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25)
326화 연방 출현
파팟.
짙은 어둠.
어둠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이 없어?’
이 무덤의 주인은 뭐지?
적어도 한 장면 정도는 남아서 과거의 기록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아무런 정보도 남기지 않은 어둠이 물러나고 검은 세상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시체를 보았다.
“허, 자살을 해?”
수호는 목을 매단 인영을 보았다.
과거의 삶 중 하나일 게 분명한 또 다른 자신이다.
“나약한 놈이군.”
얼마나 나약하기에 자살할 생각을 했나.
지난번 지구에서도 목을 매단 놈을 봤다.
수호는 천 년이 넘는 삶 동안 한 번도 죽지 않음에 의아했었다.
나는 왜 불로불사인가를 고민할 정도로 말이다.
‘죽은 놈들은 죄다 여기 묻혔으니 몰랐지.’
그냥 수많은 죽음 끝에 지금의 삶에서는 한 번도 죽지 않고 운 좋게 살았을 뿐이다.
불로불사가 아니라, 죽음을 선사해줄 적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과거의 인연들이 닿아 쿠로도 자신을 많이 봐준 것 같았다.
그렇게나 덤벼들었는데도 죽지 않았다.
봐준 게 틀림없다.
마치 성장할 때까지 아기를 돌보듯이 말이다.
물론 힘 조절에 실패해 죽은 삶도 여기에 몇 묻혔겠지.
끼릭, 끼릭.
나무에 매달린 인영이 흔들렸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던 인영이 눈을 떴다.
저걸 눈이라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몸과 머리는 온통 검은색 일색이고, 눈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붉은 빛이 두 개 찍혔을 뿐이다.
“내려와.”
[…….]투둑.
흔들리던 인영을 매달고 있던 밧줄이 끊어졌다.
툭!
“오, 히어로 랜딩.”
한쪽 무릎 꿇고 떨어진 블랙맨을 보며 수호가 이죽거렸다.
[너도 실패했구나.]“……?”
수호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녀석을 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실패?”
실패한 이유가 뭐겠는가.
과거의 죽음들이 거머리처럼 따라와 침식이 일어나서 지구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지구를 구했지만 그것을 구했다고 평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한 줌 인류만 살아남고 지구의 생명 자체가 씨가 말라버렸으니까.
[드래곤에 쫓겨 왔나 보군.]“하,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수호는 주먹을 풀며 다가갔다.
“죽여 보면 알겠지.”
[나를?]검은 인영은 히죽 웃었다.
그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세는, 자살한 새끼가.”
수호는 휙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투욱!
블랙맨은 너무 쉽게 손바닥으로 주먹을 받아냈다.
[약하구나.]“……?”
수호는 주먹을 빼내 얼굴을 노렸다.
텁!
그것도 잡혔다.
양손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수호가 박치기를 날렸다.
콱!
제대로 들어간 공격에 수호가 재빨리 벗어나 거리를 벌렸다.
아까의 이죽거림은 온데간데없이 수호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해졌다.
“너, 왜 강하지?”
[…….]수호는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왜 자살했지?”
이 정도로 강력한 놈이 말이다.
이놈도 침식을 막지 못했나?
[신계엔 미래가 없다.]“지구가 아니라?”
[…….]블랙맨이 수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뭘 하다 온 거지?]“그러는 넌 뭘 하다 죽은 거지?”
[…….]“…….”
처음으로 마주한 현생보다 더 강력한 과거와 마주한 수호가 침묵했다.
블랙맨도 거울을 비추듯 같은 모습으로 침묵했다.
길지 않은 고요를 깬 건 수호였다.
“뭐, 좋아.”
말 안 해줘도 상관없다.
저놈을 이긴다.
이기고 나서 흡수한다.
그 힘도, 그리고 기억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뭘 했기에 저렇게 강하고, 무엇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는지 말이다.
“죽어보자.”
아니, 한 번 죽었으니 두 번 죽는 셈이군.
[허튼 소리.]수호는 씩 웃으며 우군을 불러냈다.
