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93
292화 한중(2)
늦은 밤.
나는 중앙 거리를 걸었다.
한중상련에 소속된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상거래를 하는 중앙 거리는 최근 밤이 되면 볼거리가 가득한 야시장이 되었다.
설렁설렁 걷던 나는 야시장의 한 점포 앞에 발을 멈췄다.
“……얼맙니까?”
“한 병에 일 전이요.”
“두 병 주십쇼.”
짤랑.
나는 동전 두 개를 주고 술을 챙겨 나왔다.
꿀꺽꿀꺽.
“휴우…….”
강백주를 마시고 숨을 내쉬니 진한 알코올 냄새가 근심과 섞여 밤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젠장.”
밤이 늦었음에도 적화란 때문에 방에도 못 들어가고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전룡당주면 뭐 하고 절대고수면 뭐 하는가.
그런 저급한 육탄 공격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도망쳤는데.
정말 자괴감이 드는 건.
‘거의 넘어갈 뻔했다.’
상상 이상으로 커져 버린 적화란의 마음이 보이자 순간적으로 혹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내가 상당히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던 탓에 이런 대참사가 일어난 듯했다.
꿀꺽꿀꺽.
“크허…….”
바닥까지 무너져 버린 자존감에 절로 술이 들어갔다.
그러기를 잠시.
사람이 안 다니는 한적한 길바닥에서 홀로 술을 들이켜고 있을 때.
“어머? 당주님? 여기서 왜 이러고 계셔요?”
“제수씨?”
야생의 양령을 마주쳤다.
* * *
오랜만에 방문한 월화루는 한중 제일의 주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화려했다.
사 층 전각이 휘황찬란하게 밝았고 일, 이 층은 손님들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또한, 서빙을 하는 여급들은 왜 이리 늘씬하고 반반한지, 평소 지조 있는 유부남이라고 자부하는 나도 시선을 뺏길 정도였다.
“예쁘죠?”
월화루 가장 위층인 사 층으로 오르던 중, 양령이 물어 왔다.
“아니, 뭐…… 그냥 볼 만은 하네. 월화루는 얼굴 보고 사람 뽑나 보지?”
“뽑기는요. 거의 다 강제로 팔려 온 아이들을 데려온 거랍니다. 얼굴을 볼 새도 없죠.”
아무래도 하오문의 인력 충원 방법인 듯싶다.
“그런데 저리들 예뻐?”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니까요.”
“…….”
자리에 앉은 양령이 여급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모에게 돌려보내자니 다시 팔릴 것 같고, 그렇다고 놀고먹게 할 수도 없어 이렇게 여급으로 쓰고 있는 거지요.”
“그런 것 치곤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몇 년 착실히 모으면 혼인하고 농사지을 만한 땅은 살 수 있을 정도로 월봉을 챙겨 줘요. 그러니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뭐 그렇다고…….”
쪼르르.
“실제로 그렇게 사는 이는 없지만요. 저도 그랬고요.”
그녀가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혼인하고 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싶은 거 있죠? 낭군님 얼굴만 봐도 절로 웃음이 지어진답니다. 호호.”
“…….”
꿀꺽.
그녀가 따라 준 술을 마시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이거 자기 남편 데려오라는 협박이라고.
“크흠, 돌아가는 대로……. 아니 그냥 지금 재준이보고 올라오라고 하지.”
양령이 반달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독수공방한 지 오래돼서 좀 급했거든요.”
“급하다니?”
“알면서 왜 모르는 척을 하실까?”
짓궂은 농담을 건네는 양령을 보니 그녀가 아줌마가 됐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그래, 상련 일은 할 만하고?”
“저야 뭐 별것 있나요? 묘 부인의 지시대로 따르는 거죠.”
“누이 말로는 양 련주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하던데?”
실제로 묘향은 서천상단을 창설하면서 서역과 무역을 하랴 내수 시장을 발굴하랴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내 왔다.
만약 거기다 상련의 일까지 맡게 된다면 하루 12시진 중 2시진을 채 못 잤을 거다.
“호호호, 인정해 주시니 보람 있네요.”
