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56)
57화 SFC (1)
청와대 회의실.
“당장 보내야 합니다!”
“아니, 죄가 있다면 사법부에서 처리할 일이지. 달란다고 줍니까?”
“우쭈쭈 해주니 제놈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난리 치는 것 아닙니까? 거기가 어디라고 가서 난장을 피고 오냐 이 말입니다.”
“쯧쯧, 하여간 일본놈들 말이라면 죄다 갖다 바치려고.”
“뭐? 너 이 새끼, 뭐라 그랬어?”
“거 혼잣말입니다.”
“이 새끼, 내가 다 들었어.”
한창 혼잡한 와중에 정무수석이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 드십니다.”
뒤이어 자리한 대통령 덕분에 오가는 고성은 멈췄지만, 설전을 주고받던 국방부 차관과 외교부 차관의 얼굴은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리에 앉은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국가비상사태로 번질 우려가 있습니다. 출신 정당 떠나서 현 상황만 제대로 봅시다.”
대통령이 눈짓하자 프로젝트 화면에 가까이 있던 비서실장이 브리핑했다.
“이성우의 최초 도발 이후 무시로 일관하는 듯했으나, 귀국 도중 곧장 일본으로 향해…….”
약 보름 정도의 박수호의 행적과 사건 배경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이상으로 경과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이성우와 박수호가 원래 알던 사이입니까?”
국방부 장관이 물었다.
“전혀 접점이 없습니다.”
“인터넷은? 요즘 애들은 SNS로 막 싸우고 하잖아요?”
“그것도 없었습니다.”
“허 참. 나라 버린 놈이 뭣 때문에 박수호를 걸고 넘어졌답니까?”
본인이 아닌 이상 의도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측은 충분히 가능한 일.
“두 가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각성자관리국장이 발언했다.
“박수호가 최근 국내에서 빠르게 유명세를 얻은 것을 시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라 버린 쪽바리 놈이 무슨 관심으로 여기를 기웃거렸답니까.”
“이성우 개인의 심리는 모르는 일이죠.”
그냥 가능성 차원의 추측일 뿐이다.
세계 랭커를 잃은 한국으로서도, 나라를 버린 이성우로서도 서로가 애증의 대상이니까.
버렸다 하더라도 고국의 사정에 아예 귀를 닫진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시기심이라고 하기엔 사안이 무겁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관리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해서 두 번째 안을 더 가능성 있게 보고 있습니다.”
관리국장의 눈짓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회의실 앞으로 나왔다.
“귀환자 관리팀장 김미소입니다.”
화면에 박수호의 프로필이 떴다.
“보고에 앞서 먼저 박수호라는 각성자에 대해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고와 함께 넘어간 화면에는 박수호의 최초 귀환부터 최근 행적까지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최초 귀환 당시 측정한 등급은 F였지만, 최근 영국에서 측정한 수치가 B입니다.”
“아니, 그게 가능한 겁니까?”
보통 저 정도의 성장을 하려면 몇 년이 걸릴까?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도 연간 프로젝트다.
“그의 경이적인 던전 공략 속도를 보면 이해되실 겁니다.”
수호의 던전 공략 이력이 떴다.
5성 던전 12회
4성 던전 87회
…….
“최근 5성 던전의 공략시간은 57분, 4성 던전 8분입니다. 더욱이 이 모든 공략이 1인 솔로플레이로 이룬 성과입니다.”
김미소의 보고에 회의실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가능만 하다면 놀라운 성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혼자서 경험치를 다 독식하는 정도면 B급에 오를 차원에너지는 모두 모았으리라.
김미소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는 짐승을 길들이는 테이밍 스킬을 가졌으며, 그렇게 길들인 짐승으로 변신하는 스킬 또한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의 개인 전투능력은 F급일 때 이미 B급을 압도할 정도였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잠정 S급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추측이다. 정확히 측정해 볼 기회는 없었으니까.
“아무리 귀환자들이 규격 외의 힘을 낸다 해도, 이건 정도가 심한 것 아닙니까?”
“박수호는 던전 귀환자로 판명 났지 않습니까?”
김미소의 얼굴이 잠시 흐려졌다.
귀환자 관리팀도 그렇게 결론 내렸다가 피를 봤다.
“조금 다릅니다. 현재 그의 귀환지로 추정되는 던전들이 세계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방부장관이 의아한 듯 물었다.
“홍길동도 아니고 그게 가능합니까?”
