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21
320화 면벽(3)
구룡성의 뇌옥은 총 세 곳이다.
하나는 칠감도가 숨겨져 있던 용위동.
주로 사파나 마도의 범죄자를 집어넣는 곳으로 무공의 고하를 떠나 판결이 확정된 기결수들을 모아 두는 곳이다.
나머지 두 군데가 바로 외성의 뇌옥과 성주전 지하의 뇌옥이다.
외성의 뇌옥 같은 경우 흉악범은 아니지만 무공이 낮은 미결수들이, 암독단이 관리하는 성주전 지하의 뇌옥에는 고수들이 갇혀 있다고 보면 된다.
당연하게도 나는 성주전 지하의 뇌옥에 배정받았는데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내일 해가 뜨자마자 면벽형을 받기 위해 떠나게 된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이곳을 관장하는 암독단의 무인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다.
“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어. 지금은 죄인 신분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제가 어찌 감히…….”
사실 무공이 깡패고 계급이 답이라고, 억지로 버티면 안 들어갈 수도 있다.
괜히 문상에게 미운털이 박혀 형량이 늘어날까 봐 안 하는 것뿐이지.
“사고 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창살을 부러뜨리지도 않을 거고 다른 죄인을 패지도…….”
“크흐흐, 귀여운 놈이 들어왔군. 이따 밤에 귀여워해 주……. 꿱!”
빠악! 빠악! 빠악!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있어. 안 그래도 기분 지랄 같구만. 평생 죽만 먹게 해 줄까?! 엉?!”
“꼬르륵…….”
철창을 부수고 안에서 조롱하던 놈의 옥수수를 전부 털어 버리고 돌아왔다.
“어디까지 했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철컥.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보니 아무래도 평소 나를 존경하고 있었나 보다.
“이곳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식사는 조금 이따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뇌옥 안에 깔린 모포 위에 털썩 누웠다.
원래는 없는 물건인데 내가 온다고 나름 신경 쓴 것 같았다.
그렇게 한숨 자려던 찰나.
“상공?”
“부, 부인…….”
주철산을 비롯한 호위들이 묘향을 데리고 왔다.
“부인!”
“상공!”
잠시 후.
문상의 배려로 감격의 상봉을 하게 된 나는 묘향과 함께 뇌옥 안에서 그녀가 싸 온 음식과 술로 식사를 마쳤다.
마음 같아선 침대로 직행하고 싶었으나 환경이 환경이니만큼 간신히 참았다.
“이런 젠장! 당주씩이나 돼서 면벽이라니. 이렇게 이쁜 마누라를 두고 일 년이나 갇혀 있어야 한다니!”
“아이참, 그만하시고 일단 이거부터 드셔요. 이번에 들어가시면 식사 챙기시기 힘들잖아요.”
하늘 같은 남편이 면벽형을 받았음에도 그녀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조신한 태도로 과일을 건넸다.
“크흠, 딱딱한 복숭아는 싫은데…….”
물렁물렁한 복숭아가 좋은데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비타민 섭취가 힘들어질 게 뻔하여 억지로 베어 물며 물었다.
“……얘기는 들었어?”
“예, 문상님께 전부 들었어요. 열심히 설명해 주시던걸요?”
“…….”
“일단, 한중상련과 서천상단 전체에 주의령을 내리긴 했어요. 상련 같은 경우는 각지의 표국과 연계해서 보표를 고용할 예정이고, 서천상단은 북궁창 대주가 일정 수의 흑룡대원들을 파견해 주시기로 했답니다.”
“잘했네.”
마음 같아선 전룡당 전체에 한중상련과 서천상단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지만, 불가능했다.
전룡당의 우선순위 일 위가 바로 한중과 감숙의 방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향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제가 했던 얘기 기억하세요?”
“어떤 얘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요.”
그녀가 자신의 손을 내 손 위에 살포시 올려놨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상공께서는 옳은 일을 하신 것뿐이에요. 제가 할 일은 그런 상공을 최선을 다해서 보좌하는 거고요.”
“부, 부인…… 크흑.”
와락!
“어멋?”
밀려오는 감동의 쓰나미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힘껏 안았다.
물컹.
따뜻한 묘향의 마음이 절로 느껴졌다.
* * *
다음 날.
나는 해가 뜨자마자 면벽지로 결정된 은자림으로 향했다.
많고 많은 면벽지 중에 왜 하필 은자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뭐, 혼자 쓸쓸히 지내는 것보다 얼굴 아는 사람이 있는 게 백번 낫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태청 영감이나 만나서 수다나 떨어야지.’
문제는.
“너희가 왜 여기 있냐?”
“후후후, 할아버지께서 가가의 감시자로 임명하셨답니다. 제게 얼마나 잘 보이느냐에 따라 이번 면벽의 난이도가 달라지는 거라고요. 엣헴.”
“저는 은자님들의 건강 상태를 살펴 달라는 문상님의 부탁을 받고 왔어요.”
“…….”
적화란과 청소소라는 불청객이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나마 청소소의 경우 단발성으로 왔다 가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적화란이 감시자라니.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외딴곳에 자신의 손녀와 나를 밀어 넣겠다는 뜻이 아닌가.
‘부성주 할배는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모르는가!’
공자와 맹자께서 아시면 경을 치실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너, 너 그거 뭐야?”
“뭐요? 응?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거 말이야 그거. 흉부에 달려 있는 그거.”
엄청난 크기의 마음이 적화란의 흉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혈종 놈들과 싸웠을 때가 사과라고 치면 지금은 작은 하우스 수박만 한 크기.
도무지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역시 한 번에 알아봐 주실 줄 알았어요.”
둥실.
