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개선(凱旋)(2)
이틀이 지나자 내상이 대부분 호전되어 운신하기 수월해졌다.
가문의 비전이 잘못되었다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 청소소가 필사적으로 치료한 덕분이었다.
“자! 끝났어요.”
찰싹.
“으억!”
침을 뽑자마자 차가운 손바닥으로 등짝 스매싱을 날린 청소소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고수라면서 겨우 이 정도로 엄살은……. 할 말 있으니까 빨리 옷 좀 입어 봐요.”
“그냥 말해.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에 이제 와서 굳이…….”
“아 글쎄! 진지하니까 빨리 입으라고요.”
성화에 못 이겨 곁에 놔둔 윗옷을 챙겨 입고 침상에 걸터앉자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고, 도좌방을 좀 빌리고 싶어서요.”
“도좌방을?”
전 조가상방, 현 무전이네 집은 커다란 직사각형을 그리는 담에 전각들과 복도가 붙어 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에서 가장 먼 전각이자 가장 큰 평수를 자랑하는 본채는 실질적인 집주인인 내가 사용하고 있었고 동쪽의 방 두 개를 묘향과 청소소가 나눠 쓰고 있었으며 서쪽의 방 두 개는 주인이 없다.
지금 청소소가 말한 도좌방이란 남쪽 담벼락을 벽면 삼아 지은 창고 비슷한 곳으로, 조가상방에선 이곳을 개조하여 상점으로 쓰고 있었다.
길가에 붙어 있는 만큼, 접근성이 훌륭하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문제는.
“집에는 언제 가려고?”
곧 집에 돌아갈 여자가 사업을 새로 시작하겠다고 우기고 있다는 거다.
“아니, 그게 아니라…….”
머뭇거리는 청소소를 보니 사이즈가 나왔다.
‘혼날까 봐 못 돌아가는 거구만…….’
철이 없어도 너무 없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 갑자기 눈을 그렇게 떠요?”
“내가 뭘?”
“꼭 철없는 조카 보는 것처럼 저를 쳐다보셨잖아요.”
“기분 탓이야.”
“아닌데……. 분명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봤는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여하튼, 도좌방은 못 빌려줘.”
“왜요?! 빌려주세요!”
“빌려주면 집에 안 갈 거잖아.”
“…….”
“그러니까 얼른 짐 싸서…….”
단호한 거절을 들은 청소소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오 할 드릴게요.”
“계약서는 언제 작성하는 게 좋겠습니까?”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가 필요해요? 그냥 제가 알아서 영업할 테니 진 조장님은 누워서 돈이나 세세요.”
“아이고!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이거 참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요. 헤헤.”
“대신 영업 준비를 도와주세요. 의원이 넓어진 만큼, 사야 할 게 한둘이 아닐 것 같네요.”
“이를 말씀이십니까?! 얼마든지 도와드려야지요. 예. 아주 황소처럼 부려 먹으셔도 됩니다.”
“히히, 그럼 이따 점심 먹고 나가요.”
청소소가 밝게 웃으며 본채의 문을 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용마산이 빠진 손해를 이렇게 메꾸는군.’
A급 호구가 빠진 자리를 빨리 메꿔서 다행이다.
* * *
점심을 든든히 먹고 난 뒤, 약속한 대로 청소소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약재상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 도착하자 청소소가 눈을 빛내며 이리저리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멋, 말린 화균지네! 얼마죠? 세 냥이요? 그렇게나 비싸게 받아요? 두 냥만 받아요.”
“방풍하고 자소엽 상태가 영…….”
“곽 노대, 분명 오늘까지 상엽을 가져다 놓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엄청나게 까탈스럽게 물건을 확인하는데도 상인들은 싫은 티를 내기는커녕 밝게 웃으며 그녀를 상대했다.
심지어 몇몇은 허허 웃으며 자투리 약재를 그냥 주기도 했다.
뒤따르던 나를 알아봤는지 약재상 중 한 명이 인사를 건넸다.
“진 조장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저 여자를 따라왔소.”
