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27
226화 격변 구룡(5)
적룡당주의 부탁은 간단했다. 아니, 정치관이 뚜렷하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녹룡당주가 차기 성주가 돼야 하네.”
그야말로 보수.
그는 현 녹룡당 체제에서 한 치라도 바뀌는 걸 원치 않았다.
“혹시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확실한 게 없어 말해 줄 수 없지만, 녹룡당주가 성주가 되어야만 하네.”
“……알겠습니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자세한 이유를 말해 주진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는 말만 전달해 줄 뿐, 결정할 사람은 사부였으니까.
나는 그저 중간에 떨어지는 콩고물만 받아먹으면 된다.
달그락달그락.
예를 들어, 권장 소비자 가격이 은 열 냥에 달하는 홍화주 이백 병 같은 것 말이다.
‘사부에겐 스무 병만 주고 나머지는 팔아먹어야겠다.’
과음은 건강에 좋지 않으니깐 말이다.
여하튼, 적룡당주를 필두로 나는 나머지 당주들도 차례로 만났다.
“응? 외당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알아서 센 놈이 성주가 될 테니 아무 생각 없네. 그럼 왜 불렀냐고? 그야 자네의 활약을 들었으니 그렇지. 자! 한판 붙어 보세.”
빈손으로 와 놓고선 다짜고짜 도를 꺼내 드는 회룡당주.
“지금이야말로 녹룡당의 시대를 끝낼 때가 온 게 아니겠소? 진 문주라면 올바른 선택을 할 거라 믿소.”
한중을 놓고 경연할 당시 뒤에서 온갖 수작을 부린 주제에, 자기 급하니까 친한 척 다가오는 은룡당주.
“나는 지금의 체제가 가장 알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 북궁 당주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단운 놈의 스승 아니랄까 봐 백 년 된 대나무처럼 올곧은 청룡당주.
“스승님께선 이틀 전 은자림으로 떠나셨단다.”
“벌써 말입니까?”
“그래, 네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 하시더구나. 스승님을 극진히 돌봐 줘 고맙구나.”
“아, 아닙니다. 제가 받은 은혜의 십분지 일도 되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럼 마음을 품고 있더냐. 고맙지만, 그만 훌훌 털어 버리거라. 하늘에 계신 사백님도 네가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걸 바라시지 않을 게야.”
“……그럼 이거라도 받아 주십시오.”
“이게 뭐……. 헉! 이런 거금을 우리가 어찌 받는단 말이냐!”
“그게……. 아! 작은할아버지께서 제게 맡기신 돈입니다. 묵룡당에 돌려주라고 해서 말입니다.”
“거짓말 말거라. 스승님께서는……. 헉! 이형환위?!”
수금은커녕 거금을 지출하게 됐지만, 대신 따스한 마음을 입금해 준 묵룡당주까지.
이제 남은 건 두 사람.
녹룡당주 당현과 백룡당주 백중천이다.
사실 수금……. 아니 면담은 녹룡당주하고만 진행하려 했다.
녹룡당주는 가장 처지가 급한 사람이기도 했고, 적룡당과 청룡당이 지지하는 쪽이었으니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백중천은 솔직히 만나기가 영 껄끄러웠다.
하지만, 이런 내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오랜만이군.”
야생의 백중천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도 여기 온 게 싫은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말이다.
‘내가 더 싫다고…….’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딱 하나였으니까.
“…….”
바로 개무시다.
서로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사이인데 뭐 하러 대면을 한단 말인가.
덜컹.
그렇게 그를 두고 들어가려던 찰나.
덥석.
백룡당의 무사가 내 어깨를 잡았고.
“잠……!”
빠악! 우드득.
나는 친히 그의 옥수수를 털어 줬다.
하나도 남김없이.
“으어어…….”
턱을 붙잡은 무사를 내버려 둔 채 그대로 들어갔다.
이 정도면 내 뜻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끼이익.