“모릅니다. 최초 사례라 토들러 박사도 주의 깊게 연구 중인 것으로 압니다. 박수호의 이번 영국행도 그와 관련된 일입니다.”
“으음. 단순한 던전 귀환자로 특정할 수가 없겠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박수호의 두 가지 스킬입니다.”
프로젝터가 비추는 화면에 동영상이 떴다.
수호의 손짓에 초록빛 무리들이 사방으로 뻗어가며 식물들이 일시에 자라났다.
“아루카 행성의 엘프들이 보이는 식물성장 마법입니다. 일반 원소마법과는 궤를 달리해 엘프족들의 비전으로 여겨지는 마법체계로, 최근 들어 아루카 행성에 유학 간 각성자들이 배워오기 시작한 마법입니다. 하지만 박수호 정도의 위력을 내는 각성자는 아직 없습니다.”
스킬을 배우기 위해 스킬북이 아니라 직접 전수자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아루카 행성과 구천행성의 중원인들에게 사사하기 위해 보통은 차원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엘프들의 비전을 배워온 각성자들이 발현가능한 수준이라고 해봐야, 열흘 자랄 나무를 한 시간 만에 자라나게 하는 정도다. 박수호가 펼치는 마법의 무식한 위력과 범위는 기존의 엘프들도 가능할지 미지수인 수준이다.
“확실히 그의 가치를 너무 등한시했군요.”
“맞습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 공개된 영상까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성시에서 놓친 불가사리들이 저지른 방화.
강한 서남풍을 타고 대형화재로 번질 뻔한 상황에서, 박수호는 기류를 컨트롤하더니 거대한 회오리바람으로 불길을 가둬 자연소멸시켜 버렸다.
“원소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와 각성자는 꽤 많습니다만, 박수호와 같은 대규모 범위를 구사하는 건 구천행성의 마몬족 대마법사들 정도뿐입니다.”
바람을 통제하는 거야 살상력 면에서는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태풍이나 토네이도 같은 자연재해는 숱하게 있어 왔고, 대비만 잘하고 피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재해급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각성자의 가치가 낮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으음.”
김미소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가 대단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번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미국이 탐내고, 일본이 집적거릴 이유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지금 일본이 박수호를 노리고 있고, 그래서 이성우가 나선 것이다?”
“네.”
“이거 아귀가 맞아떨어지는군요.”
침묵하던 사람들이 의견을 보탰다.
“범인인도협정 같은 건 개소리입니다. 놈들이 원하는 게 박수호 데려가서 회유하는 거 아닙니까?”
“전쟁 가능성은 낮습니다.”
“인류평화조약이야 그저 말뿐이지요. 지금 중국도 저 난리인 마당에 그거 하나 믿고 뻗대긴 위험합니다.”
인류평화조약.
대격변을 맞은 이후, 국가가 아닌 인류 전체가 연대해 외계생명체를 격퇴하기 위한 상호불가침조약이다.
중동의 전쟁이 멈췄으며, 서로를 겨누던 총부리는 던전으로 향했다.
적어도 인간끼리의 전쟁은 멈춘 듯했다. 하지만 대격변 이후 시간이 지나며 불안한 정세 속에 많은 국가들이 망하고, 또 분열되었다.
표면적으로 멈췄다 뿐이지, 깊게 들여다보면 국가 간의 반목이 일어나고 있는 곳도 여럿 있었다.
그들 간에 국지전이야 지금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7개 연합국가로 쪼개진 중국은 지금도 심심찮게 국지전이 벌어진다.
몇몇 노마드는 아예 마적단이 되었고, 던전의 몬스터보다 만만한 소규모 노마드를 약탈하는 짓도 일어난다.
“일본 놈들이 미친 척하고 이 기회에 밀고 들어오면 어쩝니까?”
“전쟁이란 게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욱해서 미친놈들이 미사일이라도 날리면 어쩝니까?”
“대응해야지요.”
“각성자 하나 넘겨주면 끝나는 문제 아닙니까?”
“어허! 전쟁 나면 일본이라고 무사합니까? 안 일어납니다.”
전쟁이 나네 안 나네 싸우던 사람들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고개를 돌려 국방부 장관을 보았다.
“해상자위대 함대 하나가 동해 인근에 접근 중이나 아직은 무력시위 수준입니다.”
전쟁 협박은 협상 카드 중 하나다.
청와대 비상대책 회의에서도 저리 의견이 나뉜다.
여론은 더하다.
박수호 개인 하나 넘겨줘서 전쟁 위기를 피할 수 있으면 그리하자는 의견이 점점 우세해지고 있다.
