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22
321화 면벽(4)
면벽지에서의 하루는 별거 없었다.
해가 뜨면 적당히 밥을 먹고 영감님들 말 상대나 해 주면서 적화란, 청소소와 노닥거리는 것뿐이었다.
가끔 지겹긴 했지만, 그때마다 대련이나 논검을 하며 시간을 보내니 심심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어라? 이게 되네?”
“……미친놈인가?”
생각보다 효과가 엄청났다는 거다.
단 일 초식으로 십마련의 일백 마도를 쓸어버렸다는 전 회룡당주 전백이 당황할 만큼.
“믿을 수가 없군. 저 정도면 두 달 전과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저 경지에서 이리 빨리 발전하다니. 성주는 대체 어떤 괴물을 키워 냈단 말인가!”
“허어! 이게 다 묵룡당의 조기 교육 덕분이지 어찌 성주의 공이란 말이오!”
녹룡당의 장로 출신이자 현 녹룡당주의 숙조 되는 당두천과 현 청룡당주의 스승 되는 이풍진인이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태청진인은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고.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전백 영감의 태도를 후려 찼다.
꽝!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전백 영감의 태도가 마구 흔들렸다.
각법에 경력과 인력을 담은 것이다.
“큭.”
하지만, 상대는 회룡당 출신의 절대고수다.
외공의 묘리를 많이 담은 회룡당의 무공은 그 특성상 성장이 느리고 고차원적인 초식은 없지만, 그만큼 단단한 무공을 자랑했다.
“흡!”
그의 팔뚝에 힘줄이 돋더니 태도에 서린 인력과 경력이 터져 나갔다.
“뒈져라!”
부와왕!
“워매!”
태산을 쪼갤 기세로 덮쳐 오는 태도를 이형환위를 써서 피해 냈다.
콰지직.
완전히 반으로 갈라져 버린 바닥을 보며 외쳤다.
“아주 사람 잡으려고 작정하셨습니까?”
“내 앞에서 건방을 떤 대가니라.”
“이 미친 영감탱이가?”
“흥!”
콰앙, 콰아앙!
서로를 향해 전력을 내뿜는 것으로 다시 시작된 대련이란 이름의 실전.
하지만, 이런 대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식사하세요!”
“오늘은 국수예요.”
뚝.
식사를 준비한 청소소와 적화란의 외침에 전백 영감이 손을 멈춘 것이다.
“크흠, 여기까지 하자꾸나.”
“그럽시다. 밥은 먹어야지.”
국수는 불으면 맛없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식탁에 앉으니 맛깔나 보이는 국수……라는 이름의 라면이 보였다.
그랬다.
나는 이 두 여자에게 무전이식 삼향(三香)라면을 전수해 줬다.
청소소는 무슨 약식동원이라면서 구린내 나는 약재들을 음식에 넣는 요리 고자고, 적화란은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산초를 숟가락으로 퍼먹을 만큼 매운맛 중독자였거든.
덕분에 아껴 뒀던 비밀 레시피가 공개되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레시피를 알려 준 대신 식사 당번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감님들의 리액션도 훌륭했고.
후루룩. 후룩.
“크허, 오늘도 맛있다. 회룡당 숙수가 만들어 준 국수보다 훨씬 낫구나.”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구나!”
“일평생 먹었던 국수는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다시 벽곡단을 먹으며 살 수 있을지가 걱정되는구나.”
“호호호, 많이 삶아 놨으니 모자라시면 말씀해 주세요.”
청소소의 권유에 너도나도 그릇을 내밀었다.
평균 나이 아흔아홉이라는 노령에도 입맛이 돈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흐흐, 라면 사업이 머지않았구나.’
면벽형이 끝나면 바로 시작해야지.
* * *
식사를 끝내고 면벽을 하는 동굴로 들어갔다.
면벽이란 이름의 낮잠을 취하는 게 아니라 진짜 면벽 수련을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극동의 묘리를 담고 있는 전왕류와 어울리는 수련 방식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 역시 그동안 명상을 경원시하기도 했고.
하지만, 최근 태청진인과의 대화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한다고 명상이 아니다. 내면을 관조하여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명상이지.’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떠냐. 홀로됨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십인십색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육신의 모양이 다르고 정신의 형태가 다른데 무공이라고 어찌 같을까.’
‘선입견을 빼고 너 자신을 바라봐라. 무엇이 남는지, 또 무엇을 남길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게다.’
몇 년 전이였다면 뭔 개소리냐며 무시했을 게 뻔한 말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경지가 높아진 탓인지 몰라도 자신을 관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관조하여 전왕류와의 간극을 줄인다.
이게 바로 현재의 내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과정을 성공적으로 밟은 사람을 알고 있다.
‘사조.’
반쪽짜리 천금지체.
기초가 되는 박룡십삼투는 가능하겠지만, 전왕류는 절대 익힐 수 없는 몸이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전왕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게 변형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사조는 천하에서 두 번째로 강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사경을 파월로, 극사경은 섬월, 연환경을 중월로 바꿨다.
내게 더 맞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과거의 십대 고수였던 혈종주를 이기고, 사자맹의 숨겨진 전력인 삼노 중 한 명을 일 수에 죽여 버릴 정도로.
물론 대부분 나의 천재적인 감각과 센스 덕분이긴 하지만, 무공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그렇게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진 지 반 시진쯤 지났을까.
‘왔군.’
몸속에 작은 소우주가 느껴졌다.
단전에서 꿈틀거리는 전왕기는 마치 태양과도 같았고 몸속 장기들은 주변을 도는 행성과도 같았다.