앞서가며 상인들과 흥정하고 있는 청소소를 가리키자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신녀님과 아는 사이셨습니까?”
“그냥 알게 되었소. 그런데 침 좀 잘 놓는다고 신녀라고 할 거까지 있소?”
“가난하고 병든 이에게 인술을 아끼지 않으니 신녀라고 불릴 만하지요.”
“그게 무슨 소리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영문 모를 표정을 짓자 약재상이 웃으며 말했다.
“모르셨나 봅니다.”
“…….”
“외성의 주민들 중에 신녀님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 오백은 넘을 겁니다. 덕분에 돈이 없어 병으로 죽는 이들이 크게 줄었죠.”
어쩐지, 허름해 보이는 환자들이 많더니만…….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그런 것 같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에 청소소가 나를 불렀다.
“빨리 와요!”
“부르는군. 다음에 뵙겠소.”
“살펴 가십시오.”
걸음을 빨리해 다가가니 그녀가 제 몸뚱이만 한 보따리를 내밀었다.
“자요.”
“이만큼이나 산다고?”
“그럼요. 이만큼씩 사 놔도 사흘이면 떨어져요.”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다음은 어디라고?”
“목수들을 찾아가야 돼요.”
“거긴 왜?”
“환자들을 받을 침상을 놔야죠. 예전에야 좁아서 침상 하나만 놨지만, 이제는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런 널찍한 의원을 빌려준 나한테 고마워하라고.”
“누가 보면 공짜로 빌려줬는지 알겠네. 그런데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왜? 내가 뭐?”
“아까부터 웃고 계시길래요.”
“아, 그냥 오랜만에 나와서 기분이 좋네. 나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자. 내가 사 줄게.”
“좋아요! 히히. 뭐 사 주실 건데요?”
“음……. 국수?”
“진짜 좀팽이야.”
* * *
다음 날.
내상이 거의 회복되어 밖으로 나왔다.
북궁백을 만나 복귀 신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참에 방에 틀어박혀 내년까지 유급 휴가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 양반을 속일 바엔 염라대왕이랑 화투 치면서 밑장빼기를 시도하는 게 안전하지.’
내 몸 상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를 속이려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 게 뻔했다.
그리고.
‘푹 쉬도록 해라. 몸이 나으면 좋은 일이 있을 테니 말이야.’
좋은 일이 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문을 열고 집을 나서니 길 건너에 있는 묵룡무관에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남아 있는 어린 제자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 모양.
시간도 꽤 있겠다, 담 위로 슬쩍 보니 역시나 어린애들이 구슬땀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합!”
“합!”
정식으로 점창의 무공을 배운 적이 없어 무슨 무공인지는 모르겠지만, 쾌속함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분광검법이 아닐까 싶다.
‘귀여운 녀석들.’
그렇게 삼촌 미소를 지으며 구경하고 있자.
“네 놈이 여긴 웬일이냐?”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머리 가운데는 비고 양옆의 머리카락이 삐쭉 솟아 있는 그림자의 모양으로 보아, 등천각의 각주인 멸절진인이 확실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아이언피스트에 나오는 헤이양아치와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도사라니 캐릭터 디자인이 크게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냥 집 앞이라서 구경 왔습니다.”
“집 앞?”
그의 반문에 나는 길 건너 내 집을 가리켰다.
“저, 저게 네 집이란 말이냐?”
멸절진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무리 이문에 어두운 도사라도 동문 앞 땅값이 금값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물론,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아, 제집은 아니고 잠시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괜히 구설에 올라 감찰단이라도 몰려오면 여러모로 난감해지니 말이다.
“그런데 등천각에 계셔야 할 각주님이야말로 여긴 웬일이십니까?”
“때려치웠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네?”
“못 들었느냐? 때려치웠다고 했다.”
“미치셨습니까?”
“그놈의 말버릇은 대체 언제 고쳐질지 모르겠구나.”
솔직히 기겁할 만했다.
