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77)
78화 몬스터 웨이브 (1)
숲길을 오가며 곰과 사람의 박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파팍!
“꾸어억!”
“으윽!”
퍼억!
일곰이의 일격에 동수가 가까스로 팔을 교차해 막았다.
아직 키가 작은 나무를 부러트리며 바닥을 구른 동수는, 허우적거리며 기듯이 피해 바위에 올라섰다.
덜렁이는 왼팔은 부러져 축 처져 있었는데, 고통을 참는 눈빛은 여전히 일곰이를 향해 있었다.
“크엉!”
다시 달려드는 일곰이의 모습이 돌진하는 덤프트럭처럼 위협적이다.
쾅!
“흐읍!”
동수는 타이밍을 맞춰 점프해 돌진을 피해내면서 일곰이의 뒤통수에 킥을 먹여주었다.
퍼억!
제법 강력한 킥에 일곰이가 잠깐 휘청거리며 시간을 벌었으나, 다시 공격해 들어가기엔 동수의 사정이 좋지 못했다.
“그만.”
수호가 훌쩍 뛰어내리며 기특한 눈빛으로 동수를 보았다.
“이제 기본은 하네.”
긴장이 확 풀려서인지 참았던 통증이 엄습하며 동수가 신음을 토해냈다.
“와, 존나 아파! 뒈질 것 같아요, 형!”
“엄살은.”
“이거 덜렁거리는 거 보세요. 와, 나 식은땀 나.”
“이미 붙어가네.”
차원에너지를 흡수해 각성등급이 A가 되었다는 건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했다는 의미.
기절해도 부족하지 않을 신체 손상을 입고도 반격까지 가한 건 정신력만 강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정말 참을 만하다는 의미.
우드득.
“아아악!”
수호가 부러진 팔을 잡고 다시 맞춰 준 후에 가만히 잡고 있자, 숲에서 뿜어져나온 나무정령들이 달라붙어 상처를 빠르게 재생시켰다.
“저 좀 괜찮았어요?”
“이제 제 발로 걷긴 하겠네.”
팔이 부러지든 다리가 부러지든, 적을 눈앞에 두고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약점을 노출했다는 건 물어달라고 신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와, 나 엄청 세진 것 같은데 이제 기본이에요?”
“어.”
“얄짤없네요.”
“사실이니까.”
“…….”
수호의 개념에 싸워보지도 않고 내빼는 나약한 놈들에게 이제 겨우 맹수의 기질을 심었을 뿐이다. 상대가 누구든 일단 들이받을 용기 정도는 있어야 함께 사냥터를 가든 할 수 있지 않겠나.
“쳇, 그래도 일곰이랑 실전이었으면 전 죽었을 거예요.”
따악!
“악! 왜 때려요?”
“왜 다시 약한 소리하고 그래?”
멀쩡히 걷기 시작한 녀석이 다시 기어다니려고 한다.
“야생에서 일곰이랑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되냐?”
“싸워야죠.”
“그리고?”
“음, 센 놈이 살겠죠.”
따악!
“아악!”
동수가 뒤통수를 감싸며 소리질렀다.
“아니, 내빼는 것도 아니고 싸운다는데 왜 때리고 그래요?”
“도망치는 게 왜 나쁘냐?”
수호는 이들에게 바라는 건 생존과 무리생활.
“언제는 나쁘다면서요?”
“그건 영영 도망쳐서 그렇고.”
수호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녀석을 만나면 녀석의 영역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을 뛰어넘을 힘을 갖기 전까지.
“작전상 후퇴야 나쁠 것 없지. 그냥 싸우다가 죽는 게 멍청한 거야.”
“…….”
어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동수는 괜히 대꾸했다가 한 대 더 맞을 것 같아 침묵을 지켰다.
“그런 건 나 같은 녀석이나 가능했던 거고, 넌 다른 방법이 있지.”
수호는 혼자였다.
언제나 도망치고 힘을 길러 다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게 가능했다. 지킬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목숨뿐이었으니까.
“넌 친구를 불러야지.”
늑대 녀석들처럼 무리사냥을 해서 상대를 쫓아낼 수도 있고, 사냥해 먹을 수도 있다.
사실 맹수들끼리의 영역 다툼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의 힘이 비등하면 잃을 게 많아서다.
어느 한쪽이 강해지거나, 어느 한쪽이 약해져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전까진 각자의 영역이 고착화된다.
괜한 싸움으로 부상이라도 당하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엉뚱한 녀석에게 도전을 받을지도 모른다.
먹이사슬이라는 것이 종에 따라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니까.
