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부동산의 가치(2)
한중(汉中).
구룡성의 최고 요충지이자 십마련이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도시.
한수라는 강을 끼고 있어 토양이 비옥함은 물론이고, 사천성과 운남성을 오가는 물자의 오 할이 이곳 한중을 거쳐 갈 만큼 지리적 가치도 크다.
다만, 그 위치가 조금 애매한데……. 사천과 섬서의 경계는 맞지만, 굳이 따진다면 섬서에 속해있기 때문.
그렇기에 구룡성의 초대 성주는 한중을 실효하고 있음에도 서쪽의 비옥한 옥토를 정도맹에 양보했다.
훗날 생길 영토 분쟁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권리관계가 정리된 뒤 한중은 구룡성과 함께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지리적 요충지답게 한중은 중원 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심지어 십마련의 영역인 청해나 감숙에서도 상인들이 찾아올 정도였다.
사람이 몰리면 돈도 몰리기 마련.
하물며 몰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돈 귀신인 상인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돈을 노리고 상인들을 상대로 거간 노릇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바로 한중상인, 줄여서 한상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한상은 작금에 와선 천하 이대상방이라 불리는 산서와 안휘 상인들의 뒤를 바짝 뒤쫓을 정도로 커다란 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런 한중상인들의 뒤를 봐주고 자금을 대 준 것이 바로 금룡당. 즉, 만금전장이었다.
“와…….”
바로 그 만금전장 한중 지점 앞에 선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점의 크기가 구룡성에 있는 본점보다 훨씬 커다랗다.
마치, 꼭 이곳이 본점인 것처럼 말이다.
아마 주 고객인 한상들의 본거지여서 그런 모양이다.
‘금룡당의 재산이 삼억 냥에 달한다더니…….’
천하제일 전장, 즉 현대로 치면 글로벌 벌지 브래킷의 위용에 나도 모르게 압도되어 버렸다.
금필대에게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선배?”
“으, 응?”
“들어가시지 않고 뭐 하세요?”
“아, 그렇지. 들어가야지.”
일행들은 숙소에 두고, 적화란과 함께 만금전장의 지점을 찾았다.
아무리 뒤져도 땅문서에 적힌 땅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서가 너무 오래전에 작성된 거 같아요. 기준점이 되는 지점들이 바뀌어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어요.”
자칭 부동산 전문가인 묘향 역시 난색을 표했을 정도다.
그렇기에 나는 적화란를 앞세워 만금전장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와글와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점 안은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돈을 빌리러 온 상인들로 보였다.
‘간도 크군. 돈을 빌리다니 말이야.’
참고로, 무림 세계의 금리는 미친 수준을 뛰어넘었다.
얼마나 지랄이냐면, 연이율 20%로 돈을 빌려주면 보살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당연히 만금전장의 이율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예전에 흑사로의 집을 사기 전에 대출을 알아봤을 때, 구룡성 직원들에게만 적용해 주는 특별 우대 이율이라면서 30%를 불렀다.
만약 내 직업이 구룡성의 무사가 아니었다면 연이율 50%를 불렀을 것이다.
여하튼, 지금 중요한 건 고금리 문제가 아니라 내 땅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
적화란이 지점을 지키는 무사에게 성큼 다가갔다.
깔끔하게 입은 것으로 보아 아마 청원 경찰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싶다.
“금 노대를 만나러 왔는데요.”
“……금 노대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던 덕분인지 그가 적화란을 깍듯이 대했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당연히 금은신수 금도명 대협이시죠.”
“……소저도 아시다시피 금도명 대협께서는 이곳의 지점장이십니다. 따로 약속을 하지 않으셨다면 만나실 수 없습니다.”
청원 경찰……. 아니, 청원 무사의 말에 적화란이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적룡당의 넷째가 찾아왔다고 하면 만나 주실 거예요.”
당연히 적화란의 신분을 들은 청원 무사는 대경하며 달려갔다.
