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8
186화 종친회(2)
번성한 상업 도시답게 한중의 1인당 백성소득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것도 구룡성이나 성도, 혹은 사자맹이 위치한 안휘 못지않을 정도로.
그렇게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자식 교육.
돈 많은 상인 집안에선 상단을 물려받을 첫째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을 각 문파에 속가제자로 보내기 시작했다. 돈 보따리도 같이 들려서 말이다.
이른바 대 유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비록 속가제자인 탓에 본산의 진산절기를 전수받지는 못하지만, 세상은 넓고 천재는 존재하는 법.
속가라는 개념이 없는 구룡성 대신 화산과 무당, 소림으로 유학 갔던 세 명의 인재가 고수가 되어 돌아왔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절정의 경지까지 올랐을 정도다.
대부분 기본공만 배우다 끝나는 속가의 커리큘럼을 생각했을 때 이건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유학파들은 집안의 도움을 받아 한중에 무림 문파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자들에겐 명문에서 배워 온 기본기를 바탕으로 변형시킨 무공을 가르쳤고, 집안에서 지원받은 튼튼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중 무림에 큰 축이 되었다.
그렇게 삼십 년.
지금 한중 무림은 그런 유학파들이 세운 문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곳은 셋.
한중도검문과 형오보, 그리고 백청회였다.
박룡문을 제외하고, 한중에 자리 잡고 있던 문파들은 그런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전왕문 앞에서는 프리저 앞에 선 크리링의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만.
“……힘으로 겁박하는 건 안 됩니다. 절대로요.”
“나도 알아.”
문제는, 확실한 명분이 없는 한 얘네들을 건들 수가 없다는 거다.
일단 명목상 화산과 무당, 소림의 속가 문파이기도 하고, 나름 한중의 유지 가문의 일원이니까.
무작정 힘으로 누르게 되면 추후 큰 골칫덩이가 될 게 뻔하다.
뭐…… 사실 가장 편한 방법은 싹 다 죽여 버리는 거지만, 명색이 정파 무림의 대표 주자인 이 진무전이가 그럴 수야 없지 않은가.
‘우리가 무슨 사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만 놔두자니 그것도 문제다.
한중은 최전선. 언제 십마련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바, 협조가 안 되는 이들을 도시 안에 둘 수는 없다.
힘을 합쳐 적들에게 대항해야 할 때 다른 생각을 하는 아군만큼 위험한 것이 없으니깐 말이다.
결국.
“해결은 해야 해.”
무언가 조치는 취해야 한다.
“그거야 당연합니다. 추후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군사를 맡고 있는 유소평도, 먹물 인력이 둘밖에 없는 탓에 임시 부군사로 초고속 승진을 해 버린 유호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명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명분을 어떻게 만드냐는 거지.”
“억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생길 겁니다.”
“으음…….”
틀린 말은 아니다.
저들이 우리를 견제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결국 이쪽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에게 명분을 줄 거고.
그때를 노려 제대로 응징한다면 한중 무림은 숨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기다리는 것도……. 찝찝한 것도…….”
큰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깔끔한 무전이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듯싶다.
혹시나 좋은 생각이 날까 싶어 우리 전왕문의 듀얼 코어 소평, 호평과 한참을 궁리했지만, 야근만 하게 됐을 뿐 별다른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유소평의 의견대로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한 대라도 맞아야 반격을 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좀 어때? 전보다는 괜찮아?”
“적룡당 선배들이 많이 도와줘서 행정 업무는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세금과 군역을 담당할 사람만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징수관을 뽑자?”
“예, 다만 마땅한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하긴.”
수만 냥이 오가는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을 뽑아야 하니까.
똑똑하기도 해야 하고.
“마음 같아선 제가 하고 싶지만 일이 바빠…….”
“으음…… 차라리 묘 총관에게 맡겨 보는 건 어때? 돈 관리는 기가 막히잖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문의 일을 상련에 맡긴다는 게 좀…….”
