재빨리 그리핀에 탑승해 날았다.
슈아아악!
고도를 어느 정도 올렸을 때 검은 짐승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쿠로오오!”
“와, 씨!”
괴성과 함께 완성된 검은 짐승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쿠오오오!”
괴성만 들어도 느낄수 있었다.
내려가면 죽는다.
그냥 죽는다.
10초 안에 죽을 자신 있다.
이정도 위압감은 박수호 외에는 느껴본 적이 없다.
본능적 두려움.
“시, 시발.”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면서도 한동수는 끝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이 내 일이다.
이것마저 놓아버리면 존재의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
보고 기억하고 넘겨주어야 한다.
보아야 한다.
“쿠로!”
천만 다행스러운 건, 놈이 날개가 없어 하늘로 날아오르진 못한다는 것.
동수는 하늘 높이 날면서 놈을 관찰했다.
검은 짐승은 한차례 더 포효하더니 북쪽으로 향했다.
*츠앙.
혈석 한 움쿰을 쓰고 하얼빈 이동 포탈을 나왔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수호는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매로 변해 날았다.
검은 포탈이 있었던 지역.
한달음에 와보니 여기저기 부서져 나뒹구는 기계만 있을 뿐, 어디에도 검은 포탈은 없다.
동수도 급하게 떠난 듯 임시컨테이너가 옆으로 누워있고, 안에 있던 컴퓨터와 집기들이 모조리 엉망이 되어있다.
“어디지?”
수호는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휘리릭.
놈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래, 하나 있구나.
그리핀의 존재가 느껴졌다.
동수 곁에 한 마리 남겨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휘리릭.
수호의 모습이 다시 매로 변해 날아올랐다.
쐐애애액.
실프가 힘을 보태며 더욱 빠르게 날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핀을 따라잡았다.
슈아아악.
언제 다가왔는지 자신의 옆에서 함께 비행하는 매를 보며 동수가 물었다.
“형님이세요?”
“어, 어떻게 된 거야?”
아우, 시발 깜짝이야.
동수가 겨우 욕을 삼키고 차분한 척 이야기했다.
“포탈이 에너지 안정화되자마자 주물떡거리더니 검은 짐승으로 변했어요.”
“으음.”
“넌 왜 여기서 날고 있냐?”
“놈을 추적하고 있었죠. 여기 아래서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수호가 고도를 낮췄다.
황량한 대지다.
“으윽, 형님 여기 뭔가 기분 나쁜데요.”
함께 내려온 동수는 재빨리 아공간에서 마스크부터 꺼내 착용했다.
“여, 여기 거기 아녜요?”
“거기 어디?”
“러시아에서 핵 쏜 데요.”
“여기가?”
어쩐지 아무것도 없더라니.
모조리 가루가 되어버린 황무지는 걸음마다 먼지를 피워올렸다.
“윽, 형님 어서 올라갑시다. 피폭되겠어요.”
각성자는 인간의 신체 한계를 뛰어넘는다.
예민해진 감각도 마찬가지.
동수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몸이 공격당하는 찝찝한 기분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었다.
“괜찮아.”
수호가 조화력을 일으켜 생명에너지를 나눠주었다.
“어어?”
수호에게서 전해진 에너지가 몸을 감싸자 찝찝한 기분이 사라져 버렸다.
“와, 이거 명진이 누나한테 받던 축복이랑 느낌 비슷한데요?”
엘프 공주의 언어의 축복 때도 비슷했고, 진세연의 버프 축복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동수는 이리저리 검은 짐승의 자취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수호를 보았다.
“형님. 말 나와서 그런데요.”
“어, 말해.”
“형님은 신이세요?”
“…….”
어제의 수호였다면 픽 웃고 말았을 것이다.
‘행성의 관리자라면.’
그게 신이 아닐까?
마음먹기에 따라서 인류 전체를 멸해버리고 새로운 종에게 이 지구를 내맡길 권한이 있는 자를…….
신이 아니면 무어라 불러야 할까?
“내가 신이면 뭐하게?”
“와……. 진짜예요?”
“몰라 나도.”
“쩐다.”
“무슨 반응이 그래?”
“아니, 신기하잖아요. 내가 신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니.”
동수의 반응에 수호는 웃었다.
그래, 곁에 이렇게 생각 없고 단순한 놈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거 유튜브 올리면 어그로 제대로겠는데요?”
“시끄럽고 이리 와 봐.”
수호는 바닥을 툭툭 다졌다.
그 덕에 기분 나쁜 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루카에서 기억 나냐?”
“광산에서 숨바꼭질하던 거요?”