적화란이 내 팔뚝에 자신의 머리를 붙였다. 꼭 강아지가 공을 물어와 놓고 잘했냐고 묻는 듯한 행동이었다.
“잘했어. 라이코스.”
화악!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하던 그때, 안쪽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이 허겁지겁 튀어나왔다.
‘역시 적룡당이 갑이군.’
투자의 기반은 정보다.
그리고 그 정보를 다루는 능력에 관해서라면 적룡당을 따라올 집단이 없었기에, 아쉬운 쪽은 항상 금룡당일 터.
금룡당 내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그가 적화란에게 저 자세로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적 공녀께서 왔다고?! 어디! 저기 계시는구만. 공녀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금 노대.”
“한데, 얼굴이 왜 이리 붉으신지……. 혹여 감모라도 걸리신 겁니까?”
“벼, 별거 아니에요. 그냥 열이 조금 있어…….”
“그럼 안 되지! 어서 들어오시지요. 그깟 감모 따위는 한방에 떨어뜨릴 약차를 준비하겠습니다.”
“그 전에…….”
적화란이 내 쪽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금 노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응? 자네는 누군가?”
“안녕하십니까. 본성, 외당 일조장 진무전이라고 합니다.”
“진……무전? 혹시, 자네가 살마광귀를 죽이는데 한 손 보탰다던 그 투룡이란 말인가?”
“부끄럽지만, 강호의 동도들이 그리 불러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별호를 소개할 때 강호의 동도들이…… 어쩌고 하는 건 일종의 겸손과 예의라고 보면 된다.
만약 자신의 별호부터 대는 놈이 있다면 못 배워 먹은 놈이라고 뒤에서 욕을 처먹기 십상이다.
“허어! 떠오르는 신성을 이리 보다니. 참으로 반갑네! 금도명이라고 하네.”
“금은신수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어렸을 적, 광견오마를 홀로 쓸어 버리셨다는 협행을 전해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듣기는 개뿔이.
오기 전에 적화란에게 급하게 들어 알고 있는 것뿐이다.
광견오마라는 놈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도 모른다.
견자가 들어갔으니 대충 이, 삼류 정도 되는 사파 잡놈들이겠지 뭐.
하지만, 이런 인사치레 한 번으로 커다란 호감도를 쌓을 수 있다.
“헛헛! 과거의 허명을 아는 후배가 있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 자자, 들어오시게나. 내 오랜만에 보는 후배에게 차 한잔 대접하겠네.”
헬 무림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 여긴 공자의 나라였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그를 따라 차를 얻어 마시기를 잠시.
“저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곳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는지요.”
나는 금도명에게 땅문서를 보여 줬다.
“같은 성의 식구끼리 못 도와줄 게 어디 있겠나. 보여 주시게.”
그리고.
“이건?!”
문서를 확인한 그가 깜짝 놀랐다.
저러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엄청난 대박이거나, 엄청난 쪽박이거나.
“자네가 이 땅의 주인이었다니…….”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디 있는 땅입니까?”
“……그, 그것이.”
“금 노대, 저희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답니다. 부탁드려요.”
금도명이 머뭇거리자 적화란이 단호한 어조로 재촉했다.
“……시전입니다.”
“시전이라면?”
“한중성 한가운데 있는 저잣거리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천하 만물이 모이는 곳이지요.”
대박!
대박이었다.
옆에 있는 재벌 집 막내 손녀, 적화란이 놀랄 만큼.
너무 놀란 탓일까?
말문은 물론 숨문까지 막혀 버렸다.
“끄어억…….”
팡팡!
내 이상을 알아차린 적화란이 얼른 등을 두들겨 줬다.
“푸허.”
겨우 숨을 내뱉던 찰나, 금도명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하나, 토지 이용권을 주장하는 데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 문제라니요?!”
“일단, 문서상 투룡의 땅은 확실하지만…….”
