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00)
301화 방주
세계가 죽음으로 물들었다.
많은 도시들…….
아니, 수호시티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죽었다.
나무가 죽고 동물이 죽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한다 여겼던 몬스터들도 이 재앙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침식.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는 안다.
죽은 신의 저주이자 모든 것의 끝.
오직 세계수의 영향력 아래 한 줌의 땅.
수호시티만이 죽음을 피했다.
“살았다!”
“흑흑, 살았어.”
생존의 기쁨을 나누는 인류는 고작 1만 명도 되지 않았다.
생존이 아닌, 전멸을 피한 수준.
“살았어!”
“다시 시작하는 거야!”
환호하는 사람들의 기쁨에 동조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죽었다.
왕의 대지 스킬은 식물의 성장을 가속화시키고 죽음으로 물든 땅을 푸른 숲으로 변화시켰으나, 그뿐이었다.
누구는 태초의 낙원이라 불렀으나, 틀린 말이다.
수호시티를 세계의 방주라 불렀으나, 틀린 말이다.
방주라 불리기엔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 데 실패했다.
아주 소수의 인류, 그리고 몇몇 종의 야수들만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전부였다.
어쩌면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아담과 이브가 되었음을 자처하며 신문명을 이룩하고자 열의에 찬 이들이 나을지도 모른다.
“흐흑, 소피아.”
“아버지, 흑.”
이동포탈망을 타고 수호시티로 피난 온 이들이 수천.
생존의 기쁨은 잠시였고, 후회와 탄식, 홀로 살았다는 죄책감…….
절망에 빠진 이들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 문제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몰린 피난민들을 성 밖에 수용하면서 불거졌다.
“문을 열어라!”
“우리도 들여보내줘!”
세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었다.
내성 사람, 외성 사람, 성 밖 사람들.
적절한 식량 배급이 이뤄졌으나 불안한 군중심리를 통제하진 못했다.
세상이 죽어가는 와중에 절망에 빠져 희망을 놓아버린 사람들 몇이 자살했다.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것 외에, 타인과 함께하고자 무차별 테러를 자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혼란은 단절을 부추겼고, 얼마 남지 않은 인류는 그 수가 조금씩 더 줄어갔다.
수호가 검은 세상에 녹음을 꽃 피우기 위해 돌아다니는 이때, 수호시티의 총 책임자는 다름 아닌 김미소.
부쩍 수척해진 그녀는 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골치가 아팠다.
성 밖 사람들의 요구대로 그들을 성안에 들이면 해결될까?
‘혼란만 커지겠지.’
그들이 위협적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외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 밖에 두는 것이다.
생명체가 사라진 이 지구에서, 인류는 가장 최하의 먹이사슬에 위치해 있을지도 모른다.
몇몇 각성자를 제외하고 수호시티에 남은 야수들은 맹수 그 자체니까.
야수들은 적의를 보이는 인간들을 살려둘 정도로 자비롭지 못했다.
“빵즈 새끼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순 없어.”
“유럽인들이여, 노예가 될 것인가?”
“야메떼.”
“우리끼리 힘을 합쳐야 해!”
불안은 사람들을 뭉치게 했고, 파벌이 생겨났다.
모두가 김미소처럼 통역 아티팩트를 가진 것은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같은 지역 출신끼리 패를 이루었다.
‘사장님이 돌아오셔야 해.’
김미소는 한계를 느꼈다.
불안한 군중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도 세계 각국에서 모인 피난민.
그들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는 지도부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내부인들도 생겨났다.
애초에 여긴 수호 길드의 홈그라운드.
피난민들의 불평불만 자체를 기분나빠하는 길드원들도 다수였다.
몇몇 과격한 이들은 그들을 내쫓기를 건의하기도 했다.
아주 소수만 남아버린 인류는 뭉쳐서 위기를 헤쳐나가기 이전에 분열했다.
