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5)
6화 각성자 등록
대낮부터 술상이 차려졌다.
식은 치킨이 놓였고 대충 끓여낸 김치찌개에 밥을 펐다.
준호의 얼굴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형이 돌아올 줄이야.
행방불명된 지 10년. 죽었다 생각했는데 버젓이 살아 돌아왔다. 그것도 젊었을 적 모습 그대로. 궁금한 것 투성이다.
“어떻게 하나도 안 늙은 거야?”
“나도 몰라.”
“그동안 뭘 했어? 어디 있었던 거야?”
“뭘 그리 급해? 일단 한 잔 따라봐.”
소주잔이 부딪치고 꿀꺽 넘긴 수호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캬, 이게 소주였지. 술이라도 있었으면 지난 천 년이 조금은 더 재밌었을 텐데.
부르르 몸을 떤 수호가 잔을 내밀었다.
“좀 더 줘봐.”
“어, 응.”
수호는 연거푸 석 잔을 마시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말해봐. 그동안 뭘 한 거야?”
“내가 묻고 싶어. 나 행방불명되기 전에 뭐 했었냐?”
“그냥 대학교 다녔지.”
“사라지기 전에 뭔가 일이 있었을 거 아냐?”
“대격변 때 행방불명된 사람이 한둘이야? 난 형이 괴물에게 잡아먹힌 줄 알았어.”
대격변이라면 수호도 알고 있다.
최초의 차원 충돌 이후 여러 세계와 연결되어 외계침공을 받은 날. 인류의 10%가 죽어버린 날.
“부모님도 그때 돌아가셨어.”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슬프지만, 그간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준호의 눈빛은 잠깐 흐리고 말았다.
“그래?”
수호는 씁쓸함을 소주 한 잔에 털어 넣었다.
뭐, 이게 어딘가. 애초에 가족과의 재회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생이라도 만났으니까.
“한 잔 더 줘봐.”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준호가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그간 형은 어디서 뭘 했길래 10년이나 지나서 돌아온 건가?
“눈떠보니 낯선 행성이더라. 뭐 아등바등 살다가 이렇게 돌아왔지.”
담담한 말에 동생의 눈빛이 흔들렸다. 타 차원에 있었구나.
티비에서만 종종 나오던 귀환자가 형이구나.
형도 자신 못지않게 고생을 했겠구나.
“어디 다친 덴 없어? 괜찮아?”
“크, 달다 달아. 멀쩡해.”
단숨에 소주를 비운 수호가 잔을 내밀었다.
“왜 이리 급하게 먹어?”
“맛있어서.”
천 년 만에 먹어봐라. 술이 술술 넘어간다.
“넌 어떻게 살았냐? 이렇게 똘망한 아들도 생기고.”
“내 유일한 보물이지.”
“짜식, 다 컸네. 애 엄마는?”
“으음…….”
그때 조용히 치킨만 먹던 건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저 강아지랑 놀아도 돼요?”
“응? 더 먹지 왜?”
“배불러서요.”
“그래, 그럼.”
건우가 조용히 나가자 준호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
“떠났어.”
“죽은 거야?”
죽음을 너무 담담하게 내뱉는 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덤덤한 형의 얼굴이 꼭 감정이 마른 사람 같았다.
준호는 소주를 한 잔 마시곤 담담히 말했다.
“형도 사라지고 부모님 돌아가시고 세상천지에 혼자되니 내가 많이 외로웠나 봐.”
소주를 털어 넣은 준호는 담담히 과거를 읊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여자를 만났어. 그러다 아이도 생겼지.”
말투는 여상스러웠으나 그간의 고단한 삶이 묻어났다.
“난 가족을 꿈꿨는데 걘 아녔어. 아기도 어쩌다 덜컥 생겼으니 별수 없이 낳았지.”
그때 상황이 그냥 그랬다.
과거의 기억에 괴로운지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예쁜 애였어.”
“그래서?”
“뭘 그래서야. 그냥 제 갈 길 간 거지.”
“너랑 애는 두고?”
“응.”
“썅년이네.”
자식을 버리고 떠나다니.
“큭, 그래도 형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넌 병신이고.”
묵직하다. 팩트라 할 말이 없다.
“……맞아. 내가 능력 없어 떠난 거니까.”가난이 아닌 돈 많은 부자였으면 그녀도 떠날 리 없었겠지.
“에이, 됐어. 각자 사는 거지 뭐. 이젠 원망도 없어. 난 건우만 있으면 돼.”
“어쭈.”