곧이어 혼백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며 우주 한복판으로 이동했다.
전왕류를 바탕으로 내가 만든 심상 세계에 빠져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살피며 관조했다.
더욱 높은 경지로 오르기 위해서.
* * *
같은 시각.
“으음…….”
양령이 보낸 서찰을 받은 묘향은 이마를 짚었다.
‘벌써 다섯 번…….’
한중상련에 속한 상단이 공격받은 횟수였다.
여기까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건드린 곳은 천하 사파의 집합체인 사자맹이었으니까.
맹주의 사돈이 죽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사자맹의 복수는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지독했다.
학살.
단순히 물건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책임자부터 날품팔이까지 상행에 참여한 모두를 죽여 버린 것이다.
그 옛날 마도의 마적 떼보다 훨씬 잔혹한 손속에 한중상련의 상단들은 크게 동요했다.
최소한 마도는 순순히 재물을 넘기기만 하면 목숨은 건드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끝을 보겠다는 건데…….”
상계의 싸움은 몰라도 무림의 싸움은 익숙지 않다.
의논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묘향은 시비를 불렀다.
“지금 당장 전룡당으로 가 북궁창 대주를 모셔오거라.”
잠시 후.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북궁창이 도착했다.
이에 묘향은 그에게 현재 처한 상황을 모두 설명했다.
한때 하북 사파의 거두였던 그만큼 사자맹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사파 쪽 솜씨로군요. 아무래도 노리고 들어온 것 같습니다.”
“서천상단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뭐죠?”
“약한 구석부터 쳐서 힘을 빼 놓는 게 사파의 방식입니다. 굳이 위험을 안고 본체부터 칠 이유는 없죠.”
“으음…….”
“반면 한중상련 쪽은 상대하기 쉽지요. 그쪽은 상단들의 연합체니까요. 아마 이렇게 계속 흔들면서 연합을 깨뜨리려 할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요?”
“소문을 내는 겁니다. 한중상련이 공격받는 이유는 패군 때문이고 상련을 탈퇴한다면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요.”
생각보다 날카로운 전술에 묘향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단주들은 대부분 약삭빠르다. 이재에 밝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으니까.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고 생각한다면 곧장 상련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상련의 피해가 확산되는 걸 막아야겠군요.”
“한중에 지원을 요청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북궁창의 물음에 묘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로지 상공의 것인 서천상단이라면 모를까, 연합체인 상련에 전룡당의 전력을 투입할 수는 없어요. 또한, 상련이 이렇게 공격을 받는다면 한중 쪽도 조만간 시끄러워질 거예요.”
“하면, 다른 방법이 있으신지……?”
“별수 있나요? 저쪽이 극단적으로 나온다면 이쪽 역시 극단적으로 나가야죠.”
묘향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맞고만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거든요.”
* * *
청해.
서장으로 이어지는 비단길의 끝에서 이백의 기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했다.
“거창!”
전룡!
종극린의 외침에 철혈일로의 이백 무사가 하나 된 동작으로 창을 꺼냈다.
충돌까지 거리는 약 이백여 장.
사람이 달리기엔 멀지만, 전마의 속도로는 순식간에 좁혀질 거리.
적들이 가시거리에 들어오자 종극린이 외쳤다.
“한 놈도 놓치지 않는다!”
전룡-!
무사들의 창끝에 검은색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흑무창법이 일정 경지에 이르렀을 때 발현되는 현상이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성취.
그 노력은 이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쾅쾅쾅쾅.
철혈일로의 창에 닿은 적들이 육편이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 도망쳐라!”
적들의 대장이 질려 버린 표정으로 후퇴를 알렸으나.
후화왕! 촤확!
“크륵.”
종극린의 도강이 그를 비롯한 십수 명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이에 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푸욱!
“끄억!”
오히려 등을 보인 탓에 별다른 저항도 못 해 보고 철혈일로에게 목숨을 내준 것이다.
그렇게 일각여 후.
적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누웠다.
그야말로 철혈이란 이름에 걸맞은 위용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이미 저들로 인해 백여 명에 가까운 양민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도열한 철혈일로.
종극린이 동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동한다.”
“존명.”
그의 한숨이 허공을 길게 갈랐다.
* * *
“으음…….”
전룡당의 군사 유소평의 이마가 깊게 파였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한 달간 벌어진 혈사가 칠 회, 죽은 양민의 숫자가 오백이 넘었다.
구룡성에 파견 보낸 육로까지 불러들여 수비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드넓은 감숙과 오천 리에 달하는 비단길을 수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행을 나간 한중상련의 상단들이 시도 때도 없이 공격받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자경대의 무사들을 표사로 붙였으나 습격을 막지는 못했다.
이에 유소평은 전력 확충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고 곧 몇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구룡성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가장 쉽고 편하며 빠른 방법이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자맹 놈들이 예상 못 할 리가 없다.’
전략의 기본이란 예상을 뛰어넘는 것.
성의 전력이 빠진 틈을 타 목표를 바꾸면 저쪽 주춧돌을 빼 이쪽을 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조금 어렵다.
바로 외부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것.
하나 이 방법 역시 문제가 있었다.
상대가 사자맹이라는 것이다.
전룡당을 도왔다는 이유로 보복의 칼날이 날아들 수가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밖에 있는 호위에게 말했다.
“육학 총주께서는 어디에 계시나?”
“대연무장에 계십니다.”
“총주를 만나고 있을 테니 지금 당장 자경대의 북궁 대장을 모셔오도록.”
“예.”
유소평이 이를 갈며 걸어 나갔다.
‘되돌려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