“뭐 어때? 설마 누이가 해 먹고 튈 사람은 아니잖아? 그리고 백성 중 고액을 납세하는 이들은 대부분 상인이니 더 잘할걸?”
묘향이 세금 징수를 맡게 되면 상인들 중 탈세를 하는 이가 없을 거다.
그들의 일 년 벌이가 얼마나 되는지 손바닥처럼 꿰고 있을 테니까.
“으음…….”
잠시 고민을 하던 유소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로 묘 총관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들어가자고.”
“예.”
한중의 밤을 밝혔던 전왕문의 야근 전사들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 * *
보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휴가를 나갔던 팔로는 복귀하여 타격, 정찰, 경비로 이루어진 순환근무를 위한 단체 교육에 들어갔다.
다른 로보다 늦게 근무에 참여했지만, 걱정은 안 된다.
외당 일조의 부조장이었던 우제준이 먹다 흘린 짬밥만 하더라도 다마스 한 대를 가득 채울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오히려 이런 쪽 근무를 처음 해 보는 다른 로가 훨씬 어려워할 듯싶다.
아, 세금 징수는 묘향이 맡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돈에 있어서 그녀를 속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대신 상련의 일을 약간 도와주기로 했는데.
“시전 거리의 질서를 유지해 주세요.”
“그 정도면 되겠어?”
“예, 그렇게 해 주신다면 상련 무사들의 손이 비게 되니 그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덕분에 경비조는 성내 치안 유지와 성문 경비, 시전거리의 교통정리까지 맡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야 과도한 업무라고 말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전왕문의 머릿수는 구룡성 한중 분타 시절의 분타원들보다 두 배나 많았으니까.
적화란의 도움으로 인력난도 해결됐겠다, 묘향의 도움으로 세금 문제도 해결됐겠다.
이제 남은 건 청소소뿐이라고 생각했으나.
“……진짜?”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예. 주루에서 행패를 부린 놈을 쫓아가니 그런 일이 없다며 억지를 부렸답니다.”
“그래서?”
“일단 밀고 들어가서 잡아 오긴 했는데…….”
말을 하던 우제준이 연무장을 내려다봤다.
오십이 넘는 무인들이 그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간밤에 잡혀 온 놈이 소속된 문파의 무인들이었다.
“저런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잡아 온 놈이 범인은 맞는 거지?”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입니다. 주루 주인에게 확인도 했고요.”
“그런데?”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
“나 참.”
기 싸움을 해도 이런 억지를 부리네.
구룡성 한중 분타였을 당시에는 찍소리도 못했으면서.
“쫓아내.”
“예.”
우제준이 내려가자마자 진압이 시작되었다.
“우리도 한중의 백성이외다!”
“흥! 전왕문이라고 했나?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 모르는 놈들이 운 좋게 경연에서 이겼다고 이리 방자하다니…… 한중의 미래가 어둡구나!”
“어딜 감히! 내 오늘 죽는 한이 있다고 해도 끝까지 싸워 당신들의 행태를 만천하에 고발하겠다.”
순간, 그냥 죽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휴……. 참자.’
저 정도면 선을 넘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창 진압이 진행되고 있던 차.
덜컹.
묘향이 들어왔다.
평소 나긋나긋한 얼굴과 다르게 날이 선 느낌으로.
혹시나 그날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털썩.
그녀가 의자에 앉더니 팔짱을 끼고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 아니던가.
“뭐야? 어떤 놈이 괴롭히기라도 한 거야?”
“후우…… 그게요…….”
잠시 심호흡을 한 묘향이 상황을 설명했다.
꼼꼼한 그녀는 세금 징수라는 임무를 받자마자 행정 서류를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고 몇 가지 오류를 발견했다.