강한 놈이 먹고, 약하면 먹힐 뿐이다.
토순이도 종을 뛰어넘어 포식자가 되지 않았나.
“다들 이리 와 봐.”
널브러져 있던 준호와 재식, 명진이 모여들었다.
“음, 지구는 은신처 숨기기가 애매하잖아?”
그래서 지켜야 했다.
“도망치기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졌고.”
엔지니어부터 지원부서 스텝, 동자승들, 거기에 직원들의 가족들까지 차츰 이주하고 있어, 점점 수호 길드의 이름아래 모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너희들이 잘 지켜야 해.”
어느 정도 앞가림은 하게 됐으니 수호의 할 일은 다 했다.
보살피고 돌봐주는 건 새끼일 때뿐이지, 다 자란 어른을 돌봐주는 경우는 없다. 사냥터의 옆에 동료로 서거나, 도태되어 무리에서 쫓겨나겠지.
야생의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기엔 문명의 역할은 좀 더 다양해, 사냥꾼이 아니더라도 무리 내에서 할 일이야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훈련 종료다.”
이후에 녀석들이 얼마나 성장할지는 각자의 역량에 달린 일이다.
“우와! 끝이다.”
“휴우.”
“나무관세음보살.”
“벌써 끝입니까?”
갖가지 반응을 보며 수호가 피식 웃었다.
“급하면 체한다. 더 몰아붙여봐야 얻을게 없어.”
7성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한 지 2주가 지났다.
보름 조금 넘게 야수들과 한데 어울려 훈련했다.
A등급이 되어버린 신체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매순간 쉴 틈 없이 움직였기에 피지컬 향상도 눈부셨다.
그중 가장 큰 소득은 야수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전력을 이해한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어떤 습성이 있는지…….
수호 길드의 사냥꾼은 5명의 용병이 전부가 아니다. 야수들까지 전부 나서서 지켜내자면 수호 길드성 하나는 충분히 지켜낼 만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싸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할 거 해.”
사장에 부사장까지 훈련에 매진하니 길드 살림은 지원부장인 이숙자가 알아서 맡고 있었고, 동수가 관리하던 유튜브 채널도 방치되고 있었다.
봉림사는 이미 외형을 갖추고 명진의 사형인 명조 스님이 34대 주지가 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수호 길드 외부에 건물들이 차츰 생기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13구역의 기틀을 다질 행정부서들이 먼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수호에게 있어 길드 외의 일인지라 별 관심이 없었지만, 13구역 관리국 지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김미소 지부장은 꼭 큰 일이 있을 때면 수호 길드로 와 길드마스터인 박수호의 허락을 구했다.
“알아서 해.”
어느 지역에 관리국 지부를 짓겠다. 이쪽에 상업지구로 지정하겠다, 여기는 주거단지로 조성하겠다 등의 이야기들인지라 그냥 다 허락했다.
‘왜 내게 허락을 구하지?’
영역 외의 일인데 말이다.
“다 같이 사우나나 합시다. 형님.”
지옥 같은 보름이긴 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느끼기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는지라 성취감이 컸다.
야수 사육장과 수호 길드를 연결하던 동쪽 출입구는 7층짜리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성문 위에 건물을 올린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그냥 1층 로비가 뻥 뚫려 하나의 관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야수 쉼터로 가기 위해선 본사 정문을 통해서 후문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자연스럽게 외부인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위치.
“목욕탕은 어디냐?”
“저쪽이야.”
준호의 안내에 본사를 통과해 나와 보니 잘 정돈된 도로와 듬성듬성 지어진 3~4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혈석을 이용한 자가발전시설에 몬스터부산물 창고, 혈석 창고 등의 주요 시설부터 식당이나, 카페, 목욕탕 같은 복지시설들이 위치했다.
수호 길드의 스텝들과 방문객들이 이용하는 시설들로, 앞으로 수호 길드의 수입원 중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규모 있는 여타 대형 길드들은 이보다 더 다양한 상업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직 빈 땅도 많고 입주하지 않은 빈 건물도 많아 발전 여지는 충분했다.
“으, 뜨뜻하다.”
“아, 나른하고 좋네요.”
다섯 명의 길드전투원들이 탕에 담그며 지친 심신을 달랬다.
“형, 그런데 조경은 언제 할 거야?”
“뭐 얼마나 걸린다고.”
지금 수호의 조화 스탯은 손짓 한 번으로 나무를 수십 미터는 자라게 할 정도로 높다. 휑한 황무지를 녹지로 만드는 건 수호에게 너무 쉽고 간단한 일.
