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95)
296화 이무기
슈우우우우웅.
떨어져 내리는 두 알을 보며 쿠로는 웃었다.
“으하하하하. 혼자선 내 상대가 안 됨을 인정하는 게냐?”
“저건 내가 부른 게 아냐.”
“인간이 쏘아보낸 게 아니더냐?”
“인간이라고 다 같이 협력하는 건 아니라서.”
“허튼소리.”
종이 같다 하여 같은 공동체를 이루는 건 아니다. 영역이 겹치는 곳에선 같은 종끼리의 투쟁도 언제나 일어났다.
쿠로가 놀란 건 별다른 게 아니다.
“여긴 내 영역이 아냐.”
“놀랍군.”
인간들 중에 가장 강한 인간이 눈앞에 있다. 그런데 어째서 모두를 자신의 발아래 두지 않는 거지?
“내 영역은 아주 작지. 그래, 푸른도마뱀 섬 정도 되겠군.”
“놀랍군. 확실히 놀라워. 겨우 그 작은 섬 정도를 영역으로 두고 있다고?”
쿠로는 양팔을 벌렸다.
“이 행성은 아주 넓어.”
수영해 와서 안다.
북미 대륙도 엄청 넓었고, 바다도 넓다.
“뭐 어때. 난 지배자 따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럼 뭘 하려고 여길 왔지?”
“그냥 오고 싶어 왔지.”
쿠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해할 수 없군. 이미 끝자락에 놓인 곳에 몸을 던지다니.”
“그러는 넌?”
“나야 승부를 내기 위해 왔지.”
수호가 인류 없는 행성에서의 외로움에 지쳐 지구로 왔다면, 쿠로는 호적수가 사라진 세상에서의 공허함에 지쳐 지구를 찾았다.
“말이 길어졌군.”
두두두둑.
쿠로의 근육이 불끈 불끈 커졌다.
수호도 여태 쓰지 않았던 조화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때 원폭 두 대가 지면에 닿았다.
꾸우우우우우우.
엄청난 폭발이 도쿄를 휩쓸었다.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동수는 입을 쩍 벌렸다.
“미, 미친놈들이.”
핵을 쐈다.
그것도 자국 영토에.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풍경이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 미쳤어.”
북미에서 다섯 발. 러시아에서 일곱 발, 유럽 각지에서 여럿. 인도에서 열한 발.
전 지구에 핵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
“무슨 핵전쟁도 아니고…….”
지구 전역에 핵이 터졌다고 해도 이상치 않을 양.
물론 그중에 가장 동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도쿄에 투하된 원폭 두 발이다.
“이 개새끼들.”
뒤늦은 분노가 동수를 화나게 했다.
지금 거기엔 쿠로와 수호가 싸우고 있었다.
부랴부랴 자국민들이야 대피했다고 쳐도, 도시기반시설과 몬스터, 거기에 수호와 쿠로까지 한 방에 핵을 맞아버렸다.
“한 이사!”
동수가 자리한 임원실 문이 열리며 김미소가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은요?”
“모르겠어요.”
“하아.”
김미소는 누가 봐도 화난 얼굴로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만요.”
일본 쪽 언론 중 한곳에서 도쿄를 찍고 있었다.
생중계로 내보내고 있는 그 방송 하단에 나온 자막이 둘을 더욱 분노케 했다.
“몬스터 일망타진이라니…….”
몬스터를 쓸어버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박수호가 저기에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서 모든 시민들이 대피했다고 하는데, 세상일에 어찌 100%가 있겠나.
파파팟.
한차례 후폭풍이 지난 뒤 수호의 도쿄의 참상이 드러났다.
이미 수호와 쿠로의 싸움으로 반파되어버린 도시가 싹 쓸려나가고 남은 건…….
“어? 형님 무사한데요!”
“어디 봐.”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지만 수호와 쿠로는 무사했다.
“와. 핵 맞고도 멀쩡하시네.”
동수는 긴장이 풀리며 힘없는 농담을 뱉었다.
다행이다.
정말.
헌데 수호와 쿠로 외에도 사람들이 더 있었다.
*푸스스스스스.
쿠로는 보호막으로 인해 터럭 하나 타지 않고 멀쩡했다.
촤르르륵.
수호는 땅에서 자라난 넝쿨이 방패처럼 그를 보호하며 멀쩡할 수 있었다.
“요정의 힘을 쓰는군.”
“여기 와 보니까 되더라.”
