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59)
60화 영역표시 (1)
대회 시작 시간이 임박할수록 쏟아지는 기사의 수가 많아졌다.
우호적이던 한국의 언론에서도 박수호의 출전 거부에 대한 의견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본 내 여론은 숫제 한국과 박수호를 조롱하는 분위기였다. 외국 기사들을 번역해 올리는 등, 커뮤니티도 시끌시끌했다.
– 아직 경기 3시간이나 남았는데 설레발 보소.
– 근데 이 정도면 내뺀 거 아님?
– 나 같아도 지릴 듯. 이성우가 콕 짚어 싸우자는데 솔까 사망플래그 아니냐?
– 아, 일본 가서 그 난리치고 설마 기권이냐?
– 아직 수호 길드에서 아무런 대응 없던데.
– 핑계 구상 중일 듯 ㅋㅋㅋㅋ
– 시발 애국배팅했는데 망했다.
– 졸렬한 새끼! 나도 용돈 다 걸었는데!!!
한국 여론도 수호의 경기 포기 가능성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 수호를 태운 비룡은 네비게이션에 따라 일본 경기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SFC 도쿄 경기장.
선수 대기실에 앉은 이성우는 수첩을 끄적이고 있었다.
“왜 의정부로 옮겼지? 미친놈인가?”
수첩을 뒤집어 봤다.
한국 최초의 7성 던전이 열리는 곳이 바로 의정부 근처다. 한국이 망하는 데 단초를 제공하는 던전이다.
호기롭게 나선 공격대가 전멸하고, S급 각성자 절반을 잃은 한국은 서울을 버리고 세종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때쯤 붕괴된 북한으로 인해 대륙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지 못한다.
“설마 이걸 막겠다고?”
던전 공략에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던전 공략 횟수에 결국은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그때 튀어나온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 쏟아부은 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의정부는 초토화된다.
그런 자리에 새로운 길드를 설립한다?
이성우의 정보로는 도무지 박수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새끼, 설마 회귀자가 아닌 건가?”
뭣도 모르면 그럴 수도 있다.
아직 꼬마인 팔악을 어떻게 섭외했나 하고 알아보니, 친조카가 아닌가?
검객의 합류까지도 우연으로 치부한다면, 그를 회귀자라고 의심할 수 있는 단서는 갑작스럽게 이름을 알렸다는 정도 뿐이다.
‘지난 생에선 분명 들어보지 못했어.’
팔악의 가족관계까지 신경 써 본 적은 없다.
지난 생에서 그들은 없는 사람들이니까.
이성우가 아무리 많은 회귀를 통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봤다지만, 그간 만나왔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고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기엔 무리였다.
그저 자신의 계획에 맞춰 필요한 정보들을 잊기 전에 메모해 참고할 뿐이다.
“후.”
복잡한 머리에 생각을 멈췄다.
어쨌든 놈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고, 미래가 바뀌고 있다.
회귀자라도 죽이고, 아니라도 죽인다.
‘때로는 희생도 필요한 법.’
그는 악당으로 살며 후일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
“히로! 왔어! 정말 드래곤을 타고 왔어.”
아키코가 호들갑을 떨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도망갈 수가 없지. 국제적 매장이니까.”
다른 차원에 가서 살 것이 아니라면 놈은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언론을 통해 판을 키웠다.
‘쳐들어온 건 웃겼지만.’
놈은 그저 자신과 대화하러 왔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던전 공략 중이라 자리를 비운 게 독이 되어 놈을 더 옭아맸다. 그렇게 난리쳐놓고 대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대회 시작까지 남은 건 고작 30분.
“어지간히도 고민했나 보군.”
놈의 고뇌가 느껴진다. 이성우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키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가는 거야?”
“녀석을 보러.”
“사전접촉 금지잖아? 30분 남았어.”
“잠깐이면 돼.”
도쿄 경기장. 거기에 챔피언인 이성우다.
불가능한 게 있을 리가.
수호의 대기실을 찾은 그를 관계자가 막아섰다.
“1분이면 돼.”
“음, 알겠습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성우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가 없군.”
수호는 대기실에 의례적으로 늘어놓은 간식을 먹고 있었다.
“응? 누구야?”
“뭐?”
순간 진심으로 당황했다. 장난하는 건가?
“내가 누군지 모르나?”
자세히 살펴보니 낯이 익다.
대면하는 건 처음이지만 분명 사진으로 본 놈이다.
“으음? 혹시 이성우?”
“허참, 어이가 없군.”