“하오문 생활은 안 그리워? 명색이 하나뿐인 지부장이었잖아.”
“한중상련주가 어디가 어때서요? 월봉도 훨씬 많고 부리는 사람도 배는 많은데요. 무엇보다 적성에 아주 딱 맞아요.”
“적성?”
“상련에 반항적인 상단주들을 이간질해 손해를 보게 하는 게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고분고분하게 길들이면 쾌감까지 느껴진다니까요? 호호호. 그때마다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
“그리고, 제가 비켜 줘야 다음 사람이 올라오지 않겠어요?”
밝게 웃던 그녀가 사 층 구석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며 반갑게 눈인사를 했다.
양령 다음 대의 하오문 한중 지부장 유선이었다.
“만족한다니 다행이네.”
“이게 다 용마 문주님과 결판을 내신 당주님 덕분이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땐 좀 힘들었지. 혼인을 해도 되고 겸직을 해도 되니까 하오문 한중 지부장을 계속 맡게 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정말 상식이란 게 하나도 없는 대머리다.
“문주님이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으시죠.”
그녀가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나저나 당주님 이야기나 좀 해 보셔요.”
“나?”
“사내대장부가 처량하게 길거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다는 건 무슨 고민이 있다는 걸 테고, 당주님 같은 천하 고수가 할 만한 고민은 십중팔구 여자 문제 아니겠어요?”
“…….”
“자, 일단 한잔 쭉 들이키고 시원하게 말해 보세요. 제대로 상담해 드릴 테니까요. 이래 봬도 남녀관계에서 이 양령을 따라올 사람이 없답니다. 호호호.”
잠시 후.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 버린 나는 양령에게 최근 적화란과 있었던 일들을 장장 한 식경에 걸쳐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마음이 작아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끔찍하게 싫어했던.”
“그래요. 당주님께 일편단심인 여인이 있는데 마음이 작아서 싫어하던 차에 목숨을 구해 주고 큰돈을 잃을 뻔한 걸 막아 주고 심지어 마음까지 커졌다는 거죠? 그래서 싱숭생숭해지셨고요.”
“……그렇게까지 간단하게 축약할 필요가 있나?”
“정보의 세계에선 핵심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요.”
양령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생각할 게 있나요? 받아들이세요.”
“대체 뭘 받아들이라는 거야?”
“그 여인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요. 몇 년이나 쫓아다녔다면서요.”
“아니, 그렇게 쉽게 생각할 게 아니라니까? 나 혼인한 사람이라고.”
“영웅은 삼처사첩이죠. 당주님 정도 되면 팔처십일첩을 들여도 누가 뭐라고 안 할걸요?”
“물론 나도 기회가 되면 그럴 생각이긴 하지만…… 아니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적 공녀가 어디서 어때서 그래요? 얼굴 이쁘지, 집안 좋지. 무엇보다 당주님께 일편단심이라면서요?”
“그래도…….”
“아직 젊으셔서 모르시나 본데 자기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아요. 기회 있을 때 확 잡으셔야 한다니까요? 제가 우리 낭군님을 낚은 것처럼요. 호호호.”
“…….”
어쩐지 괜히 온 것 같다.
“자! 고민도 해결됐으니 한잔하시죠! 화양아, 여기 술 한 병, 아니 여섯 병만 더 가지고 오렴.”
정말 괜히 온 것 같다.
* * *
다음 날, 밤이 늦은 탓에 월화루의 손님방에서 하룻밤 신세 진 나는 아침 일찍 전왕문으로 들어갔다.
대연무장에는 철혈육로의 무사들이 각 로별로 모여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구보 중에! 군가를 제창한다! 군가는 멸사의 횃불!”
아름다운 이 서천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창칼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종극린과 이금은 휘하인 일 로를 데리고 구보를 뛰고 있었고.
삐삐삑, 삐삐삐삐삑.
“이처언!”
아이, 누구야! 죽여 버린다!
만풍과 덕산은 이 로를 데리고 피티 체조를.
“햐얏!”
하!
“거기! 창끝이 아직 떨리잖아! 이리 기초가 약해 적을 찌를 수나 있겠나?!”
“죄송합니다!”