“…….”
쿠로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경이 지워져버린 황무지에 여기저기 넝쿨이 자라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번데기 같은 모습의 나무 넝쿨들.
“영역도 아니고, 무리도 아니면서 왜 지키지?”
“사람이 사람 살리는데 뭘 그리 따져?”
도망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사람들.
그냥 근처에 느껴져서 구했을 뿐이다.
“잠깐 기다려 봐.”
“…….”
수호는 쿠로가 당연히 기다려 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조화력을 끌어올렸다.
휘리리리릭.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일어 방사능 낙진과 먼지들을 한데 모으게 했다.
바닷물이 한줄기 보태져 휘몰아치더니, 찰흙처럼 한데 뭉쳐 거대한 산을 이뤘다.
그 이후에야 나무 넝쿨들이 피어나는 꽃처럼 스스로를 풀었다.
안에 들어있던 사람들이 한둘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다해야 50여 명뿐.
피난 가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있을 테지만, 수호의 영향력 밖이라 구하지 못했다.
“쿠로.”
쿠로는 낮게 울었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다 망해가는 지구에 온 것도 이상하고, 자신의 무리도 아니라면서 사람을 구하는 게 이상하다.
‘동족에 대한 향수?’
그 긴 세월 동안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을 리가.
“다시 해볼까?”
“좋지. 쿠로로.”
쿠로의 울긋불긋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힘을 짜냈다.
파아아앙!
공간을 격하고 날아가 수호와 부딪혔다.
쾅, 콰아앙!
여기저기 치고받는 둘의 싸움이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다.
산이 무너지고 강이 넘쳤다.
“재밌구나.”
요정의 힘까지 쓰는 인간을 상대로도 쿠로는 전혀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싸워 갔다.
*동수는 패닉에 빠진 듯한 일본인 앵커의 소음을 한 귀로 흘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이, 이차전 시작한 것 같은데요.”
“후, 무사하면 됐어요.”
“어, 어디 가세요?”
화난 얼굴로 나서는 김미소를 보며 한동수가 물었다.
“선전포고 하러요.”
“예?”
“후, 좋아요. 그냥 경고 정도예요.”
김미소가 부사장실로 돌아와 공식 채널로 성명을 냈다.
요지는 간단했다.
‘박수호를 다시 한번 공격하면 모든 전력을 동원해 일본을 공격하겠다.’
물론 그 전까지 이 2차 대격변을 일본이 견딜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겨우 화를 삭히고 있는 김미소에게 서민수의 연락이 닿았다.
[접니다. 방금 공략 마치고 나왔는데, 이게 무슨 난립니까?]“자세한 사정은 오면서 스텝에게 듣고, 일단 당장 복귀하세요.”
[알겠습니다.]“오면서 전력 정비하세요. 곧장 전선에 다시 투입되실 거예요.”
[네, 가서 뵙죠.]서민수의 팀이 던전 공략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자마자 돌아오는 중이다.
속초 필드에 생긴 7성 던전을 공략하고 오는 길이니, 머지않아 도착할 것이다.
김미소가 서민수에게 다시 연락한 것은 10분이 지나서였다.
경북에 7성 던전 하나가 터져 상황이 심각해져서다.
“서 팀장, 곧장 대구로 가야겠어요.”
[부사장님!]서민수 목소리가 아닌데?
“누구죠?”
[저 김 대립니다.]“서 대장은 어딨죠?”
[대장님 지금 저 밑에……. 아악.]“흥분하지 말고 간략히 상황만 설명해요.”
김미소의 담담한 어조에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김 대리가 술술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다.
[신급 군주입니다! 동해에서 지금 날아오고 있어요!]신급 군주?
8성 던전이 하나 터진 모양이다.
[영상! 영상 찍어 보낼게요.]“여보세요. 여보…….”
뚜우.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어봐야 정신없을 것 같아 잠깐 기다려 보니, 영상 하나가 전송되어왔다.
동해에서부터 일어난 거대한 해일과, 그 너머에 떠있는 푸른 드래곤의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
최악이다.
거대 육상군주도 골치 아픈데, 북미에서 본 것과 같은 드래곤이 나타났다.
레드 드래곤과 다른 것이 있다면 푸른 비늘과 다르게 생긴 뿔과 날개뿐.
“청룡.”
블루 드래곤의 출현이다.
수호 길드의 컨트롤 타워인 부사장실로 모든 정보가 모이는 건 당연한 일.