‘아니, 위기가 사라져서…….’
더 이상의 던전 생성은 없다.
몬스터의 위협도 없다.
문제는 이 드넓은 지구상에 살아있는 동물들이 모두 수호시티에 몰려 있다는 것.
그렇게 분열하고 분열하는 와중에, 드디어 수호가 돌아왔다.
검게 물든 지구를 숲으로 만들어 놓고 왔다.
슈아아아.
바람을 가르며 매가 하늘을 날았다.
수호시티는 외성을 두르는 넓고 깊은 해자로 인해 출입구가 둘뿐이다.
북문과 남문.
내성으로 곧장 통하는 북문은 항상 인면지주가 거미줄을 치고 굳게 닫아 지키고 있다.
남문은 외성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인데…….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슈아아악.
매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착지와 동시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소란스럽던 주위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스스스.
바람의 정령 실프가 흙먼지를 거둬내자 수호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곳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수호가 난장판의 중심지 성문을 향해 다가갔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식판과 음식물들.
그리고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
입을 붉게 물들인 채 사람 멱살을 쥐고 있는 일곰.
“쿠루루.”
“…….”
일곰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듯 당당하게 서 있었다.
수호가 주변을 휘이 둘러봤다.
식사 배급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길드원들 간에 마찰이 빚어진 모양.
길드원 하나가 재빨리 다가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사, 사장님. 오셨습니까?”
“왜 이래?”
“중국인들 몇이 난동이 있었습니까?”
“왜?”
“소시지를 하나 더 달라고.”
“…….”
수호가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보았다.
못해도 너덧 명은 죽었고, 열댓 명이 신음하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일곰이에게 멱살잡힌 놈도 목숨이 간당간당했고 말이다.
파파팟.
수호는 조화력을 끌어와 다친 이들을 모조리 치료했다.
“으으윽.”
“크윽.”
저마다 신음하며 일어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누운 이가 4명.
4명은 확실하게 죽었다.
“쿠어!”
“…….”
일곰은 왜 저들을 치료해주냐고 항의했다.
“쿠어어!”
저들은 소란을 넘어 공격했으며, 주인의 명에 충실하기 위해 성을 방어해냈다.
“돌아가.”
“쿠어!”
일곰이 마지못해 잡고 있던 사람을 내팽개치고는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챔피언! 이건 온당한 처사가 아니오!”
“우리 중화민족을 이리 대접할 수는 없소!”
“우리도 성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항의를 들으며 한마디를 전했다.
“돌아가.”
일곰은 불만을 보이면서도 순순히 명을 따랐지만, 중국인들은 수호의 수하가 아니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소.”
“맞소! 얼마 남지 않은 인간끼리 돕고 살아야 하지 않소?”
“저 짐승을 당장 벌해야 하오.”
“맞소! 사람을 해하는 짐승은 옛부터…….”
분노한 중국인들은 수호가 한 걸음 다가오자 말을 삼켰다.
“차, 차라리 죽이시오! 이대로는 못 물러나오!”
두려움을 극복한 중국인 하나가 소리쳤다.
파팟!
그리고 수호의 손짓 한 번에 목이 달아났다.
몸과 분리되어 천천히 떨어지는 머리통을 보며 사람들이 경악했다.
“너희도 죽어야겠나?”
“…….”
항의하던 이들이 재빨리 군중들 틈으로 도망쳐 버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그들을 두고 수호가 성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주, 줄을 서세요!”
수호시티 길드원들이 시체를 치우고 식량 배급을 다시 시작했다.
방금 사람이 죽어나간 길 위에, 식량을 배급받으려는 사람들로 길게 줄이 다시 이어졌다.
*“오셨어요?”
수호를 맞이하는 김미소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내가 떠난 지 며칠이 지났지?”
“59일 되었어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네.”
고작 두 달의 시간이었지만 그간 죽어나간 이들이 500여 명을 넘어섰다.