삼 로의 당양강과 서인청은 부하들에게 초식을 수련시키고 있었다.
나머지 사 로와 오 로는 비단길 수비 중이고, 육 로는 구룡성으로 파견 나가 있었으니 현재는 이게 전부다.
아, 참고로 나는 각 로의 십인장 이상급의 무사들에게 흑무창의 후반부를 공개한 상태다.
살짝 보안이 염려되긴 했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크다고 생각해서 공개하기로 했다.
대신 흑무창의 짝꿍인 흑무신공의 후반부는 각 로의 로주와 부로주에게만 전수되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둔 셈이다.
여하튼, 그렇게 한참 동안 훈련을 바라보고 있으니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얘기 좀 해요.”
적화란이었다.
양령과 상담을 해서 그럴까.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어제 어디서 주무셨어요?”
“월화루에서 술 마시다가 잤는데?”
“세상에! 그럼 양 련주와 잔 거예요?”
“아니! 큰일 날 소릴! 양령은 내 제수씨와 다름없는 사람이야. 그런 여인하고 내가 무슨……!”
“그렇지만, 어제 가가께서 양 련주와 월화루에 들어가는 걸 봤다는 정보가 들어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월화루에서 자고 왔다고 하니 제가 어떻게 의심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잠시 잊고 있었다.
한중 안에 적룡당의 사무실이 있다는 걸.
“친한 사이끼리 만나서 술 한잔할 수도 있는 거지. 이제 보니 사고방식이 아주 쓰레기네!”
적화란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받아쳤다.
“뭐요? 쓰레기? 기껏 큰마음 먹고 준비해서 갔더니만 대뜸 발로 차 버리고 나가 버린 게 누군데?!”
“그러니까 시집도 안 간 여자가 외간 남자 방에 들어오긴 왜 들어오냐고!”
“시집을 안 갔으니까 들어갔죠! 더 나이 먹기 전에 한번 가 보려고요!”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시전하냐고.”
“그럼 누구한테 해요! 제겐 가가밖에 없는데! 내가 누구 때문에 풍유환을 먹고 있는데! 헙!”
순간, 적화란이 입을 막았다.
풍유환.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가 연상되는 단어.
“그, 그게 무슨……!”
“으아앙! 난 몰라!”
당황하여 손가락질하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갔다.
누가 보면 크게 오해할 만한 장면이었기에 서둘러 적화란을 따라가려 했으나.
“당주님, 큰일 났습니다!”
“이따 말하…….”
“지금 산서상방의 상방주가 오고 있답니다.”
“나중에 오라고 해.”
“무황성의 무상과 함께 온답니다.”
“뭐?”
유소평이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의 방문을 알렸다.
* * *
정금상인(正金商人) 주효용.
북성상단의 상단주로 동북부 최고의 거상이자 현 산서상방의 상방주였다.
가뭄이 들면 구휼미를 풀고,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나타나거나 산이 무너져 길이 망가지면 사비를 들여 해결하고.
그런 식으로 꾸준히 선행을 베푼 덕에 주효용은 어지간한 정도 무림의 협객보다 높은 명성을 자랑했다.
죽은 전 정도맹주가 그에게 정금상인이라는 별호를 붙여 준 것만 봐도 그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긴장한 것은 주효용의 높은 명성 때문이 아니다.
천무검군(天武劍君), 줄여서 검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북방의 신비 고수이자 무황성의 하나뿐인 무상.
십대 고수 중 무황성주 바로 아래로 평가받는 전왕 사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절대고수가 주효용과 함께 온 것이 문제였다.
꿀꺽.
육학을 비롯한 전왕문의 간부 모두가 그를 보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당연했다.
검군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 하나로 북방의 태원에 있는 흑도 오백을 하룻밤에 쓸어 버린 과격한 자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쫓아낼 수도 없다.
어찌 됐든 구룡성과 무황성의 관계는 동맹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니외다. 오는 길이 잘 닦여 있어 몸이 편했고 굶는 이가 보이지 않아 눈이 편했습니다.”
주효용이 작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가서 한판 붙는 게 어떤가?”
검군은 검을 뽑으며 인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