등천각주는 졸업생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연봉에 지위까지 보장받는 엄청난 자리다.
또한, 자식 교육에 목숨 거는 건 현대나 구룡성이나 마찬가지였다.
등천각에 자식을 입각시킨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실력이 전부인지라 뇌물로서는 효과가 없긴 했지만, 다들 체면이라는 게 있다 보니 등천각주에게 매해 엄청난 값의 선물을 보냈다.
멸절진인은 그 대부분을 팔아 묵룡당의 살림에 보태 왔고.
그런데 그런 좋은 자리를 제 발로 박차고 나오다니.
어이가 없어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멸절진인이 산적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문을 지킬 어른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긴, 당시 묵룡당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지 않았다면 그가 등천각의 각주 자리를 맡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천생 무인이자 초절정의 검객인 그가 검을 뒷전으로 하고 어린아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리고 요새 사문도 먹고살 만하니, 등천각에 더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가 묵룡무관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네가 도와줬다지? 덕분에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되었다고 들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애물단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사형이 복덩이를 데려왔구나.”
“애물단지는 무슨, 저보다 묵룡당에 기여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크흐흐. 농담이다, 인석아.”
“푸흐흐, 알고 있습니다.”
“온 김에 차나 한잔하고 가거라.”
“그러고 싶지만, 갈 곳이 있어 말입니다. 집 앞이니 조만간 들르겠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렇게 몸을 돌려 본부로 가려던 차, 그가 나를 불렀다.
“무전아.”
“예.”
“고맙구나.”
“갑자기 닭살 돋게 왜 그러십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십쇼.”
“고맙다고 해도 지랄이구나.”
고개를 젓는 멸절진인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북궁백에게 팔았던 흑사로의 옛집.
출근할 시간이 훨씬 지나긴 했지만, 어차피 출근 안 했을 것이 뻔했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북궁백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그가 평상 한가운데서 배를 까고 자고 있었다.
코를 쏘는 진한 알코올 냄새로 보아하니 거하게 한잔하고 자는 모양이다.
전직 십마련의 첩자들이자 현직 북궁백의 하인들이 다가왔다.
“가서 따뜻한 꿀물 좀 타 와라. 이 양반 속 쓰리겠다.”
“예.”
그렇게 심부를 시키고 난 뒤, 북궁백에게 다가가자.
번쩍!
파드득.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손이 보였다.
물론, 이 짓도 몇 번이나 반복한 터라 당연히 대비하고 있었다.
“흡!”
경력을 실은 삼양수를 펼쳐 북궁백의 흑룡수와 부딪쳤다.
콰직.
일 수에 속도를 늦췄고.
퍽.
이 수에 방향을 틀었으며.
쿵.
삼 수 만에 흑룡수를 쳐 낼 수 있었다.
그러자 북궁백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겹지도 않으십니까?”
“부하의 성취를 확인하는데 지겹기는 무슨.”
어깨를 으쓱하는 북궁백의 앞에 그가 즐겨 찾는 죽엽청을 담은 술동이를 내려놨다.
술 내음을 확인하던 북궁백이 술동이에 매달린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안주도 사 왔군.”
“미산객잔에서 삶은 돼지고기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래도 술만 드시면 속이 상하기 마련이니까요.”
“마침 출출했는데 잘됐군. 온 김에 한잔하고 가는 게 어떤가?”
“아직 아침입니다만…….”
“무슨 상관이냐.”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
몇 순배가 돌고 난 뒤,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얼마 전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예. 그거 말입니다.”
북궁백이 죽엽청을 동이째 들더니 그대로 들이켰다.
“수비대가 돌아오는 대로 논공행상이 있을 거다.”
“논공행상!”
가슴이 뛰는 단어다.
참고로 나는 남만대전에서 공을 세운 보상으로 비천풍이라는 절세의 신법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논공행상의 스케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네 이름을 가장 윗줄에 올려놨으니 저번보다 훨씬 커다란 것을 받을 거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가장 공이 컸으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감사! 압도적 감사!”
역시, 사나이 북궁백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