안 좋은 소식은 블루드래곤의 출현소식만이 아니었다.
“부사장님! 평양에서 소식이에요! 백두산에서부터 신급 군주 출몰이랍니다.”
“하아.”
핵을 먹여도 버티는 게 신급 군주다. 그런 게 둘이나 나타났다.
“이 좁은 땅에 뭐 먹을 게 있어서…….”
아니, 땅의 영향이 아닌가?
‘설마.’
수호시티라면 특별한 게 하나 있긴 했다.
‘세계수.’
차원 균열 자체를 억제하는 신비로운 나무.
김미소는 신세 한탄을 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신급 군주들. 아니, 군주 몬스터까지 전부 파악하고 지도에 예상 경로 체크해.”
“네!”
“새로운 소식 나올 때마다 업데이트하고.”
“넵!”
부사장실 한쪽에 걸린 화면에 세계 지도가 띄워졌고, 보고된 군주 몬스터들이 죄다 뜨기 시작했다.
전력분석실 직원들이 분주히 오가며 세계 각지의 상황을 체크해 화면에 띄웠다.
‘7성 던전이 이렇게 많았나?’
신급 군주가 둘이나 출현했으니, 그보다 아래인 군주는 더 많은 개체가 튀어나왔다.
필드의 던전은 공략을 내버려둔 실정이니 언젠가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거야 기정사실이지만, 그 시기가 모조리 당겨져 버렸다.
한반도에서만 신급 군주 둘에 군주 6개체가 발견되었다.
그 아래 필드가 터지면서 공급된 수많은 몬스터들이 군주의 휘하로 들어가 군대를 조직했고…….
문제는 이 숫자가 현재 파악 가능한 상태에서의 현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타날 터인데.
‘사장님께 연락은 해야겠는데.’
군주급 몬스터와 그 휘하 몬스터 군대는 막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신급 군주가 문제다.
박수호 외에 상대할 방법이 있을까?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가서 알려야 한다.
그런데 수호가 그냥 일본에 있는 중도 아니고 쿠로와 접전 중인데, 몸을 빼낼 수 있을지…….
김미소는 그간 이룩한 게 많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막상 박수호를 제외하고 생각하자 전력에 구멍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스갯소리로 수호 길드 전력의 99%는 박수호라는 말이 농담이 아닌 팩트가 되어버렸다.
“제가 갈게요.”
그때 비상상황실이 되어버린 부사장실로 한동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그래 주시겠어요?”
“네. 자신 있다고 하네요.”
“네?”
“예?”
김미소가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말을 조금 보탰다.
“사장님 불러오시려는 거 아녜요?”
“형님이 부른다고 오시나요. 지금 쿠로랑 열나게 싸우고 있는데.”
“들어보니 친구라고 하던데, 조금 나중에 해후하고 일단 신급 군주부터 처리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면…….”
“에이, 안 될걸요. 아무튼 제 말이 그거예요.”
“…….”
“신급 군주, 제가 다녀올게요.”
“한 이사가 어떻게요?”
“자신있대요.”
“누가요?”
한동수의 소매 사이로 하얀 백사가 머리를 내밀었다.
[빼에엠.]“아.”
수호의 야수들 중 가장 강력한 개체다.
얼마나 강하냐면, 수호의 소환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가지.]“좋아요.”
“그럼 다녀올게요.”
백사와 함께 한 사냥은 이미 해본 적이 있었다.
서해와 남해의 해상군주를 사냥한 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자신 있었다.
‘구경할 자신 있어.’
싸우는 건 백사가 한다.
*꾸아아앙.
핵 공격 이후 일본군의 개입은 없었다.
충격에 빠진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수호와 쿠로의 전장은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초토화된 도쿄는 이미 보이지 않고, 사이타마시가 바로 코앞.
수호는 쿠로를 패대기치며 물었다.
“일부러 도시를 전장으로 삼는 거냐?”
“그럴 리가.”
쿠로는 그저 서쪽을 가리켰다.
“네놈의 영역이 가까워지니 초조한 모양이지?”
수호는 피식 했다.
“속 좁은 호랑이 같으니.”
쿠로의 영역에 수시로 쳐들어간 수호다. 이제와 복수라도 할 셈인가?
“쿠로로. 이해할 수 없군.”
“뭐가 또?”
“어차피 침식이 일어나기 시작한 지구에 무슨 미련이 있어 내려온 거냐?”
“돌아온 거지.”
쿠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