형제의 술잔이 다시 부딪쳤고 소주를 비웠다.
“빚은 뭐야?”
“형이 어떻게 알아?”
준호가 화들짝 놀랐다.
“얼마야?”
말을 잇지 못하던 동생이 불쑥 되물었다.
“말이 왜 이리 직설적이야?”
“너도 한 천 년 동안 혼잣말만 해봐.”
“응?”
“그래서 얼마냐고?”
준호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오천만 원.”
“응? 얼마 안 되네?”
수호가 깜짝 놀랐다.
그 정도 빚에 인생이 이렇게 고달플 수 있는 건가? 수호의 계산으론 사냥 몇 번만 하면 벌 돈이다.
“오천이 얼마나 큰데!”
대격변 이후 사회시스템 붕괴 이후의 삶은 처참했다. 망한 은행이 부지기수고 아무것도 없는 20살 청년에게 대출 같은 건 나오지도 않았다.
당장 갓난아이와 먹고살아야 하니 돈을 빌릴 곳은 사채뿐이었다.
빚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동생의 삶이 안타깝다.
“어쨌든 내가 갚아줄게.”
“됐어.”
준호의 거절에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뭔 자존심이지?
“나 요즘 벌이 괜찮아. 자리 잡아가는 중이야.”
자생가능한 도시만 살아남았지만, 타도시와 물류 교류는 필요했다.
필드 도로가 위험하긴 하지만, 균열 경보만 조심하면 된다.
그냥 운전만 잘하면 된다. 도시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직장보다 나은 수입이다.
“아까 그 트럭, 네 거야?”
“아니, 이 집 주인 할머니 거야.”
준호에게 있어 이 집의 주인인 이숙자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안 쓰던 트럭도 빌려주고, 집을 비울 때마다 건우 밥도 챙겨주시고 한다. 월세에 더해 소정의 사례를 더하지만, 은혜를 갚으려면 한참 멀었다.
“좋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내가 몬스터 사냥을 하면 네가 그 트럭으로 시체를 옮겨. 함께 일하는 거지. 어때?”
이러면 동생의 부담이 조금 줄어들까? 준호는 되레 놀라며 물었다.
“형 용병이야?”
“아니.”
“어?”
“그거 시험 쳐야 되던데.”
아, 그러고 보니 형은 타 차원에서 10년을 보내고 왔구나. 대격변 이후의 사회시스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를 터.
“각성자이긴 하지?”
“어.”
멍청한 질문이다. 각성자가 아니면 포탈 자체를 이용할 수 없으니 타 차원에 갈 수가 없다.
“혹시 등급 측정도 했어?”
“F급일걸.”
“어?”
준호의 눈동자에 당황이 스쳤다.
자신은 뭔 기대를 한 건가?
“형! F등급이면 일반인하고 다를 게 뭐야. 초능력이 뭐야?”
“빵하고 물 정도 만들 수 있지.”
“허.”
들어본 초능력 중에 가장 황당하다. 각성 초능력이 꼭 전투계열일 필요는 없다.
치료계 초능력만 얻어도 병원에 취직하는 건 아주 쉬우니까.
각성자라고 모두가 용병 일을 하고, 군인이 되는 건 아니다. 일반인들과 부대끼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F등급이라는 건 전투력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냥 초능력 하나 생겼고, 포탈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정도.
차원 여행 여권이 발행된 일반인 수준이다.
하물며 빵과 물을 만드는 초능력?
식량 못 구하는 어디 오지에서는 유용할 기술이겠다. 아마도 형은 저 초능력 때문에 생존한 모양이다.
“형. 용병 아무나 하는 거 아냐. 괜히 나 때문에 위험해질 필요 없어.”
“어쭈.”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을 보며 수호가 픽 웃었다.
날 걱정해?
숲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생태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나를?
품에서 200만 원을 꺼냈다.
“어제 고블린 잡은 돈.”
“…….”
준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린다. 돈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 훔친 돈으로 거짓말 하는 게 아니라면.
“내 동생 많이 컸다.”
“어?”
“형한테 개기기도 하고 말야.”
씩 웃는 형을 보며 준호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10년 만에 재회한 형제에게 하루는 참 짧은 시간이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 어제였다.
“갔다 올게.”
“어, 형. 같이 가줘야 하는데…….”
“내가 애냐? 이거 받아.”
100만 원을 보곤 준호가 손사래 쳤다.
“나도 돈 있어.”
“그냥 받아. 남는 건 건우 맛난 거 사줘.”