“두치야, 뿌꾸야.”
두 마리의 고대 늑대가 소환되어 블랙맨을 향해 달려들었다.
*청와대 회의실이 오늘도 시끄러웠다.
“억제기? 그걸 누가 필요하답니까?”
“어허! 장관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급박한 변화를 반기는 기득권층이 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자신들이 깔고 앉은 지배방석을 무너뜨릴 정도라면 말이다.
“너무 희망에 차 계십니다들.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지금 당장 서울 중간에 억제기 박아 보십시오. 당장 시민들이야 좋아하겠지.”
서울시에 더 이상 던전이 리젠되지 않는다.
당장 자다가도 대피령에 피난가지 않아도 되고, 터전이 무너질 일이 없으니 안심일 거다.
“부동산 값 폭등합니다.”
“아니, 시발. 김 장관, 시대가 어느 땐데 부동산 지랄이십니까?”
“어허! 이 새끼가 어디서 욕질이야? 누군 욕할 줄 몰라서 그래?”
“하도 속내가 보여서 그렇지요. 안전해지면 그만큼 땅값이야 오르겠지. 근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타이르듯 어르는 상대를 보며 김 장관이 폭발했다.
“시발, 속내?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치려고 들어? 내가 국토부 장관인데 땅값 걱정하지, 새끼야.”
“지랄은.”
조용히 속삭였지만 들을 사람은 다 들었다.
“뭐 지랄? 이 새끼가! 너 일루 와봐!”
“아, 막말로 대기업 꽁무니 핥아 줄라고 일단 반대하는 거 아니오?”
“허, 허어!”
화는 나지만 반박은 못했다.
“대통령님 드십니다.”
굳은 얼굴로 참석한 류담 대통령은 여전히 얼굴이 붉어진 채로 화를 참고 있는 두 장관을 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김 장관님 말이 영 일리 없는 말은 아닙니다.”
“맞습니다. 부동산 폭등하면 서민 삶이…….”
“그것 말고 말입니다.”
바로 얼마 전 수호 길드에서 던전억제기 관련 공식 발표를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연합 발족을 제의해왔다.
이미 도시 단위로 자치구가 쪼개져 버렸다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건재하다.
그런데 수호시는 한반도의 도시들끼리 연합을 만들고 동맹을 강화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억제기 발생하면 당장 용병들이 문제입니다.”
“어차피 혈석 채취는 계속해야 하니, 필드로 나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억제기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 밖으로만 나가면 혈석이 넘쳐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용병회사를 허가한 것은 몬스터라는 공통의 인류 위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좋아 용병회사지, 몇몇 회사는 이미 대기업 사병이나 다름없다.
“용병의 필요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무력단체다.
그것도 상급으로 갈수록 총기 따위도 무시하는 초능력자들이다.
대격변 이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야 그들이 영웅이 되지만, 갑자기 도시에 평화가 도래하면 어찌할 것인가?
통제가 쉽지 않을뿐더러, 통제한다 해도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서울의 대기업 소속 길드들은 문제없습니다. 끽해야 조금 과한 경호인력 수준 아닙니까?”
국토부 장관의 발언에 아까부터 싸우던 맞은편 장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대기업 나팔수 새끼.
“저 영남 연합도 딴마음 품고 반기를 드는 세상에, 병력을 가진 대기업을 믿을 수 있습니까?”
“어허, 박 장관.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키우는 대기업들이오! 그들이 없으면 이 나라가 돌아간답니까?”
“누가 내치자고 했습니까? 경계하자는 게지요.”
그때 비서실장이 다가와 회의실에 알렸다.
“대통령님. 수호 길드에서 던전 억제기의 정체에 대해 공식 발표했습니다.”
“음, 일단 자료를 봅시다.”
그동안 루머로만 퍼졌던 던전 억제기 개발 소식을 공식 인정한 수호 길드다.
그런데 공식 발표 이후 그 억제기의 정체까지 이렇게 바로 추가 발표 해버렸다.