그중 대부분이 자살해버린 사람들.
“어떻게 할까요?”
수호가 생기 없는 김미소를 보았다.
“어떻게 하길 바라?”
“…….”
김미소는 답 없는 와중에 답을 찾아 상신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말해.”
“첫째는 피난민들을 모두 내치고, 기존 수호시티의 식구들만으로 영역을 꾸리는 겁니다.”
수호는 당장 결정하는 대신, 다음 선택지를 들어보았다.
“다른 하나는 모두를 포용하는 거예요. 어쨌든 지구에 살아남은 인류는 여기 있는 이들이 전부니까요.”
“포용한다라…….”
김미소는 수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지배하는 겁니다.”
김미소는 미래를 그려봤으나, 어떤 미래든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문명인들이 문명의 퇴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러 문화권 사람들을 강제로 하나로 모으는 데 가장 손쉬운 통치 도구로 폭력과 공포를 손에 쥐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니리라.
김미소가 내놓은 방안에 수호가 눈을 감았다.
“하아.”
세상을 구하지 못했으나 인류는 구했다고 여겼다.
지금 와 생각하니 인류도 구하지 못했다.
이 지구에 남은 것은 몇 종의 야수들뿐이다.
야수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짐승이 그 개체가 조금 많을 뿐.
“나아가기 위해 지배하셔야 합니다.”
수호라면 저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하나로 모을 수 있으리라.
김미소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선택이 쉽지 않다.
지구를 죽음에 물들게 한 것도 수호다.
한 줌의 인류를 보존케 한 것도 수호다.
이미 무너져 버린 생태계에서 인류가 얼마나 더 생존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걸 자신의 지배하에 꼭 이루어져야 하는가?
‘내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하나의 선택지가 더 남았다는 것이다.
정복자가 될 것인가.
구원자가 될 것인가.
수호가 세계수를 향해 걸었다.
*커다란 산.
몇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정상의 분지엔 넓은 호수가 자리해 있었다.
호숫가에 자리한 널찍한 바위.
바위만큼이나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호랑이 인간이 누워 나른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휘리릭.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하나가 날아와 초록색 요정이 되었다.
호랑이가 그 기척에 실눈을 떠 슬쩍 보곤 다시 눈을 감았다.
[요정왕께서 여긴 어인 일인가?] [야수왕이 하도 무료해 보이기에 들렀지.] [무료하긴.]호랑이 인간이 눈을 떴다.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를 보았다.
[곧 돌아올 터인데.] [그가?] [클클, 별수 있나? 선택지가 없는걸.]호랑이 인간의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그도 인간처럼 부던히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어떤 노력으로도 침식을 막을 수는 없다.
역사를 되풀이해 봐야 매한가지.
신은 죽는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
죽은 신은 죽음을 갈망해 신을 따라다니고, 신은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신계에 발을 들인 그 인간은 참 많이도 죽었다.
외로움에 스스로 목을 메어 죽기도 했고, 다른 신수와 싸우다 죽기도 했다.
억겁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이 쌓였나?
그 모든 죽음이 업이 되어 그를 따라다닌다.
어느 세상에 가든 그 세상을 파멸로 몰고 침식을 일으킬 것이다.
오직 예외의 땅이 있다면 이곳.
신계뿐이다.
결국 그가 방황 끝에 돌아올 곳은 이곳뿐이다.
그렇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포오옹.
드넓은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진 듯 파동이 일었다.
[왔군.]재앙은 신이 내리고, 신은 재앙을 막아설 수 없다.
죽음에 절망한 신이 돌아올 곳은 신계뿐이다.
[어서 와라, 인간.]파아아앗!
호수가 솟구쳤다.
하지만 쿠로의 기대와는 달리, 거대한 포말을 일으키며 등장한 것은 새하얀 용이었다.
퐈아아아아.
물을 뿌리며 승천한 백룡이 호수 위를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