금도명이 볼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땅을 관리하던 오십 년 전의 분타주가 한상 연합에 임대해 준 걸로 알고 있네.”
“예?”
생각지도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 * *
일단, 눈으로 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법.
나는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묘향과 청소소를 데리고 금도명이 짚어 준 곳을 향했다.
그리고.
“……거부가 된 걸 축하드려요. 선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 서역에서 들여온 비단이오!”
“운남에서 가져온 차가 있소이다!”
“안휘산 벼루요! 산문 서원에서도 쓰는 것이니 품질이 일품이외다.”
내 땅 위에 천하 각지에서 몰려온 물건들과 상인들이 모이는 시장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뚝 솟은 오층 전각.
한중상련이라는 현판으로 보아 한중상인들의 본부 격인 건물로 보였다.
어느새 달려간 청소소가 약재상 앞에서 구경을 하며 외첬다.
“여기 봐 봐요! 귀한 약재들이 이렇게나 한가득 있어요! 어라? 이건 고려 인삼?”
묘향이 멍하니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내가 먹여 살리려고 돈 열심히 벌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시장의 위용에 압도된 모양.
“흠, 일단 주변을 좀 조사해 보자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아봐야지.”
“선배는 가만히 있어요. 저희들이 알아보고 올 테니까요.”
“내 땅인데 내가 가야지.”
“만금전장의 금 노대를 믿어요?”
“갑자기?”
“땅문서대로라면 선배는 한중상인들의 적이 되는 셈이에요. 그들 입장에선 공짜로 쓰던 땅에 주인이 생긴 격이니까요.”
적화란이 주위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중상인들은 만금전장 한중지부의 가장 큰 손님이자 거래처예요. 아마, 지금쯤 한중상련에 사람을 보냈을 거예요. 그런 와중에 선배가 돌아다녀 봤자 감시만 당할 뿐 소득을 얻을 순 없겠죠?”
“적룡당의 막내 공녀인 네가 있는데도?”
“이를테면 중요도가 다르다는 거겠죠. 저희 쪽은 잘 달래 주면 끝나는 문제고 한중상인들 입장에선 생사가 달린 일이니까요.”
“으음…….”
적화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쩐지 떨떠름해 보였던 금도명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어쩐지 자세히 안 알려 주더니만…….’
난감해하던 차, 묘향이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저만 믿어요. 전문가로서 확실히 알아볼 테니까요.”
적화란이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묘향. 이미 정보를 긁어오라고 시켜 놨으니까. 알다시피 정보를 파악하는 데는 우리가 전문 아니겠어? 호호호.”
꼭 보란 듯한 태도에 묘향이 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마, 자신이 나설 타이밍을 빼앗겨서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약간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다루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던 우리 쪽으로 평범한 인상의 노인이 다가왔다.
적화란이 눈을 빛내는 것으로 보아 적룡당의 정보원인 듯싶었다.
그가 우리 곁을 지나치며 작게 접힌 종이 조각 세 개를 떨어뜨렸다.
적화란이 그것들을 얼른 주워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는데요?”
“왜? 뭔데 그래?”
“오십 년 전, 적법한 절차로 땅을 임대받았다고 하네요. 그것도 무상으로. 그리고 그 기간 역시 오십 년이 남았고요.”
“빌어먹을…….”
최악의 소식이었다.
자칫하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한 푼도 못 얻는다는 소식이 아닌가.
낙담하고 있자 적화란이 해결책을 내놨다.
“선배는 이 땅을 팔아서 거금을 얻고 싶은 거죠?”
“그렇지.”
“그러면 한중상련주와 협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한중상련 입장에서도 빌리는 것보다 아예 사 버리는 게 나을 테니까요. 문제는…….”
적화란이 앞에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한중상련주가 구렁이라는 데 있어요. 그것도 백 년 넘은 구렁이요.”
“미치겠네.”
어째 쉽게 되는 게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