영상 자료를 보던 회의실의 그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세계수라니…….”
아루카 행성에는 던전이 없다.
그 이유가 세계수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입증했다.
“아니, 저 큰 나무를 어떻게 옮겨 심었답니까?”
“박 사장이니까 가능한 게 아니오? 거 왜 드루이드잖소?”
“저게 그냥 나무가 아닐 터인데…….”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사이 영상이 끝났고, 추가 정보도 오픈되었다.
현재 세계수를 중심으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조금씩 범위가 늘어나는 중.
이동은 불가.
추가 세계수 개화도 불가.
몇몇 회의실 인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거, 옮기지도 못할 거 선심 쓰듯 말한 거 아니오?”
“쳇, 난 또 억제기 빌미로 한반도 연합 강제하는 줄 알았더니만.”
이 회의 주제는 본디 그것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부 휘하 여러 도시들의 한반도 연합 가입 여부에 대한 판단.
“그리 쉽게 이야기할 게 아닙니다.”
“수호 길드에서는 다른 대륙으로 이동까지 고려하고 있다지 않습니까?”
“아, 가고 싶으면 가라지요. 나무 죄다 뽑아 갈 건 아니잖습니까? 외려 가면 좋지요. 저 세계수 근처로 정부시설을 죄다 이전부터 하면 되지 않습니까?”
설왕설래하며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그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국토부 김 장관이 말했다.
“굳이 수호 길드와 척질 필요가 있습니까?”
“음? 김 장관은 왜 말이 바뀌고 그러시오? 어디 기업에서 오더라도 내려 왔습니까?”
대놓고 조롱하는 말에 김 장관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 입을 찢어놔야 하는데.’
같은 장관이라는 새끼가 말본새가 왜 저리 저급한지.
“아, 내가 친기업적인 발언을 뱉는 것은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오. 나, 이 나라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
박 장관이 ‘랄‘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어허, 수호 길드와 손잡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해야지요.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이미 대한민국 정부는 수호 길드와 방위조약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호시는 외국 도시가 아니라 정부 소속 부속도시입니다.”
“지금 명분 싸움하자는 겁니까? 이미 지방 도시들에 대한 통제권도 사라져가는 판국에.”
씁쓸한 일이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통제력이 온전히 미치는곳은 서울시와 서귀포시뿐이다.
아니, 서귀포도 언제 반기를 들어버릴지 모른다.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해 그러는 걸지도.
“조금 쉬고 다시 진행합시다.”
가장 먼저 자리를 뜬 대통령은 찬바람을 맞았다.
“후우.”
“힘드십니까?”
“왜 아니겠나.”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깔려있다.
“대통령님이 원하시는 것만 생각하시지요.”
“내가 원하는 거라…….”
류담은 의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았다.
‘더 이상 분열은 안 돼.’
영남연합이 분리 독립하며 얼마나 뼈아팠나?
어쩌면 이것은 오래토록 소망해온 일일지도 몰랐다.
‘통일이라.’
떨어져나간 영남연합에 아울러 북한까지 포함하는 한반도 연합이다.
뜻도 좋고 취지도 좋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 힘을 합쳐 잘 살자는 것이니까.
다만, 그 주체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님이 껄끄러웠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통일은 아니지만 일단 힘을 합치는 것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는가?
“의원들 설득부터 해야겠구만.”
이미 몇몇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몇몇은 수호시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김미소는 청와대 비서실의 연락을 받곤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곧 자리를 마련하지요.”
공식 발표 이전에 한번 만나기를 청하고 있었다.
그녀가 관리국 소속 팀장이었다면 그저 청와대로 불러들여 만났으면 될 일.
수호 길드 실세가 된 그녀는 대통령도 조심하는 권력자가 되어 있었다.
이미 뜻을 함께 하는 대구와 평양, 익산을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정부와 부산의 영남연합 지도부와도 만남을 가졌다.
그로부터 3일 후, 언론에 공식성명을 냈다.
연합이 아닌 연방의 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