아무리 꼼꼼히 처리했더라도 컴퓨터는커녕 볼펜도 없는 무림에서의 서류 처리가 정확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숫자에 밝은 묘향이니까 발견했을 뿐이지.
여하튼, 그렇게 오류를 발견한 묘향은 곧장 행동을 시작했다.
상련의 무사들과 직접 움직여 서류와 실제 수치를 대조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뭐?”
한중도검문을 확인하던 때에 노골적인 무시를 받은 건 물론, ‘여자가 왜 이런 일에 나서냐.’ ‘한중상련의 총관이 무슨 권한으로 이러냐.’ 등등 온갖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묘향은 엄청나게 화가 났지만 꾹 참고 꿋꿋이 일을 마쳤고, 끝나자마자 곧장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말하다 보니 다시 감정이 끓어오르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게 위임을 받았다고 했는데도 그래?”
“예, 자신들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면서요.”
“증명패가 있잖아.”
그녀에게 일을 맡길 때 [징수관]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은 증명패를 발급해 줬다.
“그거라도 있으니까 일을 마치고 돌아온 거죠. 없었으면 시작도 못 하고 쫓겨났을 거예요.”
“하…… 참, 이 새끼들이 내 성질 까먹었나 보네…….”
내가 북궁 사부의 직전제자라는 소문이 여기까지 퍼지지는 않았겠지만, 이 몸은 한때 한중 분타의 임시 총관이었던바.
놈들이 나를 모를 리가 없다.
금룡당주를 구하기 위해 벌인 싸움은 전설……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유명한 싸움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선을 넘지 않는 한 자신들을 어찌하지 못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거겠지.’
상당한 수준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그건 우물 안 개구리, 프리더의 4단 변신을 보지 못한 베지터의 자신감일 뿐.
“안 되겠군. 그냥 전부 죽여 버려야겠어. 상련에다 전해. 사흘 간 장사 접으라고.”
제대로 나서면 사흘 안에 한중 무림을 피바다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참으세요.”
하지만, 묘향은 그런 내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한중의 앞길을 막기 싫으시다면요.”
“…….”
묘향의 말이 옳았다. 피바다가 된 도시를 찾을 상단은 없을 테니까.
저지르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수습하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다.
“후우…….”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일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했다.
‘설마 왕따를 당할 줄은 몰랐는데…….’
무슨 무림고등학교도 아니고.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차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주님, 박룡문주가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
덜컹.
“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군. 비향문주가 저럴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밖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본 그가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웬일이야?”
“별건 아니고 이것을 주려고 왔소이다.”
그가 사람 머리만 한 상자를 내밀었다.
화려한 겉모양을 보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꽤나 고급품인 듯했다.
“진 문주께서 전수해 준 부대지개 덕에 우리 돈향루의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오. 해서 좋은 차를 좀 가져왔지.”
“…….”
얼죽아인 내게 그다지 반가운 선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신경 써서 선물을 챙겨 온 사람을 냉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 그럼 한잔 마셔 볼까.”
“제가 타 올게요.”
“고마워, 누이.”
그와 차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안에는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도 있었고.
“허어, 구룡성으로부터 정당하게 한중을 위임받은 전왕문에 반발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들이 틀림없소.”
“그러니까 말이야.”
“마음 같아선 종친회를 전부 끌고 와 묵사발 내 주고 싶소.”
“북궁 문주의 말을 들으니 좀 마음이 풀리네.”
“허허, 원래 고민이라는 게 나눌수록 작아지는 법 아니겠소? 나 역시도 고민이 있을 땐 종친회에 소속된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풀곤…….”
“잠깐.”
벼락같이 솟아오른 아이디어에 북궁장환의 말을 가로막았다.
“종친회?”
그랬다.
내 손을 쓰기 힘들면 남의 손을 빌리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특히 그 ‘남’이 친척이면 이보다 더 알맞을 수 없는 노릇이고.
“북궁 문주. 그 종친회라는 거, 어디서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