저녁을 먹으러 나갈 때까지 백중천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
바닥에 떨어진 옥수수들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그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미치겠네.’
족히 네 시진은 지난 상황.
놈이 아무리 싫어도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원청의 대주주 중 하나였고 나는 하청 업체의 사장이었으니까.
갑을 관계를 빼고서라도 그를 이 이상 홀대했다간 이상한 소문이 퍼질 수도 있고.
“……따라오슈.”
“그러지.”
결국,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 * *
장소는 근처 싸구려 주점이었다.
문을 연 곳이 여기밖에 없었거든.
이 시대 재벌 총수급인 백중천이 싫은 티를 팍팍 냈지만 어떡하겠는가.
아쉬운 쪽은 이놈인데.
“……한잔하시겠수?”
“되었다.”
“싫으면 마슈.”
쪼르륵. 꿀꺽.
“키야……. 죽이네.”
싸구려 화주가 속을 뜨겁게 덥혔다.
“드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천박함은 변함이 없구나. 무하가 너를 경원시하는 게 이해가 된다.”
“드높은 자리는 개뿔이……. 지랄 염병하고 있네. 그러니까 댁 아들이 내 손에 반병신이 된 거야.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는 무인이 어떻게 강해질 수 있을까. 그건 당신도 알고 있지 않아?”
꿈틀.
“해보려면 해보든지. 그런데 말이야.”
살기를 내뿜는 그를 향해 기세를 내뿜었다.
화악! 펄럭.
주점의 간판 역할을 하는 깃발이 흔들렸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이길 수 있을지 먼저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낮에 백중천을 마주하자마자 알았다.
지금 이놈은 나보다 한 수 이상 아래라고.
싸움이라는 건 그때그때의 컨디션과 여러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지만……. 글쎄?
이놈이 상대라면 없던 힘도 솟아날 테니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귀찮으니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하고 가슈.”
백중천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구룡성을 떠나라.”
아니, 뭔 뜬금없는 소리래.
“진즉 떠났는데?”
안 그래도 사표 쓰고 한중으로 갔구먼.
“구룡성의 영역에서 떠나라는 소리다. 네 사부와 함께.”
“개소리…….”
그가 반박하려던 내게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을 보여 줬다.
“산서상방에서 발행한 전표다. 은 이백만 냥짜리지. 이 정도면 왕 노릇을 하며 살 만한 돈이 아니냐.”
“허!”
현대 가치로 이조 원에 달하는 액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돈이면 중원 변두리의 성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니까.
참고로 전쟁 전 감숙성 전체의 가치가 백오십만 냥밖에 하지 않았다. 청해성은 그보다 더 낮았고.
“백룡당의 전 재산이다.”
전 재산이란 말에 다시 한번 경악하고 말았다.
오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그들이 모아 온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평생 만져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액. 끌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얼마나 부자가 되든 간에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 봤자, 북궁세가의 사업을 빼앗아 만든 재산이다.’
사부의 말처럼 저 돈은 원래 내 것.
되찾아야 할 대상이지 넘겨받을 대상이 아니다.
“필요 없수다.”
“……돈 욕심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봤자 북궁가의 면직 사업을 빼앗아 만든 돈이 아니요?”
“무슨 개소리냐. 면직 사업은 백가의 시조께서 처음…….”
“거짓말하지 마쇼. 지금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예 협상에 응할 마음이 없었군.”
“일방적으로 찾아온 건 댁이요.”
“후회하지 말도록.”
“당주님이야말로 하나 남은 팔을 아끼쇼.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흥.”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이모, 여기 저육볶음 하나!”
맛있는 건 혼자 먹어야 하니까.
여기 이모 솜씨가 상당히 괜찮거든.
* * *
흑사로 안쪽 깊숙한 골목.
그곳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검은색 집이 있었다.
그렇다고 폐가는 아니다. 하인 다섯과 주인 하나가 어울려 살고 있었으니까.
그 집의 주인인 북궁백이 나서자 흑도의 파락호들이 깜짝 놀라 길을 비켰다.