새파랗게 어린놈의 치기어린 허세를 보는듯했다.
소파에 다리 꼬고 앉은 이성우의 모습에 박수호의 얼굴에 흥미가 동했다.
“건방지고 웃긴 놈이네?”
“허, 건방져?”
“이따 두드려 맞을 놈이 왜왔지?”
“내가? 챔피언인 내가?”
수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37초 주지. 할 말 하고 꺼져.”
싸움을 앞두고 대화를 이렇게 길게 해본 적이 없다.
말이 통하는 놈이랑 만난 적이 없으니까.
“자신감 하나는 대단한 놈이군. 좋아, 궁금한 것 하나만 묻지.”
“말해.”
박수호의 시선은 이성우의 뒤쪽 벽시계에 가 있었다.
“회귀의 돌이 하나 더 있었던 건가?”
“응? 그게 뭐야?”
이성우가 피식 웃었다.
“연기가 어설프군, 네놈, 최후의 날 이후 생존자인가?”
“최후의 날?”
“…….”
이성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설픈 연기라니.
“전혀 말할 생각이 없군. 그래. 그럴 수 있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회귀의 돌을 구했으리라.
과거로 돌아와 보니 제놈 세상이라 생각했겠지.
마치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듯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회귀한 지 얼마 안 되는 놈이군.’
어쩌면 1회차 회귀자일 수도 있다.
“이따 내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해야 할 거야. 아니면 죽을 테니까.”
잘게 다져놓고 물어보면 된다.
두 번째 회귀의 돌의 출처에 대해서.
“시간 끝났어. 꺼져.”
벽시계에 가있던 수호의 시선이 테이블의 컵라면으로 옮겼다.
찌이익.
정확히 3분.
뚜껑을 까고 젓가락을 뜯었다.
챔피언 이성우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재밌는 새끼네.’
대범한 건지, 무식한 건지 허세가 아주 대단했다.
어쩌면 놈은 자신이 회귀자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가 있던 세상에서 이성우는 그저 조용히 사라진 사람일 테니까.
뭐, 지금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한껏 건방질 때지.
최후의 만찬으로 컵라면을 선택한 도전자를 비웃으며 이성우는 대기실을 나섰다.
후루룩.
“이야, 이거 맛있네.”
한국에서 먹던 컵라면과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풀을 뜯어 양념해서 먹어도 맛있게 느낄 수호에게, 조미료의 결정체랄 수 있는 라면이 주는 자극은 상당했다.
컵라면 하나를 해치우니 방금 다녀간 이성우란 놈이 떠올랐다.
“웃기는 놈이네.”
와서 사과라도 하면 용서해 주려고 했다.
자신은 야만적인 짐승이 아니라 문명인이니까.
대화 얼마나 좋나?
“근데 최후의 날이 뭐지?”
회귀의 돌은 뭐고, 최후의 날은 또 뭐란 말인가.
다시 가 묻고 싶지만, 어차피 얼마 후면 만날 녀석이다.
대기실에 잔뜩 차려진 간식들을 먹다보니 시간이 되었다.
“출전 준비해주십시오.”
스텝을 따라가며 주의를 들었다.
“심판의 신호와 함께 싸우게 됩니다. 테이밍 몬스터에 대한 제한은 없습니다만, 사역마의 손실을 보전해주진 않습니다.”
개인의 초능력에 기인한 능력이라면 모든 허용된다. 소환술이나 테이밍 역시 초능력자의 능력.
“참고하죠.”
“네, 멋진 모습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긴 통로를 지나 문 하나를 앞두고 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문이 열렸다.
“나가시면 됩니다.”
문을 통과하자 넓은 경기장과 주변을 빼곡 매운 관중석이 눈에 들어왔다.
-도전자가 등장합니다! 한국에서 온…….
장내 아나운서의 음성이 시끄러운 관중들의 함성과 야유에 파묻혀 웅웅 거렸다.
결투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다니.
“좋은데?”
직접 보는 사람들도 이 정도인데, 방송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이보다 수십 배는 많다고 했던가?
역시 문명인들의 삶은 다르구나.
영역표시의 방법도 참 남다르구나.
수호가 천천히 걸어가 경기장 한쪽에 섰다.
-챔피언이 등장합니다! 일본의 영웅! 세계최강의 인간! 인류의 희망…….
와아아아아!
긴 소개와 함께 문 너머로 훌쩍 날아와 화려한 불꽃으로 불사조 형상을 만들어내는 녀석의 퍼포먼스에 관중들의 환호가 귀를 찢을 듯 울렸다.