적화란이 오만한 표정을 지은 채 팔짱을 끼어 자신의 마음을 강조했다.
“풍유환의 효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죠. 후후후. 이게 다 서천제일 명의라는 우리 청화신녀 덕분이 아니겠어요?”
난데없는 칭찬에 청소소가 적화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야말로 동생이 잘 따라와 줘서 고맙지.”
“뭘요. 이게 다 언니가 잘 만들어 준 탓이죠.”
“동생!”
“언니!”
와락.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그래도 뭐.
보기는 좋네.
* * *
사자맹 심처.
총군사 이여령은 패군을 놓친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그 누구도 그녀에게 벌을 내릴 수 없다.
서열은 내원주와 장로원주가 위였지만, 맹주를 직접적으로 독대할 수 있는 인물은 그녀 하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으음…….”
난감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는 그녀에게 백무하가 다가갔다.
“무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냐. 이게 어디 무하 때문이겠어? 패군에게 숨겨진 호위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나 때문이지.”
이여령이 방긋 웃으며 답하자 백무하가 더욱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죄는 책임지고 갚겠습니다.”
“흐흥. 그래? 그럼 어떻게 할지 자세히 들어 볼까?”
“총 군……. 읍!”
이여령의 양손이 백무하의 목을 감싸더니 입을 맞췄다.
한 시진 후.
이여령이 잠든 걸 확인한 백무하가 소리 없이 일어났다.
초절정의 무인인 그의 발걸음에선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가 향한 곳은 이여령의 전각에 달린 작은 쪽방. 얼핏 보면 하인이나 쓸 거처로 보이나 그곳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쿠릉.
바로 숨겨진 지하가 있다는 것.
익숙한 듯 성큼 내려간 백무하가 문을 닫고 들어갔다.
지하 공간은 어지간한 장원만큼 넓었고,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거의 다 갖춰져 있었다.
백무하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가시덩굴로 뒤덮인 침상 하나가 전부인 쪽방이었다.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침상에 앉아 눈을 감았다.
“휴.”
고통스러웠지만, 그 어떤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복수.
자신과 백가장을 파멸에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진무전에게 복수할 방법을 궁리하는 이 시간만이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구룡성에서 추방되고 얼마 후.
백룡당의 가솔들과 함께 서천을 떠나던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천만금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사파 무리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들른 객잔의 음식에는 산공독이 들어 있었고 이틀 걸러 한 번씩 야습을 당했다.
사파에게만 공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잠시 신세를 지던 분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악독할 때도 많았다.
이에 백가장의 식솔들은 산으로 들로 숨어서만 이동했고 마침내 목적지인 광동성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스물이 채 되지 않았다.
가문을 일으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전력.
백무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가솔들을 모조리 베어 버린 후, 백가장의 남은 재산을 챙겨 사자맹에 투신했다.
오로지 무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백무하는 총군사 이여령의 정부이자 수하가 되었고 오로지 복수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병신같은 년,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 해서…….”
자신의 감정을 숨겨 가면서까지 말이다.
* * *
“으하함.”
따악!
안마봉이 시원하게 어깨를 두들겼다.
“졸면 안 돼요!”
면벽 감시관이 된 적화란이 내가 눈을 감는 타이밍을 보고 기가 막히게 내리친 것이었다.
“이 오라버니는 벽을 보고 있으면 절로 잠이 오는 병에 걸렸어요.”
“거짓말!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디 있어요?”
“진짜라니까?”
“흥, 그런 헛소리를 누가 믿을 줄 알고요?”
“의심되면 맥을 재 보면 될 거 아냐.”
손목을 내밀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적화란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럼 어디 봐…… 꺄악!”
덥석.
가까이 온 그녀를 냉큼 끌어안고 안마봉을 빼앗아 멀리 던져 버렸다.
“뭐, 뭐 하는 짓……!”
“이대로 조금만 자자.”
“아, 안 되는데…….”
반항도 잠시, 품에 안긴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 그럼 아주 조금만…….”
그렇게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대고 눈을 감던 차.
“잘하는 짓이다.”
“꺄악!”
태청진인이 나타나며 산통이 깨졌다.
적화란이 자신의 이름대로 새빨간 꽃이 되어 황급히 도망갔다.
“따뜻해서 좋았는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내뱉자 타박이 들려왔다.
“세상천지에 면벽 중에 여자를 탐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 그것도 사문의 존장들이 쉬고 있는 은자림에서! 네놈이 정녕 사람 새끼더냐?”
“거참, 조금 있으면 혼인할 여자 좀 껴안았다고 잔소리는……. 그리고 면벽 이거 아무 소용없다니까요? 오로지 실전만이 무인을 완성시킨다고요.”
“이놈이 진짜?!”
팟. 툭.
짧기 그지없는 두 번의 파열음.
사일검의 묘를 담아 내리꽂히는 작대기를 전왕류의 주먹으로 쳐 낸 소리였다.
태청진인이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손을 움직였다.
파파파팟.
사일검을 펼친 것이다.
비록 내공 한 줌 담지 않았으나 일 검 일 검이 고차원적인 무리를 담고 있던바, 나는 거리를 벌리며 그것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툭. 툭툭툭.
“이것도 받아 보거라!”
후웅!
순식간에 가까워진 작대기가 콧잔등을 노려 왔고.
파슥.
손날로 펼친 섬월이 작대기의 중간을 잘라 냈다.
“허!”
내가 그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막아 내자 태청진인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이, 이 무슨 괴물 같은…… 분명 달포 전엔 막지 못했는데?”
“훗, 이제 저한테 안 되실 거 같은데요?”
“아직 멀었다, 이놈아!”
면벽 한 달 차의 어느 날이었다.