형제는 사냥을 위해 준비할 게 많았다. 준호는 낡은 트럭 정비도 하고, 몇 가지 장비를 사기로 했다.
수호는 통장 개설과 각성자 등록 등의 행정적 처리를 위해 움직였다.
하루 만에 다시 찾은 건물에 발을 디딘 수호가 직원에게 접수했다.
“어제 측정하셨네요. 한 달에 한 번만 무료측정이시라, 재측정비 50만 원 수납하셔야 해요.”
수호가 지폐를 꺼내 지불하니 수중에 6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뭐든 돈이군.”
문명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할 것 같다.
수호가 3층의 측정실에 도착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국가에서는 외국으로의 각성자 유출을 막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여러 복지혜택을 지원했다.
F등급은 휴대폰 지급과 통신비 지원이다.
혜택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감시로 여기기도 한다. 상시로 위치를 파악해 구조신호도 보낼 수 있으니 꼭 나쁠 일은 아니다.
“57번 고객님.”
한참을 기다려 자신의 차례가 되어 측정실 앞에 섰는데, 어제와 같은 직원이다.
“어? 아저씨 하루 만에 왔네요.”
인간이 초능력을 각성하기 위해서는 차원에너지의 축적이 필요하다.
가장 흔하며 보편적인 것이 몬스터를 죽여 그들의 차원에너지를 뺏는 것.
“경험치 좀 올리셨어요?”
보편적으로 경험치라 부른다.
“몇 마리 잡았죠.”
“각성하실 때 느낌 딱 오죠? 팍 레벨업 하는 느낌.”
“다른 각성자도 레벨업을 해요?”
“에이, 비유가 그렇단 거죠. 뭔가 새롭게 태어나는 듯한 느낌 같은 거 안 들어요?”
순간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관통하긴 했다.
“초능력은 뭐예요?”
수호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직원이 측정실 문을 열며 말했다.
“어차피 이따 등록하셔야 하니까 능력 발현실로 가세요.”
수호가 측정실로 들어가 돌침대 같은 측정기에 누웠다.
파팟!
은은한 불빛이 모여들며 예의 그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다.
코앞에서 자신을 샅샅이 훑어보는 듯한 더러운 느낌.
“응?”
측정이 끝나며 시선이 사라졌다.
수호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곤 인상을 썼다.
저쪽 행성에서는 참 심플했는데, 지구로 돌아오니 참 다양한 메시지가 보인다.
상태창을 확인해 보려는데 직원이 문을 열었다.
“나오세요!”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측정실을 비워준 수호가 직원과 함께 액정화면을 봤다.
“여기 보이시죠? 전보다 14 오르셨네요. 축하드려요. 지하 1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수호가 지하에 내려가니 안내데스크가 있었다.
“박수호 님?”
“네.”
“각성 축하드립니다. 어떤 종류의 초능력인지 알 수 있을까요?”
뭐라 대답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냥 사실을 말했다.
“빵하고 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남은 업적 포인트는 4.
살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
“아! 구현계 초능력이군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지하엔 널찍한 방들이 많았는데, 전투 스킬들도 시연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수호는 단출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사방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있고, 정면의 책상엔 기록관이 앉아있었다.
“구현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수호가 업적상점을 열어 빵과 물을 하나 샀다. 남은 포인트는 이제 1.
파팟.
허공에서 물병과 빵이 생겨나자 기록관의 얼굴이 흥미로워졌다.
“기록을 뒤져봐야 알겠지만, 이런 쪽의 구현계는 처음 보는군요. 허허. 얼마나 자주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이제 못해요.”
“예에?”
황당해하는 기록관을 보며 수호가 말을 조금 정정해 주었다.
“고블린 정도 잡을 때마다 물은 한 병 정도 되겠네요.”
“흐음, 능력 구현에 딜레이 시간은 없습니까?”
“없어요.”
기록관은 몇 가지 문답을 더 주고받다가 대충 어떤 초능력인지 파악한 듯했다.
“선생님은 구현계, 그중에서도 베이스 에너지를 마력이나 생명 에너지가 아닌 몬스터에게서 얻은 차원에너지의 잔재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뭐, 비슷하겠네요.”
잔재에너지가 업적 포인트라면 말이다.
“음, 때에 따라서는 무척 귀하게 작용할 능력이군요. 보다 발전시켜 인류수호에 이바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사치레를 끝내곤 각성자 등록을 완료하러 2층의 발급과로 향했다.
대기 번호를 뽑고 기다리는 중에 상태창을 한번 실행해봤다.
“상태창.”
파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