요란한 퍼포먼스와 함께 등장한 녀석이 수호의 반대편에 섰다.
자신만만한 표정이 전혀 진다는 생각이 없는듯했다.
하긴, 인간들 중 가장 세다고 했던가?
저 자신감이 이해가 갔다.
개미들에게도 여왕은 있고, 우물에도 왕은 있다.
– 레디?
커다란 전광판에 카운트다운이 떴다.
5에서 시작한 숫자가 1까지 떨어지고 곧 심판의 목소리가 울렸다.
-파이트!
그 소리와 함께 이성우가 저돌적으로 돌진해왔다.
어디 개미 실력 좀 볼까?
화르르륵!
이글거리는 불길에 휩싸인 주먹이 내질러진다.
쾅, 쾅!
수호가 주먹으로 막아내자 폭발이 울렸다.
한 방, 두 방, 세 방!
연달아 이어지는 불주먹에 관중들이 환호했다.
해설도 난리가 났다.
“오오! 나왔습니다. 히로의 불주먹!”
“아, 도전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요.”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주먹이 연달아 내질러졌음에도 박수호는 어떤 반격도 없이 맞고 있었다.
“으음, 자세히 보니 어떻게든 가드해내고 있긴 합니다.”
수호의 양손이 이성우의 주먹을 족족 막아내고 있긴 했다.
“오! 나카무라 해설의 말도 맞습니다만, 히로의 불주먹을 저렇게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항마력은 몬스터의 것과는 다르거든요?”
“예상은 했습니다만 히로의 압도적 페이스네요.”
쾅쾅!
해설들의 낙관과는 다르게 이성우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안 밀려?’
연달아 내지른 주먹에도 녀석은 제자리에 선 채 묵묵히 손바닥으로 쳐내고 있다. 내구성이 좋은 녀석이다.
그래, 이참에 네놈 밑천을 다 까발려주마.
쾅!
크게 주먹을 내지르고 훌쩍 물러선 이성우가 아공간에서 검을 소환했다.
그 순간 관중들의 환호가 울려퍼졌다.
“오! 히로의 마법검이다!”
계속 그렇게 버티고 선다면 검으로 베어주지.
화르륵.
날이 선 마법검에 화염이 둘러졌다.
이 화염검은 베는 동시에 폭발을 일으킨다.
아까처럼 막으면 손아귀째로 터질 것이다.
놈의 항마력이 드래곤급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후아아앙!
이성우는 일직선으로 대시하며 화염검을 내질렀다.
빛살 같은 빠르기!
쾅!
‘막아?’
곧장 손을 뻗어오는 녀석을 피해 뒤로 블링크 했다.
파팟!
콰앙!
‘또 막아?’
폭발의 여파로 잠깐 흐려지는 시야로 힐끗 다가오는 주먹이 보였다.
파팟!
재빠르게 블링크로 공중에 몸을 띄운 이성우는, 훌쩍 다가오는 박수호의 신형에 기겁했다.
‘블링크?’
아직 지구에 존재하는 스킬북 중에는 없을 텐데?
현재로선 자신이 배운 게 유일하다.
생각을 이어 가기도 전에 마지막 남은 블링크를 써서 일단 피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 이동거리만큼 시전하자 경기장 구석에 뿅하고 나타난 이성우다.
수호가 씩 웃으며 다가오고 있다.
녀석의 손에 들린 단검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저걸로 막은 거라고?’
레전드급 아이템인가?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쾅!
“큭!”
이성우는 녀석이 던진 단검을 황급히 막았다.
무슨 스킬로 던진 거지? 이 묵직한 위력은 뭐지?
후우웅!
바람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젖혔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스쳐지나가는 박수호의 팔뚝이 보였다.
슈악!
본능적으로 휘두른 검이 녀석의 몸통을 베기 전에 가로막혔다.
“잡았다.”
이성우의 팔목을 잡은 박수호가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콰앙! 쾅!
여전히 놓지 않은 손목을 끌어 다시 바닥에 패대기쳤다.
쾅, 쾅, 쾅!
수호는 도리깨를 휘두르듯 바닥에 몇 번이나 패대기치다가 놓았다.
그런 뒤 축 늘어진 불개미를 향해 다가갔다.
“회귀의 돌이 뭐지?”
“……좆까.”
“덜 맞았구나.”
“제대로 싸워주지.”
이성우가 입가의 피를 훔치며 일어서서 박수호를 노려봤다.
시발, 스타일 구겼네.
방심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