“그래.”
“이 밑에 숨은 거예요?”
“숨었다기보단…….”
뭔가를 찾았을 것이다.
검은 짐승.
유럽에서도 몇 놈이 생겼다고 했던가?
녀석들이 도시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
놈들의 목표가 인류 말살이나 사냥 따위가 아니라 마석 채취에 있을지도.
마석이 놈을 강화시키는 것을 보았다.
강해지기 위해 마석을 찾는다.
마석이 도시에 있었다면 그 도시는 초토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 보면 알지.”
수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땅 속을 느꼈다.
녀석의 기운이 느껴진다.
“찾았다.”
수호가 진각을 밟았다.
조화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땅이 움푹 꺼졌다.
꺼진 곳이 있으면 튀어나오는 곳도 있는 법.
콰콰코캉!
뚝 부러지듯 솟아난 바닥에서 검은 짐승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이야. 그치?”
“…….”
“아니면 처음이거나.”
수호가 검은 짐승을 향해 돌격했다.
“쿠로!”
검은 짐승도 마주 돌격해왔다.
*북미 동부 해변.
지이이잉.
고의로 공략을 포기한 8성 던전의 브레이크가 임박했다.
주변 일대는 이미 소개령이 내려져 군인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
군인들도 겨우 한 개 중대.
던전브레이크 이후 튀어나올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호위하기 위한 부대다.
동부 아메리카, 워싱턴연합의 대통령이자 백악관을 차지한 적통.
대격변 이후 한 번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은 찰리 대통령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던전을 보고 있었다.
“대통령님, 조금 더 후미에서 관전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맹에 대한 믿음을 보여야지.”
찰리의 시선은 던전 앞에 선 우람한 체격의 호랑이인간에게 가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시지요.”
찰리가 보좌관을 돌아봤다.
“자네는 내가 도박을 하는 것 같은가?”
“아닙니다.”
“그를 믿게.”
“…….”
호랑이인간에 대한 찰리의 믿음은 확고했다.
그 믿음의 근거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핵도 견디는데…….’
신급 군주가 핵을 견딘다고 했던가?
호랑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핵기지 하나가 초토화된 현장에서 살아 나온 게 호랑이인간이다.
대화가 통하는 저 종에 대해, 찰리는 몬스터보다 인간에 좀더 비중을 두고 정의했다.
‘말이 통해.’
말이 통하는 상대와는 언제나 거래와 혈력이 가능한 법.
성공적 협력을 이끌어냈다.
‘인간. 인간이 이렇게 많다니!’
‘인간이 많은 게 이상합니까?’
‘인간을 찾는다.’
‘이름이 뭡니까?’
‘모른다. 내게 말을 가르친 인간. 그를 찾는다.’
대통령도, 대동한 통역도 그가 누구인지 같은 인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호랑이 인간이 내뱉는 유창한 한국말만 들어도 한 인물이 떠오른다.
‘찾아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를 조금 도와주십시오.’
‘좋다.’
찰리는 동맹의 순간을 떠올리곤 짜릿한 기분이었다.
이미 8성 던전을 솔로잉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실력 입증은 했다.
현재 지구에서 8성 던전을 혼자서 공략 가능한 각성자는 박수호 외에 없다.
이제 신급 군주를 사냥하기만 하면 된다.
미국의 비밀병기가 되어, 사분오열된 이 미국을 다시 한번 하나로 뭉쳐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파팟!
기다리던 8성 던전이 터졌다.
쿠로는 던전을 노려보며 발톱을 세워 대지에 박아 넣었다.
‘세상이 겹치는군.’
충돌 이후 세상이 겹쳐진다.
부서진 조각에서 건너온 존재는.
즈아아앙.
거대한 머리가 나왔다.
뒤이어 나온 거대한 발은 긴 발톱을 지니고 있었다.
비늘로 덮힌 몸체는 늘씬하고 길었으며 가시달린 긴 날개를 달고 있었다.
긴 꼬리의 끝에도 가시가 있었다.
“쿠아아아아!”
거대한 괴수가 길게 울부짖었다.
‘드래곤!’
불의 드래곤.
오크들의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의 등장에 쿠로가 마주 울부짖었다.
“쿠로오오오!”
달려나가 드래곤의 꼬리를 잡았다.
힘껏 휘둘러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쿠우우우웅!
‘불의 화산에 살던 도마뱀.’
그의 라이벌과 함께 사냥 내기를 한 적도 있던 괴수.
“쿠로!”
옛 생각 나는구만.
쿠로가 불의 드래곤을 마구잡이로 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