“이따 보고 해줄게.”
“어으, 고마워. 그런데 슬슬 길드원 충원에 나서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해. 모자라 보이긴 하더라.”
“역시 그렇지?”
레벨 6 길드. 관리국에서 레벨 7 부여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대형 길드가 용병 5명인 것은 조금 난센스다.
“텅텅 비워 놓을 거, 건물을 왜 미리 올려놓냐? 얼른 일할 사람들 고용해봐.”
“응? 용병이 아니라 스텝부터?”
“당연하지.”
싸움이야 부하들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했다.
사방에 적들이 넘쳐나는 위험한 세상도 아니고.
사냥감은 던전에 있고, 다른 영역을 점유한 지배자들은 모두 인간이다. 싸움보다 대화가 통하는 존재들.
관리국장도 수호에게 우호적이니 괜히 시비 걸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지구는 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인가?
좀 더 문명의 혜택을 나눌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삼겹살집, 치킨집은 있어야하지 않냐?”
“응?”
“맛집으로 알아봐.”
“…….”
천 년을 꿈꿔온 소망.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리라.
자신의 무리를 크게 이뤘는데 야만인들로 만들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사우나를 마치고 준호는 길드에 입점할 가게 검토에, 동수는 방치한 채널 관리에, 명진은 비로소 재건에 성공한 봉림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넌 왜 나 따라다니냐?”
“형님의 모든 것을 배우고 닮고 싶습니다.”
“어우, 징그럽게 왜 그래.”
졸졸 따라오는 장재식과 노천카페에 앉았다.
“사장님. 뭐 드시겠어요?”
커피를 마시러 왔는데 자신이 사장이다.
종업원이 외부인이 아닌 길드 스텝이다.
“음, 카페모카로 두 잔.”
“전 아메리카노 먹겠습니다.”
“닮고 싶다며.”
“…….”
장재식이 침묵하자 스텝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바로 향했다.
잠시 후 달달한 카페모카를 한 모금 쭉 들이켠 수호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캬, 달달하다. 달달해.”
짜고 달고 맵고…….
천 년을 싱겁게 지내다 보니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으음. 좋네요.”
장재식은 수호를 따라 반샷을 하곤 가만히 앉아 천천히 붉어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봤다.
“대격변 전엔 이런 건 상상도 못했는데……. 참 아이러니하네요.”
“응? 뭐가?”
“노을 말예요. 그땐 미세먼지에 이렇게 파란 하늘 보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랬었나.”
10년 전이지만 천 년을 지나온 기억이다.
맑은 하늘이 당연시되는 세상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회색 빛깔로 숨쉬기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대격변을 인류 위기의 날이 아닌 지구 구원의 날로 부르기도 한다.
“형님들, 여기 계셨네요.”
“어, 너도 한잔 해.”
“넵, 여기 카페모카 하나 주세요.”
자리에 앉은 셋은 물끄러미 서쪽 하늘을 한참 바라봤다. 피를 토하듯 붉게 물들인 하늘이 어둑해지며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거참.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여긴 딴 세상 같네요.”
주변엔 수풀이 우거져 있고, 사나운 짐승들이 이웃으로 산다. 7성 던전이 생겨도 이제 길드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뭐.”
“에이, 저희야 형님 계시니까 이런 평화도 누리는 거지. 지금 다른 나라들은 난리예요.”
“7성 던전 때문에요?”
재식의 물음에 동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7성 던전 소멸시킨 나라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시티에 생긴 곳에서는 벌써 사람들 피난하고 난리예요.”
문제는 7성 던전에만 있지 않았다. 기존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6성, 5성, 등의 던전들로 인해 여기저기 용병들의 수요처가 늘었다.
7성 던전만 문제가 아니라 하위 던전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도 지금 심각하던데.”
동수는 말하다 말고 재밌는 게 기억나 휴대폰을 꺼내 방문기록을 뒤졌다.
방문기록
1시간 전 – 모델A와 배우B 스캔들
1시간 전 – 이달의 신작…….
1시간 전 – 개인의 속사정…….
…….
2시간 전 – 러시아 만주 분쟁 정리
“아, 여ㅤㄱㅣㅆ네.”
링크를 클릭해 수호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저희 훈련하고 있을 때 윗동네에 아주 난리가 났더라고요.”
외신기사들을 잘 번역해오는 사이트인데, 극단적으로 치닫는 국제정세를 잘 정리해둔 글이 있었다.
러 : 각자 시티 공성전이나 하셈. 이제 필드 던전에는 신경 안 쓸 거임. 시티 수비만 해도 벅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