“마, 마왕이다!”
“으헉!”
“꼬르륵.”
그저 길을 걸었을 뿐, 기세를 내뿜은 것이 아님에도 졸도하는 흑도들.
그런 그들을 무심한 눈으로 지나친 북궁백이 향한 곳은 흑사로에 있는 작은 술도가였다.
평소 그가 죽엽청을 사는 곳으로, 언뜻 보기엔 그저 오래된 술도가였지만.
“추노.”
“오셨습니까.”
실상은 북궁가와 관련이 있는 세력의 연락소였다.
“알아봤나?”
“여기 있습니다.”
추노라 불린 노인이 내민 종이를 확인한 북궁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눈치챘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 청가장주를 죽이려던 청면검 남궁소가 도련님의 손에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거기서부터 파고든 것 같습니다.”
노인의 말에 북궁백이 인상을 썼다. 정보 때문이 아니었다.
“도련님이라…….”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알았으면 되었다.”
북궁백이 종이를 품에 넣으며 물었다.
“지금의 사태와 그들이 관계가 있나?”
“아직 알아보는 중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확률이 칠할 이상이라 생각됩니다.”
“역시 그렇군.”
“아닙니다. 한데…….”
“말하라.”
“보주께서 용체를 보고자 하십니다.”
꿈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북궁백의 눈썹이 꿈틀댔다.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전해라.”
“하오나, 아시다시피 지금 보주께서는……. 헙!”
화르륵.
그의 변명에 북궁백의 손이 불타올랐다. 흑염룡을 알아본 노인이 대경하며 물러섰다.
“내게 있어 너희는 배신자에 불과하다. 그런 놈들의 사정을 봐줘야 하는 이유가 있나?”
노인이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과거에 사로잡혀 봤자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지금처럼 서로 도우며…….”
“돕는다라…… 나는 여태 살려 주는 대가를 받았던 건데, 너희들은 돕는다고 착각하고 있었군.”
북궁백이 냉철한 조소를 지으며 술도가를 빠져나갔다.
“보주에게 전하도록. 곧 찾아갈 테니 목 씻고 기다리라고.”
“……!”
* * *
백중천을 떠나보내고 나서 혼자 술을 거하게 걸친 나는 올라오는 취기를 느꼈다.
주독이야 언제든지 빼낼 수 있지만, 술값이 아까워 그냥 취한 채로 달빛을 구경하며 걸었다.
“오늘 밤 바라본 저어 달이 너무 처량해에…….”
보름달이 꼭 묘향의 얼굴 같아 마음이 울적해진다.
사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녀를 꼭 안아 줄 생각이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거칠 것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이백이 넘는 전왕문도가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주인 내가 사랑 타령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덕분에 미루고 미룬 게 오늘까지 와 버리고 말았다.
“크흑, 누이 미안해…….”
하지만, 이번 일만 해결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는바.
이번에야말로 전생과 현생을 합쳐 오십 년이 넘는 모쏠 경력을 끝낼 것을 굳게 다짐하며 전왕문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도들이 한중으로 모두 떠나간 탓에 아무도 없는 내부. 널찍한 크기 탓에 황량함이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하오문에서 주기적으로 사람을 보내 관리해 주지 않았다면 몇 군데는 벌써 삭아 부서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순환 근무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문도들에게 일타 강사 북궁 사부의 강의도 듣게 할 겸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대연무장을 가로지르던 그때.
오싹.
어디선가 느껴지는 살기에 솜털이 곤두섰다.
주륵. 스아아…….
주독을 날림과 동시에 전후좌우상하로 칠감도를 쏘아 보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 칠감도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귀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응? 뭐……. 헉!”
하지만, 이번에는 칠감도가 틀렸다.
촤라락! 촤라락!
어디선가 불길한 파열음이 들려오더니 강철의 파편이 보름달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리고.
촤라락!
그것들이 커다란 이무기로 화해 나를 덮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