“모두 조용히 해보세요.”
대통령 류담이 각성자 관리국장, 그리고 김미소 팀장을 보았다.
“일본이 전쟁 위협을 해서라도 얻어내려고 하는 가치가 박수호에게 있다는 말이지요?”
“그 이상입니다.”
확신에 찬 김미소의 말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켜야죠. 전쟁을 해서라도.”
그럴 가능성 자체는 희박해 보이지만, 최악의 사정을 가정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박수호 포기 안 합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데 놓칠 수야 없다.
전쟁 상황이야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일 뿐, 그냥 유야무야 정치 싸움에서 끝날 것이다.
한국의 국방력이 상대적으로 일본에 밀린다고 하나, 일방적인 싸움이 될 정도는 아니다. 일본도 피해를 각오하고 전쟁을 할 각오까지는 없으리라.
“김미소 팀장.”
“네, 대통령님.”
“그에게 대한민국 의지를 전해주세요. 또다시 유능한 각성자를 잃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애국심으로 호소할 시대가 아니잖습니까.”
잠정 평가만으로 S급 이상이다.
멍청한 짓은 이성우로 족하다.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일본에 간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김미소는 박수호의 정신과 상담 이력의 축약, 그리고 행적에 따른 이유를 풀어냈다.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단순하며, 이번 사건에서 보듯 극단적입니다. 영역에 대한 집착이 상당한데, 이전에 관리국과 맺은 계약만 보셔도 이해되실 겁니다.”
이전에 수호 클랜이 길드가 되며, 또 이후 던전 공략 기회를 얻어내며 그들이 요구한 조건은 다름 아닌 영역.
“그는 영역과 울타리를 중시합니다. 이성우의 도발로 곧장 일본 정부에 시비를 걸 정도입니다.”
“으음.”
그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굳이 애국심은 필요 없다.
“김미소 팀장에게 일임하겠습니다. 그를 다음 길드 총회에 초청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우우웅.
떠난 지 5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수호 길드의 모습은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와, 건물들 올라가는 건 금방이네요.”
부하 직원의 말대로다.
7~8층 정도의 건물은 요즘 같은 시기에 일주일이면 세운다. 내부 인테리어에 시간이 들긴 하겠지만, 뼈대는 그 정도면 된다.
사회 전반에서 활약하는 각성자들 덕분이다. 오죽했으면 병원마다 광고에 내세우는 게 치료 각성자들의 스킬 목록이겠나.
이는 건설사도 다르지 않다.
건축에 특화된 각성자 하나가 타워크레인 열보다 나을 때도 있다.
“아직 외벽은 없네요.”
“그거야 저것처럼 나무로 감싸겠죠. 전에 보니까 불에도 안 타던데요.”
이성우의 공격에도 조금 그을리고 만 나무성벽이다. 내구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성벽으로서의 역할 자체는 충실한 느낌이다.
김미소는 곧장 수호 길드 본사로 향했다.
나무성의 입구에 7층짜리 건물의 뼈대가 서 있었다. 건물 자체가 성문을 막고 있어 이곳을 통해야만 나무성의 숲으로 갈 수 있었다.
“아이고, 또 오셨소. 요즘 자주 보는구마잉.”
그녀를 맞이하는 건 이숙자였다.
“안녕하세요. 박수호 씨 계세요?”
“우짠댜? 우르르 어디 던전인가 갔는디.”
“아!”
그답다.
이 난리를 쳐놓고 던전 공략에 나서다니.
“기다릴텨?”
“네, 중요한 볼일이라서요.”
“저짝에 가 있어. 내 요깃거리도 내줄 텡까.”
수호 길드에 식구가 꽤 늘었다.
각성자 외에도 장비엔지니어와 명조스님, 함께 온 보살님들과 아이들까지 여럿이다 보니 이숙자 혼자서 모두의 밥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숙자를 도와 보살 둘이 밥을 하다가, 그들로도 모자라 사람을 더 뽑았다.
점점 길드의 외형도 커지는 중.
공사 중인 건물 옆엔 대형 천막들이 여럿 쳐져 있었는데, 그중 임시 식당으로 쓰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선객이 있었는데 금발의 코큰 외국인 얼굴이 낯이 익었다.
‘저 사람은…….’
김미소가 흠칫 놀랐다.
초면이지만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라 단번에 알아봤다.
SFC 아시아 지부장 맥스.
김미소를 수호 길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상대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호떡 마시써요. 굿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